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께서 간과하고 계신 게 뭐냐면, 그 당시 국제 외교 관계의 가장 큰 키를 쥐고 있는 대제국 당의 존재입니다.
통일한 당이 고구려와의 동아시아 패권을 놓고 다투던 동안, 무왕 때까지만 해도 (저군요 낄낄) 백제는
' 이기는 편 우리편 ' 이라는 실리 외교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한쪽이 수틀리고 힘이 기울어 버리면
그쪽으로 붙을 수도 있었고 말이죠....
또한 이 당시 신라는 중국과 완연한 외교 동맹을 맺은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외교적으로 수와 당에 대해 백제와 ' 경쟁 '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642년, 중국의 중재도 무시하고 백제는 대대적인 신라 침공을 감행합니다. 이후 신라를 더욱 강도높게 때려
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신라가 철저한 충성을 맹세하자 ' 옳거니 고구려의 배후 전초기지가 될 수 있겠군 ' 싶던 당은
신라를 맞아들이고 나당 라인을 구축하죠... 이때부터 그와는 반대로 중국의 눈밖에 난 백제.
중국은 무왕 때 좋게좋게 풀어나가 중재하려던 분위기가 점점 틀려지며 야마가 돌아 (^^;; 어이쿠;; 외..외국어를)
백제를 강압하고 굴욕 외교를 강요하려 합니다.
" 너 요새 하는 짓 맘에 안들어? 왜 우리 동맹 때리고 ㅈㄹ 이야? 내가 하라는 대로 해!! " 거의 이런 뉘앙스까지 갑니다.
이제까지 좀 상황이 다변적이어도 융통성있게 맞춰 가며 사이좋게 활발한 교류를 해 오던 백제로서도 이쯤 되면 더 이상
중국이 말하는 대로 따라가는 쪽으로만 묵과할 수 없게 됩니다. 백제의 가장 큰 선결과제인 신라 원정 및 그로 인한 왕권
기반의 구축, 그로 인한 ' 7세기를 맞이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백제의 부흥 ' 이러한 국가과제에 대놓고 제동을 걸어버리며
백제마저 당이 지배권을 행사하려 하니까요....
자, 외교의 형세는 이렇게 변해 버렸습니다. 이 상황에서 백제가 선택한 길이 무엇일까요? 백제는 645년 당이 고구려에게
대패하자, " 우리가 신라인 줄 아냐? 고개숙이고 그냥 그런 속국으로 너희 밑에 쫄아들어가라고? 싫어!! 고구려한테도 진 주제에
뭔데 우리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차라리 이해관계 맞는 고구려에 붙을거야!!~ 너네하곤 끝이야!! " 이 노선으로 바뀌지요 ...
당 고종 즉위 때 보낸 사신 등을 감안해서 아무리 늦게 보더라도 이 입장은 당과 교류를 완전히 끊은 652년쯤 되면 굳어집니다.
이 상황에서,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를 때리는 (멸망시키지 않더라도 거의 당대 강경정권을 끌어내리고자 하는) 가장 큰
' 공통적 ' 목적이 뭐였을까요? 바로 자국의 부흥을 막고 오히려 자신이 천하의 중심인 마냥 간섭해 들어오려는 ' 당 제국 ' 때문
이었습니다. (물론 백제로서는 신라의 공격이 첫 모티브였다가 번져나간 셈이 되는 거지요)
즉, 655년 공격할 시기가 되면, 고구려나 백제나 ' 당과 당 주위에 붙은, 속칭 당 제국 라인 ' 은 주적이 됩니다.
이 시기, 신라 역시 당의 이해관계에 철저히 따르며 고구려와 백제를 적대시하게 되죠~ 고구려로서는 ' 괘씸하게도 당에 붙어서
언제든 호시탐탐 자신의 후방을 노릴 ' 신라, 백제로서는 성왕의 죽음 이후 자국의 더 큰 부흥에 제1의 걸림돌이 되어 오더니
이젠 (백제 왕실 입장에선) 야비하게도 당까지 끌어들여 적대 세력을 키워 버린 신라입니다. 두 나라 다, 신라는 철저히
눌러주지 않으면 안될 과제였습니다. 당과의 공동작전을 피고자 했던 신라의 노선을 간파한 두 나라의 이해관계와 상황이
' 신라만 멸망시키거나 눌러준다고 ' 끝날 상황도 아니었구요....
외교 관계와 국가 감정의 관성이 이 정도까지 치달았다면, ' 당 제국 라인 ' 중 하나인 신라가 없어지더라도 백제와 고구려의
당에 대한 적대와 경계가 어느 한 순간 풀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일까요?
고구려무사님과 다른 일부 분들은 고구려와 백제의 주적 인식을 따로 보고, 그 당시 중원과 한반도의 긴장 상태를 당 고조 때처럼
중원과 한반도 사이, 온건적인 협상과 해결의 여지가 있는 상황을 가정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650년 대는 급격하게 상황이
달라져 있던 때입니다. 신라가 없어지면 백제는 당과의 사바사바 협상을 통해 고구려를 치게 될 잠재적 위험이 될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것을 걱정해서 지금 당장의 당과의 동맹 세력을 치지 못할 거라면, 애초 고구려가 숙이고 들어가면서 당과
외교적으로 해결을 보는 게 더 빠르지 않았을까요? 연개소문의 집권 말고 영류왕같은 온건파 보수 세력이 정권 장악에
성공했다면, 태평송 바치던 신라의 사대적인 모습을 띤 건, 아예 당의 속국으로 지배를 받는 건 고구려가 됐겠지요...
그렇게라도 해서 백제라는 잠재적인 적을 막고자 했다면요.. 차라리 그게 편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연개소문의 쿠데타는
' 참 할일없게도 ' 중국과 괜히 전쟁을 벌이다 상황을 악화시키려고만 한 역적행위가 되는 거겠구요...
하나의 현상을 시대의 흐름에 따른 거시적인 국제관계 역학과 맞춰보지 못하면 이러한 뜬금없는 가정까지도 나와 버리게
되는 겁니다.
제가 밑에 글에서도 언급했듯, 신라의 멸망 이후 어떻게 될까를 걱정하여 나온 상황, 즉 백제와 고구려만이 남은 남북에서의
잠재적인 패권 다툼 문제는, 당이라는 거대 세력이 개입한 7세기 그 치열한 국제적 양상이 다 정리되고 난 후라야 생각해 볼
수 있는, 그 당시로서는 정말 ' 배부른 여유 ' 에 지나지 않습니다.
5세기 때부터 고구려의 대대적인 남진이 시작되어 이해관계상 백제와 신라가 동맹을 맺었을 때, 백제 입장에서 ' 훗날의 관산성
전투 ' 에 대한 걱정으로 신라와의 동맹을 주저했습니까? 나중 시대 문제는 그 시대 사람들의 대처와 정세에 맡기면 될 일,
그 당대 사람들은 지금 당장과 얼마간 앞으로의 이해관계에 철저히 맞춘 ' 적과 동지의 구별 ' 을 했을 뿐입니다.
지나치게 장기적이고 당장의 영향력을 생각하기 힘든 외교적 걱정을, 그 급박하고 긴장된 난세에 일일히 계산해 넣어서까지
고려하는 나라는 아무도 없습니다. (훗날의 위협이라는 발상만으로 따진다면, 대체 어떤 나라랑 동맹을 맺을 수 있을까요?)
첫댓글 님의 글 잘 보았습니다 제가 간과한 부분이 당나라와 사바사바할 여지가 있다는것, 그러면 고구려도 사바사바하면 되지 연개소문이 괜한 역적질 한 것이군요 하셨는데 이걸 보니 님의 인식을 알겠네요^^ 당나라와 고구려와의 전쟁을 단순한 전쟁이 아닌 두 문명의 충돌 두 천하관의 대립으로 보고있습니다 즉 백제가 고구려를 배신하고 당나라로 말을 갈아타며 요동지역은 당이 차지하고 평양일대는 백제가 차지하고 서로 협약을 맺으면 어떨까요? 백제의 입장에서 큰 이익이지 않습니까?
(다른 회원님들이 오해하실수 있을 꺼 같은데 지금 논의는 백제가 신라를 병합하고 국가정세를 이야기해보는 일종의 추리소설이랍니다^^)
그 급박했던 당시는 그러한 협약을 맺을 수 있는 스탠스와 분위기가 이미 물건너간 판도라는 게 본문의 요약입니다. 신라가 망하더라도 말이지요... 당의 목적은 고구려나 백제를 자신의 천하관과 판도 아래의 수족처럼 속국으로 두는 건데, (그리고 전쟁을 일으킨다 함은 그러한 일환으로 평정하고자 하는 원정인데) 두 나라 다 그런 피지배를 원했던 거 같진 않네요~ (백제 역사를 보신다면 아시겠지만, 백제 역시 그때까지 자신만의 천하관을 갖고 있던 나라였습니다.) 차라리 협상을 하려 했으면 백제가 신라와의 전쟁 일찌감치 그만두고 당의 속국이 되는 게 더 간단한 수순 아닐까요? 그러나 백제는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죠
역사에 가정놀이만큼 무의미한 것도 없겠습니다만, 무엇보다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를 친다면, 당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의 설정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655년에 신라를 친 고구려와 백제가 이것을 모르고 공격한 것일까요? 오히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확실히 공격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신라의 개입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일찌감치 억제력을 행사하고 주적의 범위를 단순화시키기 위해... 이미 이 당시 백제조차 ' 아 이렇게 신라만 멸망시키면 한반도 중남부는 정리 끝 ' 이럴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죠
고구려 무사님 백제가 당나라로 말을 갈아타며 요동지역은 당이 차지하고 평양일대는 백제가 차지하고 서로 협약을 맺으면 어떨까요? 백제의 입장에서 큰 이익이지 않습니까?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두문명의 충돌이라면서요?..백제가 저렇게 덩치가 커지는데 당나라가 가만히 놔둘수도 없게 되지요?..다시 문명충돌이 생기기 마련이지요..당나라는주변에 강국이 들어설 수 있도록 절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는 형편이 될것입니다..그야말로 순망치한 꼴이 되는 것이지요...^^*
부여장님의 의견은 잘보았습니다^^, 소호님 통일중국의 끊임없는 고구려에 대한 침입이 영토에 있었을까요? 아니겠지요 고구려의 높은 위상때문일 것입니다 백제를 하나의 문명축으로 볼 수준이 아니며 백제가 요동정벌을 감행하지 않는 이상 중국의 천하관을 위협하는 세력이라 볼수가 없지 않을까요?
고구려무사님 그렇다면 신라가 요동정벌을 감행했기에 나당전쟁이 일어난 것인지요? 또한 신라가 중국의 천하관을 위협하였기에 나당전쟁이 일어났다고는 보질 않겠지요..이랬던 저랬던 당시 강대국인 당나라가 어떤 속샘을 가졌느냐에 따라 일어날 문제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