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에 거슬러 취하나 정도에 맞게 지킨다.
逆取順守 (역취순수) <삼국지> <촉서>
'역(逆)'은 비상수단. '순(順)'은 정당한 수단을 뜻한다. 정도를 거슬러 취했으나
정도에 맞게 지킨다는 뜻이다. 즉 정도에 어긋나는 수단으로 정권을 빼앗았으나,
천하를 위해서 그 뒤로는 온당한 정치로 민생을 안정시켰다면 이를 눈감아 줄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유비가 공명의 '천하 삼분의 계획'에 따라 촉에 나라를 세우려고 할 때 약간 꺼림직한 사정이 있었다. 당시 촉을 지배하던 같은 동족 유장(劉璋)의 뒤통수를 쳐야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당시 유비는 바르지 못한 방법을 쓰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조조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이라 유비가 가만히 있으면 조조의 영토가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이 없었다. 왜냐하면 유장의 성격이 우유부단하여 조조의 공격을 받으면 즉시 항복을 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렇게 될 바에야 조조보다 먼저 치자고 강력히 주장한 사람은 공명과 함께 군사를 맡고 있던 방통(龐統)이었다. 방통은 망설이는 유비에게 단호하게 어뢰었다.
"이곳 형주를 근거지로 해서는 북쪽의 조조와 동쪽의 손권에 대항해서 삼국이 대립하는 형세를 도저히 만들 수 없습니다.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주저없이 촉 땅을 손에 넣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비는 결심이 서지 않았다.
"내가 지금 상대로 살고 있는 자는 조조다. 그가 무력에 의존한다면 나는 덕과 인에 의존한다. 그가 책모를 부린다면 나는 성의로 대항한다. 항상 조조와는 다르게 행동했기에 일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대가 말한 수단은 조조가 하는 짓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그런 짓을 해서 나는 천하에 대한 신의를 잃고 싶지는 않네."
방통은 주늑들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전란의 때에는 전란의 때에 맞는 방법이 있습니다. 융통성 없는 이론으로는 천하를 안정시킬 수 없읍니다. 춘추시대의 패자도 약자를 삼키고 우매한 자를 공격했기에 패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정도를 거슬러 취하나 정도에 맞게 지킨다.' 라는 말은 결코 도에서 벗어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요컨데 비상수단으로 천하를 취하지만, 그 뒤로 선정을 베풀러 백성을 위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은나라의 탕왕과 주나라의 무왕도 역취순수를 통해 나라를 세웠읍니다.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이를 실천하십시오. 여기서 망설여 촉 땅을 취하지 않으시면 촉 땅은 필시 조조에게 넘어 갈 것입니다."
유비는 이 말에 용기를 얻어 214년 마침네 촉 땅을 차지하고서 건국의 기반을 확립했다.
융통성 없는 태도로는 비상사태에 대처할 수 없다
'약취순수'는 결코 쉽게 쓸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긴급한 사태에는
쓸 수 있는 것이다. 살다보면 때로 정도(正道)가 아닌 방법을 써야
하는 때도 있는 법이다. 물론 정도를 버서나서 대처한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진행과 마무리는 정도에 맞게 해야 한다. 교유과정(矯蹂
過正)이라는 말이 있다. 구ㅃ은 것을 펼 때는 반대 방향으로 굽은
만큼보다 훨씬 더 꺾어주어야 제대로 제자리를 찾는 경우가 있는
데, 이를 두고 할 말이다.
( 剛軒 選集 <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