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창리에서 15분이나 왔을까.
생각보다 정말 금방 다목리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을 데려다 준 강원고속 시외버스는 여기를 끝으로 잠깐의 달콤한 휴식을 갖는다.
너도, 나도 만만치 않은 여정을 겪고 다목리에 도착을 했지.
몇 시간이 걸렸는지도 모를 긴 달리기의 끝에는 고요한 숨소리가 조근조근 들리고 있었다.
이 곳 다목리도 원래는 평범한 강원도 산골 오지였으나,
휴전선이 설정되고 사단이 들어오면서 김화-화천간 길목을 지키는 최전방으로 변하게 되었다.
실제로 춘천→화천은 102보충대와 읍내 직전의 검문소만 있을 뿐 거의 강변길이나 마찬가지였고,
화천→사창리는 군 시설조차 제대로 못 볼 정도로 전형적인 강원도 산골뿐이었는데,
사창리를 넘어서부터는 곳곳에 군사시설이 잔뜩 깔린 최전방의 음침한 향기를 곳곳에서 맡을 수 있었다.
그만큼 군부대가 많아 휴가 나온 군인들을 실으려면 버스가 많이 다닐 수 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이 조그만 산골마을에 버스정류장이 따로 생겨나게 되었다.
하지만 벌써 반 세기가 넘는 시간을 훌쩍 보내버렸기에 이미 모든 것은 온전할 수가 없다.
시외버스터미널이란 간판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세월이라는 야속한 바람이 모두 흩날려버려 이젠 제 모습조차 찾기 힘들다.
하지만 겉만 보고서 판단할 수는 없다.
내부는 놀랍도록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60대 할머니가 홀로 매표소를 지키고 있는 듯 했는데 의외로 손님들을 친절하고 싹싹하게 잘 맞아주신다.
이 곳에 사는 아이와, 그리고 휴가 나온 군인들과, 먼 길 여행온 여행객과 즐거운 말동무가 되어주신다.
아마 '버스터미널'이 아닌 평범한 정류장치고 이렇게 잘 정돈되고 큼지막한 대합실을 갖춘 곳은 없을 것이다.
표를 끊는 할머니께서 직접 거주하고 있다 하셨는데, 그 덕분인지 몰라도 살짝 포근하고 아늑한 것 같다.
예쁘게 자란 화초도 곳곳에 자라 아늑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화초 키우는 것도 여간 보통 일이 아닌데, 햇빛도 잘 안들어오는 건물 안에서 참으로 잘도 자라주었다.
다목리가 군부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외수가 실제로 살고 있는 '이외수의 고장' '문학의 고장'이기도 하다.
위트있는 글솜씨와 활발한 소통으로 젊은 팬층이 많은 분인데,
이미 그가 사는 감성마을이 하나의 관광명소가 될 정도로 영향력이 상상 이상으로 크신 소설가이다.
주민 분들도 여기 와서 감성마을 안 가보면 평생 후회하신다 할 정도로 이외수 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최근들어 서서히 이미지가 많이 바뀌고 있는 화천이지만, 그래도 최전방의 이미지는 통일 전까진 결코 씻을 수 없나보다.
거리를 가득 채운 군인백화점과 치킨, 피자, PC방 등 전형적인 전방의 읍내같이 생겼으니 말이다.
규모도 조그매서 사진에 보이는게 읍내의 반은 족히 될 정도.
보통 최전방 읍내는 시끌벅적하기 마련이지만 여긴 사람 구경하기조차 쉽지 않다.
흔히들 터미널이라 부르지만 종점이 아닌 노선은 죄다 도로에 정차하는 조그만 정류장이다.
와수리로 올라가는 시외버스들은 사진에 보이는 곳에서 사람을 싣고 나른다.
시골 노선 특성상 시간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지만 주민 분들은 용케도 잘만 탄다.
마침 또다른 시외노선이 한적한 마을로 또 들어온다.
내가 타고 왔던 것과 똑같은 노선인데 다목리란 세 글자는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큰 몸집의 시외버스도,
아마 이 조용한 마을에서 많은 생각을 하며 감상에 젖어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고요한 최전방에서의 하루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듯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첫댓글 현수막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15xx 검열을 동네 홍보 현수막을 걸어 놓을 정도로 바로 피부로 느껴지네요... 최전방이라는게...
그러게나 말입니다ㅜ.ㅜ 사실 사창리까지도 잘 못느꼈는데 거길 넘어가고부터는 피부로 확 와닿더군요..
저도 인제원통쪽 12사단을 나왔지만 이런 접경지역 군 시설이 밀집된 지역은 지역상권의 거의 90프로 이상이 군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 부대에서 외박 지역이라도 변경하는 날엔 그 지역상권 초토화가 예상되기 때매 지역주민들은 나름대로 군 부대에 많은 노력? 을 쏟아붓곤 하죠
군인은 최전방의 안전을 지키고, 주민은 그로 인해 군인에게 재화와 서비스를 주면서 거기에 의존하게 되고... 이젠 뗄레야 뗄 수 없는 상생 관계인 것 같아요.
사창리행 시회버스에 조그맣게 '다목리'라고 붙이고 다니는 것을 보곤 했는데, 여기까지 들어오는 군요.
예 여기서 회차를 합니다.
터미널 내부 분위기가 집을 옮겨놓은듯하네요...^^;;
정말 아늑하더군요 ^^ 무려 에어컨도 나옵니다
터미널이 참 가정적이네요...사진에서도 군부대 주변 특유의 공기가 느껴집니다. 사격장 가는길의 오묘한 기분 같은..
잘 봤습니다. ^^
사진 잘 봤습니다~그나저나 저는 산보다는 바다가 좀 더 땡기네요...춘천을 제외한 강원도의 군부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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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군이 서로 축하와 단합을 하는 현수막을 보면서 군인도시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네요
구경 잘 했습니다.
군에간 막내동생 면회차 겨울철 다목리를 포니1에 스파이크를 밖은 스노우타이어로 가슴 조이며 다녔던때가 30년 전인데도 그닥 다목리 풍경은 낯설지가 않군요.즐감 하고 갑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