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알렉스 로드리게스(텍사스)와 데릭 지터(뉴욕 양키스), 97년 노마 가르시아파라(보스턴)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3대 유격수'란 말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들 이전에도 로빈 욘트, 칼 립켄 주니어, 배리 라킨(신시내티) 등이 있긴 했지만, 공격력이 뛰어난 유격수가 동시에 3명이나 출현했다는 것은 분명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6년 후인 지금, 이제 '3대 유격수'라는 말은 잘 쓰이지 않는다. 지터가 장타력과 수비, 가르시아파라가 건강과 출루율에서 약점을 드러낸 사이, 로드리게스는 유격수 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했으며, 수비도 '일취월장' 오마 비스켈(클리블랜드)을 제치고 골드글러브를 따내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대로라면 로드리게스의 앞에는 역대 최고의 유격수로 꼽히는 호너스 와그너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Pay-rod
2000년 12월12일(이하 한국시간), 로드리게스는 메이저리그의 새 역사를 썼다. 텍사스 레인저스와 10년간 2억5,200만달러에 계약, 야구 뿐만 아니라 미 프로스포츠 사상 역대 최대규모의 계약을 이끌어낸 것이다. 톰 힉스 구단주가 98년 조지 W 부시 현 미국대통령 등으로부터 구단을 사면서 지불했던 돈이 2억5,000만달러였다.
하지만 이 초고액연봉은 오히려 로드리게스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말았다. 뒤이어 매니 라미레스(보스턴)와 지터가 각각 평균 2,000만달러와 1,800만달러의 연봉을 받으면서 절정에 올랐던 '연봉 거품'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사라졌다. 게다가 사치세의 강화로 인해 로드리게스는 상당히 오랫동안 연봉 1위를 고수할 것이 분명해졌다.
로드리게스는 올시즌 홈런(57)과 타점(147)에서 모두 메이저리그 1위에 오르며, 최고타자상인 '애런 상'과 '실버슬러거', 선수 노조 선정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수비 부담이 많은 유격수이면서도 162경기 전경기에 출장했으며, 최고의 수비수에게 주는 골드글러브도 차지했다.
그러나 여전히 10개 구단의 총연봉이 로드리게스의 평균 연봉의 2배를 넘지 않고 있으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미네소타 트윈스는 단 4,000만달러 전후의 총연봉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아무리 좋은 성적을 올리더라도 '연봉 대비 성적'으로 환산하면 그는 결코 '가치있는 선수'가 될 수 없다.
알렉산더 엠마뉴엘 로드리게스는 1975년 7월28일 뉴욕에서 도미니카 이주민 가정의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고생을 전혀 모르고 자랐을 것 같은 외모지만 어린시절은 매우 고단했다. 도미니카 프로리그에서 포수로 활약하기도 했던 아버지에게는 경제적인 능력이 전혀 없었다. 로드리게스의 가족은 그가 4살때 도미니카로 역이민을 갔다가 8살때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마이애미에 정착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얼마 후 가족들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어린 시절의 고생 때문인지 로드리게스는 지금도 아이들을 위한 자선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그는 올해 보이스클럽과 걸스클럽의 명예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학창시절 로드리게스는 야구와 농구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마이클 조던과 칼 립켄 주니어가 그의 우상이었으며, 메이저리그팀으로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뉴욕 메츠를 좋아했다. 로드리게스는 1년 선배인 덕 민트키비치(미네소타)와 함께 웨스트민스터고등학교를 고교랭킹 1위로 이끌었다.
졸업반이었던 1993년 드래프트에서 로드리게스는 '골든스파이크상' 수상자인 대런 드라이포트(LA 다저스)를 제치고 전체 1순위로 시애틀 매리너스에 지명됐다. 로드리게스는 마이애미대학 진학과 프로 입단을 놓고 고심한 끝에 프로행을 선택했다.
로드리게스는 이듬해인 1994년 6월9일 메이저리그에 데뷔함으로써 역대 3번째 '18세 유격수'가 됐다. 하지만 2년간은 빅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르락내리락했다.
풀타임 첫 시즌인 1996년, 로드리게스는 .358의 타율로 아메리칸리그 타격왕을 차지했다. 1944년 루 부드로 이후 52년만의 유격수 타격왕이었다. 로드리게스는 그 외에도 안타, 장타율, 총루타에서 유격수 신기록을 세우고 2루타와 득점에서 리그 1위에 올랐지만, MVP 투표에서 포스트시즌 진출팀인 텍사스의 후안 곤살레스에 단 3점이 뒤져 2위에 머물렀다. 2년간 196타수를 기록, 신인 자격을 상실한 탓에 신인왕도 지터에게 내줬다.
1997년 타율 .300 23홈런 84타점으로 잠시 주춤(?)했던 로드리게스는 이듬해인 98년, 타율 .310 124타점에 42홈런과 46도루를 기록, 호세 칸세코,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에 이어 역대 3번째이자 유격수 최초로 40홈런-4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42홈런은 또한 아메리칸리그의 유격수 홈런신기록이었다.
99년 로드리게스는 왼쪽 무릎 부상으로 32경기를 결장했다. 비록 처음으로 3할 달성에 실패했지만(.285), 전년도와 같은 42홈런을 날림으로써 한층 발전된 파워를 선보였다.
시애틀 당시 로드리게스는 주로 2번타자로 출장해 3번 켄 그리피 주니어(현 신시내티)에게 많은 '2점홈런'을 선물했다. 상대투수들은 로드리게스가 출루하면 그의 빠른 발을 견제하기 위해 그리피에게 직구위주의 피칭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팀의 핵심타자가 된 요즘에는 도루를 아끼는 대신 센스있는 주루플레이로 이를 만회하고 있다.
2000년 로드리게스는 신시내티로 떠난 그리피 대신 3번타자로 출장하면서 타율 .316 41홈런 132타점을 기록,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특히 처음으로 볼넷 100개를 돌파하며 유일한 단점으로 지적됐던 선구안에서 많은 향상을 보였다. 하지만 로드리게스와 시애틀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돈과 함께 시애틀의 새 구장인 세이프코필드도 걸림돌이었다. 세이프코필드는 외야와 파울지역이 넓은 투수지향형의 구장으로 그리피와 로드리게스는 모두 시애틀을 떠나기에 앞서 '펜스를 앞으로 당겨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반면 텍사스의 알링턴파크는 소문난 '타자들의 구장'. 실제로 지난 2년간 로드리게스는 홈에서 타율 .341 60홈런 147타점, 원정에서 타율 .276 49홈런 130타점을 기록했다.
텍사스에서의 첫 시즌이었던 2001년, 로드리게스는 텍사스 역사상 전경기에 출장한 5번째 선수가 됐다. 알링턴파크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무더운 구장이며 그의 포지션은 유격수다. 타율 .318 52홈런 135타점. 52홈런은 43년만의 메이저리그 유격수 최다홈런기록임과 동시에 텍사스의 새 홈런기록이었다. 또한 로드리게스는 41년만이자 역대 4번째로 '유격수 홈런왕'에 올랐다. 그러나 로드리게스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텍사스는 지구 꼴찌에 그쳤다.
올해도 역시 로드리게스는 전경기에 출장하며 홈런과 타점에서 메이저리그 1위에 올랐다. 그러나 팀은 또 꼴찌에 머물렀고, MVP 투표에서는 미겔 테하다(오클랜드)에게 100점 이상 뒤지는 수모를 당했다.
로드리게스는 항상 진지한 태도로 경기에 임하며 언제나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빈볼을 맞아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는 그는 팀의 패배를 가장 마음아파하는 선수다. 이제 남은 것은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2000년의 계약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