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춘선 엘레지 1
사릉역에서 탄 전동차 안
방석에 펼쳐진 화투 패
앉아 졸고 있는 패는 변두리 패
비풍초똥팔삼
안 까 봐도 아는 패 미련 없이 버려지는 패
설렘도 기대도 없이 졸고 있다
시내로 진입하는 전동차
차창에 어리는
높이 솟은 아파트 번쩍이는 자동차들
딸 것도 없이 맥없이
바닥에 떨어지는 흑싸리 껍데기
허나 삼팔광도 끝발로야 한 끝인걸
환승역 계단 아래로 내버린 듯 바닥에 떨어지는
비풍초똥팔삼의 낙장 같은 어깨를 보면서
피박의 위력을 보여주라고 응원한다
고! 고! 쓰리 고! 를 힘차게 외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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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 엘레지 2
지하철이 진입할 때
차창으로 맞은 편 홈에서
손을 흔드는 여인이 들어왔다
출입문 닫히고
지하철이 터널을 향해 움직일 때
뒤편으로 밀려가는 여인의 머리칼이 날렸다
산그늘 억새처럼
누구를 향해 손을 흔들었을까
부질없는 의문이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어느 날 우연히 옆 자리에 앉는다 해도
다시 만나진 못하리라
출입문 열리고
어깨 틈 사이로 비껴간 만남들
출입문 닫히고 출발한다
인생은
다음 역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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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 엘레지 3
단지 밀렸을 뿐이다
돌아보는 눈길이 독화살이다
억울하다
겨우 딸 정도 나이 마누라보다 못 생겼다
물론 욕심에 돼지 얼굴 운운 하더라만
힘든 살림살이에 앞이 침침한 눈으로 한 눈 팔 여유 없고
사무실에 손님 기다리고 있어 마음 온통 그 쪽인데
마음 없는 성보다 성 없는 맘 그리워지는 나이
괜히 죄 지은 듯 스스로 쫓겨난다
멍하니 서 있다 이리저리 밀리는 중년남자들처럼
애들에게 마누라에게 그리고 밖에서 밀리다
결국 가장에서 밀려난 그 것도 안서는 등신들에게
성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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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 엘레지 4
상봉에서 출발하는 퇴근길의 춘천행 전동차
매서운 바깥바람에 이골 난 사람들
대기 중인 전동차 좌석에 짐짝처럼 몸을 던지면
하루의 피로와 안도가 충혈 된 눈을 감기우고
어느 새 기차는 달리는 중이다
손잡이에 매달려 박쥐처럼 잠이 든 사람들
쳐진 몸을 시계추처럼 흔들며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밀리고 치이고 밟히면서도
잠투정도 가위도 눌리지 않은 채
꿈꾸는 대책 없는 들풀
덜컹 열차는 정차하고 출입문 열리며
밀려든 바깥바람에 그믐 같은 눈 비비며
내려야 할 역 지나친 건 아닌가
두리번대는 절망도 모르는 들풀
입춘은 여전히 잔설과 뒹굴지만
물새 나는 산골마다 진달래 피면
춘천행 철로 변에 들풀 푸르고
사릉역 지나쳐도 상관 없겠네
그리다 들풀 온기에
졸았나보다
다음 역은 평내호평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어! 막차인데
첫댓글 잘 감상했습니다. 경춘선에서 세레나데도 은은히 울려퍼지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미숙한 글 좋게 보아주시니 , 그리고 시간 나시면 늦은 퇴글 길 한 번 타 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