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 수필과 함께한 25년
원고 청탁을 받았다. ‘나와 문학’이라는 주제였다. 학교 동기들과 팔순 잔치 중, 얼떨결에 승낙하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에 감당하기 버거운 일임을 예감했다.
며칠째 원고와 씨름하고 있다. 수필 이론서 출간을 위한 글이다. 글의 갈피를 잡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인가. 그럼에도 용기를 낸 것은, 그동안 1,000회의 강의와 500회의 토론회를 이끌어왔으니 결실을 보아야 할 때라 여겼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다음 날, 다른 지역 단체에서 강좌 개설 문의가 들어왔다. 나이 탓인지 여러 일이 한꺼번에 몰리자 도무지 감당할 여력이 없어 정중히 사양했다. 지금 맡고 있는 일만으로도 벅차다. 매주 도서관 강의를 나가고, 문학회 토론회를 주관하며 문우들의 작품을 세심히 살핀다. 강의록을 정리하고, 원고를 서너 번씩 정독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온전히 수필 속에 지나간다.
내가 이토록 수필에 몰두하게 된 것은 쉰을 넘긴 뒤였다. 우연히 발을 들여놓자마자 등단했고, 그해 곧바로 ‘수필 사랑문학회’를 창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강의를 시작한 것도 그 이듬해였다.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출발한 강의는 도서관으로 이어져 어느덧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용학 도서관에서 ‘흔적, 수필로 그리다’라는 강좌를 맡고 있다.
‘수필사랑문학회’는 한때 100명의 회원이 활동했다. 격변의 시기와 팬데믹을 지나며 현재는 6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창립자여서인지 이 모임은 분신처럼 느껴진다. 매월 두 차례 작품 토론회를 이어온 결과, 얼마 전에는 600회를 기념하기도 했다.
‘용학도서관’ 강좌 역시 12년째 계속되어 지금 48기가 수강 중이다. 이곳은 다른 곳과 달리 연중 내내 강좌가 이어지는 데, 항상 강의실은 가득 찬다. 시 외곽에 위치한 탓에 성원이 이뤄질까 하는 염려는 기우였다.
학인學人들은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니 끈끈한 정으로 뭉쳐져, 강좌를 넘어 하나의 동아리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그곳 출신들의 '용학 수필문학회'도 150회 토론을 목전에 두고 있을 만큼 열정적이다.
이처럼 강좌와 토론회를 이끌다 보니 다른 곳을 돌아볼 틈이 없다. 그럼에도 다섯 권의 작품집을 펴냈고, 이번에는 이론서 출간을 앞두고 있다. 수필을 만나지 않았다면 감히 꿈꾸지 못했을 일이다. 그야말로 ‘수생 수사修生修死’의 삶이었다.
나도 여느 수필가처럼 초기의 작품들은 가슴속에 맺혀 있던 응어리를 푸는 글을 썼다. 사업을 접고 방황하던 시기, 얽히고설킨 마음을 풀어내니 이루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삶의 마디마디를 짚고, 타인을 향한 글로 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위안과 용기를 건네고 싶다는 마음, 그것이 내가 수필에 매몰된 이유이기도 하다.
수필은 시나 소설처럼 허구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문학이다. 그러하기에 비록 높은 문학적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값진 의미를 지닌다. 삶의 기록으로서 후대에 전할 가치가 있기에, 나 자신은 물론 학인들에게 끊임없이 수필 쓰기를 권하고 있다.
25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많은 학인들과 만났다. 그들이 등단하고, 공모전에서 수상하며, 각자의 작품집을 펴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더없는 기쁨이다. 성과라 말하기에는 조심스럽지만, 해마다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한해, 어느 공모전에서는 11개의 트로피 중 7개를 우리 학인들 이 차지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수필에 입문한 이후 오로지 수필을 위해 살아왔다. 축재蓄財와는 거리가 먼 길임을 알면서도, 마치 수필 전도사처럼 걸어왔다. 이제는 쉬어야 할 나이지만, 힘이 닿는 한 강좌와 토론회만큼은 계속 나설 생각이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소명이자, 해야 할 공부이며, 삶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나의 목표는 분명했다. 블로그에 좋은 수필 5,000편 싣기, 이론서 한 권 펴내기, 수필 선집 발간이었다. 블로그 5,000편은 이미 달성했고, 이제는 수정된 목표인 6,000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번에 수필을 조명하는 이론서를 정리하고 있으니, 그 또한 결실을 맺을 것이다. 수필 선집은 아직 더 좋은 작품을 모아야 하기에 다음으로 미루어 둔다.
옛 어른들은 사람이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일이란 곧 목표에서 비롯되는 것일 터이다. 만약, 수필을 만나지 않았다면, 맥을 놓고 허우적거리는 일상을 보낼 게 뻔하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기력이 쇠하는 날까지 멈추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목표가 그럴진대 어찌 원고 청탁을 거절할 수 있을까. 만사 제쳐두고 ‘나의 문학'을 쓰고 있다.
첫댓글 즐거운 일도 언짢은 일도 몰려오는 경우를 봅니다. 교수님께 앞으로는 좋은 일만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수필에 온 열정을 다 바치시는 교수님께
가슴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신현식 교수님,
'隨生隨死'의 삶을 정말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것 할 줄 몰라 수필에 매달립니다.
교수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푸른 대나무같은 맑고 청정하신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는 저희들은 행운아입니다. 건강하셔요.
감사합니다.
몰라서 그렇지 속은 엉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