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나갈 문구를 고객별로 픽업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반가운 손님이 왔다. 성희다. 성희는 로젠택배 물류회사에 다닌다. 근처 거래처에 택배 프로그램을 설치하러 왔단다. 택배 물량이 많은 회사는 물류 프로그램을 설치해줘서 일일이 택배스티커를 적을 필요가 없이 컴퓨터로 출력한 것을 사용하도록 해준다고 한다. 거래량이 많으면 특혜를 부여 받을 수 있다. 편의성 제공은 영업의 필수요건이다. 이익을 많이 가져다 주게 되면 갑이 된다. 옛날에 땅을 가진 사람이 큰소릴 쳤다면 지금은 오더를 가진 사람이 갑이 된다. 성희도 많은 오더를 가지고 싶어 발로 뛰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가 또 잘 알고 있는 사실은 오더가 없어지면 더 이상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가 어떤 이익(우정?, 사랑?)을 줄만한 사안이 없을때 사람들은 발길을 끊는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성희 딸이 벌써 5살이라고 한다. 성희는 좌천동 어딘가에서 일하던 시절, 야간택배알바로 일하러 온 중국교포의 소개로 지금의 제수씨를 만났다고 한다. 제수씨는 알바가 알던 사람은 아니었고 한국남자를 만나고 싶어하는 중국여자중에 무작위로 소개를 해준 케이스라고 한다. 그 시절은 기억컨데 중국에 한류열풍이 일었을때로 2013년 연말과 2014년 봄까지 방영된 "별에서 온 그대"로 인해 그 절정을 이루었다. 그 열풍에 한국남자를 찾아 나선 수많은 중국여성 중, 별에서 나타나 각종 도술로 무장한 도민준의 열성팬이 되버린 제수씨는 소개받은 성희를 '부산의 김수현'으로 생각하고야 마는 지경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성희는 한국에 세금 많이 내야 한다. 한류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김수현의 팬미팅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제수씨는 '부산의 김수현'까지 만날 작정으로 서울에 도착하자 마자 성희를 만나러 왔고 성희도 휴가를 내가며 열성적으로 환대했다. 잠도 집에서 재웠다고 한다. 40중반인 아들의, 처음이었을지도 모를 여친이자 며느리감을 집에서 맞이한 성희 어머니의 기쁨을 어찌 글로 표현 할수 있겠나. 중국인인 그녀와 무슨 대화 따위가 필요했겠는가...존재만으로 만족이다...귀국을 위해 서울로 올라간 제수씨가 다시 성희가 보고 싶다고 올라오라고 했다니, 이들은 첫만남을 결국 운명으로 이끌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성희는 어머니와 함께 제수씨의 고향인 쓰촨성을 방문했다. 이제 양가 상견례도 끝난것이다. 결혼식은 고향 부산에서 치뤘다. 그리고 딸을 하나 낳았다. 둘다 양국에서 두번 결혼하는 것에는 반대했다고 한다.
이 나라에서의 국제결혼(특히 동남아시아)은 흔히 적령기를 놓친 남성의 대안정도로만 얘기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희의 국제결혼은 국경을 넘나든 전형적인 러브스토리다. 성희는 자신의 결혼스토리가 저 자신도 몹시 신기하고 자랑스러운듯 얘기했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며 운명적인걸까. 성희의 사랑은 기적이며 운명인가...나는 사랑이 우연(Coincidence)이라고 생각한다. 운명과 필연은 우연의 연속이다. 영화 '500일의 썸머'를 보면 내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사랑은 Summer(여름) 다음에 Autume(가을)이 오는 지극히 당연하고 우연한 결과임을 보여주는 영화.
나이가 50이나 되버린 나에게 불타는 이성적 사랑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사랑했던 기억만큼은 세월이 지나도 아름답게 남아 있다. 오래 산 부부가 닮는 것은 서로의 부족한 조각을 채웠기 때문일까. 서로에게 없었던 그 부족함 때문에 사랑이 생겼고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서로 잘 매운거라면...서로의 없음을 알아본 사랑이라면...문밖을 나서서 두번이나 뒤돌아보고 손을 흔드는 저 순진한 얼굴의 성희. 그도 아마 그런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까.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거기에서 우리는 너의 '있음'으로 나의 '없음'을 채울 수 있을거라 믿고 격렬해지지만, 너의 '있음'이 마침내 없어지면 나는 이제는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한겨레출판 20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