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1일 묵상 본문 : 갈라디아서 2장 11절 - 21절 - 주 안에 연합되어 담대하게 진리와 함께 고난 받기를 기뻐하는 주의 백성으로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쌀쌀해진 늦가을의 날씨 가운데 하루를 시작하며 주의 보좌를 향해 나아갑니다.
뜨거웠던 폭염의 여름도 주님의 섭리 앞에 힘을 잃고 가을의 정취를 드러냅니다.
늘 신실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모든 언약들도 성취되었고 또 성취될 것을 바라봅니다.
땅의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주께 마음을 두고 사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의 음성을 분별하여 진리를 따라 순종하는 길에 서도록 은혜로 인도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목마른 사슴처럼 주의 뜻을 찾고 영적으로 바로 서는 일에 치열함을 갖게 하옵소서.
날마다 함께 하시고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베드로가 수리아 안디옥에 언제 방문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예루살렘 공의회가 있은 이후에 방문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때 베드로는 복음에 합당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사건이 있었고 이에 대해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하는 일이 있었음을 밝힌다.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은 철저한 유대주의자들로써 이방인과의 식사교제를 거부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베드로가 안디옥에서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다가 유대주의자들을 만나게 됨으로써 그들의 비난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떠나는 모습을 보인 것이었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베드로의 행동에 유대인으로 회심하여 교회의 성도가 된 사람들도 베드로와 같이 자리를 떠나는 외식적인 행동을 했고 더 나아가 바울과 동역했던 바나바마저도 외식에 동참했음을 밝힌다.
이러한 지도자들의 태도는 복음의 진리를 심각하게 왜곡시킬 수 있는 행동이었기에 바울은 그러한 모습을 결코 용납할 수 없음을 밝히고 그들을 책망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바울은 베드로와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하지 않았기에 그들을 공개적으로 책망했다. 바울은 베드로가 율법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으면서도 할례주의자들을 두려워하여 이방인을 피하는 모습은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처럼 살게 하려는 것과 같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태도는 복음을 통해 얻는 자유를 박탈시키는 것과 같으며 복음을 왜곡하게 만드는 일이 되었기에 공개적으로 책망하고 바로 잡아야 할 일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바울은 자신이 본래 유대인으로서 하나님과 율법도 모르는 이방의 죄인들과는 구별되는 사람임을 제시한다.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그러나 사람이 사람의 의로움은 율법을 지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임을 선포한다. 그래서 유대인들도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여김 받을 대상임을 제시한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로써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을 사람이 없음을 선포한다.
이는 구약의 문자적 율법을 완전히 지키는 것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임을 말한다.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또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가 죄인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이 거짓말 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임을 선포한다. 그래서 진정한 범법자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누렸던 자가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임을 제시함으로써 베드로와 같은 태도가 문제임을 드러낸 것이다.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그래서 믿음으로 할례를 비롯한 율법의 조항을 헐어버린 것을 무효화시키고 다시 율법의 조항을 지키도록 하는 것은 스스로 죄를 조장하는 것에 불과함을 선언한다.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바울은 율법적 요구에 대해서는 반응도 없고 영향력도 받지 않으려는 모습을 죽었다고 표현하면서 반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얻고 누리는 삶을 살고자 율법을 버렸음을 선포한다.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은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사건을 자신의 삶에 일어난 사건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리스도와 온전한 연합을 이루게 되었음을 선포한다. 그래서 현재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것처럼 자신도 주 안에서 산 자가 되었으며 현재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열매와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드러내기 위함임을 선언한다.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바울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을 무효화 시킬 수 없음을 제시하면서 만일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는 것이 합당한 방법이라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헛된 일이 됨을 선포한다.
이는 결론적으로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이 부당성을 보여주며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복음의 능력과 의미를 더욱 확실하게 증명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묵상
바울은 베드로가 율법주의자들 때문에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는 자를 떠난 태도를 공개적으로 책망하면서 그의 행동이 복음의 변질을 가져오는 것이 되었음을 지적한다.
예수님의 수제자요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자와 같은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책망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유대인들의 가치관에서는 그리 크게 문제될 일도 아니었다.
당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방인들과의 식사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에 어긋난 행동을 바로 잡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면 결국 진리는 왜곡되고 거짓과 분열은 더욱 확대되어 심판의 상황으로 치닫는 모습이 된다.
그래서 바울은 강경하게 책망하고 그들의 잘못된 태도를 바르게 수정할 것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진리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바른 태도에서 나타나는 담대함이다.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이러한 태도는 나타날 수 없다.
그래서 진리를 아는 것과 진리를 따라 고난 받는 일에 익숙한 삶이 필요하며 성도가 이러한 삶을 사는 모습이 될 때 세상을 향한 담대함을 가지고 맞서는 모습을 가지는 것이다.
성도는 진리를 따라 고난받는 일에 익숙한 자가 되어야 한다.
그때 비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에 연합되는 기쁨을 얻게 되며 진리 안에서 얻는 자유를 누리며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냄으로써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은 영적인 아들 디모데를 향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복음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자처하는 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임을 선포한다.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딤후1:7~11)
어제는 서목사님을 통해 툴루즈 교회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툴루즈에는 교회가 하나밖에 없어서 신앙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은 그 교회에 출석하거나 아니면 신앙생활을 포기해야 하다 보니 목사가 전권을 휘두르는 모습이 많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 교회에 출석하는 한인 교인들도 아무런 검증도 없이 목사가 하는 말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모습이 정착되어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된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한 곳에 복음이 선포되고 진리가 드러나자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말을 들으면서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보게 될 모습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오늘날 교회가 진리에 대해 무지하고 복음에 대해 무지한 이유는 책망과 징계에 대한 근거를 상실했기 때문이며 진리를 선포해야 하는 자들이 용기를 잃어버리고 숨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이며 현실에 대한 타협으로 진리를 드러내는 일에 소극적인 태도가 나에게도 너무 많이 드러나는 모습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나님이 복음을 깨닫게 하시고 복음을 따라 살게 하신 이유는 개인의 영적 생활을 위한 것도 있지만 그것을 세상과 교회 가운데 선포하여 진리를 따르는 자들이 생겨나도록 하기 위함이다.
바울은 디도를 향해서 당시 그레데 인들을 책망하고 바로 잡을 것을 권면하며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자들이 되도록 하는 것이 지도자의 사명임을 제시한다.
12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13 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14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1:12~14)
세상을 갈수록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에 무관심하고 반응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리를 전하는 교회는 외면을 받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홍보하는 교회만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진리를 따라 살고자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해 하는 자들도 있지만 그들의 모습도 잘 살펴보면 진리보다 자기 이익을 따라 살고자 하는 모습이 많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세대 속에서 진리를 따라 살기를 힘쓰며 선포하는 것은 고난을 자처하는 일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성도의 사명이며 지도자가 보여주어야 할 모습임을 말씀하신다.
오늘도 주의 말씀에 여전히 부족함과 무지함, 그리고 담대하지 못한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다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게 하시고 담대하게 주의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 주신 사명이며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애쓰는 태도를 가지도록 독려하신다.
주 안에서 담대함을 얻고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따라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 자 되기를 소망하고 지체들도 그러한 삶으로 세워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 앞에 무뎌지고 연약하여 무기력한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그 모습에서 벗어나 다시 힘을 주시고 주 안에서 나아갈 방향을 세워주십니다.
연약함을 핑계하지 않게 하시고 주 안에서 힘을 얻어 담대하게 진리를 선포하게 하옵소서.
진리로 인해 고난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여기는 자 되게 하옵소서.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승리에 함께 동참하는 자 되길 소망합니다.
마음을 붙드시고 주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따라 살아가는 자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의 모든 일정 가운데 함께 해 주시고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으로 하루를 살길 소망하며 은혜와 진리로 생명의 삶을 살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