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6: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내 입에 대며 - '단'은 제단이니 곧 하늘에 있는 향단을 가리킨다. 계시록에 의하면, 하늘 향단은 금으로 만들어졌다. '핀 숯'은 불타는 숯 혹은 뜨거운 돌을 뜻한다. 천상에서 거행된 죄사함의 성례는 스랍 중 하나가 단으로 날아가 그곳에서 정금으로 만든 화저를 가지고 핀 숯을 취하여 선지자에게로 날아가 그가 부정하다고 탄식한 입술을 거기에 댐으로써 이루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상징적인 행동은 다만 선지자에게 그의 죄가 사해졌음을 확신시키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결코 '핀 숯' 자체가 정화의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보라...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 스랍들의 말로 앞절의 신비한 행동의 의미가 밝혀진다.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다'는
평행법은 선지자에게 사죄의 확신을 더욱 강력하게 전달해 주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본문에서 선지자가 받은 사죄 의식에는 피흘림의 제사가 결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는 장차 그리스도의 온전한 속죄 행위로 인하여 그 같은 제사가 불필요하게 될 날이 올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 사 6:8]"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의 거룩과 그 영광을 뵈었던 선지자는 이제 사죄함을 받은 이후에 영적인 귀로써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러나 그 음성은 직접적으로 선지자를 향해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 선지자는 하늘의 어전 회의에서 그곳에 참여한 자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것은 헌신의 열정에 의해 자원하여 일하러 갈 사람을 구하는 음성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는 천상의 존재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하나님과의 밀접한 연관으로 인하여 '엘로힘'이라고까지 불리웠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 입술이 정결케 됨으로써 죄에서 자유함을 입은 선지자는 여호와의 음성을 듣자마자
그 가슴의 뜨거움만큼이나 불타는 정열로 이렇게 소리친다:'나를 보십시오. 나를 보내십시오.' '나를 보내십시오'(히네니)란 말은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이다. 따라서 '나는 준비되어 있습니다'와 같은 말이다. 죄씻음을 받은 감격이 헌신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경우로는 시 51:12-15에 언급되어 있다.
[사 6:9]"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 하나님의 명령은 '가서-말하라'는 두 개의 동사로 집약된다. '이 백성'이란 말씀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와 경멸이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두려움을 상실하고 그 행위로 하나님을 배반한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는 못할 것이요 -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선지자가 백성에게 선포해야 할 메시지의 내용이라기보다는 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백성들은 '깨닫지 못할 것이며', '알지도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무감각은 예레미야가 말한 바 '마음이 강퍅하고 목이 곧은' 백성들의 상태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 말씀은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 자신에 의해 그의 사역의 결과를 묘사한 말로 4복음서에서 인용되었으며 바울에 의해서 두번 인용되었다.
[사 6:10]"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 앞절의 명령이 백성들에게 내려진 것이라면, 본문의 명령은 선지자에게 주어진 것이다. '깨닫지 못하며 알지도 못하리라'로 단언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지 못지않게 선지자 역시 자신의 사역이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를 미리 알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삼중의 명령으로 나타났다. (1)'둔하게 하라':이는 '살지게 하라', '기름으로 덮이게 하라'는 뜻이니,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에 대해 마음으로 전혀 지각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2)'막히게 하라':이는 '무디게 하라'는 뜻이니, 청력이 무디어져서 어떤 깨달음도 갖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3)'감기게 하라':이는 '흐려지게 하라'는 뜻이니,
시력과 함께 모든 통찰력을 상실하게 하라는 것이다. 선지자의 사역으로 인해 오히려 백성들의 마음이 둔해지고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된다는 말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선지자가 선포해야 할 말씀 그 자체에서 이 같은 결과가 직접적으로 초래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어둡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발의 등처럼, 길의 빛처럼'사람을 밝은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해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일은 전적으로 죄인의 부패한 본성에서 연유하는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이 비밀을 이렇게 묘사한다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칼빈이 잘 말한 것처럼, 눈이 어두운 사람이 빛을 볼 수 없다 하여 원망할 수 없는 일이며, 귀가 막힌 사람이 맑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하여 불평할 수 없는 일이며,
지각이 둔한 사람이 자기가 이해 못하는 문제의 어려움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심판의 제1차적인 원인은 늘 죄인에게 있다. 그위에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말미암는 버려둠의 심판이 임하는 것이다.
[사 6:11]"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되며..."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치 아니하는 백성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고 마침내는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가 하나님의 궁극적인 의도일 수 없다는 것을 선지자는 알고 있다. 그래서 묻는다:"주여, 이 백성들의 눈먼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 되겠습니까?"
이 같은 물음의 배후에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 즉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완전히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들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지 아니하신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대답하시되...많을 때까지니라 - 선지자의 물음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백성들의 완악함이 너무 깊어서 완전한 파멸을 목도하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아니할 것이라는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백성들의 완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참으로 엄위한 것이어서 그것은 온 나라가 황폐되고 백성들은 이방 민족에게 포로로 잡혀가는 전국가적인 재난으로 실현되어지리라는 사실이다.
[사 6:12]"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치 아니하는 백성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고 마침내는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가 하나님의 궁극적인 의도일 수 없다는 것을 선지자는 알고 있다.
그래서 묻는다:"주여, 이 백성들의 눈먼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 되겠습니까?". 이 같은 물음의 배후에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 즉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완전히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들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지 아니하신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대답하시되...많을 때까지니라 - 선지자의 물음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백성들의 완악함이 너무 깊어서 완전한 파멸을 목도하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아니할 것이라는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백성들의 완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참으로 엄위한 것이어서 그것은 온 나라가 황폐되고 백성들은 이방 민족에게 포로로 잡혀가는 전국가적인 재난으로 실현되어지리라는 사실이다.
[사 6:13]"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 본문은 내용상 앞절에서 말한 하나님의 심판을 확증하는 것에 불과하다. 설혹 심판에서 살아 남은 자가 있다 할지라도 - 1/10은 극히 적은 수를 가리킨다 - 그마저 계속되는 파멸의 와류에 삼키우고 말 것이다. 이것은 완전한 절망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궁극적인 마침이 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절망에서 솟아오르는 하나님의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베임을 당한 나무의 표상에서 이러한 사상이 암시되고 있다.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남아 있는 것같이 - 밤나무와 상수리나무는 상록수에 가까우며 완전히 베임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돋는 강인한 속성 때문에 이스라엘의 상징으로서 선택된 듯하다.
'그루터기'라고 번역된 '마체베트'는 '뿌리', '줄기', '기둥'을 뜻하는 말로서, 원초적인 생명력을 담지하고 있는 부분을 가리킨다.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 최후까지 보존되어질 이 그루터기는 '거룩한 씨'이다. '거룩한 씨'는 '행악의 종자'와 대조되는 것으로서,
거듭되는 심판을 겪고서도 끝까지 살아 남을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성장을 거듭하여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어'거대한 나무를 이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