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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결론 마태복음 7장 (6부)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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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결론 마태복음 7장 (6부)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말 씀: 마태복음 7:24~29
부 르 심:베드로전서 1:23~25
찬 송:144(144),88(88),254(186),494(188)
기 도:
1)권세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되게 하옵소서
2)성령님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어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3)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4)예수한국 복음통일(자유통일), 주사파척결, 성령충만
산상수훈은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올 때 입을 열어 말씀하신 설교입니다.
산상수훈을 예수님의 산상설교라 부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말씀은 예수께서 가르치심이 권세 있는 자와 같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산상수훈의 결론을 짓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제목은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입니다.
1.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태복음7:24)”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고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않은 어리석은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먼저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는 것은 예수님의“씨 뿌리는 비유”에서
길 가에 뿌려진 씨와 같습니다.
예수께서 천국에 관한 말씀을 일곱 가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은 천국에 대한 일곱 가지 비유에 대한 말씀이십니다.
일곱 가지 비유 중의 첫 번째는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네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 중 첫 번째는 씨가 길 가에 떨어진 말씀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나가서 뿌릴쌔 길 가에 떨어졌습니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습니다.
씨를 마음밭에 뿌렸는데 새가 와서 먹어버렸다는 것은
듣기만하고 행하지 않은 어리석은 자의 모습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고 또한 비유에 대한 설명도 해주셨습니다.
길 가에 뿌려진 것은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는 것은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길 가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도무지 말씀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길 가에 뿌려진 씨로 새가 와서
빼앗가는 많은 것들이 이 세상의 유혹들이 많습니다.
이 세상의 인기, 돈 , 쾌락, 술, 섹스 등 무분별함에 노출 되어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하지 못하게 하는 유혹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런 모래 같은 인기, 돈, 쾌락, 술, 섹스 등으로
그 위에 집을 지으면 곧 무너질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경계하여 절제하게 하는 말씀으로
무장되어지는 경건의 훈련이 되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누가복음21ㅣ34~35)”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는 것은 도무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산상수훈의 결론의 말씀으로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이 세상의 환난으로 오는 모든 재앙의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합니까?
거룩한 행실과 경건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반석이 되어
그 위에 천국집을 짓는 자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이 말을 듣고 행하는 지혜로운 사람의 반석 위에 집
-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마태복음16:13~20)
성경에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이기지 못하리라(마16:18)”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반석이 보배이나 믿지 않은 자에게는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반석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반석 위에 지어진 천국의 집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믿지 않은 자에게 부딪히는 돌, 거치는 반석이십니다.
심판을 받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 모래 위에 지은
이 세상의 큰 성 바벨론이 되어 무너짐이 심함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물었습니다.
한 가지는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과
또 한 가지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첫 번째 질문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에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에 하나이라고
대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누구라 대답하는 것은 지금까지 있었던 선지자들의 이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1> 예수님은 세례요한인가?
더러는 예수님을 세례요한이라 하였지만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외치는 자였습니다.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마태복음3:3)”
주의 길이란 예수님의 길입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한복음1:29)”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선지자 중 하나 세례요한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례요한을 말라기서에서 예언한 엘리야 같은 심령을 가진 자였습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 말라기에는 선지자 엘리야를 보낸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라기4:5~6)”
세례요한 선지자는 말라기의 예언서대로 신구약중간사의
400년의 침묵기를 깨고 나온 선지자 엘리야의 마음을 가진 선지자였습니다.
말라기서 4장 5절부터 6절까지의 성취된 기록의 말씀이
바로 마태복음11장 14절 말씀과 누가복음 1장 17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태복음11:14)”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누가복음1:17)”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주신 예언함의 은사는
틀림없이 기록된 말씀으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능력으로 앞서가서
예수님을 누구보다 빠르게 증거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 아닌 세례요한의 증거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요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2> 예수님은 예레미야인가?
사람들이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예레미야라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왕국 말기 회개를 촉구하여 외치던 눈물의 선지자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자손의 70년 바벨론 포로생활과 70년만에 돌아올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의 선지자라 불렀습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엘리야는 불의 선지자였습니다.
유다왕국의 멸망을 보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던
예레미야 선지자의 기록이 예레미야 애가입니다.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예레미야애가1:2)”
예레미야애가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눈물로 가득찬 책입니다.
그러나 절대희망을 가질 것은 바벨론 포로생활 70년 만에 돌아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애가의 결론은 희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항상 돌이키시는 여호와를 바라보며
항상 절대희망을 가지는 믿음이 되어야겠습니다.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같게 하옵소서(애가5:2)”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AD30년 경에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예루살렘이 로마의 침공으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멸함을 당하는 것을 볼때 마음이 상하여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ㅇ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겼도다(누가복음19:41~42)”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 있는 것들은 무너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은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의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옛 예루살렘의 모습을 보지 못하였을지라도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에 들어가
주님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 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21:1~2”
예레미야는 이 땅의 예루살렘이 불에 타는 유다의 멸망의 보았습니다.
그리고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하여
70년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회복을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불에 타서 돌 위에 돌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의 거룩한성 새 예루살렘의 영원함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아닌 영원하신 하나님이시자
또한 교회를 위하여 다시 오실 광명한 새벽별이십니다.
광명한 새벽별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환영하는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22:16)”
3> 예수님은 엘리야인가?
엘리야를 불의 선지자라 부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을 섬기는 거짓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대결을 하였습니다.
각자 신의 이름을 불러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인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이 먼저 단을 쌓고 바알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미친 듯이 떠들어 바알의 이름을 불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습니다.
엘리야가 먼저 무너진 단을 수축하였습니다. 이는 예배의 회복입니다.
엘리야가 여호의 이름을 의지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배가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예배가 되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엘리야가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소리내어 기도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의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하옵소서 하매(열왕기상18:36~37)”
엘리야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에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부르는 것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의 삼위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여호와는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겠습니다.
여호와를 주라 부르고 여호와를 여호와 하나님이라 부르는 것은
예수님이 주님이시오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믿는 반석 위에 지은 집이 되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엘리야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면 엘리야는 여호와가 아닙니다.
엘리야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선지자였습니다.
엘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름으로 불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열왕기상18:38)”
엘리야는 여호와의 이름을 단을 쌓고 부름으로 불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불을 던지러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이 증거하였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나 뒤에 오시는 예수님은 불과 성령으로 셰례를 주시는 이라는 사실입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실 것이요
(마태복음3:11)”
그러므로 엘리야는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불로 응답을 받는
불의 선지자였지 불과 성령으로 베푸시는 예수님은 아닌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반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지하여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1:14)”
3.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린도전서10:4)”
예수님을 성경에서 돌 또는 반석이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서 자유를 찾았습니다.
광야에서 물을 얻는 것은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을 얻는 것입니다.
물의 근원은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입니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루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 흐러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요한계시록22:1~2)”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신령한 물을 주시고 신령한 물로
치료하시는 십자가의 능력이심을 믿음으로
만병이 치료를 받아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어 준행하여 예비하는 자가 되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십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반석이 되시는
영원한 천국이 되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환난이 오기 전에 반석 위에 집을 짓을 짓는 영원한 하늘 처소에 있기 위한
공중들림의 휴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 (마태복음7:24)”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치 않은 자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그 무너짐이 심할 것입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태복음7:27)”
환난 날에 버려둠을 당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천국 집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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