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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s Letter(182) 2016. 2. 24
주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부부에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23:1-6)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안부를 전합니다. 2016년이 벌써 두 달이 거의 지나가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수고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주님의 평강과 소망이 넘치시기를 기도하며 축복합니다. 금년을 시작하면서 성경읽기 목표를 6독으로 정하였습니다. 오늘아침까지 구약을 다 읽고, 다시 창세기로 돌아와서 30장까지 읽었습니다. 일꾼 수양회 준비와 인도로 다소 지연되었으나 부지런히 읽었습니다. 성경읽기를 통하여 많은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두 달에 일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성취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끝까지 목표를 성취할 수 있도록 기도하여 주세요. 형제 자매들은 금년에 몇 독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요? 중요한 것은 부지런히 읽는 것입니다. 메시지 내용에도 있습니다만, 어떤 분은 지금까지 약 1000독 가까이 읽었답니다. 도저히 불가능하게 느껴지지만 그렇게 본인이 읽었다고 하는데는 경이로울 뿐입니다.
지난 구정 연휴를 맞이하여 일꾼된 형제 자매들과 3 session에 걸쳐 다윗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여 보았습니다. 또한 <영혼에 대한 사랑>에 관하여 2 session을 토의하였습니다. 간증을 통하여 새삼 은혜로운 수양회이었음이 평가되었습니다. 일꾼의 삶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와 동기부여, 영혼에 대한 사랑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번 편지에는 첫 번째 session에 나눈 것을 정리하였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여러분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과제>
과제로 내어 주는 것을 공부하고 묵상하여 Feedback을 하여 주면 감사하겠습니다. 큰 제목과 연관하여 소제목을 붙여주는 과제입니다. 각 제목마다 3가지를 붙여주세요. 그리고 좋은 내용이 묵상되면 그 내용도 첨부하여 주면 감사하겠습니다. 단순히 혼자서 나누는 것보다는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가는 메시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번에 보내주는 3가지 Topic에 대한 것을 참조하여 구상하며 묵상하여 보세요. 나의 의향과 달라도 좋으니 여러분이 사역 가운데 일꾼들에게 이와 같은 Topic으로 메시지를 나눈다고 생각하며 묵상하여 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준비가 되는 대로 보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날마다 각 가정에 주님의 풍성한 은혜와 소망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풍성한 은혜 안에서 박 남규 부부 서신
다윗의 삶에 나타난 일꾼의 모습들
<도입>
○렘3: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행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삼상13:13-14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 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시78:70-72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또 주님의 종 다윗을 뽑으셨다. 목장에서 그를 뽑아 내셨다. 양 떼를 치던 그를 뽑아 내시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앉히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이끄는 목자로 세우셨다. 다윗은 온마음을 다해 이스라엘을 돌보고 있는 지혜를 다 짜내어 이스라엘을 이끌었다-현대어성경)
1. 다윗의 정체성(Identity)
일꾼의 삶을 조명하면서 왜 다윗을 선택하였는가? 단 한가지 이유는 다윗의 삶은 일꾼된 우리의 삶과 매우 비슷하다. 다윗의 이야기는 신구약 전체에 걸쳐 1043회에 등장한다. 그러나 단 한줄도 다윗의 사건에서는 기적이란 단어를 발견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우리 삶의 실제와 거의 같다. 부모 이야기, 친구 이야기, 연인들에 관한 이야기, 자녀들과의 고통스러운 문제, 아내 문제, 죄와 교만의 문제, 배신과 거절과 창피스러운 성적인 문제, 죽음과 두려움의 문제, 정의와 평화의 이야기 등 많은 우리들의 실제적인 삶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다윗은 우리들의 이상적인 모델이 아니다. 바로 인간적이다. 다윗의 이야기는 인간됨이 어떻게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삶의 경험의 깊이와 높이, 넓이와 길이의 여러 차원을 이렇게 보여주는 이야기는 별로 없다. 주님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실제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성공과 실패, 좌절과 회복, 인격의 성숙 등 여러 영역에서 동일시하기에 매우 쉽게 느껴진다.
(1) 막내둥이(말째)
막내둥이란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자녀이다. 요즈음에는 귀염둥이의 대명사이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못했다. 막내둥이의 원어적 의미는 하카톤(희, haqqaton)은 별로 중요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서 왕을 선택할 때, 이새의 반응에서 우리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삼상16:11) 다시 말하면 이새의 반응은, 막내가 남아 있기는 합니다만, 지금 양떼를 지키고 있는 중입니다. 별로 하찮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막둥이에 불과합니다의 반응이다. 시시하고 보잘 것 없으므로 하나님의 선택에서는 빠져야 할 인물이다는 반응이다. 아버지의 심부름하는 자이며, 형들로부터 무시 당하는 자에 불과하였다.(삼상17:28)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평신도에 불과하였다. 교회에서는 성경에도 없는 평신도란 말로 일반 성도들을 제사장처럼 행사하는 목사의 심부름하는 정도로 생각한다. 그리고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때론 무시하기도 한다. 신학도 하지 않는 평신도가 얼마나 알겠느냐의 태도이다. 주님은 종교개혁을 통하여 다윗과 우리를 만인제사장주의의 Model로 삼으셨다.(벧전2:9)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받은 하나님의 종이었다. 우리도 동일하게 주님께로부터 선택받은 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제사장이요, 선택받은 주님의 복음의 일꾼이요,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꾼들이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3:5-6) 우리는 단순한 평신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받은 일꾼들이라는 자긍심과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다윗을 보라! 그는 막내둥이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받아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며 성공적으로 그 일을 수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평범한 사람(ordinary person)을 택하셔서 비범한 일(extraordinary work)을 행하셨다.
(2) 목자
삼하5:2 “전일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한 자는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치며 지키는 목동이었다. 목동생활을 하면서 양을 잘 먹이며 보호하며 인도하는 목자의 마음과 삶을 몸소 체득하였다. 그는 목자로서 최선을 다하여 맡겨주신 양무리를 돌보며 지도하였다.(시78:72)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로 많이 비유하였다. 시편23편은 대표적인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요셉을 양 떼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자여 빛을 비취소서”(시80:1) 그는 자신이 양들의 목자이었고, 하나님을 바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로 비유하였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선한 목자로 비유하셨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1, 14)
(3) 사울의 병기든자(삼상16:21)
다윗은 왕으로 선택받은 자이었으나 먼저 왕궁에서 사울의 병기든 자로 사울을 섬기며 도왔다.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병기 든 자를 삼고”(삼상16:21) 우리도 인도자가 되기 전에 먼저 누군가의 병기든 자의 위치에서 인도자를 도우면서 섬김는 삶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병기든 자란 전쟁할 때 무기를 들고 따라 다니는 사람을 말한다. 오늘날로 말하면 사울의 경호원, 보좌하는 일, 섬기는 역할, 시중하는 역할을 맡은 자이다. 병기든 자의 역할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또한 지도자의 위치로 높이신다.
(4) 왕
다윗은 오랜 연단과 훈련과 섬김의 과정을 통하여 왕(인도자)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오히려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목자로서 바라보셨다.
▶다윗의 정체성이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꾼된 자의 정체성과 비슷하다. 우리가 누구인가? 다윗같이 주목받지 못하는 막내둥이었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받은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백성들(양떼)을 돌보는 목자요, 자기 인도자에게 있어서는 병기든 자의 역할을 감당하며 함께 영적 전쟁에 동참하는 자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모두 통과하게 되면 양 무리의 선한 목자로서의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2. 다윗의 힘의 원천(Resources)
(1) 하나님과 교제에 대한 갈증
다윗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다윗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권력, 안정, 명성, 부에 대한 열망, 성적인 욕구 등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더욱 강렬하였다. 갈증이 강하게 되면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 목마름이 너무 심하면 생수를 먹어야만 갈증은 해소된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갈증이 너무 강하여 그것이 해소될 때까지 주님을 찾고 또 찾았다. 그리하여 그는 그 갈증을 해소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많은 시편들을 기록하였다. 나는 최근 어떤 것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또 읽고 싶은 열망이 있는가? 복음 전하기를 원하는 갈증이 나를 사로잡고 있는가? 암송하기를 간절히 원하는가? 또한 누구를 만나서 교제하고 싶은 열망이 나를 사로잡고 있는가?
얼마전 친척의 장례식장에 간 적이 있었다. 식사교제를 하던 중, 앞에 계신 목사님과 대화하였는데, 어느 교회의 권사되시는 한 분이 성경을 1000독 보다는 조금 못 읽었다는 이야기에 충격이 되었다.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어떻든 많이 읽었다는 것만은 분명하였다. 이것은 단순하게 목표를 세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말씀에 대한 갈증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다윗은 주님과의 교제하기를 원하는 열망이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렬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그토록 사모하였다. 그의 힘은 여기에서 나왔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11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로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시63:1-3, 11) 왕으로서 즐거워할 것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을 삶의 최고의 기쁨으로 삼았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27:4)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마옵소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27:8-10)
•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공주>의 간절함을 통해서 배우게 된 영적 교훈:
공주는 내 얼굴을 숨기면 아주 불안해 한다. 언제나 눈동자는 나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때로는 집에 머물러 있는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되어서 빨리 회관으로 오곤한다. 공주에게도 쉼이 필요하다. 자기도 피곤하고 나도 피곤하다. 끊임없이 지분되고 함께하고 싶어하고 엉덩이라도 내 켵에 두고 싶어한다. 새벽에 일어나면 내 곁에서 그냥 누워자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며 기뻐한다. 나는 주님께 대하여 공주처럼 간절하게 함께 하기를 원하며 얼굴을 보기를 원하는가? 부끄러울 때가 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6:24-26) 나는 누구의 얼굴을 간절히 보기를 원하는가? 누구의 얼굴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은가? 얼굴을 돌이킨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을 자초하는 일인가?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얼굴을 재빨리 돌이키고 뒤돌아서서 가버린다면 나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할 것인가? 얼마전 대구 학원복음화 협의회 모임 때 공동대표로 함께 주님을 섬기는 대구 제일교회 박창운 목사님께서 나에게 아주 의미있는 말씀을 하셨다. “대표님을 볼때마다 저에겐 왠지 모를 기쁨이 생겨난답니다. 함께 학복협을 섬김이 제겐 힘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볼 때마다 힘이 생기며 소망이 생기며 기쁨이 생기며 생기가 넘쳐나도록 해야 한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내가 찬송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30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바위뇨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시며 나를 온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며-----”(삼하22:1-, 30) 위의 노래가 시편 18편에 실려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시18:1의 말씀이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때마다 너무나 좋아서 미친듯이 춤을 추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는 왕의 체면이나 위엄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어린 아이처럼 뛰놀고 춤추며 기뻐하며 소리지르며 환영하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그는 행동했다. 얼마나 보기가 민망했으면 아내 미갈 조차도 업신여길 정도이었는가?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며 하나님을 좋아하며 사랑하며 기뻐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하나님 앞에서라면 이보다 더 천하게도 보일지라도 하나님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행하매 다윗이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삼하6:13-14)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삼하6:16) 다윗은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한 자, 춤추는 자, 충만한 자, 내 잔이 넘치나이다를 고백하는 풍성한 삶의 모범이었다. 그는 하나님으로 기뻐하며 춤추며 즐거워하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생애의 최고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삼았다.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마음과 감정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궤를 모실 수 있는 성전 건축에 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없었지만 다윗이 비로소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삼하7:1- )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느8:10) (현대어 번역 : 그러고 나서 에스라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이제 모두 집으로 가서 잔치를 벌여 배불리 먹고 마시며, 준비된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시오. 오늘은 우리 하나님의 날이므로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시오. 여호와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면 여러분은 다시 힘과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시105:3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시119:2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하나님을 구하고 찾고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교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세요. 힘과 기쁨과 용기와 소망과 하늘의 신령한 복이 넘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온전한 믿음(삼하7:1-14)
다윗은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자기 힘의 근원으로 삼았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그는 삶을 살아갔다. 성경 전체를 지탱하는 하나님의 두 가지 언약이 있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창12:1-3)과 다윗과의 언약(삼하7:11- )이다.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 두가지 언약의 기초 위에 이루어지셨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의 약속의 정통성의 기초에 근거해서 분명하게 이루어지셨다는 확증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울과는 달리 다윗에게 영원한 언약을 하셨다.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7:11-16) 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다윗의 반응은 어떠한 것인가?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신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삼하7:27-29) 그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기도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하셨으니 자신에게 은혜와 복을 베풀어주시도록 간구하였다.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이나 형편을 의지하지 않았다. 그가 비록 간음죄, 살인죄 등 엄청난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폐하거나 버리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다윗의 범죄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약속하신 이후에 행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너는 엄청난 죄를 지었으니 안되겠구나. 내가 너를 왕의 자리에서 폐하겠다’고 하시면 하나님은 거짓말쟁이이가 되신다. 약속은 자신의 상태와는 관계 없다. 약속하신 분의 인격과 권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실하심에 근거하여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회복할 수 있었다. 결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죄 때문에 자신을 폐하거나 멸하시는 않으시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중요성
벧후1:3-4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하나님의 약속의 불변성, 영원성
히6:17-19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 하나님의 약속의 성실성
민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 하나님의 약속은 콘크리트 건물에 있어서 철근 구조물(steel thread)과 같은 것이다. 철근 구조물이 콘크리트 건물을 지탱하여 주는 힘이 되는 것이다. 결코 자신의 감정이나 환경에 따라 좌우되거나 살아가지 말고, 약속을 이루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으로 나아가자.
(3) 하나님에 대한 지식(하나님을 잘 아는 것)이 그의 힘의 원천이었다.
다윗은 하나님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역대상 29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다윗의 지식은 참으로 탁월하다.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광대하심, 권능, 영광, 이김, 위엄, 주권, 만유의 머리심,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음,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 등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진설병을 먹었다. 모두들 그것을 먹는 것을 두려워 하였지만 다윗은 주저없이 진설병을 먹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왜냐하면 그는 구약 말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용기가 생겼다. “항상 매 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레24:8)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마12:3-5) 그가 쓴 시편을 살펴보면 얼마나 하나님께 대하여 잘 알고 있는가? 그가 골리앗을 쳐서 승리할 때도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용감하였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잘 아는 백성은 용맹을 발하게 된다고 외치고 있다.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궤휼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단11:32)
-다윗의 삶의 힘의 원천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한 갈증,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온전한 믿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3. 다윗의 무기(Weapon)
다윗이 골리앗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철저하게 자신의 몸에 익숙한 단순한 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물매돌이다.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삼상17:38-40)우리 일꾼들에게 필요한 무기는 무엇인가?
(1) 단순함
내가 가장 잘하고, 나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무엇인가? 남의 것을 흉내내지 말자. 사역은 모방이 아니다. 자기의 삶의 결과이다. 자기의 삶에 익숙하도록 인격화하도록 해야 한다.
• 네비게이토의 단순성의 강점은 기억하기 쉽고, 습득하기 쉽고, 전달하기 쉬운 것이다. 복잡하지 않다. 그러므로 쉽게 행동으로 가능하다. 재생산이 일어난다. 우리의 목표는 신학훈련이 아니라, 개인적인 신앙훈련이며 경건의 훈련이다. 교회 설교는 너무 복잡한 것이 맹점이다. 복잡하면 금방 잊어버린다. 또한 전달할 수 없다. 너무나 지식적이다. 지나치게 학술적이다. 네비게이토의 4대 강조점-비전, 헌신, 훈련, 단순성이다. 수레바퀴의 삶, 다리예화. 말씀의 손, 기도의 손, V hand 등은 아주 기억하기 쉽고 전달하기 쉽다. 결과적으로 재생산이 일어난다.
<단.무.지의 원리>를 생각하면 된다. 아주 단순하고(simple), 조금 무식하며(powerful), 다소 지루하게 반복적으로(repeatable)>이다.
(2) 하나님 의뢰
다윗은 가는 곳마다 승리하였다. 하는 일마다 형통하였다. 그 비결은 하나님을 의뢰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는데 있었다. 승리의 최고의 전략은 하나님을 철저히 의뢰하는 것이다. 다윗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라는 깊은 확신이 있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17:47)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전쟁을 수행하시도록 의뢰하며 간구하였다.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대하20:15) 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자기의 무기와 도움을 삼았다.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하신지라”(삼상23:4) “다윗이 가로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붙이리라”(삼상23:12)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온대 가라사대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저희를 엄습(掩襲)하되”(삼하5:23) “다윗이 또 하나님께 묻자온대 하나님이 이르시되 마주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되”(대상14:14) 다윗은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자기 지혜나 용맹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과 상의한 후에 행동으로 옮겼다.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 오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 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삼상30:6-8) (다른 번역: 그런데 이러한 사태는 미묘하게도 다윗에게 아주 불리하게 발전되었다. 왜냐하면 처자식을 잃고 흥분한 군중들이 다윗을 돌로 쳐죽이자고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다윗은 자기의 하나님 여호와를 더욱 의지하였다. 하나님께로부터 백 배 용기를 얻은 다윗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는 에봇을 가져오도록 명령하였다. 아비아달이 제비가 든 에봇을 가져오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었다. ‘제가 앞서 떠난 저 약탈자들을 추격해야 되겠습니까? 제가 그들을 쫓아가면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가 이런 응답을 받았다. ‘네가 그들을 쫓으면 틀림없이 따라잡을 수 있거니와 잡혀간 사람들도 구할 수 있다’)
다윗의 실패와 범죄는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행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낮잠을 자던 잠결에서 일어나 무의식 가운데 행한 결과로 범죄하였다. “저녁 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와 보이는지라 다윗이 보내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고하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삼하11:2-3)
(3) 하나님의 이름(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열망)이 그의 삶의 무기이었다.
우리가 매 순간마다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영예,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볼 때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다윗은 전쟁할 때 언제나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고자 하였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삼하5:10)
‘여호와 닛시’는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또 다른 하나님의 이름이다. 모세는 아멜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하였다.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출17:15)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승리한다. 우리의 영적 생활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탄을 대적하고 나아가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무기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기적과 능력과 승리의 역사가 일어났는가!!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
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행3:6-8)
-영적 전쟁에서 승리의 무기는 단순성, 하나님을 의뢰, 하나님의 이름이다.
--이상--
<과제>
4. 다윗의 광야학교(Training)
-하나님께서 광야학교를 통해서 일꾼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바는 무엇인가? (소제목 3가지)
5. 다윗의 성숙(Maturity)
-다윗의 성숙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소제목 3가지)
6. 다윗의 인격(Character)
-다윗의 인격(성품)을 통해서 일꾼된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성품은 무엇인가?(소제목 3가지)
7. 다윗의 회복(Healing)
-다윗은 죄와 실패 가운데서 좌절하지 않고 어떻게 다시 일어나고 회복되었는가? (소제목 3가지)
8. 다윗의 수준(Standard)
-다윗의 삶 가운데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삶의 수준은 무엇인가? (소제목 3가지)
9. 다윗의 존귀(Honor)
-다윗은 여러 가지 실수와 범죄에도 존귀한 일생을 마칠 수 있었는가? (소제목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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