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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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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 (6부)
말 씀: 고린도전서 13:1~13
부 르 심:요한 1서 4:7~8
교 독 문:77번, 요한복음 3장
찬 송: 64(13), 384(434),391(446),304(404)
기 도: 1)아버지 집에 거하는 사랑이 되게 하옵소서
2)예의바른 존중으로 사랑의 전도가 되게 하옵소서
3)용서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되게 하옵소서
4)꿈꾸는 사랑이 되게 하옵소서
5)예수한국 복음통일, 주사파 척결, 성령충만
고린도전서 13장을 사랑장이라 부릅니다.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그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답고 힘이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은 "사랑이 없으면 안되는 것임"을
처음부터 가르치고 계십니다.
사랑의 성품 15가지 또는 사랑의 열매 15가지를 가지게 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귀한 열매을 맺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에는 사랑의 성품 15가지 중
여섯 번째는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의 “사랑의 성품 15가지 열매”를 가지는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있어 두려울 것이 없는 것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르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한일서5:18~19)”
1.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무례하다”는 “예의에 어긋나다”입니다.
“무례하다”는 예의바르지 못하여
상대방을 존중하지 못한 말을 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은 은혜롭지 못하게 행동합니다.
보기에 밉게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례한 사람”은 격에 벗어난 행동을 하여
마음을 상하게 하는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는
사랑은 예의를 지킨다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무례히 행치 아니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존중해주고
친절하게 대할 줄을 알게 함으로 미소짓게 합니다.
오늘날 주변에 무례히 행하는 자를 보면 위아래 없이 거침없이
말을 함부러 하거나 상대방에게 거칠게 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내게 다가오시는 것은 항상 친절하시며
가장 따뜻한 말씀으로 나를 만지시고 속삭이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41:10)”
이 시간에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란 말씀으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친절하고 부드럽고 우리를 존중하시는지
배우는 확신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둘째가 돌아온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첫째의 무례함
“누가복음15:11~32”
1> 무례히 행치 아니하는 둘째의 모습에 대한 아버지의 반응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주었더니(누가복음15:12)”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갔습니다.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였습니다.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게 크게 흉년이 들었습니다.
둘째는 비로서 궁핍하였습니다.
가서 그 나라 백성 중에 하나에게 붙여 살았습니다.
그가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습니다.
둘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에 무례히 행하였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가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누가복음15:17)”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의 무례함으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은 주려 죽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의 무례함은 하나님 없이 다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자만심으로 행하다가 결국은 자신의 가장 초라한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는 것”은 돌이켜 공손하게
예의를 갖추고자는 하는 의지입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내가 하늘과 아버지에게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누가복음15:18~19)”
둘째는 지난 날 아버지에게 무례히 행한 것을
마음으로 회개하고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겼습니다.
둘째가 아버지 집을 향하여 가는데 목은 마르고 굶주리고
축늘어진채로 힘 없어 보이는 것이 아버지 눈에는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둘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둘째에게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친절하시고 무례히 행치 아니하여 사랑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자신이 돌이키어 마음에 품었던 의지를 그대로 말하였습니다.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누가복음15:21)”
둘째는 집 나가기 전 아버지에게 무례히 행하였으나
먼 나라로 갔다가 거지가 되어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무례히 행치 아니하는” 둘째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둘째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게 하였습니다.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례히 행치 아니하고 공손해진 둘째에게 잔치를 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 하더라(누가복음15:23~24)”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입니다.
예의바르고 공손한 태도로 말함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즐거움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 무례히 행하는 첫째에 대한 아버지의 가르침
“누가복음15:25~32”
누가복음 15장은 예수께서 세 가지 비유 이야기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첫 번째 비유는 잃은 양의 비유입니다.
잃은 양을 찾자 그 벗과 이웃을 불러 함께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잃은 양을 찾은 이야기를 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15:7)”
두 번째 비유는 되찾은 드라크마 비유입니다.
어느 여자가 잃었던 한 드라크마를 찾았을 때 찾은 것을 가지고 말하였습니다.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누가복음15:9)”
예수님은 두 번째 드라크마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잃은 양 비유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리라(누가복음15:10)”
세 번째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것도 앞의 두 가지 비유처럼
무례히 행하다가 되찾은 아들을 보고 잔치를 베풀어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세 가지 비유 이야기의 공통점은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입니다.
특별히 세 번째 비유의 두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첫째와 둘째의 이야기에서 둘째는 무례히 행하여 아버지 집을 나갔으나
돌이키어 돌아와서는 무례히 행치 아니하였습니다.
그런데 첫째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왔을 때
첫째의 무례히 행하는 첫째의 반응입니다.
맏아들이 풍류와 춤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었습니다.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아나이다 하니
(누가복음15:27)”
그의 건강한 몸이란 무례히 행치 않은 행동입니다.
그러나 맏아들의 반응은 무례히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 집에 들어가기를 즐겨아니하였습니다.
오히려 이제 맏아들이 아버지 집 밖에 있는 꼴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나와서 아들에게 들어오라고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아버지에게 무례히 행하여 말하였습니다.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게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누가복음16:29~30)”
맏아들은 아버지가 “내게 해 준게 머 있냐”고 따졌습니다.
맏아들의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실상 아버지에게 무례히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맏아들은 동생의 허물만 이야기 할뿐 동생이 무례히 행하였던 것만 기억하였습니다.
돌아와서 무례하지 행하지 아니하는 동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은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고
거듭말하는 것은 이간하는 자입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언17:9)”
무례히 행하는 자는 허물을 말하는 자입니다.
그 사람이 과거에 허물을 가져 무례히 행하였으나 돌이키어
새 사람이 되었으면 그 허물을 덮어주어야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합니다”그러므로 허물을 거듭말하지 말고
돌이킨 것을 보고 공손하고 예의바르게 행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믿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례히 행하는 맏아들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왜 둘째에게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는 것”임을 가르쳤습니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누가복음15:32)”
3. 요셉의 17세에 무례함과 39세의 공손한 예의바름
1> 무례히 행하는 요셉의 나이 17세
야곱의 12아들 중 11번째 아들 요셉 이야기는 17세부터 시작합니다.
요셉이 등장하는 17세의 나이에 그의 성격은 무례히 행하는 것부터 나옵니다.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 칠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로 더불어 함께 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창세기37:2)”
요셉은 17세에 버릇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즉 무례히 행하는 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무례함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일일이 일러바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의 과실을 두고보지 못하고
일러바친다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은 예의바르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게다가 요셉은 눈치도 없어서 자기의 꿈꾼 것을 형들에게 바로바로
이야기함으로 형들이 요셉을 더욱 미워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창세기37:5)”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여러 아들보다 요셉을 깊이 사랑하였습니다.
야곱이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지어주었습니다.
형들이 아비 야곱이 그들보다 요셉을 사랑함을 보고 요셉을 미워하였습니다.
요셉은 형들보다 사랑을 많이 받으니까 버릇 없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형들에게 말을 함부러 하고 형들에게 미운 짓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례히 행하는 요셉”을 본 형들의 마음에는 미움만 가득하였습니다.
요셉이 두 번 꿈꾼 것을 형들에게 말하는 것은 불난데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
더욱 요셉을 미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형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꿈을 주심으로 그 꿈이 성취될때까지
자아파쇄를 하게 함으로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가 되게 하십니다.
요셉은 무례히 행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꿈이 요셉을 이끌어 가는 고난의 수레를 타게 하였습니다.
요셉은 꿈 때문에 꿈쟁이가 되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형들이 무례히 행하는 요셉이 얼마나 미웠으면 죽이고자 하겠습니까?
형들이 요셉을 잡아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마침 이스마엘 상인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형 유다가 말하였습니다.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할까(창세기37:26)”
사랑하는 여러분, 죽이시는 것도 하나님이시고 살리시는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형제들이 유다의 말을 청종하여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려 은 이십개에 팔아버렸습니다.
17세의 무례히 행하는 요셉을 능히 다스리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꿈을 주심으로 하나님은 요셉을 다루심으로
훗날 그는 무례히 행치 아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연단을 통하여
무례히 행치 아니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39세의 영적성숙 요셉이 무례히 행치 아니함
요셉은 17세에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은 요셉이 30세에 애굽의 전국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어
39세에 형들이 기근의 양식을 구하여 애굽에 왔다가
총리된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17세에 요셉은 애굽의 노예로 은 이십 개에 팔려갔습니다.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으로 노예가 되었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하여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다가 실패하니까
살인미수범으로 고발당하여 감옥살이 2년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왕이 꿈 꾼 것을 해석하니까
바로가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요셉을 전국을 다스리는 총리되게 하였습니다.
요셉이 30세에 총리되어 전국을 다스렸습니다.
바로왕의 꿈대로 7년 풍년에 곡식을 저장하게 하였습니다.
7년 풍년 후 7년 흉년의 2년 요셉의 나이 39세에 형들이 곡식을 구하러
애굽에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리었습니다.
2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요셉은 형들임을 알아보았습니다.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엎드려 절하매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 아나 …
(창세기42:6~7)”
애굽 총리 요셉이 형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밝힐 때에
요셉은 17세에 무례히 행하는 모습은 없었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의 말씀대로
형들에게 예의바르고 공손하게 대하였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영적성숙함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례히 행치 아니하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랑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기도드립니다. 아멘.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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