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주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옵시고
프랑스 복음 전도 이야기로 성도들과 교제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덮어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본문 주해)
본문은 소위 ‘예루살렘 사도 회의’로 불리며 갈라디아서 2장1~10절과 사도행전 15장1~29절에서 자세히 진술되고 있는 내용이다.
그 시기는 A.D. 48년경으로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왔을 때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지역에 복음을 전할 때 유대교의 어떤 율법이나 할례를 요구하지 않고 개종자를 얻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 복음을 전한 것이다.
그런데 보수적인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그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안디옥교회로 왔고, 그래서 안디옥교회 안에 다툼과 변론이 일어나게 되었다. 안디옥교회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를 대표단으로 구성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려보낸다.
1절 : 바나바는 예수님을 만난 바울을 다소에서 데리고 와서 안디옥에서 사역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를 한 사람이다. 디도는 완전한 이방인으로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다.
이렇게 함께 올라간 것은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교제를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임을 보여준다.
2절 :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인하여 올라가서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바울이 전한 복음을 제시한다.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셨는가 하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나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다른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3~5절 : 바울이 이방인인 디도를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한 것은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주장함으로써 율법의 종으로 삼으려고 하는 자들이었다. 율법의 종이 되는 것은 반드시 기복적인 신앙으로 변질된다. 또한 율법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계급을 형성하고, 상급의 차등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인본주의의 모습이며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의 후손들의 특징이다.
여기에서 자유를 얻은 것이 오직 복음으로 된 것인데, 다시 종으로 삼으려고 하기에 한시도 그런 것에 복종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6~8절 : “그 유명하다는 사람들로부터 나는 아무런 제안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든지, 나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 유명한 사람들은 나에게 아무런 제안을 하지 않았습니다.”(6절, 새번역)
바울의 복음에 유명하다는 자들이 무엇을 더할 내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당시에 예루살렘의 유력하다는 자들이란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같은 자들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방인인 무할례자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나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같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할례자의 사도로,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9절 :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자신들의 복음만이 옳고 바울이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것이 틀렸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울도 자신의 복음만 옳고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틀렸다고 하지 않았다. 주님의 계시로 인하여 올라간 것은 같은 복음임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친교의 악수가 이루어진 것이다.
10절 :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한 가지 부탁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달라는 것이다. 이에 바울은 그것은 바로 자신이 마음을 다하여 해 오던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바울이 이방인 지역에서 예루살렘 교회에 기근이 들었을 때 연보를 하게 한다.
이 연보를 예루살렘 교회가 받는다면 이방인의 연보를 받는 것이요, 이는 율법으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또한 이방인 교회와 예루살렘의 유대인 중심의 교회가 교제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묵상)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바울(과 바나바)이 친교의 악수를 하게 된다.
이는 그들 사이에 다른 복음의 요소가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즉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임을 서로 확인한 것이다.
바울이 이렇게 예루살렘 회의의 결과를 자세히 알린 것은 지금 위기에 빠진 갈라디아 교인들을 각성시키고 거짓 교사들이 주장하는 권위도 허구임을 밝히기 위함이다.
율법으로 이방인들을 묶어 놓으려는 거짓교사들은 복음을 모르는 자들이다.
복음 안의 자유를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의 완전한 보혈의 은혜를 모르기에, 자신의 수고나 공로를 자꾸 보태려는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바울의 친교의 악수는 복음 안의 자유로 서로 교제하는 모습이다.
나 역시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예수 구원+나의 수고’가 진리인 줄 알았다.
예수님의 완전한 은혜에는 그 어떤 것도 보탤 필요가 없다.
너무도 완벽하며 너무도 자유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마음대로 사는 방종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뜻을 구하는 마음이 된다.
복음을 알고 생명의 삶을 살게 되면서 주님 안에 자유를 누리며 살게 되었다.
아버지 품속에 안긴 채 살아가니 세상살이에 함몰되어 사는 자가 아니라, 그저 아버지 품속에서 세상살이를 보는 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나서서 설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어떻게 하시는가를 보며 박수치고 즐거워하는 일이다.
이번 열흘 간의 프랑스 복음 생명 사역도 그러하였다.
바울이 주님의 계시를 따라 예루사렘 교회에 가서 그곳 사도들과 친교의 악수를 하게 되었듯이, 나도 주님의 명령을 따라 그곳에 함께 갔다.
매시간 선포되는 말씀을 듣고 또 들으며 그곳의 지체들과 함께 생명의 교제를 나누며 친교의 악수를 나누었다.
생명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지만 복음 안의 자유함을 알고 또 누릴 수 있다.
말씀 앞에 나아가지 않으면서 어찌 복음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또한 그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을까?
자유를 얻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다시 율법으로 얽어매려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물리쳐야 한다.
‘복 받으려면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거짓 가르침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매일 복음의 은혜 속에 헤엄을 쳐야 한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열어놓은 하나님 나라, 아버지 품속을 유영(遊泳)하는 것이다.
나는 수영할 줄 모른다. 물이 무섭다.
그러나 아버지 품속에서 놀면서 헤엄치며 다니는 것은 너무도 좋아한다.
그리고 친교의 악수를 나누는 모든 지체들을 이곳으로 인도하여 함께 교제하기를 원한다.
오늘 청년부에서 ‘다른 복음은 없다’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한다.
우리 청년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을 의지하고 자랑함으로, 아버지 품속으로 다이빙하는 자들이 다 되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와 바울이 친교의 악수를 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된 모습입니다.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지만 그들은 아버지 품속에서 하나가 된 자들입니다.
저도 아버지 품속에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열어 놓은 그 하나님 나라에
더 많은 이들이 올 수 있도록 열심히 나팔 부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