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폴란드로
글/ 김 승리
2013년 7월24일 아내와 함께 루프트한자 항공기를 타고 김해공항을 출발 인천을 거처 독일 뭔헨까지 가서
뭔헨 항공기로 갈아타고 약50분 비행하여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빈 이라고도 함)에 도착, 12년 전 선진
음악 공부차 빈에 유학 갔다가 현제까지 살고 있는 딸아이 부부와 4살짜리 외손자의 환영 속에 빈에서
휴식을 취한 후 이틀 늦게 한국에서 온 30여명의 단체 관광객들과 합류하여 8박9일 일정으로 구 동구권
관광에 나섰다. 7월27일 비엔나를 출발한 관광버스는 몇 시간을 달려도 산이나 강. 논이나, 호수, 같은
물을 볼 수 없었고 보이는 건 사막 같은 더 넓은 밭들뿐이다. 언제 국경을 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버스는
슬로바키아 테트라 산맥을 숨 가쁘게 빙글빙글 돌아 고도 1200m 의 스키장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규모는
작지만 웬만한 특급호텔 부럽지 않을 만큼 주위 환경과 시설이 잘 갖춰진 것 같다.
위로 쳐다보기도 버거운 높이의 거목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중심에 탁 트인 스키장의 진한여름, 피톤치드가
가득 쌓였을 것 같은 초원으로 변한 스키장에 데굴데굴 굴러보고 싶어진다. 겨울이면 눈 쌓인 이 초원에
알파인 스키어들의 겨울 속에 뜨거운 열기를 느낄 것이다. 산속 호텔에서 안락한 하룻밤 의 휴식은 여행의
피로를 확실히 날려버리고 어제의 뜨거웠던 기온이 그리울 만큼 여름 한복판인 오늘 이곳의 아침 기온은
늦가을 긴 옷 생각이 절실하게 날만큼 시원하다. 버스는 2차선 텅 빈 길을 거침없이 달려가고 길섶에 동물
보호 표지판 등 많은 표지판들만 달려왔다가 휙휙 지나간다. 테트라산맥을 내려와 폴란드로 가는 길도
막히는 일은 없으나 가끔 트렉타 같은 농기구가 앞서가거나 서행하는 차가 있을 경우에도 추월하는 일 없이
그냥 따라가는 교통문화는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고 교통 흐름에 순응하지 않고 나 홀로 느긋하게
서행하고 있는 행위는 우리가 배우지 말아야 할 점이다.
산과 들 넓은 밭과 밭에 거대한 트랙터가 꾸물꾸물 무엇을 추수하는 지 먼지를 일으키고, 어느 목장 앞엔
방사했던 소들이 더위 때문에 시원한 축사로 들어가려는지 수 백 마리 떼 지어 축사 앞에 모여 있는 모습도
보인다. 2시간쯤 달렸을 때 슬로바키아와 폴란드의 국경이라고 하는 작은 마을 앞, 길가에 초소로 쓰였을 것
같은 허름한 건물에 읽을 수없는 외국어 간판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을 뿐 국경을 관리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밖이 너무 더워서인지 버스 에어컨을 계속 가동해도 여전히 덥다. 가는 도중 사거리 등 교차로
전자 게시판에 지열 42.9c 풍열 39.5c 라고 오늘 기온을 알려주는 데 금년 들어 제일 더운 날씨란다.
폴란드로 가는 도중 길가 멀리 혹은 가까이 보이는 건물들은 책이나 영화에서 많이 본 유럽풍 양식의
본고장이다. 멀리서보면 아름다워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보면 아름다운 것만 존재하는 게 아니고
나무판자들로 짜여 진 울타리는 썩고 부서지고 까맣게 그을린 문짝을 방치 해 둔 허름한 집들도 보이고
빨간 지붕만 초가로 바꿔 놓는다면 5.6십년대의 우리나라 시골풍경과 흡사할 것 같은 곳도 있다. 뾰쪽하고
빨간 지붕에 하얀 벽의 유럽풍의 아름다운 집들과 공존하는 마을이 소박해 보인다. 버스가 어느 마을에
도착 했는데 여기가 그 유명한 소금 동굴이다. 이곳 소금 동굴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보존하는 곳이다.
동굴하면 산중턱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마을 내 평범한 건물 속으로 들어가더니 건물 속에
지하 동굴입구가 있으며 나무 계단 7계단을 내려가면 옆으로 90도로 꺾이고 또 7계단을 내려가면
또 옆으로 90도 꺾이고 이런 식으로 7계단씩 계속 꺾어 수직 갱도를 800계단 내려가면 소금광산 관광이
시작 되는데 지하 110m에는 성 킹카 성당이라는 곳이 있고 지하125m 지점에는 우체국도 있어 편지나
엽서를 부칠 수 있다.
소금동굴속에 있는 광장인데 엄청 넓고 높고 크다.
우체국도 있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하니 믿어도 되나 ?
이 소금광산에서 캐낸 소금을 운반 할 때 말을 이용 했는데 다 큰 말은 갱도 안으로 데리고 들어 갈수
없어서 어린 새끼 말을 데리고 들어가서 먹이고 키워 다 자라면 노역을 시켰다고 하니 새끼 말은 한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밖으로 나갈 수 없었으며 광부들도 소금 갱도 속에서 살림을 살기도 했다 하며
농사도 지었다고 하는 데 그 농사를 지었다는 말은 무엇보다 햇볕이 없는 지하 갱도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하니 거짓말이 아닐까 싶다. 이 소금광산은 1996년까지 소금을 캤다고 하며 내려가면서 큰 광장이 3개가
있으며 미로처럼 사방팔방으로 얽혀있는 많은 갱도 때문에 필히 전속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야 구경 할 수
있으며 동굴 바닥과 벽면 천정 모두가 소금으로 되어 있으며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두꺼운
나무 판이나 통나무로 동굴 벽을 보강해 놓은 곳도 있다.
암튼 이 소금광산의 내부는 어마어마하게 넓으며 터널 길이를 전부 합산하면 300km나 된다고 하니
영화에서 본 아프리카 사막의 커라단 불개미집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본 것은 수직 갱도
주변만 봤으니 극히 일부분만 본 것 같다. 올라오는 수단은 고층 건물을 지을 때 오르내리는 작업용
엘리베이터 같은 것을 타고 올라왔다. 인간의 힘이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이 소금광산에서 수백 년
소금을 캐는 동안 목숨을 잃은 사람은 얼마나 되었으며 이 소금으로 치부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지상에 올라오자 바깥 열기가 찜질방 문 열고 들어서는 느낌이다.
첫댓글 전 폴란드하면 떠오르는 김광균시인의 추일서정..폴란드망명 정부의 지페 라는 시구입니다.2차세계대전때 독일의 폴란드 학살.....
마치 일제시대 우리의 아픔과 닮아있어서 아련한 아픔처럼 느껴지더라구요.
넵 감사합니다. 독일군의 폴란드인 학살이 참으로 끔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그들은 사죄하고 또 사죄하는데
이웃 일본은 왜 그렇게 뻔뻔하고 잘 못을 인정하지 안는지 왜인들이 이웃이라는 게 개탄스럽 다는 느낌이 듭니다.
마지막삿갓님~ 안녕하세요? 동유럽을 다녀오셨군요 반갑습니다.
5월 18일 부산지역회 회원님과 함께하는 산행을 구상중입니다.
그날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반갑습니다. 심해님 5월18일 산행이 이곳에서 함께 한다니 참으로 기쁜 소식입니다.
꼭 참석 하겠습니다. 작년에 연락이 잘못되어 길이 엇갈려 많이 섭섭했습니다. 이번에는 꼭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