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밤+
하늘의 우물에는 별이 많다 어머니가 우물가에 앉아 쌀을 씨으시면서 쌀에 아무리 돌이 만하도 쌀보다 많지 않다
물끄러미 어린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지만 나의 우룸 속에는 언제나 쌀보다 별이 더 많았다 지금도 나는 배가 고프면 하늘의 우물 속에 깊게 두레박을 내리고 별을 가득 길어 밥을 해 먹는다
별을 가득 길어 밥을 해 먹는다 기끔 구름도 별밥을 해 먹고 그리운 어머니를 찾아 길을 떠난다
* 쌀에 아무리 돌이
많아도 쌀보다 많지 않다 *
요즘은 밥을 할 때 쌀에서 돌을 골라내는 사람은 없다. 소비자의 손에 주어진 쌀은 이미 께끗하게 정제된 것이기에 잘 씻어 밥솥에 안치기만 하면 된다 밥을 먹다가 우두둑 돌을 씹는 이도 거의 없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가을엔 벤 벼를 마른 논바닥에서 말리고 흙마당에서 탈곡하는 과정에서 모래흙이 섞여 들어가기 때문에 쌀을 꼭일어서 밥을 안쳤다. 그러지 않으며 밥을 먹다가 돌을 씹어 먹던 밥을 뱉기 일쑤였다. 어머니는 쌀이 든 바가지에 몇 번이니 물을 붓고 잘 흔들어 맨 아래쪽에 모이는 잔잔한 돌 부스러기를 골라내었다.
지금은 대형 마트에 가서 잘 포장된 쌀을 사지만 예전에는 동네마다 가마니째 부어놓고 석발기石拔機 가 반드시 있었다. 쌀에 쌀보다 돌이 많으면 그것은 이미 쌀이 아니라 돌이다. 그것으로 밥을 한다면 그것은 이미 쌀밥이 아니라 돌밥이다.
그런데 누가 쌀밥을 먹지 돌밥을 먹으려 하겠는가 그러니까 아무리 돌이 많아도 쌀보다 돌이 더 많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내 삶에 쌀보다 돌이 더 많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내 삶이라는 쌀로 밥을 지으면 꼭 돏밥이 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불행과 고통이라는 돌이 행복과 기쁨이라는 쌀보다 더 많다고 내 인생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때가 있었다. 나 자신초차 먹을 수 없는 밥을 해서 도대체 누구보고 먹으라고 할 수 있겠느냐, 내가 뭘 잘못했다고 쌀밥이 아니라 돌밥을 먹게 하느냐고 절대자를 원망하고 원망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는불행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한테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내게 어떠한 불행이 일어나면 '이제 다른 사람한테 일어나는 불행한 일이 나한테도 어김 없이 일어나는구나, 인간의 불행은 순서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똑같이 일어나게 되는구나'하고 생각한다.
남의 불행이 바로 나의 불행이며 내 삶에만 불행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릴 때 어머니가 쌀을 일어 돌을 골라낸 것처럼 원래 쌀에는 돌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쌀에 돌이 많다 해도 쌀보다 돌이 더 많을 수 없단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쌀에 아무리 불행과 고통이라는 돌이 많아도 행복과 기쁨이라는 쌀보다 더 많을 수는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맛있게 쌀밥을 먹을 때 실은 쌀에 원래 있었던 돌을 함께 먹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밥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살아가다 보면 내 인생이라는 쌀에 고통이라는 돌이 더 많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일부러 집을 나서서 다른 사람의 삶을 보거 가기도 했다. 시장이나 병원이나 화장장을 가보면 다른 사람의 삶의 고퉁이 그대로 다 들여다 보인다.
얼마 전에는 부산 자갈치시장에 가보았다, 부둣가 바닥에 생선상자를 펼쳐 난전을 이루었던 30여 년 전과 달리 가게마다 지붕이 설치돼 있을 정도로 잘 정비돼 있었으나 그 치열한 삶의 열기는 여전 했다. 내가 이것저것 생선구경만 하자 "안 살거면 리 가라"고 역정을 낼 정도로 한순간도 삶으 허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내친김에 자갈치시장 길 건너 부평동 깡통시장에도 가보았다. 다 둘러보기 힘들 정도로 많는 점포들이 품목별로 빽빽하게 밀집돼 있어 ' 이 많은 가게들이 다 무얼해서 어떻게 먹고산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 만큼 산다는 일이 엄숙하게 느껴졌다.
병원에 가봐도 마찬가지였다. 수 많는 환자의 아픔을 통해 오늘 내가 건강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를, 내가 지금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얼마나 사소한 것들인지 잘 알 수 있었다. 화장장에 가서 사랑하는 이들과 영원히 이별하며 애통해하는 모습을 보면 현재 내 삶이 죽음에 속해 있지 않고 삶속에 있다는 사실이 오직 감사할 따름이었다.
사람이 한세상을 살아가면서 편안한 삶을 사는 이는 아무도 없다, 거지에서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통과 불행속에서 한 생을 살기 마련이다. 만일 고통 없는 삶을 바라는 이가 있다면 그는 인간이기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그만큼 고통은 우리가 먹고 마시는 밥과 물과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가능한 한 고통은 피하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다, 그러나 불행이도 피하면 피할수록 더 피할 수 없는 게 고통이다.고통을 어떻게 견디고 극복해하느냐 하는 문제만 주어져 있을 뿐 우리는 결코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늘을 살고 있다.
나는 이제 고통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아무리 견딜 수 없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결코 몸부림치며 거부하거나 도망치려고 하지 않는다. 한때는 내게 고통 주는 어떤 절대적 행위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그를 원망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은 고통의 방법의 방법이다. 죽는 순간까지 내게 고통이라는 밥과 물이 필요하다면 거기에 마땅히 동의하고 감 사할 따름이디.
문득 햇살이 눈부신 양재천 둑길을 걷던 생각이 난다. 지난봄에 둑길에 제비꽃, 애기똥플이 지천이더니 여름이 오자 하얀 개망초와 노란 원추리와 범부채가 한창이었다. 이렇게 예쁘게 피어난 꽃들에게는 지난날 아무 일도 없었을까.'
꽃이라고 해서 왜 아무런 고통이 없었겠는가. 양지바른 둑길에 핀 어여쁘게 피어난 꽃들도 혹한과 폭풍을 견뎌낸 날들이있었을 것이다.비바람에 온 몸을 내맡긴 채 천둥 번개가 칠 때마다 절망에 떨어보지 않은 꽃은 없을것이다. 여름을을 잘 견딘 꽃들이 가을에 잘 여문 열매을 맺듯이 무겁고 힘든 삶의 열매를 맺을 맺을 수 있다.
"어떠한 존재든 고통 없는 존재는 없다, 그렇다고 고통만 있는 존재도 없다. 아무리 쌀에 돌이 많이 들어 있다 하더라도 쌀보다 돌이 더 많을 수는 없다." 그날 둑길에 핀 꽃들은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그렇다, 고통은 인간적인 것이다, 고통이 없으면 인간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날 나는 꽃들에게 이렇게 속삭이었다.
- 정 호 승의
시가 있는 삼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