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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용기인가? 만용(蠻勇)인가?
28일 미 백악관을 방문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초청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거의 삿대질 직전까지 가는 말타툼을 벌였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스타머 영국 총리도 미 백악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위를 맞추는 듯한 발언을 내놓은 판에, 미국의 주요 언론 앞에서 대놓고 트럼프 대통령, 밴스 부통령과 설전(舌戰)을 벌였으니, 미국의 대(對)우크라이나 여론도 악화할 게 분명하다.
미-우크라 정상회담 파행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린지 그레이엄 미 상원의원과 연결한 폭스 뉴스의 속보 창/텔레그램 캡처
가뜩이나 미국인 절반(51%) 이상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미국의 지출이 과도하다고 생각하는 여론조사(미 뉴욕타임스지 의뢰 입소스 조사 1월 19일 공개) 결과가 나온 상황에서 위험 수위를 오가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언행은 스스로 '제 발등을 찍었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언론의 주목을 끈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미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번 워싱턴 방문은 상당한 기대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가 원하는 대로 푸틴 대통령보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종전 협상의 구상을 마련하고, 희토류 광물에 관한 협정(광물 협정) 서명을 통해 국가 안보를 미국으로부터 간접적이나마 확보하는 실질적인 양국 관계를 구축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개인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이후 소원해진 관계를 복원하고, (선거를 치르지 않는 독재자라는 평가에서 벗어나) 대통령직 수행에 대한 확고한 미국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미-우크라 광물 협정은 바로 이를 위한 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젤렌스키 대통령 초청을 놓고 막판까지 고민하는 워싱턴을 마크롱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설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아무 것도 없었다. 미국에 선물을 주기는 커녕, 언쟁을 벌이는 모습을 전세계에 그대로 보여준 뒤 쫓기다시피 백악관을 떠났으니, 향후 우크라이나의 대(對)미, 대프랑스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 밖에 없다.
백악관에 도착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반갑게 맞는 트럼프 대통령/영상 캡처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을 통해 “평화를 위한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나는 미국이 개입하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협상에서 큰 이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아직 평화 (협상)를 위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본다"며 그같이 전했다. 또 "백악관에서 미국에 대해 무례하게 행동했다”며 불편한 감정을 굳이 감추지도 않았다.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도 SNS를 통해 "미국과 미 의회, 미국 국민에게 감사하다"며 "우크라이나에는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가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노력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정상회담 중 J.D. 밴스 미 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감사 인사를 한 적 있느냐"는 지적을 의식한 듯, 미국과 의회, 국민, 여러분, 백악관, 이번 초청 등을 모든 사람들과 행위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바이든 전임 행정부 시절에도 '감사 인사'에 인색하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회담 후 첫 반응에서 감사 인사를 전했다는 것은 이번 사건을 무마하고, 어떻게든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백악관 충돌을 본 트럼프 대통령 측근 인사들은 대노했다.
일론 머스크 미 정부효율부(DOGE, 도지) 장관(태슬라 CEO)은 "젤렌스키는 스스로를 파괴했다"고 혹평했고, 여러 차례 키예프(키이우)를 방문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주장해 온 미국의 대표적인 친우크라 인사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이번 행동으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게 도움을 주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의 롤랜드 올리펀트 특파원은 엑스(X)를 통해 "우크라이나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넘어선 것"이라며 "외교적 재앙이라는 말외에 설명할 다른 방법이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관리와 외교관들이 수개월, 수년간 신중하게 진행해온 외교(적 성과)가 이번 한번으로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며 "연기가 걷히면 우크라이나-미국 관계는 피 웅덩이 속에 빠져 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정상회담서 무슨 말이 오갔나?
트럼프-젤렌스키 정상회의/영상 캡처
공개된 장소에서 벌어진 이날 말싸움은 정상외교에서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현관으로 나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따뜻하게 맞았고, 전날(27일) 스타머 영국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는 '독재자' 표현을 얼버무리며 철회하는 등 정상회담 분위기 조성에 힘썼다. 모두 발언에서도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문이 영광"이라면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그동안 매우 용감하게 싸웠다"고 추켜세웠다.
말 다툼은 정상회담을 본격 시작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는 자리에서 벌어졌다.
스트라나.ua는 "J.D. 밴스 부통령이 '전쟁을 멈추려면 푸틴 대통령과 대화하는 등 외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됐다"고 전했다.
스트라나와 rbc 등 러시아 언론을 참고해 논쟁적인 대화를 정리하면 이렇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J.D, 당신이 말하는 외교가 무엇인가? 그게 무슨 뜻인가?" 라고 물은 뒤 실패한 2019년 휴전(민스크 2차 협정)을 거론하며 "아무도 그(푸틴 대통령)를 막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발끈한 밴스 부통령은 "당신 나라의 파괴를 끝낼 수 있는 그런 외교를 말한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수행하는데 병력 부족 등 문제가 있고, 당신은 이 전쟁을 조속히 끝내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한 정상 회담장에서 상대를 향해 “감사해야 한다”는 표현을 쓰는 건, 상당한 외교적 결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지 않고 “우크라이나에 와본 적 있느냐. 우리가 가진 문제를 봤느냐”고 응수하자, 밴스 부통령은 “(사람들을) 우크라이나로 데려가 '프로파간다(선전) 관광'을 시킨다고 들었다"고 맞받았다. 그는 또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에 와서 국가(우크라이나)의 파괴를 막으려는 (미국)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느냐”고 비판하며 "무례하다"고도 했다.
이 논쟁에 트럼프 대통령이 가세했다.
"가능한 한 빨리 전쟁을 끝내야 한다. 당신의 나라는 큰 곤란에 처했다. 당신은 (전쟁에서) 지고 있다. 우리의 군사 장비가 없었다면 이 전쟁은 2주 만에 끝났을 것이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3일 만에 끝났을 것이다. 난 푸틴 (대통령)한테 3일이라고 들었다"며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나아가 "전쟁 중에는 모두가 문제를 겪는다. 당신들(미국)도 마찬가지다. 당신들은 아름다운 바다(대서양)를 가지고 있어 당장 (위협을) 느끼지 못하지만, 미래에는 느끼게 될 것이다."
이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했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격적 발언은 계속됐다.
"당신(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에서 공격자와 거래할 때의 도덕적 위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와 대화하고 휴전을 서두르면서 푸틴 (대통령)을 고무시키고, 유럽을 약화시키며 우크라이나를 취약하게 만드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렇게) 러시아를 달래면 전쟁이 당신에게도 닥칠 것이다."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서로 자기 주장만 펴는 트럼프-젤렌스키 대통령의 모습/사진출처:rbc 영상 캡처
트럼프 대통령이 폭발했다. "우리가 무엇을 느낄지 말하지 마라. (당신은) 그런 말을 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소리쳤다.
"아무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젤렌스키)
"우리는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지만, 당신은 아니다. 처음부터 좋은 입장이 아니었다. 지금 당신은 올바른 카드를 갖고 있지도 않다."
"우리는 카드 놀이를 하는 게 아니다"(젤렌스키)
"이성적으로 말하면, 지금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 3차 세계대전 직전이다. 당신은 수백만 명의 목숨을 걸고 (카드) 도박을 하고 있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당신을 지지해준 이 나라에 매우 무례한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밴스 부통령과의 대화에서 한마디도 지지 않았던 젤렌스키 대통령이 또 상대를 이렇게 자극했다.
"전쟁이 터진 이후 우리는 혼자였다. 그래도 (미국에) 감사하고 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우리는 어리석은 대통령(바이든 전 대통령)이 당신들에게 3천500억 달러를 줬다."(트럼프)
젤렌스키 대통령이 "제발, 전쟁에 대해 큰 소리를 치려면.."이라고 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말을 가로챘다. "당신은 (전쟁에서) 이기고 있지 않다. 큰 문제에 처해 있다. (우리가 도와주면) 당신은 우리 덕분에 상황이 괜찮아질 가능성이 높다."
공개된 회담 50여분 중 마지막 10여분은 특히 분위기가 험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적인 발언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런 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당신의) 태도가 바뀌기 전까지는 거래가 성사되기 힘들다. 우리는 협정에 서명하거나, 아니면 떠난다. 우리가 떠나면 당신은 (러시아와) 싸워서 해결해야 할 것이며, 그건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이 순간, 정상회담에 배석한 옥사나 마르카로바 주미 우크라이나 대사는 고개를 떨궜다.
정상회담에 배석한 마르카로바 주미 우크라이나 대사가 고개를 떨구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영상 캡처
BBC 방송은 마르카로바 대사의 이같은 표정을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는 것은 (푸틴 대통령과의 싸움에서) 또다른 패배를 의미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외교적 위치와 가장 강력한 후원자(미국)과의 향후 관계를 보여준 장면"이라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공개 회담에 들어가기 위해 언론을 집무실에서 나가게 하면서 끝까지 "당신이 전혀 고맙게 생각하지 않고 행동한다면, 그건 좋지 않다. 우리는 충분히 봤다고 생각한다. 이건 대단한 TV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회담 후 예정됐던 두 정상의 공동 기자회견과 광물 협정 서명식은 취소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취재진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백악관을 떠났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왜 그랬을까?
젤렌스키 대통령이 거의 애원하다시피 해서 마련된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왜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언쟁을 벌였을까? 정의로운 전쟁으로 무장한 용기에서 나온 것일까?
우크라이나 일각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가의 이익을 수호했다',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만든 한편의 '쇼'라는 비판도 나온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백악관을 과거 숱하게 올랐던 무대로 생각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와 밴스 부통령을 도덕적으로 혼내는 배우처럼 연기하고, 연출했다는 것이다.
친(親) 젤렌스키 언론은 대통령 중심의 단결을 요구하는 논조의 보도를 시작했다는 게 스트라나.ua의 전언이다. 이번 회담 전부터 자신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가혹한 평가와 불리한 '광물 협정' 문구를 이용해 대국민 지지를 확보하려 한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아니라 반(反)트럼프 성향의 일부 유럽 국가들을 겨냥해 무대를 꾸몄다는 분석도 있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를 대하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시각 차이다.
스트라나.ua는 28일 '젤렌스키의 워싱턴 실패, 그 결과' (Провал Зеленского в Вашингтоне. Последствия для Украины)라는 분석 기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감정을 억제했다면 외교적 실패를 피할 수 있었다"면서도 "이번 방문은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의 안보 보장을 조건으로만 전쟁을 신속하게 끝내기(휴전)를 원하는데, 워싱턴은 그럴 생각이 없으니, 충돌은 불가피했다는 해석이다.
스트라나.ua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스스로를 골리앗(러시아)과 싸워 이긴 다윗으로 여기고 있다"며 "그의 목표는 서방의 모든 세력을 동원해 러시아(골리앗)의 공격을 막고 골리앗을 꺼꾸러뜨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그의 생각은 바이든 전 대통령을 포함한 서방 세계가 자신을 영웅으로 지지해준 지난 3년 동안에는 통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귀환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상황이 됐다. 전쟁에 대한 도덕적, 이상적 사고에서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적 사고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고, 자칫하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빠져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거래하는 게 싸우는 것보다 미국과 세계에 더 이익이 된다고 본다.
스트라나.ua는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전쟁 종식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서방 측에 '우크라이나의 항복'이 아니라 '구원'"이라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여전히 다윗 이미지에 빠져 있으니 트럼프 대통령과 충돌할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향후 선택은?
트럼프-젤렌스키 첫 정상회담은 예상치 못한 파국으로 끝났다. 미국의 분위기가 냉랭한 것은 당연하다.
친트럼프 성향의 TV 채널 '폭스 뉴스'의 재키 하인리히 기자는 엑스(X)에 "백악관은 '우크라이나가 (관계) 재설정을 간청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루비오 국무장관과 왈츠 국가안보보좌관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평화가 필요할 때 백악관으로 돌아오라'고 했다"고 적었다.
현지 전문가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지원국과의 관계를 파괴함으로써 푸틴 대통령에게 막대한 선물을 안겼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대우크라이나 지원이 박탈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럴 경우,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나아가 우크라이나의 협상 지위를 근본적으로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스트라나.ua도 "우크라이나에게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는 미국의 지원없이 전쟁을 계속하는 것인데, 이 사건으로 그럴 가능성이 훨씬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물론,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의 요구대로 전쟁을 끝내기로 하고 협상에 복귀할 수도 있지만, 그 경우 협상 조건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또 젤렌스키 대통령 개인의 위상도 급전직하할 게 분명하다.
스트라나.ua는 정상회담 이전부터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과의 관계 설정에서 선택할 수 있는 4가지 시나리오 제시한 바 있다. △전쟁 종식 후에도 권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미-러 양측에서 보장을 받고 평화안에 서명하거나 △권력 유지 보장 없이 전쟁을 끝내는 미국의 일방적인 조건을 받아들이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대우크라 군사 지원을 계속하도록 설득에 성공하거나 △설득에 실패해 홀로 전쟁을 계속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파행으로 4가지 선택 시나리오 중 3가지는 사라졌다. 홀로 전쟁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는 궁지로 몰렸다고 해야 한다. 믿을 곳이 있다면 유럽이다. 빈 손으로 워싱턴을 떠난 젤렌스키 대통령은 스타머 영국 총리가 초청한 유럽 10여개국의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런던으로 향한다. 그는 유럽 정상들에게 백악관 충돌을 설명하며 지원을 늘려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유럽 주요 국가들이 미국이 빠진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에 선뜻 나설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설사 나서더라도 미국의 몫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 영국과 프랑스, 폴란드, 발트 3국,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소동맹을 구성해 공동으로 러시아에 맞서는 방안이 키예프(키이우)에서 조금씩 확산되고 있지만, 그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 불확실하다. 특히 우크라이나 지원의 상당 부분을 감당해야 할 영국과 프랑스의 경제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이다.
미국이 평화협상 노선을 고수하고 우크라이나와 일부 유럽 국가가 이에 반대한다면,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개발도상국)의 협상 지지 여론 등을 감안할 때 우크라이나와 일부 유럽 국가는 자칫 '외교적 고립'에 빠질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배제한 종전 협상에 더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 더욱 유력해진 이유다. 휴전→선거→평화 협정 서명이라는 미국의 3단계 종전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트럼프-젤렌스키 정상회담의 파행으로 한층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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