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지속]
기억의 지속 / The Persistence of Memory / Salvador Dali
시간마저 녹이는 권태
"폭 좁은 철도를 끼고 있는 어느 초라한 기차역에 우리는 앉아 있다. 다음 기차는 빨라야 네 시간이나 지나서야 온다. 기차역 일대는 삭막하기만 하다. 우리는 배낭 속에 책 한 권을 가지고 있다. 그래 꺼내 읽어볼 것인가? 아니다. 그러면 어떤 물음이나 문제에 관해 골똘히 시색에 잠겨볼 것인가?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기차 운행 시간표를 훑어 보거나 또는 이 역과 - 우리는 더 이상 잘 모르는 - 낯선 곳과의 거리가 다양하게 표시되어 있는 안내도를 자세히 살펴 본다. 그러다 우리는 시계를 들여다 본다. 겨우 15분이 지났다. 그래서 우리는 국도 쪽으로 건너가 본다. 우리는 그저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녀 본다. 그러나 그것 역시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이제는 국도변의 나무들을 세어본다. 다시 시계를 들여다 본다. 처음 시계를 보았을 때보다 5분이 더 지났다. 이리저리 거니는 것도 싫증이 나 우리는 돌 위에 앉아 갖가기 형상들을 모래 위에 그려 본다. 그러다가 우리는 문득, 우리가 또다시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 죽이기는 계속된다."
하이데거 <형이상학의 근본 개념>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p 163.
'진저리 나게 하는 권태'를 느껴본 적이 있으세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밑으로 파도조차 전혀 없는 바다와 풀 한 포기마저 없는 민둥산이 펼쳐져 있지요. 왼편 중앙쯤에 난데없는 탁자가 하나 놓여 있고, 그 모서리에는 마치 물렁거리는 고무판에 찍어낸 것 같은 회중시계가 하나 걸쳐져 있습니다. 그 뿐인가요. 탁자에서 솟아난 잎새 하나 없는 나뭇가지에도 그런 회중시계가 빨래처럼 걸쳐져 있고, 그림 중앙에 놓인 '뭔가 알 수 없는 형체' 위에도 역시 이 놀라운 시계가 천 조각처럼 덮여 있지요".
"그림 중앙에 있는 '뭔가 알 수 없는 형체'는 사실 '물렁거리는 조갯살', 곧 달리의 내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달리는 시간마저 녹아내리게 하는 권태 속에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내면을 흐물거리는 시계판을 덮고 누워 있는 조갯살로 그려놓은 것입니다."
달리의 자서전 중에서-
"예술가를 압박하는 현실은 하나의 소라게처럼 나를 딱딱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나를 철옹성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의 내면은 정작 물렁거리는 조갯살처럼 늙어가고 있다. 그런 상태가 이어지던 어느날 나는 시계를 그리기로 했다."
첫댓글 하늘의 구름들이 지루하고 며칠 째 쨍쨍 내리쬐는 햇볕이 지루하고 사시사철 붉은 해가 지루하고 뒹굴거리며 데롱데롱 매달린 시간이 지루하고,,, 그러나 나의 지루함이 권태가 될 수 없이 오로지 시간 죽이기에만 해당하는 것은!! 으~ 지랄맞다.
이렇게 후덥지근한 날에 밥먹는 일에 끌려 간다. 소통을 위한 노력이 눈물겹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