2006.1.18 13:00 이정린 총동창회장은 이규환 사무총장과 강남구 역삼동 음식점 ‘삼경’에서 24기 동기회 류익현 회장을 비롯한 신.구임 임원 20여명과 오찬모임을 가졌다. 24기 동기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이정린 회장은 총동창회는 회원 상호 간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그러나 국가안보 문제만은 양보할 수 없으므로 모든 회원들이 다함께 노력해야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를 위해 총동창회에서는 2005.12.20 안보평가회를 통하여 이해관계와 정치문제를 떠나 순수하게 우리의 안보현실을 진단하여 참석한 동문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음을 상기시키고 2006년도에도 두 가지 문제에 진력할 계획임을 피력했다.
첫째, 육사 출신이 국가와 군에 대해 미친 그간 역할의 공과 과를 객관적으로 정리하여 논리적으로 대응하도록 준비하고, 둘째, 순수하게 국민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여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하의 통일방안에 대해 로드맵을 작성, 국민공감대를 형성해 갈 계획임을 천명하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우리가 대화합을 이루고 제 역할을 다할 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으므로 각 기별 활동이나 총동창회 활동에 동기회장을 중심으로 24기 동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기대하였다.
또한 굳건한 한미동맹이 우리 안보에 큰 축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 일환으로 총동창회에서는 신임 브시 바오 주한미국대사를 초청하여 2006년 3월 22일에 강연회를 가질 예정이며, 우리가 이제 전역하여 새로 소대원을 40명씩 모아 교육시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지킨다는 각오로 주변부터 홍보하여 힘을 결집해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그리고 이규환 사무총장은 우리 동문들이 화합하기 위해서는 생도생활이나 군 생활을 통해 맺혀진 응어리를 풀어야하며 이는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가 먼저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24기 동기회에서 제기된 의견은 다음과 같다.
1. 육사인으로서 명예와 긍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2. 생도와 전역한 선배들 간에 후견인 제도 같은 것을 두어 생도들을 지원하고 조언하는 것도 검토가 필요하다. 3. 현역 회원으로 인해 정치적인 문제는 접근할 수 없으므로 예비역 중심의 별도 조직을 검토할 필요는 없는가? 4. 육사 출신들의 의식개혁이 필요하다. 출세지상주의보다는 정정당당하고 진실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3군사관학교 체육대회 부활에 관한 의견 등이 있었다.
총동창회장 25기 동기회 임원과 오찬
2006.1.19 12:00 이정린 총동창회장은 이규환 사무총장, 최동진 복지분과위원장과 '육군회관'에서 25기 동기회 박준근 회장 및 임원 15명과 오찬모임을 가졌다.
25기 동기회장의 인사 및 동기회 임원 소개에 이어 이정린 회장은 특히 25기부터 공무원으로 진출, 공무원 사회에서도 열성적으로 성실하게 근무하여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므로 이제 25기를 기준으로 후배 기수들이 총동창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어느 나라에서나 국가안보 문제와 군 출신들은 늘 함께 가야되기 때문에 총동창회의 근본 목적이 친목 도모이지만 그러나 국가안보 문제만은 양보할 수 없으므로 모든 회원들이 다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총동창회에서는 2005.12.20 안보평가회를 통하여 이해관계와 정치문제를 떠나 순수하게 우리의 안보현실을 진단하여 참석한 동문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음을 상기시키고 2006년도에도 두가지 문제에 진력할 계획임을 밝혔다.
첫째, 육사 출신이 국가와 군에 대해 미친 그간 역할의 공과 과를 객관적으로 정리하여 논리적으로 대응하도록 준비하고, 둘째, 순수하게 국민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여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하의 통일방안에 대해 로드맵을 작성, 국민공감대를 형성해 갈 계획임을 천명하였다.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자기 생존은 자기가 책임지고 지켜야하므로 우리 모두 주인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말씀으로 끝을 맺었다.
이어 환담 중에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 등 군생활과 관련된 대화들을 나누었다.
12기
1. 신년교례회 및 임시총회 - 일시 : 2006.1.12 11:30 - 장소 : 군인공제회관 연회실 - 내용 : 85명(부인26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 박승덕 동기회장의 인사말, 최낙철 동문의 50년회고 이야기, 박세직, 최 웅, 박승돈, 유연국 동문의 덕담 및 성찬. 任官50周年(2006.6월)행사계획 수정안 발표 및 의결
14기
1. 장준익 동문 하와이대 북핵문제 특강 - 2006.1.5 하와이대 한국학센터에서 대학교수, 유학생 및 현지 교민들을 대상으로 "북한핵과 한국의 안보"라는 주제로 1시간에 걸쳐 강의 - 현 한국안보전략연구소장
1. 2006년 초석동기회 임원진 편성 - 회장 : 김영한 - 부회장 : 김홍영(서울지회장), 이종헌(한길회 회장) - 총무 : 송병수 - 재무 : 이기수 - 감사 : 김수도 - 동호인지회장 : 초석산악회 김진양, 초석골프회 오 영, 광화문포럼 오종석, 강남포럼 심춘주
2. 김기호 동문 삼성테크윈 상임고문 취임 3. 유승화 동문 행복도시 건설청 차장 취임
43기
1. 인성환 동문 美 근무공로훈장 수상 - 2006.1.20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미국 정부가 수여하는 '근무공로훈장'(The Meritorious Service Medal) 수상 - 2003년 12월부터 1년간 미국 플로리다 중부사령부 기획참모부 연합기획단 전략기획장교로 근무. 중부사령부 책임지역 내의 전략환경에 대한 평가보고서 작성으로 중부사령관이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데 크게 기여 - 현재 27사단 신병교육대 대대장
미국이야기 제24화, 겪고 사는 지진 그리고 피해 복구 - 16기 고장환
얼마 전에 Washington D.C에 가서 며칠 있다 온 일이 있었습니다. 특이했던 것 중 하나는 내가 만난 보통 미국인들 중에 이곳 Los Angeles에 와 본 사람이 거의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큰 나라이기도 하고 멀기도 하니까 그러겠지만 미국 내에서도 먼 곳에 가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 듯 합니다.
반면 만나는 한국 사람들에게 LA에서 왔다고 하면 대부분은 "지진이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곳에서 무서워서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보도를 통해서만 듣는 지진 이야기를 생각하면 그럴 만 하다고도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곳 LA에만도 수 백만 명이 살고 있을 뿐더러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살기 좋은 곳 중의 하나라고 평가되고 있으니 LA하면 지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나 선입관일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난 30여년 이곳에 살면서 겪었던 지진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드릴까 합니다. 간혹 지진이 있었던 것을 전연 느끼지 못했는데 지진이 있었다고 신문에 난 것을 볼 수 있는데 1년에 한 번 또는 두 세 번 정도인 것으로 기억됩니다. 실제로 지진임을 느꼈으나 전연 피해가 없었던 때는 대략 네 번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한 번은 회사에서 근무 중 내 자리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책상, 의자 밑으로 급한 물이 흐르는 듯 우루룩 느꼈는데 처음 당하는 일이니 웬일인가 했는데 바로 그것이 지진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의 지시랄 것도 없이 모두가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지진 현상은 그저 단 몇 초 동안에 있었으니 전기 전화를 비롯한 어떤 것도 아무 피해가 없었습니다. 다음날 신문을 보니까 중심 지역 되는 곳에서는 사진액자가 떨어 지거나 꽃병이 넘어지는 정도의 피해가 있었던 것을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직장도 마찬가지 겠지만 우리 회사도 분기에 한 번씩 긴급 대피 훈련을 합니다. 훈련이래야 약정된 신호에 의하여 뛰어나가서 각 부서별로 모여서 인원 점검하는 정도입니다.
한 번은 골프를 치고 있는데 지진이 있었습니다. 그 넓고 웅장한 골프장에 있는 나무들 하며 넓은 잔디벌이 무질서하면서도 기분 몹시 나쁘게 스적스적 흔들리니까 가슴이 울렁거리며 몹시 겁이 났습니다. 이것 역시 10~20초 간의 일이니까 잠시 후에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계속 골프를 쳤습니다.
또 한번은 집사람이 Downtown에 있는 10여 층 되는 건물에서 봉제공장을 하고 있을때 였습니다. 나는 내 직장에 있었으니 단층인 건물이니까 그저 밖으로 뛰어나가면 되었지만 고층건물에 있었던 집사람은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공원들은 대부분 히스패닉 계통 사람들이니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대부분 입니다. 지진이 나서 건물이 흔들리니까 우선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으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층층대로 내려가는 겁니다. 엘리베이터는 아무도 이용하지 않고 층층대에 빼곡히 차서 급하게 내려가는데 많은 젊은 여자들은 알아 들을 수도 없는 자기네 말을 소리 높여 찌걸이기도 하고 엉엉 울기도 하고, 계속 가톨릭식의 성호를 긋는가 하면 어떤 이는 어느 결에 성경을 꺼내 들고 소리높여 읽으며 내려가기도 하더랍니다.
겁나는 것은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것도 있었지만 누구라도 넘어지면 큰일이겠다 하는 것이 였더랍니다. 그래도 그때 우리 큰아들이 함께 일했는데 주인의식이 있어서인지 공장 문을 전부 잠그는 것을 확인하고 내려왔습니다. 그리고는 무조건 집으로 차를 몰고 왔습니다. 마치 집이 피난처라도 되는 듯이 말입니다. 그게 아닌데도 집에 와서야 놀란 가슴이 다소 가라앉더랍니다. 그리고는 TV를 보니 상황은 끝나고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기에 다시 공장에 가서 확인하니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짐작은 하였지만 이곳의 건물은 지진을 대비해 철저한 공법이 적용되었기 때문에 강도가 심하지 않는 지진에는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얼마 안되어 같은 강도의 지진이 Mexico City를 강타했을 때는 수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것을 보면 역시 미국은 든든한 나라인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서울에 있는 형님이 우리집에 와 있을 때 였습니다. 형님이 식탁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심하지는 않지만 수영장 물이 출렁거리니까 "수영장물이 왜 출렁거리지?" 하는 겁니다. 그리고 식탁 위에 있는 샹델리어도 흔들리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바로 지진이 있었다고 알려 주니까 어쩐지 순간적으로 아찔하면서 메스껍다고 느꼈는데 건강상 이유 때문인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LA 지진이었구만 하면서 좋은 경험 하였다고 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6.7 진도의 강진이 우리가 사는 지역을 강타했을 때 이야기 입니다. 이 정도의 강진이 아프가니스탄이나 터키를 강타했을 때는 수천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던 정도의 강진이었습니다. 한밤중이었는데 시간도 1~2분 정도로 길었던 것 같습니다. 집이 부서질 것 같이 몹시 흔들리는 것은 물론이지만 마치 차돌을 심하게 일부러 부딛치는것 같은 "딱딱 딱...." 하는 소리가 귀 아프게 들리고 하늘까지 치솟은 수영장 물이 땅에 떨어지는 요란한 소리하며 천지개벽 하는 듯 하였습니다.
너무도 무섭고 겁이 나서 엉겁결에 이불 뒤집어 쓰고 옆에 있는 집사람 위에 겹쳐서 엎드려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비상시에 내가 영웅적으로 집사람을 보호하려고 하였다는 엉뚱한 해석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뒤뚱거리며 냅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까 나중에 부부가 크게 다퉜다고 합니다.
"자기만 살겠다고 혼자 도망 가면 어떡해" "자기 다리는 휴가 갔어?" "옷 안 입었잖아!" "그 참에 누드쇼라도 하지 그랬어!"
전기 전화도 전부 두절되고 암흑 세계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피해가 심했을 텐데도 바로 다음날 오전 중으로 전기와 전화는 복구된 것을 보고는 아주 고맙고 기특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아침에 확인하니 우리집은 전연 Damage가 없었기에 약 15분 거리에 사시는 12기 선배님 댁이 진원지와 가까운 곳이니 아침 일찍 가 보았습니다. 가구가 전부 넘어지고 떨어져서 깨어지고 집 벽도 더러 금이 가기도 하고 벽돌 담장은 거의 전부 넘어진 상태였습니다. 선배님 댁을 비롯한 이웃들이 줄줄이 그리고 넓게 심한 피해를 보았는데 이상한 것은 길 하나 건너에 있는 집들은 또 전연 손상 받지않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TV를 통해서 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을 알았습니다. 굉장한 지진이었는데 2명만 죽었다는 것은 미국에서도 매년 220명 정도의 광부가 죽는 것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더욱이 중국에서는 매년 광부들이 죽는 숫자가 5000 명 정도라고 하니까 엄청난 지진에서도 2명만 죽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다음은 지진 발생 후 경험한 복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연방정부에서 지진지역을 재해지역으로 선포하니까 즉각 FEMA[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에서 복구를 총괄시행하는 듯 하였습니다. 나와는 전연 관계 없이 알게 모르게 신속히 시행되는 듯 하였습니다. 그런데 심한 피해를 보신 12기 선배님은 마침 주택보험에 지진피해에 대한 내용도 있었기 때문에 아무 문제 없이 완전 복구가 쉽게 이루어졌습니다. 지진피해에 대한 보험은 비교적 비싸기 때문에 주택보험에 지진피해에 관한 것은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한편 우리집 경우는 피해가 없다고는 하여도 이참에 지붕도 새로 하고 Drive way도 아스팔트로 되어 있는 것을 콩크리트로 하고 상수도 관도 새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FEMA에서 지원받을 정도는 아니니까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서 수리해야 되는데 이자율이 6~7% 정도나 되고 잘 해주지 않아서 기회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LA시 정부에서 지진으로 인한 영향으로 집 수리하고저 할 때는 0.2%의 이자율로 융자해준다는 것을 LA Times에서 보고 알았습니다. 그래서 즉시 50.000불을 신청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직원이 나와서 전부 세세히 점검하더니 40.000불을 융자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집수리를 대대적으로 했는데 수리과정에서 단계별로 시 정부 관리가 철저히 점검하고는 단계별로 시공자에게 직접 돈을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집주인으로서 시공자와 다투거나 시비할 일이 없으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시공자를 한국 분으로 하였는데 시에서 점검 나와서 검사하고 가고 나면 시공자에게 "되게 골치 아프시겠습니다" 하고 위로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강렬하게 느낀 것은 집은 내 집이지만 시정부의 입장에서도 내 집을 시정부의 재산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새로 집을 지을 때도 물론이지만 새 집주인이 입주하고 난 다음에도 정원 조성을 비롯한 여러 가지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계속 간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곳에서 살면 살수록 자연스럽게, 합리적으로 법에 순응하면서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신년에 보내는 노병들의 당부 - 27기 김 규 (성우회 안보평론위원)
지난해에 있었던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집단’으로 모욕하고, 맥아더를 전쟁광으로 몰면서 동상을 끌어내리겠다고 자행했던 폭력 시위, 군의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명령과 절대 복종’이라는 인권을 무시하는 군사문화가 발생 원인이라고 몰아붙이면서 군을 무지한 폭력 집단정도로 매도하는 세태 그리고 군을 재개발지역 세입자만도 못하게 취급한 송파지역 군부대의 일방적인 이전 명령인 왜곡된 문민 우위정책 등이 울화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군은 사기를 먹고 살며, 명예를 위해 싸우고, 노년에는 조국의 품에 안겨 안식을 취하는 것을 삶의 가치로 여긴다. 그러나 ‘05년에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이렇게 싸늘한 냉소뿐이었다. 하지만 정권은 유한하고 대한민국은 영원하다는 데에 위안을 삼고 지난해의 역겨움들을 보냈다. 하지만 신년 벽두에 보도되는 소식들은 벌써 군에 대해 실망의 한숨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현역 병사 10명 중 6명이 앞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가능성은 없다고 믿는다”는 여론조사 결과와 “기존 사병이 하던 최전방 경계근무를 최첨단과학전자감시시스템이 대신하는 것을 확대 시행에 앞서 시범 운용한다”면서 “이는 국회에서 논란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첨언한 국방일보의 기사다.
이제 우리 군에게는 싸워야 할 직접적인 적도, 잠재적 가상적도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의(戰意)가 없어지면 군의 무형전력은 무력화되고, 이는 유형전력까지 고철덩어리로 만들고 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군이 왜 이 지경이 되고 있는지 안타깝다. 장병들에게 확고한 안보관을 심어주는 것은 군의 평시 사명 중 하나이며 전역 후 재사회화에 연결하도록 할 소명이 주어졌다. 또한 군이 특정 정치환경에 영합하고 있는 것 같아 더욱 허탈할 뿐이다.
군의 첫째 임무인 경계는 어떠한 악조건 하에서도 완수해야 할 지상명령인데 위험천만한 대책으로 대치하려고 하여 어이가 없다. 우리는 그동안 효율적 경계를 위해 많은 감시체계를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아무리 첨단과학화된 감시장비를 구비하더라도 완벽한 경계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어떠한 과학장비도 항상 기술적 한계를 가지고 있어 인간의 지능을 완벽하게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계를 보완해주는 보조 수단인 감시장비를 경계병을 대신하여 운용하겠다는 발상은 버려야 한다. 혹시 병사들의 근무를 좀더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사기를 앙양하고, 안전사고를 예방하여 골치 아픈 인권문제 소지를 없애줄 수 있다는 안이함이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원칙을 적당함으로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 이를 초기에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는 대공 경계, 해상경계에까지 번질 것이고, 곧바로 대한민국 경계울타리를 총체적으로 무너뜨리는 단초가 될 것이다.
군이 ‘경계임무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지 않으면 앞으로 정치인들이 군 작전까지 간섭하는 해괴(駭怪)한 작태가 만연될 공산이 크다. 이는 국가안보에 큰 재앙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사태는 결단코 막아야 한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자는 용서할 수 없다’ 금언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작년 한 해 동안(05.1.1~05.12.9) 총 121회의 대외 공개활동을 하였다. 이중 약 50%(62회)를 군부대 방문에 할애했는데 이는 가볍게 볼 사안이 결코 아니다. 작년 2월 선언한 ‘핵무기’보유선언 이후 군의 사기 고양 실태, ‘군이 주체가 되어 사회주의 혁명을 선도한다’는 선군정치(先軍政治) 시행 상태 그리고 수령에 대한 절대충성을 다지는데 목적을 두었을 것이다. 이러한 북한군최고사령관 김정일의 노력으로 북한 군부는 현재 어려운 경제상황 하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이고 대미, 대남 적개심으로 똘똘 뭉친 군대가 되어 있다. 이는 탈북자들의 증언이나 인민군 정신교육 교재 그리고 여러 내부 문건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남북한 체제경쟁은 이미 끝났고, 북한은 전쟁할 능력도 의도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안보예산을 줄여 복지예산으로 돌려야 한다’는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언동을 군은 경계해야 한다. 아무리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 편안하다고 외환(外患)에 대비하지 않으면 필히 국가 안보 위기는 온다는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의 교훈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또한 훈련을 게을리해서도 안된다. 군 복지 증진과 강한 훈련의 양 날개를 확고히 할 때 진정한 군의 사기 앙양과 기강이 확립된 강군이 될 수 있다. 군은 어제든지 조국의 부름에 자신 있게 출전할 수 있는 천일양병 일일용병(天日養兵 一日用兵)이라는 무언의 명령 수행에 한치의 허점이 없도록 항상 진력해야 한다.
2005. 1. 10.
쿠르스크전투 (Battle of Kursk) - 세계평화 (DEFENCE KOREA)
흔히들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독소전의 분수령이라고 하며, 쿠르스크 전투로 양측의 판도가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으며 또한 독일의 2차대전 승리 가능성을 제로퍼센트로 끌어내린 2차대전 최대의 사건이라고 한다. 독일군은 그들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장소에서 대규모 전력을 동원하여 승부를 벌였지만 결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