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지 말라
예레미야 45:1~5
요절:“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예레미야 45:5)
찬송가 412장(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오늘 본문 말씀은 예레미야의 예언서 중에 특이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개인을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예언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그 메시지의 대상은 바로 예레미야의 협력자였던 바룩이었습니다. 바룩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필사하고 전해주는 서기관 역할을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면 그에게 가서 예언을 받아 적어서 성전에 가서 예레미야 선지자 대신에 그 예언을 낭독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할 때에 함께 피신하여 숨어 있으면서 예레미야를 돕는 그런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마치 과거 엘리야 곁에서 그를 돕던 제자 엘리사와 같은 역할을 했다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바로 그런 바룩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개인적인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바룩에게 책망을 하는 내용으로 여겨집니다. 바룩은 자기가 당한 상황에 대하여 몹시 괴로워하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3절에 이르기를
“네가 일찍이 말하기를 화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
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의 사역이 험난했듯이 그의 곁에서 수종들며 사역을 도왔던 바룩의 삶 역시 위태롭고 불안했습니다. 나라 전체의 분위기도 불안한 중에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예레미야를 보좌한다는 것은 때로는 목숨까지 위태로왔습니다. 그런 시련 속에서 젊은 바룩 역시 지쳤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안정과 평안을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러한 안일을 구하는 마음, 일신적인 평안함을 구하는 마음을 책망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칼빈 선생이 그러한 해석을 그의 예레미야 주석에서 표명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바룩에게 하신 말씀 중에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고 하신 말씀을 보면, 단지 개인적인 안일과 평안을 구한 것으로 보기가 좀 어렵습니다. 예레미야서를 보면 바룩은 적극적인 사람이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43장 3절에 보면, 바벨론의 침공 끝에 유다가 망했을 때에 아직 살아남은 자들이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거역하면서 했던 말이 나오는데, 거기에 보면 예레미야의 협력자 바룩을 지목하여 이렇게 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예레미야를) 부추겨서 우리를 대적하여 갈대아 사람의 손에 넘겨 죽이며 바벨론으로 붙잡아가게 하려 함이라”
이것을 보면, 바룩이 단순히 예레미야에게 말없이 순종만 하는 기질이 아니라 예레미야에게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도 피력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바룩이 예레미야의 서기관으로 일하면서 조국 유다의 무너져가는 상황 속에서 무엇인가 적극적으로 상황 변화를 꾀하려고 애썼던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바벨론을 반대하고 나라가 망하는 쪽으로 행동하는 위정자들을 돌이키려고 말씀 사역 외에도 무엇인가 정치적인 행동을 하려고 나선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한참 젊은 바룩으로서는 스승 예레미야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달하려는 활동만으로는 무엇인가 약한 것처럼 생각되었고, 그의 열정은 자기 스스로 독자적으로 더 큰 일을 이루어보겠다는 야망을 가지게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마치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자마자 나이 사십 세에 동족 이스라엘을 애굽의 학정에서 구출하고자 살인까지 저지르면서 나선 것과 같은 열정이 바룩에게도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런 일들은 20세기에도 재현되었으니, 천재적인 신학자로 존경을 받았던 독일의 본 회퍼라는 젊은 신학자가 평안한 미국에서 고국 독일로 돌아가서 악한 독재자 히틀러 제거 작전에 직접 가담하였던 것과 같습니다. 히틀러 제거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본 회퍼도 체포되어 결국 사형을 받아 죽었습니다.
이러한 큰 일을 도모하려 했던 바룩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하나님께서는 친히 나라나 가문이나 개인을 세우기도 하시고 헐기도 하시고 심기도 하시고 뽑기도 하시는 절대 주권자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의 뜻한 대로 다 행하시는 절대 주권자이니, 하나님 없이 바룩 스스로 무엇인가 큰 일을 해보겠다고 덤비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재권은 유다 내에서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 주재권은 온 땅, 온 세계에까지 미친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관할권은 유다 뿐 아니라 바베론이나 애굽과 온 세상 나라가 다 포함되어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룩 스스로 무엇인가 독단적으로 일을 도모하려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당시 바룩의 시기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통하여 모든 육체, 모든 사람들에게 재난을 내리기로 작정하신 환난의 때요 심판의 때였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심판을 거슬러서 무엇인가 스스로 자기가 나서서 조국을 구해보겠다고 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다 몰락해가는 이스라엘 나라를 이방족속으로부터 건지곤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룩의 때는 그러한 가능성이 없어지고 책벌과 심판과 징계의 연단의 시대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의 결정과 다르게 하나님 없이 큰 일을 도모하는 것은 합당치 못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룩에게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고 경고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내 뜻을 세우고 내 야망과 목적을 이루려고 용을 쓰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 아래에서 겸손하며 하나님이 일하시기를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그러한 점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기에 시편 131편에서 이렇게 기도한 바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시편 131:1!~3)
그렇습니다. 무엇인가 큰 일을 행하려고 시도함에 있어서도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움직여야 함을 다윗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손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겠다는 그의 간절한 열망까지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아니하면 안된다는 것을 그는 일찍이 경험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기 아들의 성전 건축을 위하여 기쁘게 모든 것을 준비만 하고 그의 일생을 마쳤습니다. 모세조차도 저 아름다운 땅 가나안을 직접 건너가 보고 싶은 열망이 간절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다만 느보 산에 올라 건너편 약속의 땅을 눈으로 바라만 보는 것으로 족하게 여겨야 했습니다.
우리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전혀 꿈꾸지도 열망하지도 않은 일을 행하라고 요구하실 때가 있는데, 그러한 하나님의 뜻에 우리는 단지 복종하여 행할 뿐이고, 반대로 우리가 아무리 큰 일을 행하고자 하는 열망이 우리를 완전히 지배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진대 기꺼이 내려놓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바룩에게 그 시대에 그가 할 일은 겸손하게 자기의 자리 곧 예레미야의 곁에서 말씀의 수종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때로 자기가 보기에 답답하고 일이 더딘 것처럼 보이고, 우리가 직접 행동에 나서면 무엇인가 더 큰 일을 이룰 것 같이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고 하나님의 어리석은 것이 사람보다 지혜로운 것을 기억합시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 내 뜻, 내 야망, 내 계획을 펼치려고 달려가지 맙시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고 큰 일을 행하려고 덤비지 맙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직무와 자리를 차분히 지키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는 것을 차분히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자가 됩시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일어나실 것이요 그의 일을 친히 행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