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소설집, 한겨레출판
김초엽의 sf 단편소설집.
참 친절한 작가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그녀는 타자와 주체의 만남을 sf장르에서 중심 테마로 삼는다.
과거인류와 미래인류의 만남, 인간과 기계, 인간과 다른 체계의 생명 등.
페미니즘적 소설쓰기의 방식이기도 하다.
21년 출간된 김초엽의 단편집 <방금 떠나온 세계>는 총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주제는 ‘작가의 말’에 나와 있듯 타자와의 소통과 이해에 초점이 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다르게 보고 듣고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말로 각자 다른 인지적 세계를 살고 있다. 그 다른 세계들이 어떻게 잠시나마 겹칠 수 있을까, 그 세계 사이에 어떻게 접촉면-혹은 선이나 점, 공유되는 공간-이 생겨 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지난 몇 년간 소설을 쓰며 내가 고심해온 주제였다. 그 세계들은 결코 완전히 포개어질 수 없고 공유될 수도 없다. 우리는 광막한 우주 속을 영원토록 홀로 떠돈다.
하지만 안녕, 하고 여기서 손을 흔들 때 저쪽에서 안녕, 인사가 되돌아오는 몇 안 되는 순간들. 그럼으로써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되돌아보게 하고 때로는 살아가게 하는 교차점들.
그 짧은 접촉의 순간들을 그려내는 일이, 나에게는 그토록 중요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친절한 안내문이다. 또한 이런 작가적 관심이 곧 현대 페미니즘 SF의 주된 관심임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전통적 서사 장르는 주체와 타자의 대결구도로 설정되고 타자를 극복하는 주체 확립이라는 결말을 지향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헤겔의 변증법이나 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은 물론 진화론도 이와 같은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했던 신화나 민담은 물론 동화와 소설도 그랬다. 당연히 SF도 그랬다. 하지만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전통적 서사담론은 가부장제 남성의 세계관으로 단정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타자의 말과 소통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초엽의 소설은 전형적 사례가 된다.
하지만 그것을 떠나서 사유실험으로써 소설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김초엽 작가의 소설이라는 생각도 든다. 애초 작가의 소설 속 주체들은 타자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아마도 김초엽 작가의 페르소나들이 갖는 공통점일 것이다. 상상과 과학이 결합해 제공하는 우주공간은 지구라는 제한에서 벗어나 작가의 자유를 보장하는 시공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초엽 작가의 소설을 읽는 일은 타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과 소통의 학습 같은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주체와 타자의 대결에 의해 거듭나는 주체가 아니라 타자의식을 가진 주체와 타자의 소통 과정을 추체험하면서 새로운 세계의 발견과 타자주체의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차례 =
최후의 라이오니
마리의 춤
로라
숨그림자
오래된 협약
인지 공간
캐빈 방정식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