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2일 묵상 본문 : 갈라디아서 3장 1절 - 9절 -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기쁨으로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이제는 낮 시간이 짧아지고 밤은 길어지는 늦가을의 아침을 시작합니다.
마음으로는 가을의 날씨가 이어지기를 원하지만 가을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음을 느낍니다.
성도의 삶도 겨울을 준비하듯 주님 오실 때를 준비하는 모습이 되게 하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오늘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의 음성을 따라 살게 하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도록 친히 이끌어 주옵소서.
오늘도 분주한 일정을 따라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모든 일정 가운데 함께 해 주시고 지혜롭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사랑으로 생명의 삶을 살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해 어리석다고 말하며 바른 복음을 듣고도 그 복음에서 벗어나 율법주의자들에게 빠져 혼란을 겪는 모습을 책망한다.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을 그들에게 선명하게 공개적으로 선포했는데 그것을 망각하고 유혹에 넘어간 것을 한탄한다.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면서 그들이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을 지켰기 때문인지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었을 때문인지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바울은 그들이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음을 확실히 경험하고도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것은 어리석은 모습임을 강조하며 현재의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비극적 종말을 맞게 됨을 경고한다.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바울이 말하는 괴로움은 복음을 지키기 위한 핍박의 내용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성령을 통한 많은 영적 체험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어떤 해석이든 당시 갈라디아 성도들이 이러한 많은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헛된 일임을 보여주고 있다.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성령을 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것이 율법을 잘 지켰기 때문인지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했기 때문인지 질문하며 생각해볼 것을 요구한다.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을 언급하며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여김 받은 것은(창15:6) 할례를 받기 전이었으므로(창17:10)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할례와 상관없는 것임을 선포한다.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혈통적 계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영적 동질성임을 선언하며 믿음으로 의로움을 얻는 것임을 제시한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구원받도록 하시려고 성경을 통해 이것을 미리 기록하도록 하셨으며 아브라함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얻게 되었음을 선포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는 말에서 ‘너’는 일차적으로 아브라함을 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인 그리스도를 통해서 복을 받게 됨을 보여준다. 또한 예수님도 아브라함이 계시된 그리스도를 믿었음을 선언하셨다.(요8:56)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바울은 진정한 복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면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계시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던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 자가 됨을 선포한다.
나의 묵상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복음을 통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것인지 아니면 율법을 지켜서 경험한 것인지를 질문하면서 그들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나타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성령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사람의 노력은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관점은 오늘날 교회가 눈에 보이는 종교적 활동으로 그들의 믿음을 판단하려는 시도가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며 희생과 봉사로 믿음을 판단하려는 태도가 오류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믿음은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태도를 의미하고 있으며 성경에 드러난 복음의 내용을 발견하고 깨달아 감으로써 참 믿음이 세워지게 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봉사와 섬김의 손길은 이러한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인식한 자가 감사와 기쁨의 마음으로 자기를 희생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된다.
이러한 섬김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을 드러낸다.
복음을 바르게 알고 그 복음을 더 깊이 알아가는 삶이 영적인 성숙을 가져오며 바른 섬김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는 자로 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사람의 본성은 바뀌지 않고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는 자들도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이상 완전한 변화를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복음을 알아가고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가지는 삶은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기 위해 힘쓰는 자가 되며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해 힘쓰는 자가 된다.
율법을 따라 살아가는 자는 눈에 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행하는 자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율법은 땅의 것에 마음을 두게 만들고 스스로의 연약함에 머물도록 만든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생명과 영광에 대해 무지하고 스스로의 한계에만 집중함으로써 부정적인 생각과 다른 사람을 향한 비판과 비난에만 몰두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비판과 비난에만 몰두했고 그 결과는 예수님을 죽이는 일까지 자행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바울은 율법으로 인해 땅의 것만 바라보는 인생이 가장 불쌍한 인생임을 선포한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예수님도 바른 믿음에 대해 무지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목적을 삼고 사는 인생은 결국 하나님께서 외면 받게 되며 심판에 머무는 자가 됨을 선포하셨다.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7:21~27)
성도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것이며 그 복음을 통해 참 믿음을 세우는 것이다.
참 믿음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이며 성경의 말씀 속에서 복음을 발견하는 것은 보화를 발견하는 것처럼 기쁨과 소망을 얻게 해준다.
그리고 그 복음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희생하는 태도를 가지게 만들어 준다.
이러한 태도는 복음에 담겨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감격하여 나오는 모습이다.
그래서 섬김과 봉사를 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도우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오늘도 주의 말씀은 나의 모습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모습에서 멀어져 율법으로 자신을 세우려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게 하신다.
온전히 율법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율법적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려는 마음에서 벗어나 복음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힘입어 기꺼이 섬기려는 것이 성도의 모습임을 고백한다.
그 모습을 다시 회복하고 주의 사랑 가운데 믿음과 소망을 드러내는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자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 앞에 여전히 율법으로 살고자 하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복음을 외치나 복음에 합당한 삶, 자기부인은 없고 내 의를 드러내며 살려는 어리석은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주 안에서 참 믿음의 태도를 가지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참 믿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기를 부인하며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받는 것에 익숙한 율법의 태도를 버리고 온전히 주와 연합된 자로 서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오늘도 분주한 일정 가운데 지내지만 주의 사랑으로 행하는 자 되게 하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의 지체들도 주 안에서 참 믿음을 세우게 하시고 거룩한 은혜를 힘입어 믿음의 길로 나아가도록 친히 붙드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