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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에 얽긴 추억들 4 이대통령이 연설 중 단거리에서 저격을 당할 뻔 했는데 권총은 불발로 끝나고 의협심이 강한 범인 유시태옹은 잡혀 사형되는데 총과 실탄을 오랫동안 땅속에 묻어두니 습기에 아마도 총속의 격침을 밀어내는 코일스프링은 녹이 쓴 후 가늘어져 장력이 약해지니 기폭제를 점화하지 못했을 것이고 뇌관의 화약은 습기가 들어가서 부식 되어 불발탄 이었으리라 생각되는데 쇠를 땅속에 묻어두면 녹이쓸어서 가늘어지게 되었을것이 총알이 모두 4발밖에 없어서 연습사격을 그치지를 않고 실사(實射)를 하는 실수를 범한 셈이다. 화약도 수명이 있나본데 한국에는 못쓰는 화약10만톤이 있다하며 이것으로 비료를 만든다고 했다. 그가 사용했던 권총은 스미스&웨슨 이었으며 나도 시합용으로 만든 연마가 잘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10연발 신품 자동권총을 사 본적이 있는데(270불)힘이 센 미국인들에게는 적합하지만 나에겐 타깃을 향하여 오른손을 뻗쳐서 겨눌적에 무거움을 느껴서 1주일 만에 총포사에 중고품가격(100불 손해)으로 되팔아 버리고 올림픽경기에 사용하는 이탈리아산 Benelli 5연발 자동권총으로 바꿨다. 위의 총기류 케탈로그의 표지에 나오는 엽총은 쌍대이며 방아쇠가 2개가 있는데 손가락 2개를 사용하며 오래전에는 아버님께서 영국산 상표에다가 수류탄그림을 그려넣은 총열길이 28인치의 'side by slde'쌍대 총을 사용하시다가 팔고 41인치 외대 10번[10 gage]일본산'구리나'라는 총을 사용하시다가 치과의사에게 파시고 미국으로 들어 오셨다. **납 1파운드로 10발의 산탄총알을 만들면 '10번'이 되는데 대게의 총은 12게이지가 되는데 멧돼지는 충알이 1개, 노루는 6개, 꿩은 80개가 한꺼번에 사출이 되는데 꿩은 엽사로 부터 멀어지는 나는것을 쏘니 대게가 꼬리쪽을 맞치게 된다.** 내가 미국을 오기전에 이 긴총으로 감천냇가 방천에 않은 들새무리를 무릎쏴 자세로 쏘아서 한발로 18마리를 잡은 일이 있는데 총알은 크기가 좁쌀만큼큰것이 수백개가 들어 있었다. 위의 총들은 모두가 타킷을 쏘는 명중율이 좋은 시합용 단발 총이 되는데 자세히 보면 'cheek pad'라고 뺨에다가 대는 스폰지가 있다. 내가 2정을 소유했었는데 아는 사람끼리는 양도가 가능하니 1개는 사격선수에게 싼가격 100불에 팔았다. 단 의류는 피붓병을 옮긴다 하여 반품을 하면 다시 팔지 못한다. 장총, 엽총, 권총의 영수증은 햄버거샵의 영수증같이 간단하지만 일단 사고 나면 중고로 변하니 반품이 안 되는 것이 보통 물건 과 다른 점이다. 나의 손아래 동서는 여러정의 총기를 소유했는데 큰동생이 취미로 사격장에서 사격연습을 해보려고 새로산 스미스웨슨 자동권총. 지금은 총기휴대법이 강화가 되어서 권총을 사려면 한사람의 보증 싸인이 필요하단다. 젊은 아낙들은 붉은 천으로 끝동과 옷고름을 매며 모든 저고리는 몸통과 소매가 완전히 T자 모양으로 되어 지금의 옷같이 아랫쪽으로 젖혀지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광목(廣木)은 기계로 짠 넓은 천을 말하는데 늙은이들은 대게 흰옷을 입게 되며, 모든 핫(솜)저고리는 속옷고름이 있고 단추는 헝겊을 조그맣게 똘똘 뭉쳐서 만들고 남자의 저고리에는 안주머니가 달려있으며 조끼를 입었다. 빨래는 방망이로 쳐서 헹구어 말린 후에는 풀을 먹이는데(다음에 때가 잘 빠진다) 다듬이 돌에 얹어놓고 펴지라고 방망이 두개로 두드리기도 하고 발로 밟기도 하며 새벽녘에 바깥에 내어놓아 이슬을 맞힌 후 둥그런 다리미로 물을 입으로 뿜어가며 두 사람이 당기면서 다리미질하여 농속에 보관을 하는데 몸집이 작던 어린시절에는 내가 농속에 들어가서 낮잠을 자기도 했다. 그리고 집집마다 만약 감자가 썩으면 두레우물(움에서 나온 물. 움: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어 비바람이나 추위를 막아 겨울에 화초나 채소를 넣어 두는 곳)가에 내다놓고 물을 부어서 썩힌 다음 가루를 내어서 까만 색깔의 수제비 국을 만들어 먹는데 고구마썩은것을 먹지를 목해도 감자는 먹을 수가 있다. 배고픔으로 바동바동 살던 시절에는 잔칫집에서 주는 음복 도시락에 든 돼지고기의 양으로 그 집 잔치가 융숭한지를 가늠하게 되는데 내가 이곳에 온 후 아버님 회갑잔치를 하셨는데 비록 나는 참석을 못했지만 내가 돈을 보내 광청(廣淸)이 되어 소 반 마리를 첨가하객이 800명 정도 참석을 했다고 하며 1인당 약 1근씩을 도시락에 넣었으니(전무후무)모두들 흡족해 했단다. 여자들이 혹시 코고무신이라도 신는 날에는 마당발(평발)이 되어 발의 중간이 덮이지 않아 모양을 내려고 버선을 신으려면 고무신이 좁아서 발의 갑갑함을 더하게 된다. 버선을 말(襪)이라고 부르는데 서양에서 왔다고 양말[洋襪]말이라고 현재까지도 이 말을 사용하고 있으며 양재기(洋瓷器, 양자기), 양복, 양약, 양배추, 양주, 양파 등이 있는데 키큰 미루나무는 미류(美柳; 미국버들)에서 온 것일까? 비둘기 <b> </b> 우리 집은 해방 후 부터 시작한 담배 장사를 수 십 년 동안 했는데 시대별로 값이 가장 싼 봉지에 든 담배는 겉봉에 학이 그려진 장수연(長壽煙), 벼 이삭이 그려진 풍년초(豊年草) 등이며 궐련(卷煙)으로는 공작, 샛별, 백구(白鷗; 갈매기), 파랑새(下), 탑[中, pagoda 塔], 아리랑(上, 필터가 들어 있다), 진달래, 신탄진(新灘津; 담배공장이 있는 지역 이름)등이 있으며 어머님 말씀이 해방 전에는 삐죵(일어, Pigeon; 비둘기)이라는 일본 담배가 있었단다. 1954년에 있었던‘건설’이라는 담배의 광고가 있는 달력의 뒷부분을 사진틀 속의 사진 배경에 으로 사용하여 지금도 가지고 있으며 그때는 담배 갑을 만져 보아 다른 것 보다 더 딱딱하게 느껴지면 그것은 21개비가 들어있는데, 이유는 여공들이 손으로 한 움큼씩 집어서 담기 때문에 실수에 의한 것이다. 어느 추석날 담배 맛을 너무나 잘 아는 친구들이 나를 끌어들이려는 간절한 바-람 때문에 그를 싸하게 미꾸라지가 다래끼를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듯 동료를 만들려는 말을 하여 나도 한 모금 빨아 흠뻑 들어 마셨는데 머리가 핑 돌며 쓰러질 뻔하니 공포와 거부반응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의 흡연이 됐다. 군에 있을 때에도 담배가 매일 반 갑 씩 나와 흡연기회는 많았지만 그냥 남에게 주니 나의 심지(心志)는 그때도 굳어져 있어서 불요불굴(不撓不屈; 꺾이거나 휘어짐이 없다)의 확신은 이미 서 있었고 휴가 전에는 모아두었다가 휴가 때 아버님께 갖다 드렸는데 돈 가치야 얼마 안 되겠지만 무척이나 기뻐 하셨다. 어떤 동료는 유름(곡식을 보관하는 창고)성이 없어 줄담배로 다 태워 버리고는 전방에는 담배를 살수도 없으니 혹시 남이 버린 공초라도 땅에 떨어졌거니 하여 빈 마당을 꼭 두루미가 골뱅이를 애타게 찾으려는 양 천천히 걸으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했다. 필터가 없는 담배는 짧게 피울 수가 없으니 풀줄기를 꺾어서 담배를 그 사이에다가 끼우고는 입술이 뜨거울 정도로 짧은 공초를 만드니 거의 완전히 태우는 셈이다. 또 나에게 얽힌 음주 이야기는 동네 또래의 동무들의 꾐에 빠져 송정속의 묘 앞, 이끼 낀 상석 위에서 홀짝홀짝 맛도 모르고 여러 번 마신 깡 소주에 고주망태(苦酒; 쓴술 망태기)가 되고 독이 되어 가슴 진통이 있었고 반 실명이 되어 하늘이 캄캄하게 보였다. 큰 대자로 땅바닥에 들어 누워 이승과 저승을 오간일이 있은 후 지금까지도 흡연과 음주는 나에게 뜻하지 않게 전무후무하게 평생효험을 보는 예방 주사가 되는데 지금도 모임에 가면 으레 술이 있기 마련이지만 나는 마시지 못한다. 그 시절 읽는 소설은 가짓수가 한정이 되어 절개를 지키는 사람을 찬양하고 탐관오리를 증오하여 벌주는 춘향뎐이 있었고 옥루몽, 유충렬뎐, 숙영낭자전 토정비결 등 시장의 노점에서 파는 것들인데 고전 소설의 문장의 끝은 대게 ……더라. 또는 ……이라. 로 회상을 전달, 미완의 형태로 진행 중 임으로 종결을 맺엇다. 중국을 모방한 조선시대의 책들은 지금과는 다르게 표지가 맨 뒷장이 되며 쪽 번호도 뒤에서 시작이고, 글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 읽었으며 희미한 호롱불에 바짝 갖다 대고 구성지게 읽노라면 이를 듣는 여러 사람들은 자연히 책의 내용 속으로 같이 빠져들게 마련이며 가끔은 문풍지도 화음을 제공한다. 소설속의 옛 여인상을 볼때 가장 보수적인 윤리를 가진 게 춘향전이고 가장 진보적인 여성해방을 추구하는 것이 장끼전이 된다. 장끼가 덫에 치어 죽어가면서도 “눈을 비로 쓴 흔적이 있고 사람의 발자국이 있는 곳의 붉은 콩을 먹지 말라.”는 꾀 많은 까투리의 간청은 아랑곳없이 “천산에 조비절 이오 만경에 인종멸(千山 鳥飛絶 萬頃 人種滅; 모든 산에 새가 날지 않고 만 이랑에 사람이 다 죽었다)이라” 대갈일성 (大喝一聲)으로 고집만 세우다가 자기의 판단 착오로 덫에 치어 죽게 되는데 “상부(喪夫)잦은 네 가문에 장가 간게 내실수다.” 라고 마지막 한탄을 하는데 자기가 죽는 것은 까투리의 팔자소관으로 덮어씌워 풍자적으로 이끌어낸 소설이 된다. 죽어 가면서 까지도 까투리에게 수절을 바라지만 문상을 온 다른 장끼에게 선뜻 마음이 끌려 결국 까투리는 부엉이, 오리, 산까치등의 청혼을 뿌리치고 유유상종(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이라고 다른 홀아비 장끼와 전격적으로 그 자리에서 재혼을 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여성 해방의 갈구를 은연중 내포하고 있었으며 일취월장으로 오늘에 이르게 되는 것 같다. 문상이라는 말끝에 생각나는 것으로 초상집에서는 밤새도록 곡성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니‘어이 어이’ 가 아니면 “아이고 아이고”를 가족이교대로 얼마나 오래 외치느냐가 효의 잣대이었는데 지금은 누군가가 돈을 받고 외쳐주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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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옛일이 생각키웁니다.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알고계시네요.
엄마에게 옥루몽 읽어드릴때 동네 친구님들 깉이모여 울고불고 했던기억이 새롭습니다
옥루몽도있고 홍루몽도 있답니다.
저희도 외가가 담배잎 농사를 지은 기억이 나네요
흙으로 지은 곳에 널어 말리기도 하고
지금도 외가 하면 아련하게 그리워 오는 풍경들이 미소를 일게 만든답니다
선배님은 엄청 많은 경험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지난일들이 스치듯 지나갑니다
특히 초상집 곡소리가
먼 옛날을 기억하게 하네요
제가 알지 못하는 상식들을 글을통해 접해봅니다
수고하셨어요 ㅎ
이모두가 세대가 변하니 , 모든이사회풍습도 변합니다!
모든이야기 잘 읽고갑니다.
한마디로 대단하십니다. 이건 기억이 나네요.
백양 20원, 아리랑 35원, 파고다 50원, 신탄진 60원. 기억이 희미하지만. ㅋ
여러모로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