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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상을 먹고 죽은 신라에게 붙들려 간 억울한 포로 사형수였다.
공원에 산책을 나왔는데 지금 비가 잘 내리고 있습니다.
비가 스산하게 내리고 있어 뭐 찍을 것도 별로 없고 이렇게 들꽃마루 언덕에 정자에 앉아서 비를 피하고
있는 중입니다.
뭔 강론을 할까 지금 머리에서 잡히는 잡념 같은 말하자면 머리에 들은 여러 가지 머리가 두뇌가 정보 입력 시스템 아니여 그 정보 입력 시스템에 여지껏 인생을 살아오면서 모든 정보가 다 입력이 되어 갖고 스스로 말하자면 그 논리적인 생각을 구성하고 형성해가지고 들어앉아 있는 모습이 커다란 연가시가 되어갖고 들어가 들어와서 앉아 있는 모습이다.
연가시 논리 체계를 이루어서 연가시라는 것은 실뱀 아니여 그 실뱀이 말하자면 인간의 두뇌를 여이
치나 방아개비 사마귀당랑 몸뚱이를 삼아서 말하자면 들어앉아가지고 또아리를 틀고서 뱀이 허를너블거리듯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모든 잡념의 생각을 일으켜가지고서 사람을 자기 수족처럼 괴뢰처럼 부려쳐먹고 있다.
사람의 두뇌를 이런 말씀이야. 그렇게 해서 지금 이 강사가 그 숙주가 하라 하는 대로 시켜서 말을 한번 해보겠는데 숙주가 뭐라고 나한테 이 괴뢰의 몸뚱이 정신한테 시키는가 하면은 나는 그 전 전생에 무엇이었느냐 하면은 바로 신라 놈들한테 억울하게 죽은
말하자면 포로로 잡혀서 억울하게시리 사형당한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적장이든지 바보 온달이든지 그런 영혼이 말하자면 높은 짐(朕) 자청(自請)천자(天子) 짐(朕)이라 할 수 있는 그런 위상(位相)이었다.
그런데 뭔가 잘못되는 바람에 붙들려서 신라 놈들한테 포로가 돼서 잡혀서 사형을 당했는데 어떻게 사형을 당하느냐 바로 요새 말하자면 그 양잿물 같은 비상을 고와서 옛날엔 사람을 죽였어.
사형을 할려면은 그 이조시대에도 보다시피 그렇게 말하면 죄인들을 벼슬아치들을 사형을 시킬적에 사약을 내리잖아 그 사약의 부자탕 같은 그 독한 거 아니야 막 그거 송시열 우암 송시열이도 막 그걸 막 퍼먹이다시피 해서 두 그릇인가 세 그릇인가 퍼먹이다시피 해가지고 죽였다는 거야.
잘 숨이 잘 안 떨어지니까 말하자면 장희빈이도 그렇게 말하잠 숙종대왕 이 지지 누르고서 퍼먹여 죽였잖아.
그런 식으로 그렇게 말하자면 억울하게 신라 놈들한테 사형을 당한 사형수였다.
그래서 반드시 그놈들을 천년 2천년 후로 돌아가서 복수를 해줘야 된다
말하자면 억울하게 죽은 삼국지의 관운장이 여몽이한테 억울하게 죽었다고 여몽이 이놈 너 죽어라 하고서 하늘에서 올라가 가지고 막 벼락 천둥을 치듯이 그런 식으로 복수 원한에 파묻혀 있는 바로 그런 영혼의 후예로 태어난 자이다
이런 말
말씀이 그걸 어떻게 아느냐 바로 내 태어난 곳이 어디인가 하면 그 신라 놈들이여 사람을 붙들었다 포로를 붙들었다 사형을 시킨 그 무덤 골이라 하는 곳이 있는데 그 무덤골이라 하는 곳이 있는데 그 무덤골 골짜기 한 고개를 넘어서 아주 으므룩하고 으스스하고 스산한 골짜기가 있는데 거기 이름이 바로 뭐냐 비상골이여.
거기 비상을 그전에 사형수를 사형시키기 위해서 고왔다는 것이 바로 그 아래 비상골 아래 바로 청량리 588번지와 똑같은 588번지에서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바로 그 영혼이 숙주가 돼서 들어앉아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신라한테 억울하게 죽은 포로로 죽은 억울한 귀신이 언제 그 원한에 사묻혀서 복수를 하려고 벼르고 벼르고 있다 이런 말씀이야.
알겠어? 그저 입에서 육두문자가 부글부글 끓지마는 꾹 참고 있는 거야.
그래서 신라 왕망잔당 넘들을 쳐부시자 어 흉노 놈
자식들을 김일제놈들을 김일제 후예한테 아 이렇게 머리에서 지금 시키고 서 이렇게 광(狂)론(論)을 펼치게 하고 있다 이런 말씀이야
어째 들어보면....
그래서 이렇게 숙주가 시키는 대로 거 인도의 산(山) 산림과 관리가원이 그 숙주가 들은 연가시가 들은 숙주를 보니까 속을 다 파먹키고 사지팔다리 껍질과 머리 두뇌만 남아가지고 쑥쑥 숙주가 시키는 대로 엉금엉금 막 기어 가잖아.
어 말하잠 마비가 돼 가지고 몸이 마비가 돼 가지고 숙주의 팔다리가 돼가지고 간단 말이야.
속이 다 파먹혀선 없어도 그와 마찬 가지로 이 두뇌에서 지금 실성한 기운이 들어앉아 있는데 그건 몰라.
그 연가시가 실성해가지고 들어가지고 이렇게 정보 입력된 걸 갖고 이용을 해서 이런 논리 체계로 여러분들에게 강론을 펼쳐라 하는 것인지 그건 알 수가 없다 이런 말씀이야.
그렇게 이래 지금 머리가 조종을 받아가지고 여러분들에게 강론을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비도 하나절인데도 구죽죽하게 오고 귀신이 나올 정도로 비가 구죽죽하게 오고 밤이면 더 하지 스산한 게 망우리 공동 묘지 비 오듯 하는 것이지.
그런데 그렇게 귀신이 원한에 사무쳐서 복수의 칼을 벼리고 벼르고 있다.
아 이런 말씀이야. 그러니까 절대 신라는 좋은 무리들이 아니다.
신라 왕망잔당의 무리들은 그것을 알아야 된다 이런 말씀이야.
그래서 원수가 돼가지고 말아. 고조선 준왕의 후예 백제하고 고려를 무너뜨린 원수가 돼가지고 백제의 후예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가지고 그렇게 다시 복수를 한 것이 무엇이냐 일제 36년 일본 통치가 돼가지고 들어와가지고 그 왜넘 역사학자들이 온갖 역사를 또 조작을 한 것이 바로 청천강 이북 이남 땅 나한, 진한 마한 변화 땅이 청천강 이남 땅이며 말하자면 임진강 이남 땅이며 그렇게 통일신라는 조막만 해서 통일신라라 할 것조차도 없다.
고구려 땅을 수복도 못했다. 이렇게 나당연합 해서 신라 고구려를 멸망을 시켰지만 결국엔 무엇이냐
통일신라 랍시고 반쪼가리로 통일을 한 것밖에 안 된다.
반도에서 이렇게들 이제 말들을 하게 만들어 놨다.
이런 말씀이지. 원한에 사뭍친 귀신들이 서로 날조를 해가지고 뭐 말인즉 요동 저쪽에 패수 저쪽에 압록강 동서로 갈라진 그 강을 중심에서 이쪽으로 신라산이니 뭔 주절거리지만 그것 다 그것도 믿을 건 못 되는 거 다.
그건 날조여 다 거짓말하는 거 환단고기 같은 것도 다 그건 날조된 글이여.
그런데 신용할 게 하나도 없다 이런 말씀이야. 이 강사 생각은 그렇게 돌아간다.
이거 지금 연시씨가 시켜서 이렇게 나불나불 뱀이 혓바닥 내밀어서 가지고 말하자면 나블되듯 나블 대는 거지.
맹자 제자가 아니고 공자 제자가 맹자 아니야 그 공자 맹자처럼 입을 나불거리고 있는 모습이 된다 이런 말씀이지.
그러니까 신라가 주장하는 논리체계는 모두가 다 옳지 않은 것이다.
그놈들은 한무제 때 유철이한테 사성을 받은 김일제의 자손들로서
한무제가 죽을 고비를 살렸다. 해서 사성(賜姓)을 성을 김가로 줬어.
흉노 그 흉노의 왕이 둘이 있었는데 작은 왕이 그렇게 말하자면 이름을 다 잊어먹었는데
아 유철이를를 살려줬거든. 그래서 성을 김씨를 준 것이여 그런데 왕이 왕망 편을 들어서 왕망이 전한을 무너뜨리고서 신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가 도리어 뒈치기 당하잖아.
후안 광무 황제 유수한테. 그러니까 그 잔당의 무리들이 쫓겨가지고 온 것이 바로 여- 계림 경주 계림이라데로 쫓겨와가지고 나라를 세운 것이다.
신라라는 나라를 세웠는데 혁거세가 나라를 세운 것 그걸 다 또 두잡아엎고서 그 밑에 또 영남 땅에 수많은 나라가 말하자면 나라가 수백여 개도 더 많았다는 게 그걸 다 제압을 해가지고 거기서 나라를 세워가지고서 말하잠 신라 백제 삼국 고구려 이렇게 겨루게 되었다 이런 말씀이야.
진한 하는 진한은 진나라가 멸망해가지고 쫓겨와서 생긴 거라고 이렇게 또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러니까 어느 사람의 말을 들으려니 그것은 알 수 없는 거야.
옳은 건,.. 옳고 그른 거는 그런데 역사의 유물 나온 건 속일 수가 없거든 여.
임진강에 그쪽에서 말하자면 나당연합이 아니라
나당이 나당이 서로가 원수가 돼서 싸움질을 했는데 아 그럼 요동 저짝에 국경이라 뭐 하러 여기까지 끌고 들어와가지고 신라하고 당나라하고 싸움을 했는데 이게 그거 웃기는 얘기 아니야 글쎄... 아무리 거기가 전쟁하기 좋고 방어하기 좋은 곳이라 고 해서 그렇다 할는지 모르지만은 거기 유물 나온 게 화살촉 노라고 커다란 유인촌인가 나와가지고 그 스펙 설인가 하는데 말하잠 강의하는 걸 보니까 노라고 하는 게 커다란 쇠꼬쟁이가 말이야 손바닥보다 더 길어.
그거 그거를 발사하려면 어마어마한 말하자면 무기 활이 있어야 된다는 거지.
그런 걸로 막아내고 긴 장창대를 조직해 가지고 당나라 기마병을 쳐부셨다.
아 거기 역사가 확실하게 있는 곳인데 어 그런데 저 국경선이 있으면 말하자면 뭐 요동을 지나 패수 쪽이라고 웃기고 자빠졌느냐 이런 말씀이여.
그거 그 말이 맞을는지도 몰라. 그렇지만 나 그거 신용 안 한다 이런 말씀이지.
또 일본놈들이 주절거리는 이야기도 신용할 것도 못 되고 지금의 압록강은 압록강이 아니었다는 게 그럼 저 지금의 이 압록강 뭐라고 이름을 했느냐 이런 말씀이야.
그 패수 쪽에 압록강 요동 저 쪽에 있는 것이
예 .. 그래 하나도 믿을 건 못 되고 신라가 .. 지금 와가지고 아골타 마의 태자가 망해가지고 저기 말하지 하면 왕건 한테 나라 받치고 경순왕이 나라 바치고 아들 마의 태자가 망해가지고 양평 김용사 와서 지팽이 꽂고 있는 게 은행나무가 그래가지고 말야 수천 년이 돼도 은행나무 큰 아람드리가 되었잖아.
그런 말도 있고. 그래가지고서 말하자면 간다는 게 만주벌판으로 가가지고 그 후예들 그 무리들이 점점 커가지고서 아골타가 됐다는 거예여
아골타 아골타가 죽기 살기로 요나라 군대 거란군 30만 명을 처부신 거예요여
일만 군사를 갖고서 그러니까 거란 군사가 허제비나 마찬가지지.
그러니까 말하자면 가랑잎이나 마찬가지인걸 처부신 거나 마찬가지야.
그래가지고 승리해가지고 금나라를 세운 거 아닌가 완안 씨가 되고 완안 홍렬 그러잖아 말하자면 금나라 세우 아골타의 후예로 그래서 완안씨가 돼갖고 세웠는데 결국은 그것도 완안씨도 말하잠 원나라를 세운 진징키스칸 무리들한테 그 패전하고 말잖아.
그런 다음에 다시 이제 원나라가 흥왕해가지고 원나라가 말하자면 여기 쿠빌라이가 들어와가지고 북경에 들어와 나라를 세워서 원나라라 했는데 그 원나라를 결국 누구한테 망햇서 바로 말하잠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한테 망한 거 아니야 주원장이 후예가
또 누구한테 망했어 주유검이가 매산에서 목매달아 죽을적에 말하자면은 그 소틈왕 이자성이라는 놈 반란군 도적놈들이 쳐들어와서 북경 자금성을 말하자면 점령을 해버리니 어디 쫓겨갈 데도 없고 그 대궐 뒤에서 매산이라고 한 조그마한 산에 가 가지고서 말하자면은 내시 터러 내가 죽을 수가 없으니 너가 지금 나 목 좀 메달아다오.
비단폭에 ..그 비단폭에 목을 매어 죽였어. 그래서 거기서 내가[주유검] 목 매달아 죽은 거 아니야 주유검이가 마지막 황제가 그런 다음에 그걸 소틈왕 무리들이 그 한 달을 지켰는가 대순이라는 나라를 세우고서 거기서 자금성이 떵떵거리다가 말하자면 진원원이 남편 오삼계 군대가 쳐들어온 거 아니야 오삼계가 여기 왜 말하자면
말하잠 산해관문을 지키고 있다가 도둑놈이 나라를 망가뜨렷다는 소리를 듣고서 군사를 회군시켜가지고 들어와가지고 말하자면 쳐부신 거지 일편석에서 싸움한 것 소틈왕 무리들을.. 그렇게 해서 그 뒤를 쫓아서 후금이 군대들이 들어오는것 그러면 열어놔 산해관문을 열어놓으면 뒤쫓아서 같이 이렇게 오삼계 군대를 앞세워 가지고 말하자면 도르곤의 무리들이 들어와가지고 명나라 숭정황제 초상 치른다는 명분 하에 들어와가지고 나라를 세운 것이 바로 후금 청나라라 이런 말씀이야.
그런 게 전부 다 애친각라라고 그 성씨가 애친각라 아니여 누르하찌 성씨가 그 애신 각라라 하고 신라를 사랑하라 했다고 그런 식으로 풀어가지고 신라의 후예라 이런 식으로 뭐 막 말들을 해제킨다 이런 말씀이야 웃기는 장난 아니야 누르하찌가 신라에 후예여.. 누르하찌가 그 말하자면 풍수적으로 말을 한다면 그 압록강변에 그 마을 아주 역병이 들린 여성하고 말이야 물개하고 접촉을 해서
전설의 이야기처럼 되는 거 보면 그렇다. 이겨 나온 것이 누르하지 반은 물개고 반은 사람이라는 게 태어났다는 거야.[물개는 물속에 제물을 차리고 제사를 지낸다 했다 물개 마누라가된 여성이 옷깃에 실바늘을 꽂아 놓으니깐 물속으로 그 실바늘이 들어갓더라는것 오랑캐라하는것은 물개가 발톱 할퀴므로 거 발을 감싸느라고 네주머니 에다간 입까지 가리느라고 다섯주머니가 된다는 것 우리 나라 말씀 훈민정음 사랑이라 하는 의미 네 주머리하는취 지다 입은 가리지 않고 아마 손톱 발톱 가리겟다고 장갑 버선 양말 끼우듯 했던 모양 ]
그래 그 자손이 바로 누루하찌고 그 그 자손이 황태극이고 그 형제들이 도르곤이고 뭐 이런 다이곤이고 그런 식이 되었다 이런 말씀이여.
그래서 그 황태극이 여편네 후궁 박지재길 특씨 몽골 사람 그걸 그렇게 다르곤 도르곤이 좋아했는데 형이 차지 뺏어가지고 막 후궁을 삼아서 거기서 자식을 놓은 게 복림인데 나이 어린 애를 천자에 앉히는 거 아니여 그러고서 도르곤이 권세를 휘두르는 거 그렇게 된 것이 역사(歷史)가 돌아간 것이여.
말하자면 어 그런 걸 뭐 엉뚱 하게시리 뭐 이렇고 저렇고 뭐 신라에 후예이고 신라가 세운것 니 개미 똥들이나 해... 어 아 그 찍어다 붙이고 그렇게 우월하게 세우려 해도 어림없어 그들은 단지 왕망잔당일 뿐이여.
말하자면 이 억울하게 죽은 사형수 입장으로 본다면 그렇다 이런 말씀이지
어 ..원한에. 사무친
사형수 입장으로 본다면 이렇게 이렇고 자렇쿵 변죽을 또 한번 올려봤습니다.
머리에서 그렇게 실성해가지고 내 갈기라 하는데 입으로 쥐어 갈기라 하는데 그래서 할 수 없이 할소리못할소리 이렇게 지껄여 보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설 같은 이야기를.
예그러니까 너무 미화하면 안 돼. 너무 미화하려 들으면 도리어 봉변 망신을 당하는 거여.
확실하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내용을 갖고 무슨 증명 같은 거 한답시고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런 말씀이야.
역사가 다 날조가 되는 거야.
예.. 그 오삼계 군대하고 소틈왕에 군대하고 무슨 석이라 하는 데서 싸움을 했는데[일편석] 편석이라 하는 데 조그마한 땅덩어리야.
그게 거기서 싸워. 그래서 대패했어 그 도둑놈들 무리 도둑놈들 무리가 오합지졸이지 막 긁어모아가지고 자금성에 군대 없는 줄 알고 말하자면 홍승조 같은 사람이 홍승조 병부상서 아니여 그래가지고 영원성에 나와 있었잖아 산해관에...
그리고 거기 나와 있다가 포로로 잡힌 거 아니여 저기 황태극이한테 말하자면 그러니까 사람이 전략 쓰는 거 전쟁에 전략 쓰는 군사(軍師)가 없는 줄 알고 쳐들어와가지고 쑥밭을 내잖아.
원숭환이가 고만 저기 산해관을 지키던 원숭환을 붙들었다가 육시를 하는 바람에 간신들 모리배로 인해가지고 그 충신을 죽인 거 아니여 주유검이가 숭정 황제가 그렇게 돼 가지고서 명나라가 도둑놈한테 망한 걸 오삼계가 앞장을 서가지고 도둑놈 친다는 명분하에 앞장을 서고 뒤에 후금의 군대가 말하자면 주유검이 숭정황제 초상 치러준다고 하는 명분하에 상여를 메고서 쳐들어온 거 아니여?
그래가지고 저 자금성을 차지하고 나가긴 뭘 나가 고만 이제 내가 이거 이 땅 차지해서 내 꺼다 이런 식이 된 거지.
오삼계를 저기 말하자면 윈남 대리 쪽으로 그리로 몰아가 가지고 가서 말하자면 농사를 짓게 하려고 하고 그런 식으로 된 거 아니여 오삼계가 남쪽으로 쫓겨갔다가 반란을 해가지고 그것도 황제랍시고 제위 올라 한 달 만에 죽어버리고 말잖아.
반기를 들었다가 3번왕이 돼가지고 예 이렇게 이렇게 경계무 상가희 이런 세사람 삼번왕이 돼가지고 한패가 돼가지고 반란을 했다가 황제로 취임한 지 한 달 만에 죽었어.
오삼계 황제 자질 없다는 거지. 말하자면
아그 뭐여 현엽이한테 대들었다가 말야 복림이 아들이 현엽이 아니야 그거 말하자면 손자를 박이재길 특씨가 그 말야 손자 아니야 그걸 그 세워가지고 임금 황제를 삼은 것 아니여 그 여 중국 역사가 그 청나라 역사가 아주 어지럽잖아.
쭉 내려오는 거 보면은 여기까지 되고 말고
이렇게 시리
억울한 사형수가 돼가지고 숙주가 돼서 이렇쿵 저렇쿵 말하자면 광(狂)론(論)을 펼쳐봤습니다.
*
강론을 하다가 너무 흥분이 돼서 말하자면 중요한 팩트 강론할 것을 까먹었는데 거기 그 무덤골 풍수 생김이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그 공동묘지인데 부처님 오른손 이렇게 내려서 하수(下手)해가지고서 말하자면
중생을 어르
만지는 주먹 손이 있는데 거기 소이 장삼 가사가 그 생긴 모습이 지금 그 방 빗자루처럼 생겼어.[그 내가 태어난곳을 가리키는 손 같은 등고선이 있는데 그위에서 보면 그렇다는 거지]
왜? 방 빗자루 이렇게 자루가 길게 생겨서 쓸게 돼 있지.
그런데 그 방 빗자루처럼 생겨 있는데 그 빗자루 수술 달리는데 거기가 이렇게 비스듬이 누워 있는데 거기 그리로 다 공동묘지여.
수많은 묘가 거기에 이렇게 들어 있어.[해탈된 허물들 쓸어서 청소 한다는 취지겠지] 그런데 그 안쪽 골짜기가 바로 무덤골이라 하고 거기 사형수
그를 사형
집행하던 사형장이었다 이런 말씀이에요. 그 아래는 그 옛날 향교 자리인데 글쎄 거기를 그렇게 파보면 밭을 파보면 말하자면 그 예전에 그 유물 해동통보 상평통보 같은 엽전꾸러미 이런 것들도 막 그전에 막 나왔다는 거예여.
지금은 알 수 없지 거기 파보면 그런 게 나올는지. 그리고 거기에 고래장터라 해가지고 수많은 그 예전 도굴꾼들이 고래장한 그걸 사기 그릇 이런 거 골동품 캐내느라고 마구 파제 켰어.
마구 파재켜가지고 밤으로나 저녁으로 그리로 지나가려면 으슬슬하고 무섭고 그런 골짜기다 이런 말씀.
지금처럼 오늘 같이 비가
구쭉쭉하게 오는 날
그런데 거기 길가로 길로 지나가려고 그래 봐 얼마나 무서워
그 귀신이 쫓아붙는 것 같아. 그런 데서
말하자면 그 생김새가 그렇게 생긴 데에서
사형을 당했다 이런 말씀이야. 비상을 고와 가지고 비상 골 에서 비상을 고와서 사형수가 아갈바리에 입을 벌리고 막 퍼넣어서 죽였다 이런 말씀이야.
그러니 그 원한 귀신이 어디로 들어서
흘러내려온 거
그 기운이
바로 비상골 아래 588번지로 청량리 번지와 똑같은 흐른 데로 흘러내려와서
그 기운이 뭉쳐 있었을 거라 이런 말씀이야.
그러니까
그 기운을 받고 태어난 게 바로 나다 짐(朕)이다. 자청천자 짐(朕)이다.
이런 말씀이야[나의 숙주 몸 아무게 너 몸뚱이다]
이거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온갖
들어있는 정보가 입력 시스템 된 것이 정보 입력 시
시스템 된 것이
능구렁이처럼 연가시 이 논리 체계를 정립해 가지고 이론 전개를 해가지고 이렇게 너블너블
거리게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이런 말씀이야.
이렇게 해서 여러분들에게 미처 하지 못한 광론을
다시 한 번 펼쳐봤습니다.예..
누가 또 오네.
그러니 신라 방면 사람만 보기만 하면 고만 대나무창으로 찔러주고 싶은 생각이 자꾸만 머리에 잡히는 것 숙주가 그러는 거지 그래선 일편 그래 말라 달래어 보는 거지
*
엇저녁 몽사에 여러 귀신 여성들한테 시달리는 꿈다 가위에눌려 소리 를질르니 아들이 와선 흔들어 깨우다 그러나 꿈은이미 벌써 깨어 있었다
https://www.youtube.com/shorts/YvhDjqHgbxU
*위키백과에 가져와 본다면 요즘 사학자들 김씨는 영남에 자연발생적인 성씨로 묘사하려든다 왕망잔당이라하는 딱지를 떼려하는 모습인것
김일제(金日磾, 기원전 134년 ~ 기원전 86년 음력 8월)는 전한 중기의 관료로, 자는 옹숙(翁叔)이다. 본래 흉노 출신으로 흉노의 번왕인 휴저왕(休屠王)[1]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열네 살 때 부왕이 무제와의 전투에서 패하면서 전한에 포로로 끌려왔다. 이후 무제의 신임을 받아 전한의 관료로 일하면서 김씨(金氏) 성을 받았으며, 곽광·상관걸과 함께 소제의 후견인이 되었으나 병들어 투후(秺侯)에 봉해지고 곧 죽었다. 7세기 신라의 왕족은 그 가계를 신성시하고자 김일제의 후손을 자처하였다. 다만 실제로 그 후손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2]
김일제는 휴저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기원전 150년경, 이치사 선우의 번왕이었던 휴저왕과 혼야왕(昆邪王)이 계속하여 전한에게 패배하자, 그들을 송환하여 사형으로 그 죄를 물으려고 하였다. 혼야왕은 이치사 선우에게 끌려가면 목숨에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휴저왕을 설득하여 전한에 투항하려고 하였다. 혼야왕은 휴저왕이 반대하자 그를 죽이고 투항하였으며, 휴저왕의 부인과 두 아들을 곽거병에게 포로로 넘겨주었다.
중국 포로 생활[편집]
곽거병은 휴저왕의 부인 연지(閼氏)와 장남 일제 및 어린 동생 윤(胤)을 사로잡아 장안으로 돌아왔다. 말 기르는 노예가 된 일제는 우연히 무제의 눈에 띄어 노예에서 해방되고 마감(馬監)으로 임명되었으며, 이어 시중(侍中), 부마도위, 광록대부에 올랐다.
김씨성 사성[편집]
일제는 망하라(莽何羅) 등의 무제 암살 시도를 막은 공로로 거기장군이 되었고, 김씨 성을 하사받았다. 김(金)이란 황금을 뜻하는데, 휴저왕이 금인(金人)을 가지고 천주(天主)에 제사 지냈던 일에서 비롯하여 성씨로 삼았다.
김일제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둘 다 무제의 총애를 받아서 무제의 농아(弄兒)가 됐다. 그러나 무제의 목을 뒤에서 껴안고, 궁녀를 희롱하자, 그 행동이 매우 불순하다고 생각하여 장남을 죽이고 무제에게 보고하였다. 무제는 화를 냈지만 김일제가 자초지종을 고하자, 슬퍼하면서도 김일제의 충성심에 더욱 감명되었다. 후원 2년(기원전 87년), 무제가 죽으면서 김일제는 곽광, 상관걸과 함께 소제를 보필하였다. 당초 무제가 곽광에게 보필하게 하자 곽광이 김일제에게 사양했는데, 김일제 역시 사양해 김일제가 부섭정이 되었다. 그리고 김일제의 아들 김상과 곽광의 딸이 혼인했다. 무제는 죽으면서 옥새로 봉한 조서를 내려 마하라 일당의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김일제를 투후에 봉하고 곽광과 상관걸도 열후에 봉했는데, 무제 사후 조서의 봉인을 풀어 시행하려 하자 당시 황제 소제가 어리다며 사양했다.
최후[편집]
김일제가 몸져 누우니 소제는 곽광과 의논하여 작위를 다시 내렸고, 김일제는 인수를 받은 지 하루 만에 죽었다. 작위는 아들 김상이 이었으나 김상이 죽은 후 아들이 없어 봉국이 폐지되었고, 이후 김일제의 증손 김당이 다시 투후에 봉해졌다.
김일제의 무덤은 무릉의 배장묘 가운데 하나로서 곽거병의 묘 오른쪽에 있는데, 오늘날 감숙성 흥평현(兴平县) 남귀향 도상촌에 있다.[3] 감숙성 무위시에 김일제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마신(馬神)이라 전해져 내려온다.
사후[편집]
김일제의 자손들은 신나라 때 왕망의 외가로서 주요 관직에 올랐는데, 후한 광무제가 왕망을 토벌할 때 역사에서 사라지고, 봉국도 몰수되었다.
중국 산둥성 하택시 성무현 옥화묘촌은 김일제가 봉지로 받은 투현으로 현재 입구에 이 사실을 알리는 표지석이 남아 있다. 투후 유적지에는 김일제를 기리던 사당(祠堂)인 투후사(秺侯祠)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일제의 자손들은 대대로 벼슬하여 후한 때까지 가문이 이어져, 김선과 김의 등을 배출하였다.
김일제와 신라 김씨의 관계[편집]
신라 문무왕릉비(文武王陵碑)에는 '투후(秺侯) 제천지윤(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4]'(5행), '15대조 성한왕은 그 바탕이 하늘에서 신라로 내려왔고'(6행)라는 구절이 있다. 또한 당나라에 살았던 신라인 김씨부인의 업적을 기리는 대당고김씨부인묘명에도 신라 김씨의 뿌리가 투후 김일제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을 볼 때 신라 김씨 왕족은 자신의 조상을 중국 한나라 때 투후를 지낸 김일제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록에 대해서 역사학자들은 7세기 후반 들어 형성된 신라 김씨의 관념적인 시조의식의 소산이지 실제로 김일제가 김씨의 시조인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5][6] 전근대에는 가계를 신성시하기 위해 고대의 전설적인 제왕 또는 유명한 위인들을 시조로 간주하는 일이 많았으므로 김일제 후손설은 사실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2]
대한민국의 일부 역사 다큐멘터리나 재야사학자들은 김일제가 신라 김씨의 선조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문헌 기록 외에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 및 부장품이 일부 북방민족 계통과 유사하다는 사실도 증거로 거론된다.[7][8]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고고학 발굴 성과의 누적을 통해 돌무지덧널무덤과 부장품의 발전 단계가 모두 밝혀지면서 4세기 신라 묘제의 북방민족 유래설도 역사학계 및 고고학계에서 인정되지 않고 있다.[9]
*돌무지 덧널무덤이 신라중기 이후에 생긴 것으로서 김일제 역사와는 맞지 않는다 이런 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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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태기산이라 하는 산이 있는데 진한의 태기왕이 추격하는 신라군에게 쫓겨선 그 산에 와선 일전을 벌이고선 피묻은갑 옷을 강물에 와선 씻었다 해선 갑천이라 한다고 갑천 이름 내력을 말하고 있다 이런걸 본다면 신라가 토착세력 진한을 정복한 것은 확실 한 것 외세 세력이라 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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