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日本은 본래 한반도의 명칭이다.
일본의 요시다도고(吉田東伍)가 펴 낸 대일본지명사서大日本地名辭書의 국호론國號論과 명치明治 33년 1월에 발간된 역사책(歷史雜誌)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일본日本'이라는 이름은 삼한三韓사람들이 먼저 쓰던 것인데 그 이름이 아름답기 때문에 우리나라(일본)의 나라이름으로 정했다. 이는 메이지(明治)시대의 석학들이 입을 모아 증언하고 있다. 현재의 일본이 일본이란 국호를 사용한 것은 7세기 후반 백제가 멸망한 이후부터였다.
원래 중국 대륙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한三韓이 있을 때 한반도를 일본日本이라 불렀다는 말이다. 이후 삼한이 한반도로 밀려 나면서 일본日本이라는 명칭은 왜倭의 열도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본 고대 사학자 요시다 토오고(吉田東伍•와세대 대학)는 “일본日本은 원래 백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라 한다.
2010년 중국에서 당나라 때 관리였던 백제인 “예군禰軍”의 비석이 발견되었는데 이 비석에서 기원후 678년에 세워진 비석에서 ‘日本’이란 글자가 발견되면서 일본 언론은 일본이란 국명이 사용된 가장 오래된 역사적 기록이라며 대서 특필하였다. 일본日本이라는 명칭은 7~8세기경 율령제 도입을 전후하여 발생한 것으로, 공식적으로는 701년 다이호 율령律令을 통해 야마토 정권 최초의 국호가 확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 전까지 일본의 정식 국호는 ‘왜倭’였다.
그런데 2011년 탁본과 비문을 해석한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그동안 역사기록에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가 밝혀졌다.
서기 660년 나당연합군이 산동山東에 있는 사비성 총공격에 나선다. 네 방향으로 나누어 사비성을 향한 적군의 공격이 집중되고 전세가 불리해지자, 의자왕은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태자와 함께 웅진성으로 피신했다. 이때 웅진성의 총책임자는 예식진禰寔進 혹은 예식祢植이었는데 이번에 발견된 묘지명의 “예군禰軍”은 예식진의 2살 많은 형이였다.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 맞서 결사항전을 독려하고 있을 때 예군, 예식진 형제는 반란을 일으킨다. 예씨 형제는 의자왕과 태자를 사로잡아 사비성에 있던 당나라 총사령관 소정방에게 바쳤다. 이로써 700년 역사의 백제는 허망하게 멸망하고 의자왕과 태자를 비롯한 수많은 백제 왕족,귀족,백성들이 당나라로 끌려가 비참한 생을 마감했다.
우리 한韓민족이 해(日)를 좋아하고 예로부터 '해 돋는 땅' 즉 '해 돋는 아침의 땅'이라는 뜻에서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동쪽을 바라보았을 때 일본 땅은 분명히 '해가 돋는 곳의 밑'이다. 그래서 부르는 말이 '해의 밑> 해 밑'이라 불렀고 그 '해 밑'을 한자로 옮기면 바로'일본日本'이요, 또 우리말로 '해돋이'라는 말이 '해돋이> 해닫이> 히다지(日立)'가 된다. 따라서 일본인들 스스로가 자기네 나라를 '해 밑'이라는 뜻의 일본日本으로 쓰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해’는 고구려의 왕성王姓이다. 고구려는 해모수가 세운 나라이다. 고씨高氏 역시 해와 같은 뜻이다. 고高는 원래 산스크리트어 슈리>수리를 의역한 것이며, 우리가 수릿날이라 부르는 단오端午는 해의 고도가 가장 높은 날이다. 만卍은 산스크리트어로 슈리밧사Shrivatsa라 하며 우리말로는 수레바퀴이다. 아리인족(아리랑족)이 발명한 바퀴살을 붙인 고속회전 바퀴를 상징하는 글자이다. 과거 타림분지에 있던 고차국高車國이 바로 슈리밧사인 것이다. 현재 인도국기에 이 슈리밧사가 그려져 있다. 불교에서는 보통 법륜法輪이라 부른다. 이런 면에서 일본日本은 고구려의 아래라는 뜻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