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문 열기
이화은
말끔한 회색 양복 중절모자가 문 앞에서
push push push
연달아 누른다
힘주어 눌러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홀 안의 사람들이 딱하다는 듯 모두 쳐다본다
push push push
손길이 더 빨라진다
그러나 이미 열린 문은 두 번 열리지 않는다
투명 탓이다
거기 투명 문이 있다고 믿은 탓이다
회색 양복 중절모자가 슬퍼 보인다
일 년에 800만 마리의 야생 새떼가
투명 유리 빌딩에 부딪혀 죽는다고 한다
거기 투명이 없다고 믿은 탓이다
투명은 어떤 기척이나 힌트도 없이 다만 투명할 뿐
사람들은 투명을 의심하지 않는다
투명을 투명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회색 양복 중절모자가 보이지 않는다
슬픔은 사람을 희석한다
슬픔에 슬픔이 덧칠해져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투명해졌을 것이다
열린 문이 더욱 슬퍼 보인다
회색 양복 중절모자가 어디선가
push push push
슬픔을 누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첫댓글 회색 중절 모자
비둘기 녀석 너무 어리석고 불쌍하더라고요 ㅎㅎ
밀기만하면 되는 줄 알고 ㅎㅎ
선생님 시 이쪽으로 옮겼어요 좋은 시는 좋은시방에 올려주세요^^
아 네 몰랐어요 ㅎ
'투명은 어떤 기척도 힌트도 없이 다만 투명할 뿐
사람들은 투명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 문장을 갖고
유리창을 의심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