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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한국인만 모르는 일본과 중국』
이 책은 일본인이 썼다.
책 내용이 생각보다 아니꼽게 느껴질 수도, 아니면 부끄럽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쓴이가 작가도 여행가도 언론인도 아닌 외교관이라는 점 때문에 역시 재미보다는 냉정하게 한국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은 해 본다. 저자는‘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3∼4년 사이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에 실망하고 분개하고 있다. 한류에 빠져있던 여성들, 문화교류를 추진해 오던 비영리 민간단체나 시민들이 그들이다. 일본의 한국관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일본이 어리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일본이 왜 그렇게 보는가에 대해 찬성하지 않더라도 이해는 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을 위해서 말이다.”
1984년부터 2014년까지 30년 사이 주한일본대사관 참사관, 총괄공사 등을 지내면서세 번이나 한국에서 근무했으며 그사이 중국에서도 근무한바 있는(2014년 이후 주두바이 일본총영사 근무 중)저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통이다. 그래서 한국에는 친구가 많다고 한다. 책을 추천해 준 한양대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소장 이강민 교수는 “그가 말한‘민족의 기억’과‘역사’는 구별되어야 하며‘민족의 히스토리를 극복하는 것이 역사’라는 지적은 우리가 한 번쯤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그의 쓴소리를 충언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고, 조선일보 논설위원 선우정은 “미치가미 씨는 상냥하지 않다. 직선적이다. 타고난 오사카인이다. 친절한 일본인이 익숙한 사람들은 그의 어법이 목에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는 솔직하다. 무엇보다 한국을 위해서 말한다. 이것이 이 글의 가치다. 작은 말꼬투리를 잡아 전체를 부정하면 우리는 자기 성찰의 소중한 기회를 잃게 될지 모른다”고도 했다.
내용이 설사 좀 아니꼽고 고깝더라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각오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한국도, 중국도 자국을‘동방예의지국’이라고 말한다. 이때 예의는 지금의 공공 예의와는 달리 유교의 예의범절에 부합하는가 아닌가의 문제다. 그런데 중국은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 지금의 중국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에 걸맞지 않다. 매너가 좋지 않아서 세계적으로 평판이 나쁘다는 자기 인식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우리들은 아직 한참 뒤처져 있다’는 자각이 강하고, 문화대혁명이나 천안문 사건 등을 통해 얻은 경험으로 한 발만 잘 못 디뎠다가는 나라의 질서가 무너진다라는 위기의식도 갖고 있는데 비해 한국은 이 점이 희박하다.
중국 사람들은 국가나 조직을 그다지 믿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길을 개척하려고 한다. 나라에서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로 국민 모두가 혜택받는 공평한 시스템의 정비가 아직 요원하다 보니 자력으로 해결하려는 인식이 매우 크다. 그것의 근본적 요인은 예로부터 국민과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 때문인 듯하다”고 진단한다.
중국에 비하여 일본은“국가나 공공기관에서 도움의 손길을 준다라고 마음으로 믿고 있는데, 지진 등 피해가 대재난 시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질서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제도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중국과 일본 두 나라의 중간쯤으로 제도에 대한 신뢰감은 일본보다 중국에 가깝다고 했다. 또 한국은 중국보다 세계문화, 고대사와 유럽의 근대사, 유명한 화가나 음악가들도 잘 알고 있어서 이야기가 통한다고 하고, 중국은 이런 면에서 약하다고 했다.
물론 한국이 항상 중국과 일본의 중간이라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일본은 다 좋은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사람을 만나 무엇을 부탁했을 때, 아니다 싶으면 그냥 안 된다고 말해주면 좋은데, ‘검토해 보자’고 한다. yes인가 하면 실은 no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 분명하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 말이다”그 말을 옆에서 들은 중국인이 말한다.“나는 일본에 가본 적도 없고 지식도 없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no라고 분명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 건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인도 ‘연구해 보자’고 한다. 한국인은 첫대면에서 no라고 말하는가?”
맞는 말인 것 같다. 우린 너무 직설적이고 yes냐 no냐를 너무 빨리 결정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저자가 말했다. “처음으로 중동에서 근무하면서 느낀 것은 여기는 일본에 대한 평가가 경의(respct)라 할 만큼 상당히 높다. 두바이 거리의 차 60% 이상이 일본제인데 이런 기술적인 면만이 아니라 만화나 애니메이션, 초밥 등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진짜로 평가받는 것은 공공 예절과 사회규율, 자신보다 주위 사람을 우선시하는 정신적인 면이다. 타인에 대한 봉사, 사회 공헌 같은 이슬람의 가르침을 우리보다 더 잘 실천하고 있는 훌륭한 나라가 일본이다”라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자화자찬(自畵自讚)이 심한 것 같지만 사실일 것이다. 그러면서 2015년 5월 한국인을 대상으로 ‘일본에게 군사적 위협을 느끼는가?’하고 물었더니, 58.1%가 그렇다고 답했고, 중국에 대해서는 36.8%가 그렇다고 답했다고 하면서, 세계인 모두가 놀랄 것이라고 했다. 중국 국민 중에도 객관적이고 냉정한 눈과 사고를 가진 사람이 상당수 있다는 사실을 한국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인이 중국보다 일본을 더 위협으로 보는 이유에 대한 답은 내놓지 않으니 좀 의아스럽기는 하다.
한국인이 보는 일본관에 대하여 이런 말도 했다.‘한국인은 낮에는 반일, 밤에는 친일’이라고.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 탓에 갖게 된 반감에 대해서 일본인 누구나 그것을 알고 있고 미안한 마음이 일본인에게 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낮의 공식석상에서는 주먹을 쥐고 일본을 규탄하고‘악’인 것처럼 말하는 한국인도 사실은 일본의 좋은 점을 알고 있기에 밤이 되면 친한 친구 사이처럼 진심으로 일본을 높이 평가하고 합리적으로 이야기한다. 이러한 양태는 꽤 오래전, 아마도 60년대부터 실제로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했는데 희한한 소리다 싶기도 하지만,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으니 한국 국민의 이중성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지금도 그럴까하는 의심도 해 본다.
이 책에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민감한 문제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1965년 한·일협정’에 대하여 일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가에 대해 일본인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고 한다. 하나는 일본에 대해 그토록 관심이 많은 한국이 설마 그것을 부정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측과 한국어를 알고 한국에 친구가 많은 일본인들은 ‘요즘의 한국이라면 그럴 수 있지’라고 한단다. 그러면서 “국제법 운운할 필요도 없다. 당시 조약체결과정에 일본의 야당과 여론, 언론과 지식층은 반대가 심했다.‘한국만 지원하면 북측이 불리하게 되고 분단을 고착화하게 된다. 전쟁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등으로 반대론이 강했다고 한다. 심지어 한국전쟁은 한국 쪽에서 시작했다는 주장이 일본 국민들의 의식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반대론을 제치고 한국 지원에 나섰는데, 어엿한 독립 국가 간에 맺은 조약을 지금에 와서‘강제된 것’이라고 하는데 대해,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 있다면 뭐라고 할까? 하고 되묻기도 한다.
21세기 들어 한국 사회가 많은 부분에서 발전하고 진화하는데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은 객관적이고, 공평하게 파악하지 않는 이유를 다섯 가지 분석을 통해 찾고 있는데, 이 부분도 어쩌면 저자의 편견일 수도 있겠으나 나름대로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싶다.
첫째, 한국은 단시간의 고도성장으로 자신감이 생긴 것은 좋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하는 객관적 시각이 쇠퇴했다. 일본을 따라잡았다는 주관이 자리 잡고, 일본은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조차 생겼다. 또 생활·문화에서 반일감정의 색깔이 엷어지다 보니 정치·안보 등 핵심적인 부분에서 일본에 대한 편견이나 무지가 있어도 ‘나는 일본에 대해 균형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쉽다. 30년 전에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의 25분의 1이었지만, 지금은 4.5분의 1로 따라잡았다. 하지만 아직도 경제 규모는 여전히 대등하지 않다.
둘째, 한국 사회가 거대해지고 복잡해진 데 따른 개인의 무력감이 작용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1980년대 말 이후 자신들의 발자취를 모두 긍정적인 진보로 받아들이려는 강한 시대 감각과 변화 감각을 말한다. ‘일본을 보는 눈이 퇴화했다’는데 저항감을 느낀다면 자신은 무엇에서든 진화·발전하고 있다고 하는‘공기’속에 있기 때문은 아닐는지? 물으면서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본은 메이지 시대 이후 ‘언덕 위의 구름’을 바라보고 오로지 위로 올라갔던 밝은 시절이 있었다. 고도성장으로 세계의 칭찬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도 다음 산을 넘을 수 있다고 믿는다. 공기가 빠지거나 무력감에 빠져있을 여지가 없다고 했다.
셋째, 한일 양국 간 시대가 흐르면서 변화하는 것이 하나둘이 아니겠지만 후쿠오카에 산다는 한 인텔리 여성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녀는“한국은 어쩌면 그렇게 역사에 약할까?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대마도 절에서 훔쳐 간 불상을 ‘역사를 이유’로 일본에 돌려주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어떤 이는 본래 대마도는 한국 것이었다고 한다.”고 하면서 자기중심으로 역사를 보면 안 된다. 한국은 역사를 독선적으로 보고 있다. 자기 편한 대로 역사를 보지 말고 외국의 입장도 이해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이해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국은‘일본이 무력으로 한국을 점령했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그런 역사교육이 무조건 좋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복잡한 역사와 역사 인식을 어느 한 측면만을 과장해서 강조하고 부정적 이미지를 현재의 평화 시대를 살아가는 나라나 국민들에게 연결시키는 것은 위험한 세뇌교육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한국은 민주국가인데 아직도 공산 독재 국가인 중국과 비슷한 역사 세뇌교육을 하는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도 했다.
한국 초등학교 교과서에‘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맹세가 있었던 것을 한국 사람 대부분은 기억할 것이다(기억이 아니라 세뇌받았다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일은 전후 일본에는 없었다. 이런 발상 자체가 나라를 잘못된 전쟁으로 이끌게 하는 좋지 않은 국수주의로 간주 되기도 한다. 일본은 국민보다 세계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전후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만이 아니었다. 비참한 전쟁으로 국토가 불타고 부모, 남편, 자식이 전쟁터에서 죽었다. 전쟁 반대와 철저한 평화주의 지향, 이것이 일본인 자신이 진심으로 원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전쟁 이후가 시작된 것이다.‘절대적 평화주의’그것은 전쟁 이전에 대한 강한 부정이었다. 국가와 민족‘우리 영광의 역사’를 강조하는 한국과는 반대 방향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오른쪽, 일본은 왼쪽이라는 말과 같다. 반국가적·극좌적이던 한때가 지나고, 1980∼1990년대에 이르러 일본은 문제점을 깨달아 가야 할 방향을 찾은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일본의 관점이기는 해도 한국인은 그것을 너무 모르거나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한·중·일 3국 관계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문제일지 모른다.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수천 년 역사가 그렇게 만든 때문일 수도 있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에서는 일본은 관망자가 되고,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서는 중국이 관망자가 되기도 한다. 어떨 땐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 서로간에는 수없이 많다. 고구려와 발해를 둘러싼 역사 논쟁문제만 해도 그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업가에서 유학생까지 일본보다도 몇 배나 더 많은 한국인이 중국에 들어가 있는 것에서 한중간 갈등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시간이 지난 이야기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여자 양궁 결승전 한·중전에서 한국은 중국 관중이 너무 떠들어서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경기에 차질을 빚는다고 주장했고, 중국은 한국 관중이 더 많았고 결승전은 공평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내용이 경기가 끝난 뒤 크게 기삿거리가 되기도 했다.
지금의 중국은 심각한 국내 문제를 끌어안은 채 사회 전체가 생각하면서 달려가고 있다. 그것도 단거리 스피드로 중장거리를 달리고 있다. 중국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당과 사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얼마나 큰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 국민 간 역학 관계는 기본적으로 국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중국외교는‘남중국해 핵심적 이익’을 표명한 2009년 이래 강경노선이 한층 견고해졌다. 국민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혹은 당내 결속을 다지기 위해 외교카드를 꺼내 보이는 일이 잦아졌다. 2012년 센가쿠(다이오 다오)열도를 국유화 선언한 데 이어, 국민의 반일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이해 11월 당총서기로 취임한 시진평은 다양한 과제를 안고 출범했다. 시진평 정권의 과제는 국내 문제의 해결과 함께 지속적인 경제발전, 사회안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국제협력 노선을 명확히 하고 있다.(전 주중일본대사 미야모토 유지의 논조)
중국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 경제원조를 늘리고 있다. 이것은 중국 스스로 자원 인프라 구축을 위한 차원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무한정 칭찬받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석유채굴을 하는 과정에 자국의 노동자 2만 명을 데려가 반발을 사기도 했다.‘생선을 주기보다 낚시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원조의 기본이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중국의 발전은 국제사회의 안정을 해치지 않고 막강한 인구수로 다른 국가들을 압박하지 않는다면, 한국도 미국도 일본도 혜택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와이를 경계로 해서 태평양을 미국과 중국이 양분하자”고 한 중국군 간부의 유명한 발언에는 한국도 일본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일본, 아세안(특히 베트남과 핀리핀)이 남중국해에서 물리력을 행사하는 중국을 경계하고 있다. 한국은‘중국과 영토 문제가 없으니 관계없다’고 해도 될까? 한국이 중국을 필요로 한다면 중국도 한국을 필요로 할 것이다. 도리 있는 지적이라면 한국은 중국에게 충분히 영향력이 있다고 저자는 보았다.
“이 책에서 기술한 내용들이 귀에 거슬리거나 불쾌하다고 해서 거부할 것인가. 아니면 건전한 담론으로 활용할 것인가는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달렸다고 생각한다”고 한 저자는 구체적인 예를 들고 있다.
2014년 7월 중국 시진평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해 서울대학교 강연에서 ‘임진왜란에 대해 한·중 양국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쟁터로 향했다’고 하며 한·중이 공동으로 일본에 대응해 나갈 것을 호소했다. 뉴스를 본 일본인들로부터 저자가 질문을 받았다.“한국 사람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나란히 배웠을 텐데, 중국이 가해자였던 병자호란에 대해서는 어째서 가만히 있는 것인가? 왜 시 주석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인가?
신문들도 ‘시 주석은 한국과 중국이 함께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던 역사만을 일방적으로 다루었다. 중국이 한국을 침략해 국토를 유린하고 여자와 아이들을 잡아간 역사는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은 한국을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다’라는 지적을 일부 하기는 했지만, 크게 화제가 되지는 못했다.
조선이 청과 군신 관계를 맺은‘삼전도의 굴욕’과‘삼전도비’는 어떤 것인가? 이런 역사를 예전의 일본인은 거의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는 일본인이 많다.‘독립문’은 조선이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기념해 세운 것이지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기념해 세운 것이 아니다. 한국인들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가? 하고 묻기도 한다.
어떤 한국인이“일본은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고구려와 고려를 구별할 줄 모르는 일본인이 많지 않은가?”라며 분개했는데, 그때 나는 “이웃 나라 역사는 알아두는 것이 좋겠지요. 그럼 선생께선 가마쿠라 시대와 무로마치 시대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하고 되물었다. 그는 그런 명칭조차도 알지 못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상륙하고‘일본은 옛날만큼 힘이 없으니까 중시하지 않아도ⵈ’일본 천황에 대한 실례 발언 등으로 일본 친구들을 적으로 돌려놓았다. 일본의 한류 팬, 전보성향의 시민들까지 실망하고 분개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일본에서는‘한국이 정신차릴 때까지 기다리자’는 여론이 팽배했다.‘중국은 그렇게 신경 쓰면서도 일본에 대해서는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이 한국의 외교인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한국에 유리한가?’하고 묻고 있는데, 생각해 볼 일이다 싶다. 한국은‘일본이 점점 우경화되어가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일본에 사는 교포들 조차‘한국이 더 오른쪽이면서 왜 한국은 일본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는 걸까’하고 걱정한다고 한다. 우리 편인 그들의 목소리조차도 듣지 못한다면 한·일관계는 점점 더 나빠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①“난징 사건에서 일본군의 잔혹 행위가 있었고 이에 유감을 표했다”와 “희생자가 수십 만이라고 하는 일부 학자의 주장은 지나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②“위안부 할머니들의 인터뷰 기록을 읽고 실로 마음이 아프다”와 “그 인터뷰 중에 한국 남자가 마을에 와서 좋은 일자리가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다며 젊은 여자를 꾀어 갔다. 결국 일본군 위안소에서 일했다는 예가 있었다”라고 하는 사실(주장)은 양립한다. 후자를 주장 한다고 전자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해 “일본은 열두 살짜리 여자애도 잡아다 위안부로 삼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정신대는 공장에 필요한 인력을 충당하는 근로 동원을 말한다.‘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라’고 외치는 한국 사람이 있으나 요즘은 일본 쪽에서 그렇게 말하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말한다. “전쟁 피해를 입거나 식민지 지배를 당한 아시아 여러 나라의 고통에 대해서는 교과서에 나와 있고, 나도 우리 아이들도 실제로 배운다. 5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일본은 이웃 나라의 아픔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오해도 있으므로 언급해 둔다”고 했다.
“한국처럼 자신감을 되찾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거대한 자아’이미지로 부풀면 험난하고 독선적인 국제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 나라 이익에 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국제 관계의 역할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읽고 슬기롭게 대응하는 듯하지만 실은 뻔한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전쟁 전의 일본처럼”이렇게 말하는데, 고상하고 예리한 분석으로 충고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코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진짜 한국이 모르는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1) 1900년 서태후는 의화단 봉기 실패 후 장즈통 등 개혁파를 기용해 입헌제 도입을 비롯한 개혁을 단행했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패한 뒤였다. 그런 개혁의 모델은 일본의‘메이지 유신’이었다. 중국 공산당 초대 총서기가 된 천두슈(陳獨秀)는 일본에 유학해 있던 1903년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유신을 이끈 지도자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를 위한 시, 제서향남주유엽도(題西鄕藍紬遊獵圖)를 남기는 등 그를 롤모델로 삼았다.
(2)“일본 문화의 특징은 인간과 사회의 본질, 즉 진리를 ‘푹’하고 찌르는 점이다. 영화도 소설도 근본을 추구한다. 일본 문화는 조화(어울림)나 무언가를 더하여 둘로 나눈 것만이 아니다. 나카지마 아쓰시의〈산월기〉에 나오는 ‘겁 많은 자존심과 존대한 수치심’이라는 말에 놀랍다. 우리 근대인의 ‘자아의 고뇌’를 이처럼 예리하고 간결하게 표현한 말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것도 70년 전에”- 일본 문화에 대한 어떤 중국인의 평가
(3) 한국은 중국에 대해 과대평가와 과소평가를 하고 있다.“한국에는 중국의 실상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중국이라면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있다는 심리가 현상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중국은 그런 한국의 실상을 잘 알고 꾸준히 한국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제 교섭문제, 안중근 기념비건립 문제, 임진왜란 등에서도 그렇다. “중국에는 냉정하고 냉철한 엘리트들이 세계를 들여다보고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이럴 때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 책의 어떤 부분은 더럽도록? 아니꼽고 어떤 부분은 안타깝기도 하지만 저자의 생각과 말을 다 옮길 수는 없겠다. 짐작하는 것으로도 생각들이 자꾸 머리를 짓누른다. 아무튼 책은 대미로 가고 있으므로 저자의 말을 고깝게만 생각하지 않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한국에 대해 쓴소리를 좀했다. 참고가 되거나 도움이 될까. 2007년 가을에‘베이징 올림픽의 주인공은 누구인가?’라는 나의 기고문이 중국 유력잡지에 게재되었다. 여기서 나는‘올림픽의 주인공은 자기들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금메달을 아무리 많이 따더라도 중국은 세계에서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주인공은 각국의 선수들이다. 그들이 충분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고 미국, 한국, 일본 등 국민들이 자국의 선수를 큰 소리로 응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국의 역할이다”고 했다.
이듬해 올림픽이 끝나고 어떤 사람이 내게 귀띔해주었다. “기고가 당시 베이징 시 간부들에게 회람되었답니다. 좋은 조언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은 어떨까. 이 책이 중국처럼 플러스로 활용될 수 있을까?
56년 전 한일회담 때도, 20여 년 전 문화개방 때도‘민족 정서’는 있었다. 지금보다 강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착실하게 길을 닦으며 앞서간 사람들이 한국이나 일본 모두에게 있었다. 자기중심 독선으로 흐르려는 여지는 어느 나라에도 있다. 그 분위기에 손쉽게 넘어갈 것인가, 엄정한 지적에 귀를 기울이며 스스로 궤도를 수정할 것인가, 여기에 나라의 부침이 걸려 있을 것이다. 한·중·일은 그 경쟁을 하는지도 모른다.
2021.7.1.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