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3일 묵상 본문 : 갈라디아서 3장 10절 - 18절 - 복음의 언약을 따라 온전한 관계 회복의 모습을 소망하며 믿음을 지키는 자 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이어지는 가을의 비는 점점 기온을 내리고 겨울을 준비하도록 만드네요.
변화하는 일기 가운데 잘 적응하며 영적으로도 건강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오늘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오늘도 만나는 사람들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 되기를 소망합니다.
복음을 통해 생명을 얻고 누릴 수 있음을 기억하고 주와 교제하듯 삶을 나누게 하옵소서.
주어진 삶의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게 하시고 세월을 아끼는 자로 서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사랑으로 붙드시고 생명의 길로 이끄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율법주의자들을 의미하며 바울은 이들이 저주 아래에 있다고 선언한다.(신27:26) 그 이유는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않으면 죄를 지은 짓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은 당시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을 완전히 지켜 의롭게 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제시하면서 하박국 선지자가 선포했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라는(합2:4) 메시지를 선포한다.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바울은 율법과 믿음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을 제시하면서 율법으로 살려고 하는 자들은 믿음으로 살 수 없음을 선언한다.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대신하여 율법의 저주를 받으심으로써 속량하셨다고 선포하고 신 21:23절을 인용하여 십자가의 죽음이 저주 받음에 대한 상징적 표현임을 말한다. 속량은 대신 값을 지불하다는 의미로 십자가 사건은 저주의 사건이지만 이는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저주받을 자가 된 것이 아니라 대신 저주를 받음으로 속량하신 것임을 보여준다.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목적은 아브라함의 복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방인에게 전달되는 것과 믿음을 통해 성령의 약속(오순절 성령강림)을 받도록 하기 위함임을 보여준다.
15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바울은 사람 사이에 언약도 함부로 변개하거나 폐지시키거나 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제시하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도 후에 세워진 율법이 변경시킬 수 없다고 설명한다.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가운데 자손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 자손은 이삭이 아닌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등장할 그리스도라고 해석하여 전달한다.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씨를 후손 전체로 보지 않고 단수로써 한 사람, 즉 그리스도로 해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정하신 언약은 430년 후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가운데 세우신 율법이 바꾸거나 폐기할 수 없고 과거의 약속을 헛된 것으로 돌릴 수 없음을 선포한다.
430년의 기간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때부터가 아닌 언약이 구체적으로 현실화 된 야곱의 때부터 계수한 기간으로 본다. 행7:6절에는 가나안과 애굽의 체류 기간을 400년으로 보고 있으며 출12:40절에는 430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유업은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할당된 거룩한 땅의 몫을 의미하며 종말론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단어이다. 바울은 성도가 얻게 될 유업이 단순히 가나안 땅에 대한 의미가 아니라 장차 들어가게 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임을 선포한다. 유업은 약속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기에 후에 주어진 율법을 지켜서 얻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믿음으로 얻는 것임을 보여준다.
나의 묵상
바울은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임을 제시한다.
그 이유는 사람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다면 그 율법은 사람을 죄에 대한 심판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음에 이르는 것이 주어진 운명임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운명을 바꾸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죽음을 맛보셨고 죄인들의 죄 값을 속량하셨기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됨을 선포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를 아는 삶의 과정을 통해 세워진다.
사람에 대한 믿음도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면서 더 깊어지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도 그리스도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감으로써 얻는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아는 영생의 삶을 누리게 될 때 그의 믿음은 더욱 견고하게 세워진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언약을 통해 더 깊이 깨닫고 발견했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속에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 있음을 발견했으며 그 그리스도가 바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자손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또한 언약을 성취하신 분이 그리스도이라는 사실도 제시하면서 율법 이전에 세워진 언약과 그 언약을 믿음으로 인해 의로운 자로 세워지는 것을 선포했던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은 언약을 체결하시고 신실하게 그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시기에 다른 어떤 것도 언약을 파기하거나 변개하거나 무효화 시킬 수 없음을 선포한다.
하나님의 언약과 그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은 종말론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나라와 심판과 구원의 성취도 동일하게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언약의 내용에 대해 오늘날의 성도들은 무지함의 모습으로 일관한다.
하나님이 무엇을 약속하셨는가에 대한 이해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도록 도와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반응하는 모습이 많기 때문이다.
언약에 대한 무지는 맹목적 믿음으로 향하게 만들고 그 결과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불신으로 이어지며 관계의 무너짐을 열매로 맺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멀어지고 성도들에게 실망하며 왜곡된 교회를 비판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열심 있는 행위를 원하시지 않고 회복된 관계를 원하신다.
그리고 회복된 관계에 있는 백성들을 기뻐하시고 즐거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행위가 아닌 회복된 관계 속에서 언약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는 모습임을 고백하게 하신다.
스바냐 선지자는 이것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기쁨의 모습을 증거 한다.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4~16)
주의 말씀 앞에 죄악으로 깨어진 관계의 회복을 소망하는 자로 사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되고 그 회복을 이루실 주를 바라보며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성도의 사명임을 고백하게 하신다.
오늘도 주와 함께 회복된 관계를 세우는 자로 설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지체들도 주와 온전한 관계를 세우고 회복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맹목적 신앙은 율법에 의존하여 생명 없는 삶을 살게 만듭니다.
지난 날 이러한 신앙의 모습이 얼마나 많았는지 되돌아보며 생명을 누리지 못하는 삶에서 벗어나게 하심이 감사의 조건이며 기쁨의 이유가 됨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살아가는 본성은 쉽게 버려지지 않습니다.
연약하고 무지한 자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주의 지혜를 따라 생명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바른 관계 가운데 거하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날마다 복음을 통해 주와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생명의 자리에 서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그 생명의 자리에서 주의 은혜를 나누며 더욱 주를 알아가는 자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음을 지켜 주시고 복음으로 드러나는 주님을 더욱 증거 하며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만나는 모든 이들과 복음을 이야기하게 하시고 주의 은혜를 드러내길 원합니다.
마음과 생각이 주께로 향하게 하시며 주님의 주 되심을 선포하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은혜와 진리로 이끌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