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징후
며칠 전 입춘이 지난 이월 첫 토요일이었다. 지난 주말 밀양 지인의 텃밭을 방문해 가져온 뿌리채소를 다듬었다. 지인이 가꾼 우엉과 돼지감자를 제법 캐 왔더랬다. 우엉은 뿌리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여러 차례 헹구어 씻었다. 돼지감자도 마찬가지였다. 우엉뿌리는 얇게 썰어 베란다에 내 놓았다. 말린 뒤 덖어서 우엉차로 끓여 먹을 요량이다. 돼지감자는 믹서에 갈라 그냥 마실 셈이다.
내친 김에 북면 지인 텃밭 농막에서 걷어온 시래기를 몇 줌 삶았다. 바싹 마른 시래기가 끓는 물에 들어가니 많이 불어났다. 헹군 시래기는 다시 물에 담가 불려두었다. 포기가 작았지만 밀양 지인이 챙겨준 파릇한 배추도 데쳐 두었다. 삶은 시래기와 데친 배추는 한동안 된장국을 끓이는 재료가 될 것이다. 겨울 식탁에서 시래기나 배추로 끓인 된장국 이상 토속 음식은 드물 것이다.
점심나절이 가까워질 무렵 산책을 나섰다. 동정동에서 옛 경남여상 교정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의창주민자치센터와 체육시설이 들어섰다. 남해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구룡사로 갔다. 구룡사는 통도사 창원포교당으로 신심 깊은 불자들이 더러 찾는 곳이다. 절 경내로 들어서면서 잠시 두 손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 범종루 곁에서 서성이며 볕을 쬐었다.
대웅전 동편 언덕에는 대리석으로 조각된 작은 불상이 있었다. 불상 뒤는 산수유나무가 한 그루와 대숲이었다. 볕 바른 자리 산수유나무는 꽃망울이 몽글몽글 부풀어갔다. 다른 곳보다 산수유 꽃이 일찍 피어나지 싶었다. 아마 한 달쯤 있으면 화사한 꽃으로 피어나지 싶었다. 노란 산수유 꽃은 한꺼번에 피지 않고 순차적으로 피기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질 때까지 보름정도 시차가 있다.
구룡사 경내를 벗어나 새로 뚫린 길 따라 굴현고개로 올랐다. 산비탈 계단식 텃밭엔 겨울을 난 농작물들이 파릇했다. 비닐을 덮어씌워 마늘을 키웠다. 상추는 겨울을 나면서 잎이 얼어 시든 채 봄을 기다렸다. 작년 가을 싹이 튼 완두콩은 넌출이 나갈 정도 웃자라고 있었다. 텃밭 가장자리엔 잡초에 지나지 않은 큰개불알꽃이 피어났다. 큰개불알꽃은 연한 보라색으로 꽃잎이 자잘했다.
굴현고개에서 천주산 누리길로 올랐다. 볕바른 언덕엔 자주색 광대나물꽃이 무더기로 피어났다. 묵은 텃밭에 절로 자란 유채들이 파릇했다. 그 가운데 한 포기 유채에선 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삭은 가랑잎을 밟으며 천주산 누리길 들머리를 걸었다. 천주산 누리길은 3·15국립묘지 뒤편까지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 아주 긴 코스였다. 경사 급한 산비탈을 따라 수평으로 난 등산로였다.
나는 천태샘 약수터 아래서 천주암으로 내려섰다. 천주암에 이르자 은은한 찬불가가 울려 퍼졌다. 범종각 계단을 내려서 샘물을 한 바가지 떠 마셨다. 절간을 나와 소계동으로 향하는 솔숲을 걸었다. 솔숲이 끝난 텃밭에는 매실나무가 몇 그루 보였다. 가지마다 매화망울이 도톰해져갔다. 아까 구룡사 경내에서 본 산수유 꽃망울보다 더 몽글몽글했다. 곧 꽃잎을 펼쳐 보일 기세였다.
관음사를 지나 갓골로 내려섰다. 갓골은 남해고속도로와 철로 사이에 있는 동정동의 작은 마을이었다. 고속도로와 철로 사이 샌드위치처럼 낀 마을이었다. 예전 남자가 한복 의관을 갖추어 입을 때 머리의 상투 위 말총으로 만들어 썼던 모자가 갓이었다. 그처럼 마을 형상이 좁다랗고 통발 같아 보였기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라 유추해 보았다. 지명에는 그럴 듯한 유래가 있는 법이다.
갓골에서 소답 장터로 갔다. 2일과 7일은 소답 장날이었다. 장터 골목을 빙글 둘러보았다. 다가오는 설에 쓰일 제수용 생선이 많이 보였다. 과일이나 여러 채소들도 넘쳐났다. 나는 시장을 둘러 본 뒤 제철 바닷말인 톳을 샀다. 브로콜리도 두 개 샀다. 어디선가 캔 쑥을 팔러 나온 할머니들도 있었다. 봄이 오는 징후는 여럿이었다. 볕바른 자리에서 땅을 비집고 돋아난 여린 쑥에서도…. 15.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