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VIDIA JENSEN HUANG
‘엔비디아 젠슨 황 생각하는 기계’의 계속된 글이다. TSMC, 미래를 함께 만들 파트너와 시작했다. 독립적인 파운드리의 서비스가 부상하면서 신생기업이 과감하게 반도체 설계에 도전할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TSMC는 회사의 조직문화가 군대식이고 996 근무제를 따랐다. 즉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간 근무하는 방식이다. 이 회사는 ‘모리스 창’이 평생 반도체와 함께한 인물의 회사다. 1931년 중국에서 태어난 그는 10대 시절 미국으로 이민,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에서 성공적인 경영자 수업을 받았다. 1990년대 후반, 젠슨은 TSMC를 방문했다. 지구상에 가장 청결한 환경을 가진 공장에 ‘에어 샤워’실을 통과하여 견학한다. 그리고 후에 엔비디아는 유럽에서 대만의 TSMC로 제품 생산지를 변경했다.
경쟁자들이 진입조차 하지 못할 시장을 개척하라. 젠슨의 차별화 전략은 기존의 비즈니스 전략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병렬 컴퓨팅은 큰 문제를 여러 조각으로 나눈 뒤, 이를 동시에 연결하는 방식이다. 엔비디아의 병열 GPU는 도시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 프로젝트는 ‘이안 벅’이 이끌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 출신이다. 여기서 2006년 말 ‘쿠다’가 출시되었다. 그러다 ‘쿠다’의 가치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게다가 높은 연구개발 비용으로 재무 성과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내부 갈등이 초래된다. ‘범프게이트’다. 여기서 젠슨 황다운 가장 위험한 도박이 시작된다. ‘쿠다’가 밑 빠진 독이라는 판단은 틀린 것은 아니었다.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셀룰러 모뎀 제조업체를 3억 6,700만 달러에 인수한다. 비인기 시장의 유일한 공급자인 엔비디아를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들이 대학을 진학해 떠난 후, 그는 집에서 빈둥지 증후군에 시달린다. 퇴근하여 가정의 온기를 달래려고 애썼다. 반려견을 입양하고 자주 요리 실력을 키우면서 즉흥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한발 먼저 돌파구를 감지하는 능력이 있는 젠슨은 클레이튼 크리스틴 교수의 가르침을 따랐다. 파괴적인 기술이 종종 취미 활동가들의 커뮤니티에서 발전한다고 보았다. 즉 파괴적 기술은 ‘비정규 자원’을 활용함으로써 개발되는데, 이는 기존 제품의 부품을 본래의 용도가 아닌 목적에 사용하면서 탄생한다. 이런 기술은 초기에는 조악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기존 강자들이 간과한 성능을 중심으로 급격히 발전해 나가는 특징을 가진다. ‘알렉스 크리제브스키’는 재능 있는 프로그래머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출신으로 모국어는 러시아어다. ‘제프리 헌턴’의 방에 찾아와 합류한다. 헌턴은 신경망을 연구하는데 평생을 바친 전설적인 학자다. 신경망은 머신러닝, 때로는 딥러닝으로 불렸다. 단 하나 인공지능이란 말을 피하면서 말이다. ‘제프리 헌턴’은 ‘일리야 수츠게버’와 팀을 이뤘다. ‘일리야’도 구소련 출신으로 러시아어를 쓰는 유대인 이민자였다.
“인공 뉴런이 생물학적 뉴런과 비슷하다고 믿는다면, 결국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일리야는 말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곧 뇌를 훈련하는 방식과 같습니다.” 엔비디아 GPU는 인텔 컴퓨터로 1시간 걸릴 작업을 단 30초에 수행했고, 생물학적 진화로는 10만 년이 걸릴 일을 해냈다. ‘알랙스크 리제티브키’가 할 수 있는 연산 능력을 최대한 확장해야 한다. 즉 빠르게 실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은둔형 천재. 진정한 괴짜 과학자, 기존 질서를 거부하는 이단아, 마침내 ‘쿠다’의 킬러 앱을 만든 인물, 바로 ‘알렉스 크리제브스키’였다.
‘제프리 헌턴’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가 이길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건 세상을 놀라게 만든 AI 기술을 대중에 공개하기 전에 미리 엿보는 짜릿한 전율이었다. 슈퍼비전이 세상에 미칠 영향을 두고 연구자들은 자율 로봇과 자율주행 자동차, 스스로 코드를 작성하는 컴퓨터에 대해 논의했다. 당시 그들에게 AI는 진보를 위한 긍정적인 도구였다. 슈퍼비전이 엔비디아의 GPU 덕분에 탄생했다면, 이제 엔비디아가 슈퍼비전 덕분에 더 큰 혜택을 보게 될 것이란 점이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신경망의 출현. 이미지넷 대회에서 신경망 기반의 모델이 쇄도 했고, 2014년에는 출전한 40개 팀이 모두 신경망 방식을 사용했다. 슈퍼비전 네트워크에 대한 논문은 ‘알렉스 크리제브스키’, ‘일이야 수츠케버’, ‘제프리 헌턴’이 공동 저자로 발표했다. 컴퓨터 과학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연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구글이 4,400만 달러를 제한해, 세 사람은 경매를 중단하고 받아들인다.
‘브라이언 카탄자로’는 눈에 띄는 몽상가였다. 그는 박사과정을 밟으며, 생계를 꾸리고 세 아이가 있어 대학원생 수입으로는 생활이 막막했다. 그래서 그는 8개의 인턴십을 전전했다. 그것이 거대 기업의 내부를 들여다볼 기회라는 의외의 소득이었다. 그는 박사 학위를 받고 엔비디아를 선택했다. 입사 후 ‘벨 댈리’의 연구팀에 합류했다. 그리고 혼자서 풀타임으로 ‘cuDNN’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는 ‘쿠다 플랫폼’에서 신경망 개발을 가속하는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였다. 브라이언은 결국 젠슨 황에게 자신의 연구를 설명하기로 결심했다. 젠슨은 이렇게 선언했다. “cuDNN은 엔비디아 20년 역사상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다.” 그리고 그의 화이트보드에 다음과 같이 썼다. ‘O.I.A.L.O’ 젠슨은 ‘Once in a Lifetime Opportunity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뜻이다. 마치 사도 바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계시를 받았던 것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젠슨은 그 누구보다 먼저 이해했어요. AI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가장 먼저 본 사람이었죠. 정말로 가장 먼저 말입니다.”라고 ’데이비드 커크‘는 말했다.
엔비디아가 성장했지만 젠슨 황은 기민하고 민첩한 기업 구조를 유지했다. 고정된 부서나 위계가 없었다. 최고 경영진은 사실상 그 혼자였다. 최고운영책임자 COO, 최고기술책임자 CTO. 최고마케팅책임자 CMO를 두지 않았다. 대신 30명 이상이 직접 그에게 보고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부사장‘이라는 포괄적인 직함 아래 유동적인 역할을 맡았다. ’cuDNN‘는 2014년 초에 출시를 앞두고 있었다. 젠슨 황은 GTC 2014 무대에 올라 이 기술을 홍보했으며, 이로써 엔비디아는 창립 21년 만에 처음으로 AI와 공식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젠슨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젠슨은 ’엔드류 응‘의 신경망이 개념화한 고양이와 인간 얼굴을 보여 주었다. 이에 엔비디아의 초기 AI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젠슨이 가장 열정을 쏟은 취미는 요리였다. 하지만 엔비디아가 AI 분야로 나아가면서, 젠슨은 취미를 하나씩 포기하기 시작했다. 장난기 어린 성격도 사라졌고, 탁구 연습을 멈췄으며, 좋아하던 철판 요리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숙련된 딥러닝 엔지니어들의 연봉도 치솟았고, 기업들은 채용 경쟁을 벌였다. 일자리 제안을 평가하는데 널리 쓰인 기준은 ’총보상‘이었는데, 이는 기본급, 보너스, 스톡옵션, 복리후생 패키지를 모두 합산한 숫자였다. 총보상은 마법의 숫자였으며, 연간 100만 달러를 넘어가는 때도 있었다.
일론 머스크와 젠슨 황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이민자였고, 워커홀릭이었으며, 비전가였다. 둘 다 소리를 질러댔고, 도박과 같은 도전을 즐겼으며 세계적 수준의 엔지니어였다. 그들은 운 없는 기업가들의 잔해가 널린 황량한 상업 지대에 자신감 있게 발을 들였고, 처음으로 그곳을 번성시켰다. 그러나 예리하게 분석하면 차이가 있다. 비전에 대한 접근 방식이 서로 달랐다. 일론 머스크는 환상에서 출발해 현실로 되돌아오며 비전을 그렸고, 젠슨 황은 현실에서 출발해 미래를 만들어 나갔다. 또 다른 차이는 충성심에 대한 태도다. 일론 머스크는 충성도를 중시하지 않았고, 종종 사람들을 경고 없이 독단적으로 해고했다. 한 번은 일요일 오후에 거의 무작위로 ’스타링크 엔지니어링‘팀 전체를 해고했다. 반면 젠슨 황은 거의 누구도 해고하지 않았고, 그래야 할 경우에도 여러 차례 경고하였고, 성과 개선 계획을 시행한 후에 결정을 내렸다. 엔비디아에서 쫓겨나는 건 정말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했을 때뿐이었다.
젠슨은 결혼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그가 아내 ’로리‘에 대해 말할 때는 애정이 드러나곤 했다. 반면에 일론 머스크는 최소 3명의 여성과의 사이에, 11명의 자녀를 두었다. 젠슨은 자석 같은 카리스마를 발휘했고 때로 엄청나게 유머러스했으며, 불같이 화를 내지 않을 때를 제외하면 따뜻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났다. 일론 머스크는 사회적 신호를 잘 파악하지! 못했고, 대화에서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으며, 불같이 화를 내지 않을 때를 제외하면 따뜻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났다. 일론 머스크는 사회적 신호를 잘 파악하지 못했고, 대화에서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으며 자신은 자폐 스펙트럼에 있다고 주장했다. 젠슨은 위스키를 마셨고 트위터를 하지 않았으며, 내가 아는 한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정치적 의견을 표명한 적이 없었다. 반면 일론 머스크는, 대마초를 피웠고, 트위터에서 민망한 글을 올렸으며 트럼프를 후원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2025.07.21.
NVIDIA JENSEN HUANG
스티븐 위트 지음
백우진 옮김
RHK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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