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43]나의 졸문을 책으로 엮겠다고?
# 아주 모처럼, 전전전 직장 여자후배와 인사동 단골집에서 점심을 했다. 언젠가 글에도 썼지만, 전화를 하면 대뜸 “선배”라는 호칭을 먼저 들고 나오는 반가운 친구이다(제주 비바리, 14년 아래). 아무 일없어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지만, 오늘의 만남은 약간 비즈니스 성격을 띠었다.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듯하다. 최근 자신의 언니부부가 제주살이 한 달을 하면서 쓴 일기들을 아담하게 책으로 엮어 시판에 들어갔는데 반응이 있다며 좋아했다. 좋은 일이어서 맘껏 축하해줬다. ‘비즈니스성 만남’이라 한 것은, 이 친구가 다음 펴낼 책으로 생각지도 않게 나의 졸문들을 찍었다는 것이다.
전화로 얘기를 꺼내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난 10여년간 우리 고교동창 블로그에 올린 나의 글들을 거의 읽었고, 그중에서 책읽기와 관련된 글들만 모아 분류를 해놓았다는 것이다. 일단 컨셉은 좋았다. ‘어느 생활글 작가의 독서에세이 00선’. ‘독서에세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일반적인 독후감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식 서평書評(북 리뷰)도 아닌 어정쩡한 글 70여편을 모아 어떻게 책을 낼 것인지, 그게 가치가 있을지 나부터 궁금해 만나자고 한 것이다. 큰 제목을 <Lego ergo sum>(라틴어로 '나는읽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다)이라고 하면 어떻게냐니까 너무 어려워 곤란하다고 한다.
언제나 호칭이 “선배”여서 좋았는데 “선배의 글을 묶어 책으로 내야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다는 것이다. 옳거니, 이제야 이름없는 편집자가 나의 글을 알아주는구나 싶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친한 후배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컨셉에서부터 진행과정 등을 물어보고, 몇 가지 자문도 해줄 생각으로 만난 것이다. 그 친구가 미혼일 때 만났고, 직장 동료이다보니 신랑도 잘 아는 관계여서 말도 편히 하는 사이이다. 더구나 제주시내에서 친정 부모님이 오랫동안 여관(호텔)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우리 부부가 이용까지 했으니. 키도 늘씬한 편이고 미모도 받혀주는데, 어느새 50대 중반을 향하고 있으니 세월 한번 빠르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나름 해보겠다는데, 책을 펴내고 적자를 보지 않아야 하므로, 일체의 저작권을 일임하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날처럼 책이나 글을 읽지 않는 세상에, 나같이 이름없는 생활글 작가의 독서에세이가 무슨 영양가가 있을까, 우려 섞인 얘기를 건넸다. 허나, 한번 해보겠다는 ‘용기’가 가상해 출판업계의 동향 등 훈수를 조금 해주며 어깨를 두들겨줬다. God bless you!
# 습관처럼 전통찻집에서 민속차 한 잔을 마신 후 데려간 곳이 인근에 있는 전각예술인의 공방(갤러리). 주인도 없는데 친구라는 미명으로 문을 따고 들어가, 그가 최근에 제작해 벽에 걸어놓은 야심작을 가리키며 해설에 나섰다. 이름하야 ‘칠선사유상七線思惟像’. 가로세로 29cm 두께 1cm의 검은 벼루돌판에 예리한 돌칼로 일곱 번 그은 선. 여섯 번도 아니고 여덟 번도 아니고, 딱 일곱 번이다. 저절로 선이 몇 개인지 세어보게 만든다. 그 선으로 만들어진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얼굴이 은은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감상을 해보자. “들여다보면 (우리로 하여금 뭔가를) 생각하게 만들고/더 들여다보면 저절로 (우리의) 생각을 멈추게 해주는, 돌과 칼의 합작으로 빚은 놀라운 마력이 아니고 무엇일 것인가? 정작 작품보다 더 해설이 빛을 발하는 것일까? 하하.
초록별(지구)에서 최고의 미소로 불린다는 ‘모나리자의 미소’가 어찌 일곱 번의 칼질로 묻어나오는 이 ‘백제의 미소’를 능가할 것인가? 나는 단연코 ‘노 땡큐’라고 말하고 싶다. 미소微笑는 본래 이렇게 은은해야 하는 것이거늘. 이것이 미소의 제 맛인 것을, 이 작가는 도대체 어떻게 캐치를 했을까?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까? 새삼 감탄스럽다는 나의 말에 이 친구는 ‘그런가?’ 고개를 연신 갸우뚱하며, 그은(새긴) 선線 속의 금빛이 진짜 금金이냐고 묻는다. 실제 금은 아니고 금빛이 나는 천연안료라고 들은 풍월로 대답을 했지만, 실제 금으로 하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에게 건의를 해봐야겠다. ‘황금칠선사유상(?)’이게 예술이 아니면 어느 것이 예술일까? 멋지다. 21세기에 정사각형 돌판에 칼 일곱 번 휘둘러 새겨 ‘백제의 미소’를 복원하다니, 놀라운 솜씨일진저! 그래서 돌에 온 마음을 다해 새겨 꽃을 피웠다해 ‘심각心刻’이라는 조어를 만들었을 듯하다. 나무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