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디바" 이것은 이은미 그녀를 지칭하는 수식어입니다. 라이브 공연 때 이른바 삘을 받으면 구두를 벗고 노래를 부르는데서 생겨난 호칭이죠. 이사도라 덩컨이 토슈즈를 벗었을때 사람들은 경악했지만 그것은 자유를 의미했습니다. 춤이라는 이름으로 정형화된 일체의 구속을 거부하는 자유선언이었죠. 아마도 이은미 그녀에게도 맨발은 그런 것일지 모릅니다. 이은미가 가장 되고 싶은 "가수" 이은미일 수 있는 무대 위에서 자신의 노래를 듣고자 온 관객들 앞에 가장 자유로운 자신의 모습, 가식없는 모습을 쏟아놓고자 하는 진정성의 발현이라 생각합니다.
그녀의 노래는 잔잔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노래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하듯이 마치 폭풍전야의 바다를 보는듯 주체할수 없는 힘과 열정을 숨기고 있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뺀끼치는 것보다 있는것을 감추기가 더 힘든 법입니다. 그녀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힘이 있지만 숨막다른 절정의 고음에서도 그냥 놓아버리지 않고 그 절정 위에서 흐트러지지 않는 절제의 미학을 보여줍니다. 그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일때도 있지만 바로 그것이 감히 진정한 디바라는 찬사가 절로 우러나오게 하는 모습이기도 하죠.
그래서 그녀는 슬프고 나는 슬픈 그녀를 좋아합니다. 그녀가 열창할 때 우는지 웃는지 모를 그녀의 표정과 선머슴애 같은 더벅머리와 그녀의 낡은 청바지 그리고 그녀의 상처입은 맨발을 좋아합니다.
그녀에게는 요즘 여성가수들의 미덕처럼 되어있는 섹시컨셉과 시도때도 없이 작렬하는 웨이브 같은건 없습니다. 배꼽을 내놓고 민소매 쫄티를 입고 나와도 다른 생각이 들지않죠. 그러나 에이리언의 시고니 위버나 터미네이터의 린다 해밀턴처럼 여성스럽다는 느낌과는 거리가 먼, 어쩌면 강인해보이기까지한 그런 그녀의 중성적인 모습은 노래못하는 가수가 용납되는 이상한 세상에서 오로지 노래 이외의 무엇으로도 평가받지 않겠다는 도전인듯도 해서 더욱 그녀의 노래에 몰입할 수 밖에 없는 동기가 되기도 합니다.
0> 신촌블루스 / 1989
오래전 우리가 그녀를 아직 잘 알기전에 그녀는 신촌블루스에서 활동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1989년 신촌블루스의 객원가수로 참여해 처음으로 음반을 발표하게 되죠. 이제는 희귀본이 되어버린 이 음반의 "그댄 바람에 안개로 날리고" 라는 곡은 그녀가 그때 부른 그녀의 스무살적 목소리입니다. 내가 처음 들었던 라이브 레스토랑의 목소리와 가장 근접한 목소리죠. 지금보다 훨씬 맑지만 아직은 좀 가벼운 느낌입니다. 그녀 특유의 곡을 틀어쥐는 맛이 덜하다고 할까요.
1> 기억속으로 / 1992
그리고 1992년 그녀의 첫 앨범이 발표됩니다. 캐나다에서 녹음을 했다고 하는데 캐나다에서 왔다고 해서 한때 캐나다 교포로 소개되기도 했었던게 기억이 납니다. 이은미 최초 히트곡이자 대표곡 중의 하나인 기억속으로는 당시 드라마의 삽입곡으로 쓰이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졌죠.
그녀가 처음 우리들에게 얘기했던 것은 "기억"이었습니다. 왜 하필 추억이 아니라 기억이었을까요. 그것은 어쩌면 기쁨의 기억이든 슬픔의 기억이든 더하고 덜해진 추억이라는 이름의 각색된 기억이 아니라 지난 시간 그대로의 기억 그 자체를 말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돌아가야할 기억 속으로 변해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얘기하죠. 그러나 그땐 어땠는지 몰라도 그녀도 우리도 이제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유려한 세월 속에서 그런 것들 따위 다 부질없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1. 외면 2. 이제야 돌아온 그대 3. 변해가는 모습들 4. 기억 속으로 5. 추억에 젖어 6. 빛의 거리속에 7. 희미한 기억은 달빛을 타고 8. 지울 수 없는 마음 9. Love is our Strength
2> 어떤 그리움 / 1994
그녀가 대중들에게 확실히 가수로 인식되게 한 1994년의 2집입니다. 1집과 2집 사이의 2년여 동안 그녀는 많은 라이브 무대에 올랐고 그것은 그대로 그녀가 노래하는 인형이 아니라 진짜 가수라는 것을 증명하는 기간 이었죠. 기억에 관한 얘기를 들려준지 2년 후 이제 그녀는 그리움을 이야기 합니다. 이제 아픈 기억은 슬픔과 아쉬움, 그리고 체념을 지나 그 기억을 그리움으로 바라볼 수 있을만큼 그녀가 자랐습니다. 우리가 자랐습니다. 세월이 자랍니다.
1. 어떤 그리움 2. 그리움에 대하여 3. Blue Filter 4. 이별이 슬프지 않을 때까지 5. 그댈 위한 이 노래 6. 흐려진 기억들 7. 언젠가 너에게 8. 거리에 뿌린 추억
3> 자유인 / 1997
그리고 이제 지난 날에 이별을 고하고자 합니다. 지긋지긋했던 날들을 지나 이제 자유로와질거라고 말하면서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미련에 안녕을 고합니다. 포기할 수 없지만 스스로 그때마다 대답은 꿈 속과 다음 세상 일거라 다짐합니다. 그러나 역시 허세였을까요. 문득문득 잊었다고 결심한 슬픔의 기억에 몸을 떱니다. 그리고 역시 고백하죠. 너에게 가고 싶다고. 어쩌면 그녀의 자유는 자유롭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자유로울 수 밖에 없는 내몰린 자유일지도 모릅니다.
1. 시선 3. 참을만큼 참았어 4. 안녕 5. 너에게 가고싶어 6. 자유인 7. Thank You 8. 에필로그
4> Beyond Face / 1998
Beyond Face는 그녀의 4번째 앨범의 제목입니다. 보이지 않는 저쪽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합니다. 보통 슬프지 않다 라고 하는 것은 슬프기 때문일 때가 있습니다. 괜찮다는 것은 실은 안괜찮기 때문에 그럴때가 있지요. 웃고 있지만 울고 있을때도 있구요. 그런 살아가는 평범한 역설에 대해, 보이는 이쪽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가 얘기해줍니다. 그리고 잊었다고 생각한 기억들. 그러나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세월 저편 그 오랜 기억들과 비로소 조금은 편하게 마주할 수 있을거란 암시를 줍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그녀의 목소리가 변한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였드라.
1. 프롤로그 (Beyond Face) 3. 비밀은 없어 4. Deja-Vu (잃어버린 꿈을 만나다) 5. 벽 6. 사람들은 너무 쉽게 말을해 7. 요즘은 어때 8. 기억될꺼야 duet with 여진 9. 연서 10. 세상 그 위로 5> Noblesse / 2001
다섯번째 그녀의 노래들은 여전히 슬프고 아련하지만 부드럽고 Noblesse라는 앨범의 제목처럼 격조있는 그 무엇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감처럼 보입니다. 여전히 슬프지만 아직도 미련이 있지만 이제 그 슬픔과 미련을 나의 일부로 함께 살아갈 자신 같은 것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바탕으로 지난날의 기억 에 전화를 걸고 그 기억들에 부탁과 바램을 전합니다. 이제 잊어도 더 사랑하지 않게 되기를 말입니다.
1. 사랑의 향기 (작사:이은미 작곡:김석원) 6> Ma Non Tanto / 2005
6집의 타이틀 Ma Non Tanto는 음악에서 악보를 볼때 사용되는 용어로 ‘그러나 너무 지나치지 아니하게’라는 뜻입니다.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무뎌진다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마음껏 슬퍼할수도 기뻐 할 수도 없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많아진 생각들과 많아진 이해관계들로 인해 때로는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어른스러워진다고 하기도 하죠.
세월이 흐르고 혼자있는 날이면 오래된 기억이 날때가 있습니다. 다가서고 싶지만 다가서지 못했던 숱한 불면의 밤들. 아쉬움과 슬픔에 눈물흘리던 숱한 날들. 그러나 예전처럼 맘껏 소리지르지도 울지도 못하는 세월에 와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때마다 확인하곤 차라리 눈이라도 비라도 되어서 그대 곁에 있고 싶다는 홀로고백을 거듭 하며 그러나 언제나 그 앞에 서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 애인있다고. 숨겨놓았다고. 언젠가 소개해준다고. 그렇게 거기까지만. 지나치면 안되니까.
1. 아카시아 (숨겨진 사랑) 10. 가고파
그녀는 슬픔과 절제의 미학을 노래하는 가수이며 라이브에 특히 탁월한 디바 중의 디바이지만 또한 그녀는 리메이크를 가장 잘하는 가수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리메이크는 원곡을 무색하게 할때가 많지요. 사실 그녀의 진짜 매력은 안정된 가창력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곡 해석력.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은미는 슬픔과 절제의 미학을 노래하는 가수이며 라이브에 특히 탁월한 디바 중의 디바이지만 또한 그녀는 리메이크를 가장 잘하는 가수라고 썼습니다. 리메이크란 정말로 어려운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사람들 에게 익숙한 원곡이 있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미 그 원곡에 대한 정형화된 느낌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뛰어 넘어 다른 느낌 다른 감동을 주고 원래의 이미지를 극복한다는 것은 가창력이나 곡해석력 등 모든 면에서 원곡 보다 나은 것이 요구되는 작업이기에 보통의 내공과 실력으로는 불가능하기 까지 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녀의 리메이크는 원곡과 그것을 부른 원곡의 가수를 무색하게 할때가 많습니다. 그녀는 리메이크 라는 것이 단순한 흉내가 아니라 원곡의 가려진 다른 면을 찾아내고 보여주는 재창조라는 것을 절절히 깨닫게 해주는 사람이기도 하지요. 슬픈인연 라이브는 왜 그녀의 리메이크가 단순한 흉내가 아닌지를 증명하는 생생한 기록입니다. 알아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보다가 소름이 돋습니다. 기차게 모창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창은 사람들이 좋아하죠. 원곡을 부른 가수의 모습과 목소리를 진짜처럼 흉내내는게 신기해서 자꾸 시키고 기대하고 또 잘하면 그때마다 박수를 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커스 에서 원숭이에 박수를 치는건 원숭이가 사람흉내를 잘내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이지 원숭이 자체가 멋있고 놀라와서는 아니죠.
게다가 요즘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일부러 모창연습을 하는 가수들도 있다고 합니다. 가수들이 노래하는 공연장이 아니라 토크쇼나 버라이어티 쇼 같은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망가지는 것도 안습이지만 그렇게 나온 쇼에서 웃기기 위해 하는 모창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긴 해도 그 모창이 어떤 감동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창이 창조가 아니라 흉내이기에 그렇지요. 모창에는 스킬만이 존재할뿐 곡을 해석하고 원곡의 또다른 면을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창조의 고뇌가 없기 때문에 모창에는 영혼이 없고 영혼이 없는 곳에 감동이란 존재하지 않지요. 그래서 모창은 즐겁지만 시골약장수의 특별한 재주 이상의 무엇이 되기 어렵습니다. 언젠가부터 리메이크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왠만큼 이름을 알렸다 싶은 가수들치고 리메이크곡 한두 곡쯤 안부른 사람들이 없지요. 그러나 나는 유행처럼 쏟아진 수많은 리메이크 들중에 원곡보다 아니 원곡만큼이 라도 들을만한 곡이 얼마나 되는지 한심스러울때가 있습니다. 모창은 즐겁기라도 하지. 더군다나 가창력과 실력에서 엄두도 못낼 것들이 터무니 없이 망쳐놓은 명곡들을 들을때면 분노마저 일어나지 요.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해서는 안되는 것에 대한 분별없는 그들과 그들을 부추킨 기획사들의 멱살을 잡고 싶을 정도로 말이죠. 아 또 화납니다.
그런 공해같은 리메이크 곡이 범람하는 속에서 이은미 그녀의 리메이크는 이미 오염되어 버린 리메이크라는 말 을 붙이기 미안할 정도의 탁월함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사실 그녀의 진짜 매력은 안정된 가창력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곡 해석력.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구요 전에 감동했던 익숙한 곡을 들으며 또 다른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 그녀의 리메이크는 그야말로 예술이며 그래서 그녀는 역시 "디바 중의 디바"라는 얼핏 과장같은 찬사가 전혀 아깝지 않은 진정한 "아티스트"라는데에 부정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부른 팝송들도 있습니다. 다른 곡들도 그렇지만 특히 그녀가 불렀던 노래 Desperado. 설익었던 그때의 나 만큼이나 그때의 풋풋하고 맑고 가벼운 느낌은 아니지만 그녀에게 꽃히던 날의 첫기억 때문에 그녀의 Desperado는 내게 특별합니다. 원래 특별함이 당연한 그녀지만 말입니다. 맨발의 디바. 이은미 그녀의 노래들을 추억해보았습니다. 물론 그녀의 노래는 아직 끝이 아니죠. 그녀는 여전히 진화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01. 무정 블루스 02. 어떤 그리움 03. 기억 속으로 04. 제비꽃 05. Sunflower 06. 너를 사랑 하고도 07. 서른 즈음에 08. 보고 싶은 얼굴 09.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10. 가시나무
11. 이별노래 12. 봄비 13. 희미한 기억은 달빛을 타고 14. 웨딩드레스 15. 편지 16. 아름다운 사람 17.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18. 슬픈인연 19. 옛사랑 20. 아카시야
21. 사랑 한다고 22. 애인 있어요 23. 이제야 돌아온 그대 24. 흐려진 기억들 25. 소중한 사랑 26. 그리움에 대하여 27. 너에게 가고 싶어 28. 기억 될거야 29. 길 30. 안녕 내사랑
31. 찔레꽃 32. 이별의 그늘 33. 거리에 뿌린 추억 34. 변해가는 모습들 35. 그대 내게 다시 36. 기억,마지막사랑 37.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38. 세월이 가면 39. 안녕 또 다른 안녕 40. 그댄 바람에 안개로 날리고 41. Desperado
2009. 01. 29 Pasya |
출처: 우심뽀까?...(*⌒.^)^ε⌒* ) quid pro quo 원문보기 글쓴이: Pasya
첫댓글 감사합니다 산음님! 오늘 제대로 감상합니다. 슬픈 노래는 부르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도 저는 슬픈 노래를 더 좋아하나 봅니다. 우리 산음님 다시 한번 감사~~
전곡이라 일하시다 들으시라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