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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 (4부)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https://youtu.be/U4M5iCsO9Qg?si=P4IFjmVBCg_Cf8m2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 (4부)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1~13
부 르 심:요한일서 4:15~16
교 독 문:85번, 요한일서 4장
찬 송:8장, 304장, 314장, 563장
기 도:
1)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
2)주 안에서 자랑
3)하나님을 자랑하는 성령의 감동
4)예수한국 복음통일(자유통일), 주사파척결, 성령충만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장을 사랑장이라 부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 평강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있어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 네 번째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사랑이 되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는 사랑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자랑한다는 것은 자기의 의를 자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예로 바울이 거듭나기 전과 거듭난 후
성령으로 살아갈 때 모습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거듭나기 전 이름은 사울입니다.
사울의 이름은 큰 자란 뜻입니다. 큰 자로 자기의 의를 자랑하고
자기의 의를 자랑하는 것일 불의를 그대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이 거듭난 이름은 바울입니다.
바울의 이름은 작은 자란 뜻으로 예수님의 이름은 커지고
자기의 이름 바울은 한없이 작아지는 것이었습니다.
1> 거듭나기 전 사울의 모습은 자랑하는 자였습니다.
자기를 자랑하였던 베냐민 지파의 사울은 자기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괴롭히고 잡아오고 하는 불의한 도구였습니다.
심지어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 데 앞장 섰던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이 어떤 사람입니까?
스데반은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자였습니다.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면 얼굴이 빛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어둠이 영이 가득하면 얼굴에 나타나는 것은 어두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안에 성령으로 가득차서
밖에 드러는 나는 것이 빛을 발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이 말하였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7:56)”
저희가 이 소리를 듣고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스데반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스데반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사울이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사람이 어두움의 일을 하면 빛의 일을 하는 자를 핍박합니다.
보기에는 스데반을 치는 사울의 자랑은 율법입니다.
율법은 정죄하는 것입니다.
사울에게 죄와 사망의 법은 있는데 예수님의 은혜의 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자랑할 것은 자의 불의한 것이 의롭다고 착각하여 핍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데반을 보시고 스데반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스데반은 비록 돌에 맞아 죽으나 부르짖었습니다. 끝까지 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행7:59~60)”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라디아서 6:14)”
거듭나고 성령충만한 바울이 자랑할 한 가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의
첫 번째는 자기의 의를 자랑하지 아니한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의 두 번째는 사랑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이 우선입니다.
거듭난 자가 구원받았다는 확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함으로
내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2:20)”
사람은 속에 있는 것이 나옵니다.
내 속에 내가 있으면 자기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내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이 거듭나기 전에는 그 속에 든 것이
율법 밖에 없어 율법을 말하는 정죄였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티를 보면서 자기의 들보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자기의 들보를 빼고 남의 티를 빼야하는데 자기의 들보는 보이지 않고
남의 티를 보면서 자기가 의롭다고 자랑합니다.
“외식하는 자여 먼너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마태복음7:5)”
사울이 거듭나고 나서 가장 먼저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행9:20)”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행9:22)”
사도 바울은 자기의 자랑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사랑의 자랑은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립보서3:8)”
바울이 거듭나기 전 자랑하였것이 무엇입니까?
거듭나고 나서 배설물로 여기고 얻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난 하나님께로 난 의입니다.
전에 자랑하였던 배설물은 육체로 신뢰할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육체로 신뢰할 만한 것들을 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도라
(빌립보서3:5~6)”
이 모든 자랑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겼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듭났습니까?
그러면 내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여
구원하는 전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자랑하는 바리새인의 기도와 회개하는 세리의 기도
“누가복음18:9~14”
예수께서 자기의 의를 자랑하는 바리새인의 기도와
회개하는 세리의 기도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1> 자랑하는 바리새인의 기도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입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자기의 의를 자랑하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기도에는 자기를 자랑하는 것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누가복음18:11~12)”
바래새인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한다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입만 살았지 행함과 진실함은 없습니다.
빛의 열매를 맺는 것은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습니다.
바래새인의 기도에는 자기의 못된 나무가 되어
나쁜 열매를 맺는 것임을 드러나고 있습니다.
못된 나무는 모든 착함이 없습니다.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로 남에게 못되게 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의 의로움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입니다.
자기의 자랑은 육체로부터 난 불의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로 난 의는 자기 자랑이 아닌 하나님 자랑이 되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바리새인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아니하고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였지만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은 바리새인이 같지 아니하는
다른 사람들과 세리와 같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집에 들어가셔서 식사도 같이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다른 사람과 같이 하며
세리와 같이 하시는 예수님을 자랑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리새인은 자기를 자랑하지 예수님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성전에 올라가 기도한다고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가증한 기도는 하늘에 상달되지 않습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기도는 중언부언입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자는 외식하는 자의 기도로 자기 자랑으로
말을 많이 하여여야 들으실 줄을 압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에는 중언부언하지 말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기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의롭다고 여기고 자기를 자랑하는 자가 외면하는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세리장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바래새인은 자기의 십일조와 금식을 자랑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리새인의 외식함으로 자랑하는 것은 자기를 의롭다 여기는 것입니다.
의롭다 함을 여기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로 난 의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입니다.
2> 회개하는 세리의 기도
세리의 기도에는 바리새인 같이 자기를 자랑하는 기도의 내용이 없습니다.
오르지 자기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과 죄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누가복음18:13)”
바리새인도 성전에 “하나님이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같은 “하나님이여”를 외치는데 바리새인은 하나님이여 부른 다음은 자기 자랑입니다.
그러나 세리는 “하나님이여”해놓고 불쌍히 여기실 것과 자신을 죄인이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변론하시는 것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함으로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이사야1:18)”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은 기도는 중언부언입니다.
자기를 자랑하여 의롭다하는 바리새인 같은 기도는 중언부언입니다.
그러나 세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흠향하실 수 있는 향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를 할 때 위로 올라가는 향연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요한계시록8:3~4)”
기도는 올라가는 기도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를 해도 올라가지 않은 기도는 중언부언의 기도로
바리새인 같은 자기 자랑의 기도일 것입니다.
과연 누가 의로운 자입니까?
스스로 의롭다 여기고 자기를 자랑하는 기도입니까
아니면 자기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회개하는 세리의 기도입니까?
바리새인의 세리보다 의롭다 여기고 기도하고 내려가지만
오히려 불의가 드러나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는 의롭지 못하여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고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통곡하는 세리의 기도가 예수님이 보시시기에는
의롭다 여김을 받는 믿음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한일서1:9~10)”
3.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라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편20:7)”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창세기 41:1~43)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를 보았습니다. 그 뒤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를 보았습니다.
그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를 먹어버리는 꿈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었다가 다시 꿈을 꾸었습니다. 보니까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왔습니다.
그 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이 이삭이 나왔습니다.
그 세약한 일곱이삭이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가 깬즉 꿈이었습니다.
바로가 아침에 번민하여 애굽의 술객과 박사를 모두 불렀습니다.
그 꿈을 고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술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고하여 옥에 갇혀 있는
꿈쟁이 히브리 청년 요셉을 소개하였습니다.
바로가 요셉을 부르니 바로에게 들어왔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였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창세기 41:15)”
바로가 요셉을 꿈을 잘 푸는 자라 칭찬하여도 요셉은 자기를 자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자랑하였습니다.
사람은 자기를 칭찬하면 은근히 자기를 자랑하고 싶습니다.
자기를 자랑하여 자기를 돋보이게 하고 싶습니다.
사탄은 타락하기 전 수많은 천사들이 자기를 부러워하고 칭
찬하는 인기에 자기가 잘난줄 알고 그 마음에 교만을 품어
신이 된 것처럼 자랑하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요셉은 내가 아닌 하나님을 자랑하였습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세기41:16)”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자랑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자랑하는 자가 되십시다.
하나님을 자랑하여 하나님을 높이는 자는 하나님도 나를 기억하시어
나를 높여 주시는 줄을 믿습니다.
요셉은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의 말씀대로 자기를 자랑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을 자랑하였습니다.
하나님만이 바로가 꿈꾼 것을 능히 풀어 주시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섰다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해야겠습니다.
그러므로 겸손으로 “사랑은 자랑하지 않을 것”은 나를 자랑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습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있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셨습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태복음3:17)”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자랑하여
믿게 하심 같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함으로 믿음의 구원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은 자기를 자랑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린도전서1:31)”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