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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하천종약회보39호 옮김
영천시 자양면 명승지 분포도
1, 운주산(雲住山)
산이 높아서 항상 구름이 살고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운주산이라 불렀다.
어느 해 가을과 겨울에 눈 덮인 모습.
흘립만고(屹立萬古) 운주산(雲住山)은 자양산(紫陽山)의 조종(祖宗)이요
엄연묵연(嚴然默然) 정중(鄭重)함은 은군자(隱君子)의 태도(態度)이요
<운주산(雲住山)은 오랜 세월 동안 깎아지른 듯이 높이 솟아 자양산의 으뜸 되는 산이요
그 모습이 의젓하고 말없이 정중함은 세상을 피하는 군자와 같은 태도이다.>
*흘립(屹立) : 산이나 바위, 나무 따위가 깎아지른 듯이 높이 솟아 있다.
*은군자(隱君子): 재능은 있으나 부귀공명을 구하지 않고 세상을 피하여 사는 사람.
*운주산은 우리 고장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정상 뒤편에 매산공의 조부 대호군
鄭時諶의 묘소가 있다.
2. 안국사(安國寺)
운주산 포항 쪽 산기슭에 자리한 안국사의 대웅전과 종각의 모습
2013년에 대웅전이 붕괴되어 복원 되지 않고 있다.
쟁영산복(崢嶸山腹) 안국사(安國寺)에 미문종성(微聞鍾聲) 처량(凄凉)하다.
<높고 가파른 모양의 산의 허리에 자리한 안국사의 은은한 종소리가 처량하다.>
*쟁영산복(崢嶸山腹): 산이 높고 가파른 산 허리.
*안국사(安國寺): 운주산의 포항 쪽의 산기슭에 자리했으며, 신라시대의 사찰이다. 몇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지금은 일부만 중건하였다. 위, 아래 두 곳의 안국사가 있는데 여기서는 옛 사찰의 터가 있는 위쪽의 안국사를 칭한다.
1910년대 영남지역 의병부대인 산남의진(山南義陳)의 근거지로 알려져 일제에 의해 불태워지기도 하였다. 옛날에는
우리고장 분들이 ‘불리재’를 넘어 절에 다니기도 하였다.
3. 보현산(普賢山)
보현산 천문대가 보인다.
보현산(普賢山) 준엄(峻嚴)함은 백절불굴(百折不屈) 기상(氣像)이요
<보현산의 준엄한 모습은 백번을 꺾이더라도 절대로 굽히지 않겠다는 드러난 모양이요.>
*준엄(峻嚴): 조금도 타협함이 없이 매우 엄격하다.
*정상 부근에는 보현산 천문대가 위치해 있고, 한말에 산남의진의 의병들이 활동하였다.
4. 거동사(巨洞寺)
거동사의 대웅전
거동사(巨洞寺) 천년고적(千年古蹟) 옛 신라(新羅)의 유물(遺物)이라.
<천년고적인 거동사는 옛 신라 때의 남겨진 유물이라>
*거동사(巨洞寺): 신라 때 의상(義湘: 625∼702)이 창건하였다. 창건 이후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으나
남아 있는 절터를 보면 매우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2동의 요사가 있다.
신라 때의 건축 양식을 지닌 건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7호로 지정되었다. 문살에 국화무늬가
있는 것이 특이하다. 특히 한말 산남의진의 활동거점이 되어 호국불교의 역할을 하였다.
5. 기룡산(騎龍山)
용화 마을을 지나 쳐다 본 기룡산과 정상의 모습
효용(驍勇)한 기룡산(騎龍山)은 호협웅장(豪挾雄壯) 기벽(氣癖)이요
<날래고 용감하게 생긴 기룡산은 호방하고 의협심이 있는 거대하고 성대한 자부심이 강한 성질이요>
*효용(驍勇): 날래고 용감하다.
*호협(豪挾): 호방하고 의협심이 있다
*웅장(雄壯): 규모 따위가 거대하고 성대하다.
*기벽(氣癖): 자부심이 많아서 남에게 지거나 굽히지 않으려는 성질
*기룡산의 이름은 묘각사 창건의 설화에 따르면, 창건 당시에 동해 용왕이 의상에게 법을 듣기 위하여 말처럼
달려왔다고 해서 절이 들어선 산 이름을 기룡산(騎龍山)이라 했다고 한다.
*기룡산의 줄기가 우리의 성지인 하천묘역으로 뻗어 그 정기로 인하여 명당으로 이름 높다.
6. 묘각사(妙覺山)
천년고찰 묘각사의 모습
이 중봉(中峰) 묘각사(妙覺寺)는 고인수교(古人手巧) 묘각(妙覺)일세
<이 기룡산 중턱에 있는 묘각사는 옛사람들의 손재주가 마치 온갖 번뇌를 끊어 버린 부처의 경지에 이르렀네>
*고인수교(古人手巧): 옛사람의 손재주 즉 손으로 무엇을 잘 만들어 내거나 다루는 재주.
*묘각(妙覺): 보살이 수행하는 오십이위(五十二位) 단계 가운데 가장 높은 단계. 온갖 번뇌를 끊어 버린
부처의 경지에 해당한다.
*묘각사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의상(義湘: 625∼702)이 창건하였다. 설화에 따르면, 용왕이
달려와서 의상에게 법문을 청하자, 의상이 법성게(法性偈)를 설하였더니 문득 깨닫고 승천하였다. 용왕은
하늘에서 감로(甘露)를 뿌렸는데, 이 비로 당시 극심했던 가뭄을 해소하고 민심을 수습했다고 한다. 이에
의상은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묘각사라 하였다.
7. 오미산(烏尾山)
사진(위): 왼쪽이 백암산이고, 중앙의 높은 산이
오미산이며. 오른쪽이 嘉桐山이다.
사진(아래): 영천댐의 둑과 연결된 오미산의 모습
봉용미자(丰容美姿) 오미산(烏尾山)은 물외고사(物外高士) 자품(資稟)인 듯
<토실토실한 아름다운 얼굴과 아름다운 모습인 오미산은 현실 세계의 바깥세상에 있는 높은 선비의 바탕과 성품인 듯>
*봉용미자(丰容美姿): 토실토실한 아름다운 얼굴과 아름다운 모양.
*물외고사(物外高士): 구체적인 현실 세계의 바깥세상에 있는 높은 선비.
*자품(資稟): 사람의 타고난 바탕과 성품.
*오미산은 자양면의 입구에 자리하여 수문장의 역할을 했고, 산 밑에는 피부병에 좋은 약수탕이 있어 주민들이
많이 이용했다. 1970년대에 마주보는 가동산(嘉桐山)을 이어 둑을 막아 영천댐이 건설되었다.
8. 필대산(筆大山)
사진의 두 봉우리 중 왼편 산이 필대산이다.
아랫귀미 마을 앞을 흘러간 1970년대의 자호천의 모습!
(1995년 1월 20일 촬영)
필대봉(筆大山) 쌓은 붓은 명화필(名畵筆)의 근원(根源)이요
<필대산 쌓은 붓은 유명한 그림을 그리는 붓의 근원이요>
*명화필(名畵筆): 유명한 그림을 그리는 붓.
*필대산은 귀미마을 남쪽에 우뚝 솟은 산으로 그 이름이 붓과 관련 있으므로 사람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주었다. 면학하여 성공하겠다는 희망을 갖게 하여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9. 탕건봉(宕巾峰)
중앙부의 3층 봉우리 맨 아래봉과 둘째 봉이
귀미마을 쪽에서 보면 탕건 모양이다.
탕건봉(宕巾峰) 기절(奇絶)함은 예측과한(豫測科翰) 범상(凡常)하다.
<탕건 같이 생긴 탕건봉의 신기하게 생긴 모습은 과거(科擧)에 등과가 예측되니 범상하다>
*과한(科翰):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
*백암산 동봉 쪽의 3단의 봉우리가 중 아랫 봉과 둘째 봉이 합해져서 귀미마을 쪽에서 보면
탕건 같이 보인다.
한편 청석으로 된 바위산이며 산 사이에 골자기가 있어 ‘청석골’이라고도 했다. 어릴 때 청석골 즉
탕건바위 밑에서 목욕도 하고 고기를 잡기도 했다.
10. 병풍봉(屛風峰)
중귀미와 안귀미 사이에 있는 못골 안쪽산으로
운주산 줄기인데 바위가 병풍같이 펼쳐 서 있다.
부인암하(婦人岩下) 병풍봉(屛風峰)은 이 자양(紫陽)의 보병(寶屛)일세
자생화초(自生花草) 수(繡)가 되고 창공비학(蒼空飛鶴) 화(畵)이로다
<부인암 아래 병풍봉은 이 자양의 보물 같은 병풍 일세 병풍봉에 자란 자생화초가 수(繡)가 되고,
창공을 나는 학의 그림이 되도다.>
11. 노적산(露積山)
어느 해 댐의 물이 줄어 인구와 월연 사이의 ‘
앞거랑’ 넘어 보이는 노적산은 그리 크지 않으며
오늘날에는 산 밑으로 도로가 나 있다.
노적산(露積山) 쌓은 양곡(糧穀) 풍유여량(豊裕餘粮) 노적(露積)이요
<노적봉 쌓은 양곡은 넉넉하여 식량이 남아서 한데에 수북이 쌓은 노적의 형상이오>
*풍유여량(豊裕餘粮): 풍유해서 식량이 남아도는 것
*노적(露積): 곡식 따위를 한데에 수북이 쌓음.
*꼬깔산 아래에 노적을 쌓은 형상인 작은 산이 노적산이다.
12. 성혈암(聖穴岩)
성현군자(聖賢君子) 영정피란(影幀避亂) 성혈암(聖穴岩)의 공적(功積)이라
<포은선생을 비롯하여 여러 성현과 군자의 영정을 피란함은 성혈암의 공적 이라.>
*성혈암(聖穴岩): 일명 성현암(聖賢巖), 기룡산 줄기인 성곡리의 고깔산 중턱에 바위 동굴을
성혈암이라고 한다. 그 동굴 속에 임진왜란 당시 포은선생을 비롯하여 영천 향교 오성위(五聖位)의
위패를 피난시켰으며, 또한 왜적이 침입해 왔을 때 호수공의 아드님들이 한때 어머니 손씨부인을
모시고 피란한곳이기도 하다.
13. 시루봉(峰)
호수 북쪽의 중앙에 솟아있는 봉우리가 시루봉인데
하천(夏泉)서 서쪽으로 보인다.
(또는 자양면 용화리 운곡지(雲谷池) 안쪽 봉우리)
시루봉(峰) 익힌 음식(飮食) 위선접빈(爲先接賓) 수물(需物)인가
<시루봉에서 익힌 음식은 조상을 위하고 손님을 대접하려고 구한 여러 가지 물품인가>
14. 백암산(栢岩山)
백암산과 백암산에 올라서 본 수몰 직전의
면 소재지와 인구, 월연, 원각마을
단면여벽(斷面如壁) 백암산(栢岩山)은 우리 삼촌(三村) 경대(鏡臺)인 듯
<단면이 절벽 같이 생긴 절벽산인 백암산은 우리 귀미, 인구, 월연 세 마을의 경대인 듯>
*단면여벽(斷面如壁): 물체의 잘라 낸 면이 마치 벽과 같다.
*백암산은 면소재지인 인구, 월연마을의 남쪽에 위치했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바위산이다. 옛날에는 부엉이가 살고
있었고, 저녁때에는 부엉이 울름소리도 들렸다.
15. 진경산(進慶山)
호수의 앞줄 산은 백암산 줄기이고,
뒷줄의 산줄기가 이어진 산이 진경산이다.
그사이에 노항마을이 있었다.
일지장맥(一枝長脈) 진경산(進慶山)은 세세오가(世世吾家) 진경(進慶)이요
<한줄기 긴 기운과 힘이 이어진 진경산은 대대로 우리 집의 경사스러운 일을 끌어들이는 일이요>
*진경산은 운주산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긴 산맥을 이루어 신방, 노항마을을 지나 임고면 금대에서 끝이 난다.
16. 자호천(紫湖川)
충효에서 흘러내린 물이 삿갓바위 연을 지나
‘뒷귀미들’, ‘새들보’를 지나
‘호계탄(중귀미 물나들)’과 ‘아랫귀미 앞과 가마소를 지나
‘탕건바위’와 ‘백암산’ 밑을 지나
오미산 밑을 지나 임고면으로 자호천이 흘렀다.
장류불식(長流不息) 자호천(紫湖川)은 굽이굽이 선경(仙景)일세
<쉬지 않고 길게 흐르는 자호천은 굽이굽이 경치가 신비롭고 그윽하네>
*자호천(紫湖川): 영천시 보현산(普賢山)과 포항시 죽장면의 상옥리에서 발원하여 충효리에서
합쳐지고, 자양면의 영천호를 거처 선원천과 덕천천을 합한 후 금호강(116㎞)에 유입하는 하천이다.
이글에 나오는 산수풍경은 모두가 자호천 기슭에 있다.
17. 용궁담(龍宮潭)
사진 중앙부의 호수 쪽으로 뻗은 지형의
아랫 쪽에 창말마을 앞에 용궁담이 있었다.
깊고 맑은 용궁담(龍宮潭)은 수궁녀(水宮女)의 놀이턴가
<깊고 맑은 용궁담은 수중궁궐의 궁녀들의 놀이턴가>
*수궁녀(水宮女): 물속 용궁에서 왕과 왕비를 가까이 모시는 여인.
*성곡리의 창말마을에서 노항으로 건너가는 자호천에 깊은 소가 있었는데 그곳을
용궁담(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8. 삿갓 연(淵)(삿갓바위)
멀리 보이는 소금강(굴뱅이) 아래의
도로 밑에는 삿갓모양의 큰 바위가 솟아 있었으나
도로공사로 그 속에 묻혀 버렸다.
소금강하(小金剛下) 삿갓 연(淵)은 소인(騷人)의 시제(詩題)되고
<소금강 아래 삿갓 소는 시인과 문사들의 시의 제목이 되고 >
*소인(騷人): 시인과 문사(文士)를 통틀어 이르는 말. 중국 초나라의 굴원이 지은 이소부(離騷賦)에서
나온 말이다.
*소금강을 일명 굴뱅이라고도 했다. 바위산 절벽의 경치가 좋아 소금강이라 불렀는데, 일제 때 도로를
내기 위해 아래쪽의 바위들을 파괴하였기에 옛 모습이 줄어들었다. 그 후에도 물속에서 삿갓 모양의
큰 바위덩어리가 높이 솟아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고, 그 주위에 깊고 넓은 큰 소가 형성되어 소금강의
경치와 어울려 절경이었다. 1970년대 댐 건설로 도로를 확장 하면서 현재의 도로 밑으로 모두 묻혀버렸다.
물이 깊어 이심이 나온다고 하였으며 메기, 뱀장어, 꺽지 등 다양한 물고기들이 있어 천렵하던 곳이다.
19. 호계탄(虎溪灘)
호계탄 자리에 댐으로 수몰되어 토사가
여울에 쌓여있어 실감이 나지 않는다.
호계탄(虎溪灘) 내린 물은 묵객(墨客)의 현수(硯水)인가
<호계탄 흘러 내린 물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벼룻물인가>
*탄(灘): 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
*묵객(墨客):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
*현수(硯水): 벼룻물.
*옛날에는 ‘중귀미 물나들’이라고 불렀다. 여울물의 물길이 경사가 심하여 귀미 쪽으로
힘차고 사납게 흘러서 호계탄이라고도 불었다.
20. 가마소(沼)
정병욱(鄭炳旭)님 머리위쪽의 산 밑에 가마소가 있었고,
정연선(鄭淵宣)님 머리위쪽은 아랫귀미의 터전이 있었다.
(왼쪽부터 정연선, 정갑용, 정병욱)
사진 중앙의 산이 탕건봉이고
그 왼쪽의 산을 지나 그 근처에 가마소가 있었다.
가마소 맑은 청담(淸潭) 탁영세이(濯纓洗耳) 장소(場所)로다
기산영수(箕山潁水) 좋다하나 이 이상(以上) 더 할 손가
<가마소 맑은 못은 갓끈과 귀를 씻은 장소로다. 허유가 귀를 씻은 기산의 영수가 좋다하나
이 이상 더 할 손가>
*탁영세이(濯纓洗耳): 갓끈을 씻고 귀를 씻는다는 뜻
*기산영수(箕山潁水)의 고사: 은둔하는 고결한 뜻을 이르는 말. 허유(許由)가 요임금이 자기에게
천하를 물려주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기산(箕山)에 숨어 영수(潁水)에서 귀를 씻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가마소는 아랫귀미 마을과 탕건봉 사이의 산 밑에 있으며 모양이 가마 솥 같이 생겼다 하여 가마소라
이름 부쳐진 소(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