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오백년! 초롱초롱 박철홍의 역사는 흐른다! 158 (번외편) 민중의 집단의지는 다 옳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특히 민중의 집단의지가 집단광기로 돌변하는 시대는 우리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큰 불행을 가져온다. 나쁜 위정자들에 의해서 민중의 집단의지가 집단광기로 분출하게하여 당시로서는 그게 정의이고 진실로 포장하여 대세로 만들어간 시대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1930년말부터 1940년초의 독일이다. 당시 독일은 히틀러 나찌시대였다. 히틀러는 1차세계대전 패배로 패배감과 상실감에 빠져있던 독일국민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단 시간에 독일을 세계적 패권국가로 만들었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을 일으켜 유럽을 초토화시키고 유럽인 수백만을 희생시켰다. 또 유태인 600만도 학살한다. 이런 정권에 당시 독일국민은 열렬히 지지했고 환호했다. 당시 히틀러 나찌정권은 군부쿠데타로 일어난 정권이 아니라 90%이상의 국민의 지지로 성립된 정통성있는 정권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잘 알다시피 처참했다.
히틀러보다 오래 된 프랑스 나폴레옹도 비슷하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 자유주의 깃발아래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프랑스 대혁명의 기운을 전 유럽을 정복하면서 휘날리게 한다. 그리고 전 유럽 민중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정복당한 독일국민이었던 베토벤이 나폴레옹을 위한 영웅이라는 교향곡을 만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프랑스황제에 즉위하면서 전유럽 민중을 실망시킨다. 베토벤도 실망하여 불같이 화를 내며 악보에서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을 지워버린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 황제즉위를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으로 지지했고 국민들은 열광을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가 가장 증오하는 일제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하나가 된 국가였다. 가미가제 특공대를 보면 알 것이다. 천황을 위해서 자기 목숨도 거림낌없이 받치는 집단광끼 최전면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도....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금 우리 국민 대다수가 군부 독재시절이라고 생각하는 유신이나 전두환 정권등도 그 당시는 겉으로나마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유신정권은 당시 국민투표에서 투표율 91.9%, 찬성 91.5%로 확정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보기드문 현상을 보였다.
독재정권이라 할 수 있는 전두환의 5공화국 헌법도 국민투표에서 유신헌법보다 더 높은 투표율 95%와 찬성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대통령선거에서는 간접선거였지만 거의 100% 지지로 전두환이 당선되었다.
이처럼 국민들은 당시 정권들 프로파간다에 현혹되어 마치 집단최면에 걸린 듯이 당시 사회분위기에 빠져 들어 간다.
요즈음 우리나라 교육문제에 대부분 국민이 집단최면과 광끼에 빠져있는 것도 비슷한 경우이다.
사실 정권이 국민을 현혹 시키면 그 당장은 국민들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헷갈린다.
각 개인 입장에서 보자면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100%는 없다. 각자 서있는 위치나 생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정부차원에서는 다르다. 어떤 정부이든 당시 상황을 잘 살펴보고 국가와 민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서 정책을 결정해야 된다. 하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그런 경우가 드물다.
아래는 오래 전 영화를 보고 썼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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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들 편이야~!!
오랜만에 IP TV를 통해 영화 한 편을 보았다. ‘로얄어페어’라는 영화다. 덴마크 왕국의 살벌하고 애틋한 과거 실화 이야기 이었지만 남의 이야기 같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주인공인 요한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자신을 비난하는 군중들을 향해 “나는 당신들 편이야~!!” 라는 외침 속에서 혁명을 알아보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군중(?)들 모습에 영화가 끝나고 정말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그 끝 장면은 우리 역사 속에서 수도 없이 보았고 지금도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절대왕정이 무르익던 18세기 덴마크, 편집증을 앓고 있는 왕 크리스티안 7세는 영국의 어린 공주와 전략결혼을 한다. 하지만 왕은 하룻밤만을 어찌어찌 보내고 공주에게 임신을 시켜 왕자를 생산한다.
하지만 왕은 공주의 고결한척함에 질려 공주를 엄마라고 부르며 다시는 공주를 찾지 않는다.
그리고 창녀촌이나 전전(왕이 창년 촌에 가서 폭행하고 난동부리는 모습 등이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하면서 기행을 일삼는다.
그동안 덴마크 정치는 의회라는 곳에서 실권을 가진 자가 맘대로 한다. 왕은 단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고 의회 장관들도 그를 철저히 무시해버린다.
이러할 때 왕을 치료하기 위해 고용된 독일인 의사 요한은 뛰어난 언변과 왕과 왕비를 감싸주는 포용력으로 그들의 신임을 얻어 나랏일에 참여를 하게 된다.
요한의 부추김과 전략으로 왕은 의회와 장관들을 물리치고 모든 정무를 요한에게 맡긴다. 요한은 당시 유럽에 거세게 불던 계몽주의 사상에 깊이 심취되어 있었고 그 사상을 덴마크에서 실현하려 한다. 고문금지 등 당시 시대에 걸맞지 않은 자유로운 사상과 파격적인 개혁 법안으로 덴마크는 유럽에서도 가장 앞서나가는 선진개혁국가가 되고 계몽주의 대 철학가들로부터 칭송의 편지도 받게 된다.
요한의 개혁적인 계몽사상이 왕비 캐롤라인의 생각과도 맞닿아 둘은 점점 가까워지며 급기야는 비밀스러운 만남 을 갖게 되고 왕비가 요한의 애까지 임신하게 된다.
요한의 개혁 정치에 위협을 느끼는 귀족들의 견제는 점점 심해지고 급기야 왕비가 요한의 애를 임신하게 된 것을 귀족 세력들이 알게 된다. 귀족세력은 그것을 기회로 ‘요한을 독일에서 온 남성이 왕비를 겁탈하고 임신까지 시켰으며 국정을 농단해 덴마크를 말아먹고 있다’는 흑색선전을 대대적으로 퍼트려 덴마크 민중을 요한으로부터 돌려놓은데 성공한다.
그런 뒤 힘을 합쳐 쿠테타를 일으키고 왕을 압박하여 요한은 재판에 회부된다. 쿠테타에 성공한 귀족들이 왕까지 쫒지는 안했지만 왕비를 쫒아내고 요한은 죽이려고 한다.
요한은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지만 사형직전에 왕이 사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시 또 허수아비가 된 왕은 왕비와 요한을 살리고 추방만 시킨다는 조건아래 귀족들의 처벌 요구에 동의하지만 귀족들은 왕을 속인 채 왕비는 추방하고 요한은 형장에서 목을 베어버린다.
왕의 사면으로 추방만 당하는 것으로 알고 가던 요한은 마지막 길이 형장이라는 것을 알고 그 자리에 모인 군중들이 요한에게 돌을 던지며 비난을 하자 그들에게 향해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 “ 난 당신들 편이야~” 이었다.
이 영화에서 한국의 시대사가 떠올랐다. 이런 비슷한 상황은 우리 역사 속에도 비일비재 하지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공민왕과 신돈이었다.
시대는 많이 다르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신돈의 등장은 여러 설이 있지만 노국공주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공민왕에게 노국공주와 닮은 반야라는 여성을 소개해 공민왕으로부터 신임을 얻었다는 설이 있다. 그 사실은 아직 정설로 되어 있지는 않지만 공민왕과 반야 사이에 나은 아들이 우왕이다. 이성계가 우왕을 밀어낸 가장 큰 명분이 우왕이 공민왕이 아닌 신도의 자식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만큼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이다.
신돈은 어쩌든 6년간의 집권기간 동안 전민변정도감(田民辨整都監)의 설치와 활동을 통해 개혁적인 정책을 실시했다. 부당하게 겸병당한 토지와 강압에 의하여 노비가 된 백성들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권문세가들이 탈점했던 전민(田民)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준 경우가 많아 당시 백성들로 부터 “성인이 나타났다.”라는 찬양을 받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신권이 처첩을 거느리고 아이를 낳고 주색에 빠져있다는 비난이 높아졌고 권문세족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민왕을 움직여 신돈을 반역혐의로 처형시킨다.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신돈이나 요한 두 사람의 공통점은 그들의 권력과 지위는 왕권의 의탁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을 뿐 그의 독자적 세력기반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 시대상황이 전제군주 국가였으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사건에서 우리는 공개적 검증(의회 같은 제도권)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권력 행사는 아무리 개혁적이라고 해도 위험하며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도덕성을 담보 하지 않은 개혁은 권력을 잡기 전과 후가 달라짐으로써 또 다른 수구의 이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 준다.
우리는 많은 역사에서 본다. 프랑스 대혁명, 러시아 혁명 등 성공한 혁명도 그 성공의 기쁨도 잠시, 혁명가들이 너무 앞서가면서 동시대인과 호흡하지 못해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성급히 몰아붙이는 위로부터의 개혁은 반드시 몰락하고 반동을 잉태한다는 서글픈 사실을 본다.
이 영화는 이러한 점을 재확인 해주었다.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중우정치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여기서 중우란 말 그대로 "어리석은 대중"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피 흘린 소수의 각성된 시민에 의해 만들어지고 대중이 그에 따르면서 발전해왔지만 다수의 중우에 의해 훼손되기도 했다.
그 사례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이 영화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왕비가 낳은 첫 번째 아들이 왕이 되어 왕비가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자세하게 써놓은 편지를 읽고 요한의 개혁정책을 요한이 죽은 지 50년 만에 덴마크에 다시 되살려 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역사의 진보는 얼마나 더디고 힘들게 쟁취하는 것인지를 300년 전의 덴마크에서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고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발견하는 슬픔을 가져다 준 영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