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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전후로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안경은 2백년 전 처음 있었던 물건”이라고 기술돼 있고, 김성일의 안경이 유물로 전해졌는데 김성일이 사망한 시점이 임지왜란 초기인 1593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580년경에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이 애체(애j)라는 안경이 장차 중국으로 전해오게 될 것이고 가정에서도 반드시 갖출 것이다’라고 썼다. 여기서 ‘애체’는 안경을 부르는 말이다. 실학자 이규경은 ‘안경류’를 썼는데 “눈 밝아지는 오묘한 물건”이라고 기술했다.
임진왜란 전후로 안경이 유래됐지만 17세기 양반이나 부유층 중심으로 보급이 됐고, 19세기에는 눈 나쁜 서민들도 착용했다.
안경다리가 없기 때문에 렌트 양쪽에 끈을 달아 착용했다. 안경테의 재질에 따라 양반 또는 부유층이 사용하는 것과 서민들이 사용하는 것이 달랐다.
조선후기 넘어오면서 나이 많은 임금들은 안경을 착용했다. 그리고 선글라스도 착용했다. 다만 윗사람 앞에서 안경을 쓰는 것은 무례한 행위였기 때문에 신하는 임금 앞에서 안경을 쓸 수 없었으며, 서민들 역시 양반 앞에서 안경을 쓸 수 없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는 조병구가 안경을 끼고 생활했는데 헌종 앞에서 안경을 썼다고 해서 헌종이 진노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20세기 들어와서
20세기 들어와서 일제강점기에서는 안경은 ‘지식인’의 대명사로 취급됐다. 학식이 대단한 사람으로 취급됐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 텔레비전이 보급되고, 1990년 컴퓨터가 각 가정에 보급되면서 안경이 점차 보급화되기 시작했다.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