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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중반 원로가수
권혜경씨가 불러 유명해진 <산장의 여인>은 마산의 가포에 있는 결핵병원을 무대 삼아 만든 노래이다. 1957년 그녀의 데뷔곡이다. 이 노래는 반야월이란 분이 작사했고
어느 날 마산 가포동에 있는 국립마산결핵요양소에 (가수 진방남으로서) 위문 공연을 갔을 때, 관중석 뒷편 좌석에서 흰옷을 입은 말쑥한 여성이 자꾸만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인상깊게 보고, 공연이 끝난 뒤 병원 관계자에게 그 여인에 대해 물어보았다고 한다. 병원 관계자가 "주병동의 건너편에 있는 산장병동 에 입원하고 있는 여인으로서, 몹쓸병(결핵)에 걸려 있는 자신의 신세가 야속해 과거를 회상하며 항상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고 하며, 그 때 느낀 것들을 <산장의 여인> 이란 제목을 붙혀 노래 가사를 지었다고 한다.
반야월 선생은 자기가 만든 가요 가사를 작곡가
애절한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채곡채곡 떨어져 쌓여있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풀벌레만 애처로이 밤새워 울고 있네 행운의 별을 보고 속삭이던 지난날의 추억을 더음어 적막한 이 한밤에 임 뵈올 그날을 생각하며 쓸쓸히 살아가네
산장의 여인을 불러 스타덤에 오른 권혜경씨와 앨범
<산장의 여인> 을 탄생시켰다는 가포 소재 국립 마산결핵병원 산장 병동 모습을 향토지역 역사 탐방대원들이 방문한 기사가 있어서 여기에 옮겨본다.
" 산속은 고즈넉했고, 울창한 숲속에 나뭇잎은 발등을 뒤덮을 정도였으며, 그 사이 사이 공터에 산장의 흔적만 흩어져 있었다. 어느 것은 병사(病舍)와 같았고, 또 다른 것은 화장실로 보였으며, 또 어떤 것은 사무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분해되지 않은 시멘트 더미들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한 건물의 잔해가 대략 위 아래에 걸쳐 산재한 채 남아 있었다. 결핵 환자 <산장 병동> 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리아상이 서 있다. 환자들은 이곳에 와서 소원을 말했을 것이다. 빨리 완쾌되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 산장을 떠나 그리운 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
권혜경씨는 이 노래를 부른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중년 이후부터 77세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상당히 굴곡이 많고 외로운 삶을 사신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포 요양원 병동 건너편 숲속에 남아 있는 2인용 <산장 병사> 흔적
<산장 병사>에서 멀지 않는 곳에 남아있는 성모마리아상
관련 자료에 의하면, 1960년 국립마산요양소 앞산의 울창한 소나무숲속에는 산집 커티지(Cottage)라고 불리던 2인용 병사(산장) 이 10야동 있었다. 병워너에서 운동이 허락된 경증 결핵 환자들이 그 산장 병사에 수용되었다고 한다.
가포 소재 국립 마산요양소(결핵병원) 전경 옛 사진. 한국철강이 들어오기전이다. 마산화력발전소도 보인다. 한국철강이 들어서기 전 모습이고, 국군통합병원도 이부근에 있었다. 오른쪽에 본건물이 있으며, 길건너 왼쪽에 있는 것이 소아병동이다. 산너머로 마산 시내 일부가 보인다. 병원앞으로 시내버스가 다녔다. 마산과, 목포에 국립 결핵병원이 들어섰던 이유는 당시 두 지역의 오존 함유량이 많아 청정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공업화 이전의 마산은 공기가 아주 좋았다.
결핵병원 맞은편의 숲속에 있던 2인용 병사. 1960년 사진이다. 가요 <산장의 여인>에서 노래한 바로 그 산장이다. |
* 위 내용은 지역 신문,마산시 자료집, 향토사 연구하시는
많은 분들의 자료집등을 참고하여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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