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릉지로 이뤄진 208.8미터의 낮은 산 고봉산, 그리고 그 옆에 길게 드러누운 134.5미터의 야산 황룡산. 그동안 고봉산을 지키기 위해 애쓴 많은 사람들의 눈물겨운 호소에도 불구하고 고봉산과 황룡산은 지금 위기에 놓여 있다. 작은 산, 보잘것없어 보이는 산에 무엇이 이리도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역사와 생태라는 잣대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산에 대한 막연한 녹색심(綠色心)때문인가, 아니면 내리막길로 접어든 일산 도시민들의 삶의 질감 때문인가. 우선 고봉산을 제대로 알자. 그리고 지킬 것은 지키자. 나아가 복원해야 할 것은 다시 제자리에 놓자. 그래서 망가진 고봉산을 현상유지 하는데 급급해 하지말고 적극적으로 되살리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자.
엄밀히 말하면 고봉산은 일산신도시에 있지 않다. 본일산의 일산동과 성석동 사이에 있는 산이다.
이 산은 그러나 사방으로 뻗어 있으며 일산신도시가 건설되기 전에 험하기로 악명(?)을 떨쳤던 산이다. 산자락이 너무 크고 험해서 군부대 외에는 달리 찾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일산신도시가 생기면서 가장 큰 자락인 정발산을 잃었다. 중산마을이 개발되면서 또 하나의 큰 자락이던 황룡산을 잃었다. 성석동 쪽으로 난 도로와 가구공단으로 견달산을 잃었고 풍동 개발로 매봉을 잃었다. 이제 덩그러니 몸둥아리 하나만 남은 고봉산, 그 비운의 결말은 무엇인가.
고봉산은 백두대간에서 분지된 한북정맥이 끊어질 듯 이어지며 파주쪽으로 기간봉을 만들고 한강하구쪽으로는 고봉산을 만들어 불끈 솟아올랐다가 끝을 맺는 마지막 봉우리다. 이 산자락에 기대어 살던 고양사람들에게는 어머니의 산(母山)이었다. 그러나 옛 명성은 이제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산은 온통 건물과 도로로 고립되었다.
물길도 끊기고 약수물도 말라간다. 산꼭대기에는 거대한 쇠말뚝 탑이 박혀 정기를 잃었고 영험하던 산의 기운에 깃든 옛 조상들의 무덤만 세간에 회자될 뿐이다. 고봉산을 오르는 신도시 사람들에게는 그저 건강에 좋고 살빼기 좋은 등산코스일 뿐 별 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만신창이가 된 고봉산을 살릴 수 있는 묘안은 무엇일까.
등산코스? 그 이상! 꿈틀꿈틀 생명들
우선 필자가 안내하는 대로 아이 손잡고 고봉산을 올라보자. 시작점은 송학정 활터가 좋겠다. 눈앞에 2미터를 훌쩍 넘는 갈대와 줄, 애기부들이 들어온다. 갈대습지 양쪽으로 개울이 흐르고 앞뒤로 계단식 논이 있다. 고마리, 수염가래, 물달개비, 여뀌바늘, 벗풀이 자라고 논 윗 부분에 있는 작은 물웅덩이에는 가래, 애기가래, 말즘, 물수세미, 검정말, 골풀, 삿갓사초, 눈비녀골풀, 개여뀌, 개석잠풀, 물양지꽃, 박하, 털부처꽃이 자란다. 이런 수생식물들이 자라는 곳을 습지라고 부른다.
산아래 물이 고이는 곳은 늘 논으로 개간되어 왔다.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다 논을 방치하면 또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다양한 수생식물들이 자라고 수서곤충이나 달팽이류가 살아간다. 고봉산 습지는 논과 갈대밭, 작은 여울과 소가 있다.
이렇게 서식처조건이 다양하면 이곳에 깃든 생명들도 다양하다. 이런 곳을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반딧불이다. 그동안 채집해서 동정된 수서동물은 장구애비, 메추리장구애비, 게아재비, 물자라, 송장헤엄치게, 소금쟁이, 검정물방개, 물땡땡이, 물진드기, 왕잠자리 유충, 밀잠자리 유충, 실잠자리 유충, 하루살이 유충, 파리매, 애반딧불이, 물달팽이, 또아리물달팽이와 무자치, 살모사, 참개구리, 청개구리, 송사리 등이다. 이 중에서 습지 주변 개발로 물길이 막히자 애반딧불이는 2001년 8월 이후 자취를 감췄다.
무자비한 택지개발의 광풍이 휘몰아치면서 반대운동이 거세지자 개발주체는 조그만 인공연못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서식지가 단순해지면 그에 깃든 생명들도 단순해짐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이여. 이곳의 논과 습지를 그대로 두어야 한다. 그리고 애반딧불이 서식지로 복원하자. 양평의 용문산 반딧불이 복원지를 만든 양평군 관계자들에게 가서 그 안목을 배워서라도 말이다.
숲속 투쟁 한창, 제왕으로 서어나무 등극
이제 산을 오르자. 산 초입 밤나무숲에는 다양한 참나무들이 살고 있다.
잎이 넓고 털이 많은 떡갈나무, 잎자루 길고 잎 뒷면이 흰 갈참나무, 잎자루가 짧고 털이 없는 신갈나무, 잎이 밤나무처럼 생겼지만 뒷면이 하얀 졸참나무가 산다. 과천시에서는 이런 밤나무단지를 생태공원으로 만들고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너무나 뿌듯해 하는 공무원을 보며 왜 그리 부러운지. 고봉산 중턱을 오르다 보면 리기다소나무숲이 제일 먼저 길을 반긴다. 간간이 토종소나무(적송)도 보이지만 이들은 모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바로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가 자라 올라오기 때문에 햇빛과 양분경쟁에서 지고 있는 것이다. 봉우리를 올라서면 참나무 숲이 나오고 이곳에는 산서어나무가 자라고 있다. 숲속 나무들의 투쟁이 한창인 것이다.
해가 잘 드는 곳에서 양수림인 소나무들이 자라다가 소나무그늘이 지고 어치나 다람쥐가 도토리를 소나무그늘에 저장해 두면 그 중 일부가 싹을 틔운다.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음수림인 참나무들이 자라서 잎으로 소나무를 덮어 응달을 만들고 양수림인 소나무는 빛을 받으려고 발버둥치며 구부러지다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쓰러진다.
넓은 잎을 가진 참나무들은 빛이 거의 들지 못하면서 씨앗을 틔우지 못하고 대신 서어나무가 싹이 트기 시작한다. 서어나무는 참나무 보다 더 빛이 적어도 싹이 트는 극상 음수림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서어나무가 숲을 이루면 참나무도 소나무신세가 되어 쓰러지고 숲의 제왕은 서어나무가 된다.
그러나 권력은 무상한 법. 뿌리가 약한 서어나무는 비바람에 쓰러지고 버섯들은 이를 분해해 흙으로 돌려보낸다. 해가 들기 시작하면서 양지쪽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투쟁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숲의 천이’라 부른다.
그렇게 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영천사다. 은사시나무가 껍질에 다이아몬드 무늬를 반짝이며 우리를 맞는다. 주변에 인동, 산괴불주머니, 꿀풀이 인사한다. 운이 좋으면 뱀허물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군부대와 절집 차량 때문에 산 뒤로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연결되어 산은 신나찌주의자의 이마처럼 망가져 버렸다. 영천사에는 영험한 약수물이 있다. 그러나 요즘 이 약수는 말라가고 있다. 약수터 위 아래로 도로를 내면서 물길이 끊기고 배수로를 만들어 빗물이 스며들 틈이 없이 버려진 때문이다. 절 집 앞에는 오래된 느티나무와 일본목련만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섰다.
작은 풀씨도 이동할 길 찾는다…황룡산과 잇기
영천사를 끼고 오른쪽으로 오르면 두갈래 길이 나타난다. 모두 중산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오른쪽 산길을 오르면 정상을 돌아 장사바위로 간다. 가다보면 상수리나무 군락, 잣나무군락, 생강나무군락이 나타나고 약초인 삽주가 간간이 고개를 내민다. 이곳에서는 버섯도 많다. 습하고 그늘진 나무터널이 있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진한 나무 향에 정신이 맑아진다. 장사바위로 가다보면 정상을 코앞에 두고 성석동 쪽으로 넘어가야 한다. 군부대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철조망 너머 철탑을 보며 돌아가는 마음은 씁쓸하다. 이제는 철탑을 옮길 때도 되지 않았나. 그 많은 국방예산은 다 무엇하고 고양의 모산 한가운데 이리도 큰 쇠말뚝을 박아 둔단 말인가. 산 정상을 돌려달라. 나무를 밀어내고 씌운 아스팔트를 걷어라.
마음을 쓸어 내리고 장사바위로 가보면 굴참나무군락이 나타난다. 자연성이 뛰어난 곳이다. 그길로 내려가면 수연약수다. 하지만 오늘은 되돌아 중산마을 쪽으로 나와 보자.
중산마을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시야가 확 트이면서 억새군락이 우리를 반긴다. 주변에 간간이 참나무가 군생하고 헬기장이 하나 나타나면 여기서 일산신도시 쪽을 보라. 길게 누어 있는 고봉산 자락이 보인다. 바로 일산 2지구 개발로 사라질 생태축이다. 이 자락의 끝에 풍동 매봉이 보이고 바로 다음 정발산이 보이며 그 뒤로 한강이 누워 있다. 자식 같은 매봉과 정발산을 잃은 고봉의 마지막 손짓인양 길게 누워 있는 자락을 보며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제발 저 자락만은 살려 주소서.
이제 탄현 쪽을 내려다보자. 길게 누운 산자락은 황룡산 자락과 연결된 듯 보이며 멀리 심학산이 손짓하고 있다. 그 길을 따라 가보자. 한껏 늘어선 누리장나무군락이 열병식을 하듯 줄지어 있다. 잎만 조금 따도 밤꽃같은 냄새가 난다. 한방에서는 취오동이라해서 약초로도 쓰며 꽃과 잎 생김새도 제법이다. 그러나 이 길은 내려가다 보면 금새 총소리가 들리고 연결된 듯 보이던 황룡산으로는 아무리 가려해도 가지 못한다. 중산마을이 끝나는 지점 턱 하니 중산대로가 길을 막기 때문이다. 고개 들어 보면 금정굴푯말과 함께 장승들만이 길 건너편에 우두커니 서있다.
야생동물, 물 마시는 데도 목숨 걸어
고봉산 굽이굽이 흐르는 능선은 이제 모두 끊겼다. 산길이 끊기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작은 풀씨하나도 이동하기 힘들다.
하지만 고봉산과 황룡산의 허리를 이어주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탄현쪽 황룡산이 시작되는 초입에 고봉산과 가장 가까운 고개길이 있다. 이곳이 바로 비극의 금정굴이다. 금정굴을 추모공원으로 만들고 이 길을 연육교 이으면 어떨까. 기왕 탄현 근린공원을 만든다면 고봉산 생태가교까지 만들어 산길을 이어주기를 제안한다. 고봉산의 반쪽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고 덩달아 끊어진 산길도 살리고 야생동식물도 이어질 수 있는 생명의 다리가 놓이면 고봉은 잃었던 황룡을 되찾는 것이 될 것이다.
고봉산에 물이 없어지고 있다. 고봉산에서 흘러드는 물은 대부분 배수지를 통해 버려진다. 그나마 송학정 활터 쪽 습지로 물이 들면서 논과 갈대밭을 적시지만 이 마저 아파트와 학교가 들어서면서 배수구로 빼 버리고 있다. 습지가 사라지면 고봉산의 많은 동물들은 더 이상 마실 물이 없다.
남산에 풀어준 고라니와 토끼가 너무나 잘 만들어진 배수로 때문에 목말라 죽은 일을 떠올리며 이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두렵다. 고봉산에 물길을 자르지 말라. 논이든 수로든 산아래 저습지든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야생동물들이 마실 물이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산 반대쪽인 성석동쪽에서 나오는 물은 진밭을 지나 장진천으로 흐르거나 풍동을 지나 도촌천으로 흘러든다.
이 물길은 그러나 고봉산에 깃든 생명들이 마시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폐곡선 모양 도로가 휘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물길을 복원해야 한다. 일산2지구 개발주체는 작은 연못하나 덩그러니 만들고 끝낼 것이 아니라 없어지는 습지의 두배만큼의 습지를 만들고 물길을 복원하라.
허리 끊겼어도 꿈틀대는 생명들
고봉산과 황룡산에 대한 10문 10답
1. 고봉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高峰(높을 고, 봉우리 봉) 또는 高烽(높을 고, 봉화 봉) 일산지역에서는 가장 높은 봉오리 (208.8m)이며 봉화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2. 고봉산은 습지가 있나?
고봉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은 성석동 쪽으로 해서 진밭을 거쳐 흐르는 물줄기가 있고 농사를 짓기 위해 끌어들인 물길이 송학정터를 통해 본일산 지역을 지나 한강으로 유입된다. 영천사 부근에서 내려오는 물길은 사실상 끊겼다.
3. 고봉산에는 정말 반딧불이가 살까?
2001년 8월 초순 송학정터 옆 개울에서 애반딧불이 1마리가 마지막으로 채집되었다. 그 후 대림아파트가 분양되고 낚시터가 매립되면서 더 이상 관찰되지 않았다.
4. 고봉산 숲은 정말 보존할 가치가 있는 곳일까?
산 중앙부에 있는 상수리나무군락은 보전가치가 있는 숲(식생등급 4등급)이고 누리장나무, 노린재나무, 쪽동백나무, 생강나무군락이 일부 퍼져 있으며 간혹 산서어나무가 나타난다. 나머지는 밤나무림, 은사시나무림, 리기다소나무림, 잣나무림 등 식재림으로 자연성이 떨어진다.
5. 고봉산에 자생하는 대표적인 풀꽃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봄꽃은 자주잎제비꽃, 남산제비꽃, 애기나리, 여름꽃은 쉽사리, 석잠풀, 참으아리, 꿀풀, 박하, 가을꽃은 이고들빼기, 구절초, 억새, 산국, 겨울꽃은 노루발풀을 들 수 있다.
6. 고봉산을 중심으로하는 생태축은 어떤 것인가?
파주 쪽은 기간봉으로 연결되며 탄현 쪽은 황룡산, 신도시 쪽은 윗풍동의 매봉을 지나 정발산으로 이어지며 원당 쪽으로는 견달산(현달산)이 있다.
7. 황룡산에 습지가 있는가?
범룡골 약수터와 논습지가 있다.
8. 황룡산에 사는 중요한 동식물은?
유혈목이(뱀), 청설모, 으아리, 둥굴레, 신나무, 떡갈나무, 노린재나무
9. 황룡산에 들어설 근린공원의 문제점은?
대규모 식물원의 위치 선정이 잘못되었다. 거주민 보다 관광객용이므로 범룡골보다는 중산대로 쪽으로 만드는 것이 좋다.
10. 대규모 식물원 계획은 타당한가?
현재 온실원이라는 개념으로 아열대 실내 정원형태로 계획되고 있다. 전시효과만을 노린 것 같다. 관광성보다는 주민들을 위한 화훼관련교육과 실습의 공간, 그리고 아열대성 남방계 자생식물을 전시하고 교육할 수 있는 실내 생태교육의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