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대기근
1845년 9월 9일 아일랜드의 신문들은 훗날 19세기 유럽의 최대 비극으로 일컫는 '감자 대기근'을 촉발시킨 감자 병충해가 아일랜드 지역에 번지고 있음을 처음으로 보도했다.
감자가 주식인 아일랜드에는 그 해부터 대기근이 시작되어 1851년까지 계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1백만명이 굶어 죽었으며, 허기진 1백 50만명은 해외로 살길을 찾아 떠났다. 인구의 4분의 1이 아일랜드 땅에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조상들의 처참한 굶주림을 생각하면서 지금도 9월 9일을 '기념일'로 지킨다. 이날 그들은 감자를 먹지 않고 모아서 굶주린 사람들에게 전한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이 또 한가지 있다. 당시 아일랜드를 합병 통치하고 있던 영국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던 일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가슴 바닥에는 대기근 때 이웃한 영국의 사촌들로부터 아무런 도움이 없었던 일에 대한 사무친 원한과 반감이 지금도 뿌리깊게 새겨져 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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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고통을 당하는 것은 오로지 북의 인민들일 뿐이다. 지금 굶주림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북의 형제들은 뒷날 남쪽을 어떻게 평가할까? 아일랜드 사람들처럼 가슴 사무친 원한을 갖지 않는다는 보장은 있는가? 그러지 않아도 남과 북 사이에는 오랜 지역갈등이 있어왔다. 지금 북한의 초근목피 기근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 '지역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남과 북의 통합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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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워싱턴 특파원), 한겨레 신문, 1996년 5월 11일(토),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