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문재인 ‘소득주도 성장론’은 박근혜 ‘경제민주화’와 뭐가 다른가
-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공약 폐기에 부쳐
오늘(7/16)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지난 14일(토)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의결한 2019년 최저임금 시급 8,350원 안에 대해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으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결과적으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번 문 대통령의 발언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한다”는 대선 공약을 폐기한 것이자,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 정책이라며 내세우던 ‘소득주도 성장론’을 실행할 합당한 정책 수단을 동원할 의지가 없음을 고백한 것이다. 마치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당선 후 슬그머니 없던 일로 했던 박근혜 정부 시절을 보는 듯하다. 청와대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의 결정을 독립적인 결정인 양 책임을 미루는 사과도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
최저임금 1만원은 저임금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인권의 문제다. 노동당이 지금 당장 최저임금 1만원을 외치며, 매년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이 아니라 입법을 통한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해왔던 것은 단순한 이유에서 출발한다. 미혼단신 노동자의 월평균 생계비가 200만원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최소한의 생활임금 시급 1만원, 월 200만원도 안 되는 월급으로는 인간다운 삶을 꿈꿀 수 없다는 매우 절박하고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정부는 그동안 핵심 경제 정책의 총론적 기조로 ‘소득주도 성장’을 제시하며 이를 위한 세 가지 수단으로 1) 최저임금 시급 1만원 등 임금소득 향상 2) 주거비, 의료비, 교통비, 통신비, 교육비 등 생계비 절감 3) 사회안전망 확충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은 그저 말뿐이었다.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서는 가계 가처분 소득의 증대가 필요한바, 이를 위해서는 보유세 인상 등 부자 증세·재벌 증세를 통해 유효수요의 실질적 증가를 불러올 재정지출 확대가 필수적이다. 재정지출 확대는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수준의 노동시간 단축과 이로 인한 가계소득의 하락을 막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필수적이다. 하지만 청와대 재정개혁특위의 권고안은 보수언론마저 반색할 수준의 증세안을 내놓았고, 기획재정부는 다시 이 권고안조차 누더기로 만들어버렸다.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서는 가시적인 재벌개혁을 통해 일부 재벌 대기업에 고여 있는 소득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로 흘러가게 해야 하지만 그런 정책 처방은 전무하다시피하다. 최근에는 정부가 재벌에게 일자리를 구걸하며 이명박근혜 시절 익숙했던 규제 완화 논리에 매몰되는 흐름까지 보이고 있다. 요컨대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정책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고, 이는 대통령이 정부 부처 단위로 책임을 전가할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정책 의지를 성찰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이번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의 폐기는 소득주도 성장에 필요한 종합적 정책 의지 없이 최저임금에만 과도한 정책적, 정치적 과부하를 걸어놓은 정부로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기존의 정책 패러다임으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재벌과 보수언론이 주도하는 검증되지도 않은 최저임금 책임론에 편승해 정부가 그 책임을 모면하려는 것은 안타깝기만 하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의 준수만으로 장기 저성장 국면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노동자와 가계의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식으로는 위기를 더 심화시킬 뿐이라는 것도 자명하다.
사실, 최저임금 공약 폐기에 대한 우려는 지난 5월 말 국회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정기상여금은 물론 식대, 숙박비, 교통비 등 복리후생비까지 전부 포함하는 최악의 내용을 담은 이른바 ‘최저임금법 삭감법’을 통과시키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그대로 공포함으로써 가시화됐었다. 최저임금 삭감법이 왜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켰는지는 편의점 업계의 반발을 보면 답이 나온다. 이번 최저임금위원회의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전후하여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 여론을 주도한 곳이 바로 상여금과 수당이 없는 편의점 업계였다. 이는 역으로 상여금과 수당이 있는 웬만한 업종과 사업장은 지난번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어느 정도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폐기하는 과정에서 계속 남의 탓만 해왔다. 최저임금삭감법을 공포하면서는 국회의 뜻을 존중한다고 했고, 이번에 공식적으로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폐기하면서는 최저임금위원회의 뜻을 존중한다고 했다. 국회와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것은 재벌과 자본과 가진 자들의 뜻을 존중한다는 것이고, 저임금 노동자들의 뜻은 존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노동당은 대통령의 뜻을 존중할 수 없다.
(2018.7.16. 월, 평등 생태 평화를 지향하는 노동당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