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연하게 제국의 자존을 지키다
- 왕비의 침전이 없는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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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의 외전구역을 살펴보고 아름다운 꽃담 너머에 자리한 내전구역에 들어섰다 내전구역에는 고종황제의 침전 겸 편전으로 사용하였던 [함녕전]과 외국 사신을 접견하기 위해 지은 [덕홍전]이 자리하고 있다. [경운궁]이 대한제국의 정궁이 되면서 외전과 내전을 구분하여 궁궐로서의 격식을 제대로 갖추게 되었다. 본래 내전으로 들기 위해서는 정문인 [광명문]을 통해야 하나 지금은 [석조전]남쪽 담장 옆으로 옮겨져 있다. 덕수궁의 내전에는 다른 궁궐과 달리 왕비의 침전이 따로 없다. 단지 승하한 명성황후의 신주위패를 모신 [경효전]이 있었으나 소실되고 그 자리에 [덕홍전]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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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홍전] 동편에 쌍둥이 건물인 [함녕전]은 황제의 침전으로 격동기에 일제 침략의 마수로 역사적 시련이 이어졌던 현장이다. 대한제국의 황제에서 강제 퇴위당한 고종황제가 [함녕전]에서 유폐된 생활을 하다 이곳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하였던 것이다. [함녕전] 뒤뜰에서 돌계단 길을 따라 오르니 화사한 분위기의 아름다운 꽃담과 무지개 모양의 [유현문]이 이어지고 그윽한 소나무 숲 후원 속에 [정관헌]이 그림같이 자리하고 있다. [함녕전]에 유폐된 고종황제는 이 솔숲 [정관헌] 정자에 오르내리며 망국의 한을 달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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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녕전 보물 820호
[함녕전(咸寧殿)]은 덕수궁 내전에서 으뜸이 되는 전각이며 고종황제의 역사적 수난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정면 9간 측면 4간 겹처마 팔작지붕인 [함녕전]은 광무 1년(1897)에 고종황제가 아관파천에서 환어하여 황제의 침전으로 건립되었으나, 1904년 이곳에서 대화재가 일어나 소실된 것을, 1905년 1월에 다시 중건하였다.
1904년 4월에 일어난‘함녕전 화재’는 삽시간에 궁 전체로 번져 현재의 덕수궁 일대를 잿더미로 만든 대화재였다. [함녕전]의 온돌 과열로 비롯되었다고 전하는 덕수궁 대화재는 고종황제가 외국공사관과 가까운 덕수궁 [함녕전]에 기거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일제가 사주하여 고의적으로 방화된 것이라는 의혹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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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녕전]은 1907년 순종황제가 [창덕궁]으로 이어하기 전 잠시 거처하였으며, 그 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양위(讓位)당한 고종황제가 [중명전)]에서 돌아와 1919년 1월에 승하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유폐생활을 하였다. 고종황제가 승하하자 [함녕전]은 황제의 시신이 머물던 빈전(殯殿), 신주를 모시던 혼전(魂殿)으로 사용하였으며 [효덕전(孝德殿)]이라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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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홍전
[덕홍전(德弘殿)]은 [함녕전] 옆에 있는 쌍둥이 전각이다. [덕홍전]은 정면 3간 측면 4간의 겹처마에 팔작지붕 건물로 입구에는 간이 월대를 두었으며 정면에는 소맷 돌을 둔 계단을 설치했고, 좌우에도 작은 계단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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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홍전]은 주로 외국 사신들이나 정부대신들을 만나는 접견실로 쓰였다. 그리하여 [덕홍전]의 내부는 넓게 터진 공간에 천정에는 샹들리에와 봉황무늬의 단청을 하고, 황실의 문장(紋章)인 오얏 꽃(李花) 문양 등 화려한 금색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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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곳 [덕홍전] 자리에는 한때 명성황후의 빈전(殯殿)과 혼전(魂殿)으로 쓰였던 [경효전(景孝殿)]이 있었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로 [경효전]을 [수옥헌(漱玉軒,중명전)] 근처로 옮긴 뒤, 1906년에 그 자리에 [덕홍전]을 짓고 1911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개조하였다. 따라서 [덕홍전]은 덕수궁에 남아있는 현존 건물 중에 가장 나중에 지어진 건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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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의 내전은 담과 행각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정문인 [광명문]을 비롯해 [치중문, 응춘문, 선양문, 돈신문, 안창문, 청희문, 봉양문] 등 여러 개의 작은 문들이 있었다. 내전 경내에는 현존하는 [함녕전],[덕홍전] 이외에 [정이재], [양이재] 등의 건물들이 있었으나 일제시대 에 모두 헐려 없어지거나 왜곡 변질되었다. 지금은 [함녕전] 뒤편으로 계단식 정원에 붉은 전 벽돌로 쌓은 굴뚝과 아름다운 장식을 한 [유현문]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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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문
[광명문(光明門)]은 덕수궁 내전의 정문으로 1897년 건립되었으나, 1904년 불에 타 [함녕전]과 더불어 같은 해에 다시 지었다. 1900년에 제작된 덕수궁 평면도를 보면 [대한문]을 들어서 금천교 건너 [중화문]을 향해 가다보면 먼저 [조원문]에 이르게 되고 [조원문] 입구 바로 오른편으로 들어가 [광명문]을 지나[함녕전]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광명문]은 1938년 일제에 의해 [석조전] 별관을 이왕가(李王家)미술관으로 건립되면서 [함녕전] 행각 앞쪽에 세워져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인 [중화문] 남서쪽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현재 [광명문] 문루에는 전혀 무관한 [흥천사(興天寺)동종]과 [신기전기화차(神機箭機火車)],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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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천사(興天寺) 동종(銅鐘)
[흥천사]는 태조의 계비(繼妃) 신덕왕후 강씨(康氏)의 능인 정릉(貞陵)의 동쪽에 자리한 원찰(願刹)이다 정릉의 위치는 현 미국대사관저 일대(서부 황화방 북원(西部 皇華坊 北原) 로 추정된다. 오늘날 덕수궁 일대를 정동(貞洞)이라 부르는 것도 바로 정릉동(貞陵洞)에서 유래했다. 정릉은 태종 9년(1409)에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겨가고 [흥천사]만 도성에 남아 있다가 현종 10년(1669) 신흥사로 개칭하여 성북구 돈암동으로 옮겨 갔다.
[흥천사 동종]은 세조 7년(1461) 주조된 후 흥인문(동대문}과 종루(종각)에 걸려 시각을 알려주다가 다시 광화문에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광화문이 일제에 의해 이전되면서 창경궁으로 다시 옮겨진 뒤 해방이후 이곳 덕수궁 [광명문]의 지붕 밑으로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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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격루(自擊漏) 국보 229호
[자격루]는 물시계로 자동으로 시간을 알리는 시보장치(時報裝置)로 1434년(세종 16년)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처음으로 만들었다. 현재 이곳에 남아 있는 [자격루]는 1536년(중종 31년)에 만든 것으로 창덕궁 보루각(報漏閣)에 설치되었던 [자격루]로 그 일부인 파수호(播水壺) 3개와 수수호(受水壺) 2개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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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전기화차(神機箭機火車)
[신기전기화차]는 신기전(神機箭)이라는 로켓 100발을 장전하여 차례로 발사할 수 있는 틀(신기전기:神機箭機)을 화차(火車)에 탑재(搭載)하여 화차 수레의 발사 각도를 조절한 뒤 동시에 위층에서부터 아래층까지 차례로 100발을 발사했다. 신기전은 고려 말 최무선이 제조한 주화(走火)를 세종 30년(1448년) 개량하여 만든 조선시대 로켓병기이다.
첫댓글 역사 공부가 저절로 되는군요. 교장선생님! 방학 때 저 데리고 다니시면 안 될까요?? 카메라 가방 들고 따라 다닐게요.
김선생님 바쁘신데 가신다면 언제라도 오케 예스 땡큐지요.
뵌지 오랩니다. 언제 나오시나요?
파인님 차 사주신다면 얼른 나가지요. 언제나 맘은 연습실에 있답니다.
잘 안나가셨나요? 저는 제가 잘 안나가서 뵙기가 어려운줄 알았는데요
요즘 가끔 오전 일찍 잠시 들러 연습 쫌 하다 가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궁궐은 언제가도 좋은 곳이죠!
특히 덕수궁은 뒷뜰이 참 아름답더군요. 우람한 고목들이 늘어서서 여름에도 아주 시원하구요.
'피카소전'보러 가면 덕수궁을 다시한번 둘러봐야겠어요~
정성 가득한 좋은 글과 사진, 감사드립니다!!
사진 촬영 나가다보면 음악실이 뒷전이 되네요. 한 번 출사나갔다오면 피곤해서 며칠 쉬고. 몸살도 나고.. 이래 저래.
그래도 쌕은 안 잊어야겠다 생각하고 연습은 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