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긴 비행시간은 불편하지만 방해받지 않고 묵상하기에 좋습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오니
정결한 영혼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23.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본문 주해)
11~12절 :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 가운데 바울이 전한 복음을 변질시키는 자들이 나타나서 여러 가지로 바울을 폄하한 것에 대하여 바울이 자신의 복음을 변호하고 있다.
자신의 복음은 사람들에게 받거나 배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는 당시에 많은 순회 전도자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며 그들의 추천서를 가지고 다닌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그렇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자신에게 계시해 주신 것이라 한다. 바울은 다메섹에 사는 예수 믿는 사람들도 잡아오기 위하여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서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이다.
13~14절 : 바울 자신이 유대교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고 멸하였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로 피로 값을 주고 구속하신 성도들을 가리킨다.
바울은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는 열심이었으나, 그 열심으로 예수님을 박해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죽였고, 그는 사실 스데반을 죽일 때 주동자였다.
15~16a절 : 바울은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전하는 사람이 되었는가?
태어나기도 전,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이미 하나님께서 택하셨다는 것이다. 에베소서에서는 창세전에 택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에 자신에게 원인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기에 은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인 살인자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나타내신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바울을 택하신 이유는 정말 바울처럼 하나님을 사랑하여 열심히 율법을 지키는 결과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였다는 사실이다. 바울을 통하여 인간의 악의 실체를 보여준다. 또 하나의 이유는 ‘죄인 중의 괴수’도 예수님은 용서하신다는 것이다. 아들의 피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런 죄인도 용서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16b~20절 : 그 때 바울은 어떤 사람과도 상의하지 않았고 또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도 않았다.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커스로 돌아갔다.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정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다마스커스 둥에서 복음을 전하다 쫓겨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고후11:32~33)
그리고 베드로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보름 동안을 지냈던 것이다. 그 때 주님의 동생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는 만나지 않았다.
이와 같이 한 것은 그의 복음이 사도 등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은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고 한다.
21~24절 : 바울의 활동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다.
그 후 유다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바울을 직접 대할 기회가 없었으나, 전에 자기네를 박해하고 그 교를 없애버리려고 하던 사람이 이제는 그 교를 전파하고 있다는 소문만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박해하던 자가 도리어 그 믿음을 지금 전하니 이것은 결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 사람을 바꾸어 놓는 것이다.
(나의 묵상)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자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전하는 자로 변하게 되었는지 말씀하고 있다.
바울을 의심하고 폄하하는 자들에 대해서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통해 직접 부름받은 자이고, 그가 받은 계시의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린다.
박해자 바울에서 전도자 바울이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시다.
나는 바울처럼 타인에 대해 골수 박해자는 아니지만, 철저히 나 중심으로 또한 자기의로 살았던 자이다.
남을 박해하는 자는 아니었지만, 내 멋대로 살았으니 예수님의 대적자일 뿐이다.
그런 나를 주님께서 바울처럼 불러주셨다.
바울이 골수 유대교인이었듯이 나도 골수 교회중심의 종교인이었다.
바울처럼 다메섹 도상의 극적인 만남은 아니었으나, 생명의 복음을 듣게 하심으로 나를 돌이켜 주신 것이다.
바울을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 전도자로 하나님께서 세워주셨듯이, 나에게도 사나 죽으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불타는 마음을 주셨다.
그래서 가까이 또 멀리, 직접 또는 간접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순적한 여건을 허락하셨다.
열흘 간의 프랑스 복생 캠프를 마치고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묵상을 마무리한다.
꿈만 같은 시간들이다.
이 시간들이 꿈같은 이유는 말씀으로 인해 생명이 일깨워지는 역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주신 새 생명을 일깨워 하나님 아버지와의 사귐의 자리까지 나아가도록 하는 생명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니 너무도 감사하다.
바울을 복음의 박해자에서 복음의 전도자가 되어, 다닐 수 있는 온 세상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나도 그 전도자의 걸음을 걷게 하신 것이 꿈만 같다.
가까이도 전도할 곳이 많은데 굳이 그 먼 나라까지 갈까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바울을 향해 손짓한 마게도냐인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를 향해 손짓하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알고 보니 내가 마다가스카르에서 서목사님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복음을 듣지 않았는가?
바울 사도를 회심시키신 주님께서 나를 회심시켜 주시고, 장차 또 다른 누군가를 회심시키셔서 복음의 전도자로 사용하여 주실 것을 생각하니 가슴 벅찬 기쁨이 솟구친다.
파리와 뚤루즈에서 이 복음 전도자의 첫걸음을 담대히 내디디는 지체들이 많이 생겨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복음 전도자로 세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제 그릇에 넘칠 만큼 은혜를 부어주시고 또 흘려보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남은 생을 복음전도자로 충실하게 살게 하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나 주님과의 교제가 우선이니
언제 어디서나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