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저의 부정성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로 인해 생기는 판단하는 마음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덮어주옵소서.
정결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오늘도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실 때 진리를 보고 기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본문 주해)
11~14절 : 바울은 예루살렘 사도회의 이후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을 회상한다. 그것은 바울이 유대인 사도인 베드로(게바)가 안디옥교회에 있을 때 그를 책망한 일이다.
책망의 이유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가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이 그들의 식사 자리에 오자 그들을 두려워하여 식사를 하지 않았던 것처럼 외식하며 자리에서 떠난 것이다.
베드로가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을 의식한 것은 그들 역시 이방인의 할례에 대해서는 거짓 교사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정결 규례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식탁교제는 엄격히 금지되었다. 이에 베드로는 그들을 의식하여 식사 자리에서 물러간 것이다. 그러자 다른 유대인들도 베드로를 따라 외식하였고, 심지어 바나바까지도 그들과 함께 휩쓸려서 가식적인 행동을 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율법적인 규례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형제들을 외모로 차별한 베드로,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않는 베드로를 책망한 것이다.
베드로의 이중적인 행동은,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다시 유대교로 개종시키려는 것과 같다고 바울은 책망한 것이다.
15~18절 :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는 길이 율법을 지키는 데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 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려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가 없다.
사람들이 죄인으로 드러나는 것은 그리스도가 죄를 조장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분만이 죄인들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죄인과 의인의 차이는 율법을 지키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율법을 철저히 지켰던 바울은 그것이 자신을 의인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경험하였다. 이제 와서 그가 헐었던 것(율법)을 다시 세운다면 그는 자신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헐어버린 율법을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시 요구하겠는가?
19~20절 : “나는 율법과의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새번역)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하는 것은 율법에 대하여 죽은 자이며 나에 대하여 죽은 자라는 말이다. 나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은 내가 소원하고 욕망하며 살아가는 모든 것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 안에서는 계속하여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살기보다는 여전히 내가 주인이 되어 나를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나오는 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기에 나오는 갈등인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나의 의지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죽은 자로 다루어 가시겠다는 예수님의 의지를 믿는 것이다.
21절 :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쉬운성경)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한 결론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전 과정을 말한다. 바울의 반대자요 복음 아닌 것을 전하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는 자들이다. 복음에 율법을 더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으로 마땅히 거부해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복음의 진리대로’ 행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나의 묵상)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0절)
오늘 본문에 너무도 유명한 구절인 20절 말씀이 나온다.
나도 이 말씀을 진심으로 고백하며 산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육체 가운데 살아가면서 갈등하며 산다.
그것은 탐심과 자기의와 자기주장의지가 솟아나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다 나의 옛사람의 본성이다.
그러나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니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것이다. 주님께서 내게 새 생명을 주셔서 새 사람이 되게 하시고, 주님과 교제함으로 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에 연합되어 살도록 이끌어 주시는 것이다.
베드로.....그는 복음을 선포함으로 3천 명을 돌이켰고, 고넬료를 통해 주님께서 이방인들을 어떻게 받으셨는가를 이미 경험하였었다.
그런데도 새까만 후배인 바울에게 복음의 진리대로 행하지 않는다고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면박을 당할 만큼 큰 실수를 함으로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인다.
복음의 진리대로 사는 삶, 베드로가 이럴진대, 나같은 것은 불에 볶아지는 한 줌의 깨처럼 튀고 난리법석을 떠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같다.
그런 중에 매일 말씀으로 살게 하시니 너무도 감사하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교제하게 하심으로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하도록 하시는 주님의 의지와 열심을 본다.
그러므로 오늘 20절과 같은 말씀도 ‘내 의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주님의 행하심을 믿으며 암송하고 또 묵상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받은 내 마음을 주님께 올려드린다.
“십자가에 연합되게 하시는 주님을 믿습니다.
내 안에 사시는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육체로 이 땅을 살아가지만, 세상 것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으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믿음은 제 의지를 발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의지와 열심이 제게 부어진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신 것을 기억하기에 주님만을 의지합니다.”
(묵상 기도)
주님,
말씀을 암송할 때마다 주문 외우듯이, 자기 최면 걸듯이 한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불의하고 가증스런 존재는 그렇게밖에 하지 못합니다.
이제 주님의 보혈을 힘입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니
더욱 주님께서 행하여 주실 것만을 믿습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