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덕수궁 '황성' 베일 벗은 역사유적, 살아있는 보존을 외치는 조엽교곽기옥
:杭州德寿宫遗址揭开“皇城”面纱 历史遗迹呼唤活态保护
출처:중국신문망 저자 赵晔娇 郭其钰 중국 고고학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서기 1138년, 남송은 공식적으로 항저우를 수도로 삼아 린안으로 불렸습니다.린안은 남송의 정치적 중심지로서 100년 이상 존재해 왔습니다.이 기간 동안 '연류화교, 풍렴취막, 십만 가구'가 들쭉날쭉했습니다. 지금의 항저우 상성을 걷다 보면, 오산 아래, 고루, 관서리, 골목길을…… 곳곳이 황성 송운입니다.그 중 남송 덕수궁 유적지의 고고학적 발굴은 항저우 남송의 기억에 중요한 의미를 더했습니다.
▲ 항저우 덕수궁터 사해 줍패 황성의 베일을 벗긴 덕수궁 전신은 남송 재상 진회 저택.진회가 죽자 송 고종 조구는 이 집을 거둬들여 옛 집을 덕수(德壽)라고 하여 민간에서는 '북내(北內)'라고 불렀습니다.처음 조성되었을 때 덕수궁은 앞뜰의 궁궐만 수리했을 뿐 후원은 없었습니다.후송 효종이 덕수궁을 증축하고 장인들을 모아 후원을 조성하였습니다.
역사적 기록과 고고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송의 덕수궁 유적은 거의 170,000제곱미터의 면적을 차지합니다.거의 20년 동안 많은 고고학적 발굴을 거쳐 덕수궁의 궁궐터, 다지기, 정원 바닥, 연못 바닥, 벽돌 포장, 가산 기반, 완전한 진배수 구조 등의 건축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저장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이자 항저우시 사회과학원 남송사연구센터는 덕수궁이 황실건축물로서 송고종이 호산을 사랑한 뜻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소개했으며 강남 정원은 대성에 집결되어 당시 건축과 정원의 최고 기술을 구현했습니다.
덕수궁은 '소서호'를 전체 궁궐 시설의 중심으로 하여 동서북 4개 구역으로 나누어 냉천, 비래봉, 취원루, 완계, 만세교, 사면정 등의 경관을 갖추고 사계절 꽃들을 정교하게 배치하여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건염 이래 조야잡기'에는 '궁에 큰 연못을 파서 서호의 물을 끌어모으고 그 위에 돌을 쌓아 산을 만들고 비래봉과 같으며 취원이라고 하는 건물이 있습니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 항저우 덕수궁 유적의 '진용'이 점차 강남과 송나라의 운치를 띠고 있음을 드러낸 것은 1984년이며, '린안성' 고고학팀은 항저우 왕선교에서 신궁교 사이의 중하 동쪽에서 남송 시대의 벽돌 도로를 발견했고, 당시 도로는 덕수궁 유적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2001년 항저우 문화재 고고학 연구소는 왕장루 북쪽 부지에 대한 구조적인 고고학적 발굴을 수행하여 덕수궁의 동궁장, 남궁장 및 일부 궁내 건물 유적을 발견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의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덕수궁의 궁장, 건축부재, 도자기 등이 속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도시의 중첩으로 인해 도시의 고고학은 느리고 어려웠으며 30년 이상의 세월을 거쳐 조금씩 구조되고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덕수궁 터는 유적이 풍부하고 잘 다듬어져 있으며, 조형이 정교하고 재료도 훌륭합니다.항저우 문화재 고고학 연구소 직원 스멍허(施夢以)에 따르면 현재 덕수궁 유적은 총 6600제곱미터가 발굴되었으며 그 중 중심축의 위치가 대략적으로 결정되고 건물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어 기능성을 미리 판단할 수 있습니다.
계획에 따르면 남송 덕수궁 유적 고고학은 올해 말까지 완전히 완료될 예정입니다.고고학적 발굴은 일단락되었지만, 이에 따라 이 유적지를 어떻게 보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더 큰 시험이 뒤따르게 되었습니다.
"현재 발굴 성과를 보면 덕수궁은 한·당 시대의 으리으리한 대궐을 이어가지 않고 작고 정교합니다."중국 인민대 역사학원 교수인 바오웨이민(包伟民) 중국송사연구회 회장은 덕수궁은 강남의 특색을 지니고 있으며 남송의 스타일을 대표한다고 생각합니다.
▲ 진회집 벽돌 역사 유적은 살아있는 보존 덕수궁 유적이 항주 상성의 핵심 구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은 현재 항주 주성 내에서 가장 큰 유물 고고학적 발굴 및 탐사 지역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한 치의 땅도 금도시의 도심에서 역사유적과 현대도시가 어우러진 지역에서 덕수궁유적의 보존과 전시는 진퇴유곡처럼 보입니다.
"시안의 대명궁은 발굴과 전시를 하면서 그 위에 살던 주민들을 통째로 옮겼지만, 임안성 유적은 항저우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아래 위치하여 수나라, 오월, 남송,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의 여러 시대의 문화적 축적을 쌓아올린 곳입니다."항저우시 도시계획디자인연구소 부총공보, 도시발전과 역사보호연구소 소장 화팡(華方)이 털어놓았습니다.
저장성 문물고고연구소의 정자리 연구원은 고대 유적지의 보존은 항상 전체와 국부의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개에 따르면 도시 고고학은 '수평적으로 레이아웃을 찾고 수직적으로 혁명을 찾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따라서 덕수궁 유적의 보존에는 유적유물, 역사문헌 등을 종합하여 역사적 종감을 구현하고 고고학에서 '사람을 보고, 물건을 보고, 삶을 보고' 전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역사 유적지의 구체적인 보호 형식과 관련하여 기자는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많은 CPPCC 위원들을 인터뷰하여 고대 유적지가 진정으로 사람들의 삶에 보호되고 전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모두의 일반적인 합의가 되었음을 발견했습니다.
▲ 남송 덕수궁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인 '덕수궁 유적의 보존과 개발도 5g, AI 등의 기술을 활용해 덕수궁은 물론 남송의 이야기를 신선하고 흥미롭게 보여주는 등 시대에 발맞춰 진행되어야 합니다."항저우시 정협 위원인 양왕(楊莅)은 역사 유적지는 혁신적인 보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일반인들이 덕수궁 유적과 그 뒤에 있는 남송의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항저우시 정치협상회의 위원인 샤린은 '문화 이야기'를 잘 들려주고 역사적이고 정적인 유적지를 살아있는 살아있는 것으로 만드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유적에 대해서는 유적지 전시와 모의 전시를 통해 고고유적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고고학적으로 발굴되지 않은 유적지의 경우 로고 전시를 사용할 수 있으며 로고, 색상, 소리, 조명, 공공 예술 및 기타 표현 방법을 통해 이미지적으로 표시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팔백여 년 전의 역사 유적지를 보존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것은 다음 팔백 년의 문화적 명함을 닦기 위해서입니다."항저우시 상청구 주밍 부구청장이 말했습니다.
분류:고고학 연구
이 글의 꼬리표: 덕수궁 남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