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물결 위에 앉아 고대갈매기는 한결같이 무심하다 이따금 울음소리로 풍경으로 돌아올 뿐
모래를 살짝 들어올리며 포말이 다시 밀려온다
발끝에 계절이 묻는다
얼굴들, 장소들 / 노국희
옷장 문을 연다 집 나간 엄마가 숨어 있을 리 없는데
내일도 안 오면 공생원으로 간다 군고구마 껍질에 산각 그늘진 건물이 서린다 열린 창문으로 엿보면 아이들은 어른의 얼굴을 하고 미카엘 안젤라 아녜스 다른 세계의 이름으로 불렸다 나도 그런 이름이 있는데 그늘을 공유하는 얼굴들 사이로 수녀의 검은 옷자락이 스친다
엄마 치마를 쥐고 있었는데 보자기였다 네모난 저수지로 출렁인다
고무판에 엄마 얼굴을 새겨 보세요 물결 무늬를 채워 간다 조각칼로 마음을 도려낸다 가장 약한 곳을 파고드는 칼날이 있다 도르르 말려 나온 찌꺼기를 한데 모아 마음을 버렸다
잉크빛 굳어가는 어긋난 감정을 덧칠한다
박공지붕 구조물 앞에 엎드려 있다 볕을 쬐는 것인지 잠깐을 방치하는 것인지 집을 나가려는 것인지 돌아왔는데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이 모든 것과는 무관하게
타조는 모래에 고개를 파묻고 있다
친구가 되고 싶다 종횡무진 달려가 머리를 처박는다
얼룩이 스미는 얼굴들
한집에 있지만 같이 살지 않는다
자다 깨면 옷장은 문득 사람처럼 서 있다 검은 심장 문을 열고
켜켜이 걸린 시간 아래 그늘의 무게를 더한다
심장 소리가 어둠을 천공한다
한밤의 메리고라운드 / 노국희
조명 꺼진 불안의 잔상이 움직인다
면접을 다니던 꿈속에서 이번엔 대기실 쓰레기통으로 분했다
비정규직 PC에는 오류가 잦고 내가 버그인가 화면을 투사하다 계약 종료. 막이 덮인다
사람을 사람이 죽이는 이야기에는 이른바 암투와 결탁이 난무했다
현대판 비극은 한 인물로 가능하다 그것은 홀로 추는 춤
한밤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세계는 어제의 폭력을 가동한다 가장 낮은 음역의 신음을 깔고
비정을 수송한다 자리는 시체에 허용한다
심장을 쥐었다 놓는 손이 있다 악력에서 영점 에너지가 발생한다면 감춰둔 빛이 폭발한다면 추루한 틈까지 뻗어 간다면
암흑이 목격하고 삼켜버린 떠돌이별 무한궤도를 비춘다
방진 마스크 틈새로 어린 신의 입김이 번진다
무빙 이미지/노국희
사람들은 대체로 먼 거리를 날아왔다
눈앞에 보이는 다리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 묻는다
다리가 만드는 풍경은 엽서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즐거운지
사람들은 시선을 쌓아간다
지난밤 폭풍이 만들고 잊은 물웅덩이를 두 사람이 내려다본다
카메라에 포착하고 여러 각도에서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주요 단어를 찾아낸 사립 탐정들처럼 오래 서성이는 실루엣은 풍경이 된다
두 사람을 이어 멀리 배경으로 놓은 다리의 휴먼 버전을 만들어본다
아름다운 현장이었다 다리의 아침만큼
위험 수목 / 노국희 *2016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물음으로 짜인 나무 그늘에 앉아있어 긴 오후가 지나가도록
지금 나뭇잎 한 장이 세상의 전부인 왕개미 옆에서
나의 주인이 되어주세요 헤프게 구걸도 해보았다
당신의 삶을 훔치는 것으로 도벽을 완성하고 싶었어
알록달록 실패들을 엮어 만든 바구니를 들고 저기서 당신이 걸어온다
마른 생선 하나를 내어주고는 가던 길을 간다
비릿한 기억이 손 안에서 파닥거린다 목이 없는 생선이 마지막에 삼킨 말들이 마른 비늘로 바스러진다
낡은 허물 위로 매미소리가 내려온다 울어본 기억만 있고 소리를 잃은 말들이
그림자 속에서 가지를 뻗는다
(이창하 시인 분석) https://naver.me/5wAbXbbh 그림과는 달리 시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추상적이어서, 폴 발레리(Paul Valéry)의 말처럼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미 해독을 위해서 많은 생각에 잠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번 시를 읽어보면서 왜 ‘위험 수목’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왜냐하면 시의 내용을 확인하는 첫 단추는 단연 시제(詩題)에 힌트가 있기 때문이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서 하도록 하고 우선, 시의 내용을 살펴보자.
‘물음’은 의문에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물음은 ‘왜’라는 의미와 같다. 오랫동안 왜 그렇게 되었지,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이야기의 출발이다. 왕개미에게 나뭇잎 한 장이 세상 전부였던 것처럼 당신만이 내 곁에 있어 준다면 된다고 여겼고 사랑을 구걸해서라도 당신의 마음을 훔칠 수 있다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당신에 대한 사랑의 욕구가 절실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당신은 예쁜 실로 엮은 바구니를 들고 오면서 /마른 생선 하나를 내어주고는 /가던 길을 간다/에서 보듯 연인은 화려한 모습에 비해, 건조한 인사만 하고 쓱 지나쳐버린다는 의미로, 서정적 자아는 그것이 서럽다는 것이다. 비록 비릿한 생선 내가 풍기듯 어색했지만, 내게 적극적이었던 예전에 비해 지금은 머리 없는 생선(사랑에 대한 생각)처럼 예전에 내게 속삭여 주었던 말들은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바스러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매미가 허물을 벗어 버리고 떠나간 자리엔 예전에 예찬했던 기억은 있지만, 지금은 떠나버린 매미의 사랑 노래는 들을 수가 없다는 것 같다는 말이리라. 생선을 등장시킨 것은 다소 비약적이기는 하다. 파닥거리는 생선과 마른 생선으로 대비는 과거는 어눌했지만 역동적이었던 사랑에 비해 현재의 단절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메타포(metaphor)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래도 좀…, 어쨌든 그것은 마치 실체는 사라지고 나무 그림자 속에서만 존재하는 매미 허물 같다(실패한 사랑)는 것이다.
실연의 상처 혹은 짝사랑은 결말이 매우 심쿵하다. 심약한 사람이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쯤 생각해보면 왜 시제를 ‘위험 수목’으로 한 것인지 감 잡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실연의 상처를 매미 허물에 비유하면서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매미 허물처럼 실연(失戀)의 허무를 ‘위험 수목’으로 연결한 것이 시인의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통속적인 사랑의 감정을 이렇게 장엄하면서도 메타포가 깊은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시인에게 찬사를 보낸다. 특히, /낡은 허물 위로 매미 소리가 내려온다 / 울어본 기억만 있고 / 소리를 잃은 말들이 /그림자 속에서 가지를 뻗는다/라는 표현을 “아!”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아름답고 예쁜 언어가 있었다니…, 이렇게 본다면 이번 시는 상징성이나 언어의 선택 그리고 표현 면에서 완벽한 시라고 생각해 보았다.
노국희씨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복수전공으로는 건축을 공부했다. 전형적인 이과생인 그가 시인이 될 줄 자신을 포함한 주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늘 물질세계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릴 때 특별히 책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읽더라도 문학 쪽이랑은 거리가 멀었죠.”
건축설계사무실에서 일하다가 건축잡지 기자로 전직한 노씨는 거기서 처음 글쓰기의 재미를 알았다. 그 관심이 문학으로 옮겨간 것은 서른 무렵 건강 문제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구직자로 있을 때다.
“일이 없으니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책을 엄청나게 읽었는데 그때 시도 처음 접했어요. 내가 가진 생각을 누군가 먼저 언어로 표현해놓은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어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계를 발견한 것 같았죠.”
그때까지도 독자일 뿐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일 같았단다. 그러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시 쓰는 사람들과 친분이 생기면서 점차 ‘나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에 대한 마음은 점점 진지해져 올 가을 1인 출판사를 차리기에 이르렀다. 문학이 취미에서 직업으로 바뀐 것이다. 그 와중에 당선은 큰 선물이었다. 시에 빠진 뒤에도 ‘왜 시를 쓰는가’란 질문에 답하지 못한 노씨에게 어느 정도 답을 주는 것만 같았다.
“언제부턴가 시 쓰는 게 힘들더라고요. 표현에 대한 부담이 너무 심해서 중단한 적도 있어요.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어차피 오래 쓸 테니 마음 편하게 먹자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래서 당선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웃음)”
그가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내놓고 싶은 것은 시나 소설이란 말로 규정되지 않는 새로운 글이다. 본인을 포함해 실험적인 글쓰기를 시도하는 다른 작가들의 책도 기획 중이다.
“지금까지는 시가 내 이야기를 가장 편안하게 풀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을 계속 찾아갈 거예요. 장르에 매이지 않고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하면서 글이 어떻게 바뀌는지 스스로 지켜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