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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신박제 필립스전자 사장은 "블루오션전략을 틈새시장이나 역발상으로 오해하는 잘못을 경계해야 한다"며 "대량시장이 목표여야 하고 결과보다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
그는 블루오션전략의 창시자인 김위찬,르네 마보안 교수(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와 지금도 자주 만나며,스스로를 "김 교수의 제자이자 친구"라고 말한다. 지난 주말 서울 남산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아가 블루오션전략에 빠져든 이유 등을 들어봤다.
대담 = 권영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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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위찬 교수를 언제 처음 만났나.
"지난 1992년 네덜란드 필립스 본사가 구조조정 프로그램인 '센추리온'을 공식 발표하는 자리에서 처음 봤다. 김 교수는 센추리온을 주도하는 3명의 핵심 지도교수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센추리온 추진 발표를 듣고 충격이 너무 커 김 교수와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 한국인이 핵심 지도교수진에 포함돼 있는 걸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던 정도였다."
-블루오션전략을 국내에서 처음 도입한 기업으로 필립스전자를 꼽아도 되는가.
"당시에는 블루오션전략이 정립돼 가는 과정이어서 우리가 일종의 '테스트 베드'(test bed)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를 기억해보면 블루오션전략의 핵심도구인 전략캔버스까지 그리면서 모두 열심히 했다.
덕분에 36인치 와이드 TV가 히트를 쳤다. 처음 이 TV를 네덜란드 본사로부터 들여왔을 때 한국에선 팔리질 않을 것이란 부정적 시각이 강했다. 상류층을 잘 공략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특별 제작한 카탈로그를 보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TV'라는 이미지를 강조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것이 블루오션전략에서 말하는 비(非)고객 개척 사례다."
-삼성에 블루오션을 소개하기도 했다는데.
"평소 친분이 있던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전기 사장이던 지난 94년 당시 방한한 김 교수를 소개했다. 윤 부회장은 삼성전기에서 시작해 삼성SDI,삼성전자에 차례로 이 전략을 적용했다.
김 교수도 이후 우리 회사 일 때문에 방한할 때마다 삼성에 가서 임직원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 김 교수는 윤 부회장과 아주 친한 사이이고 삼성전자 사장을 지낸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과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LG도 최근 그룹차원에서 블루오션전략을 도입했는데.
"LG와 김 교수도 제법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구본무 회장과 LG계열사 사장단이 지난 95년 필립스 본사를 찾았을 때 당시 센추리온 프로젝트를 설명한 사람이 바로 김 교수다."
-블루오션전략이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것을 보고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서점에 '블루오션전략'이 나오기 전에 영문판 200권을 들여와 주요 기관장과 CEO 등 리더들에게 선물했다.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일부에선 '블루오션전략'을 틈새경영으로 오해해 안타깝다.
틈새시장을 노려 성공한 회사는 없다. 성공하더라도 오래 못 간다. 블루오션전략은 틈새시장이 아닌 거대시장(mass market)을 겨냥하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블루오션을 제대로 도입해야 한다는 충고로 들린다.
"블루오션전략을 잘못 이해해 적용하면 효과가 없다. 블루오션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한 절차(fair process)'다. 레드오션에서 블루오션으로 옮겨가는 과정은 때론 조직 전체를 뒤바꾸는 큰 변화를 수반한다.
구성원들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협조가 없을 경우 쉽지 않은 과제다. 직원들은 공정한 결과보다 공정한 절차를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사실 김 교수로부터 '공정한 절차'를 배우기 전까지는 나도 강압적인 스타일의 경영자였다. 이제 그런 소리는 안 듣는다. '공정한 절차' 덕분에 우리 회사에서는 노사갈등이 거의 없다. 아무리 좋은 배려에서 나온 결정도 공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되면 지지도가 50∼60%에 머문다."
-경영학자가 아닌 김 교수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한학에도 조예가 깊다. 고승들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높은 경지에 올라 있다. 한마디 말을 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래서인 것 같다. 특히 중국 고사를 잘 인용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얘기는 중국 주나라 문왕의 고사다.
'문왕이 찻잔을 가득 채우지 않고 항상 3분의 1 정도 비워두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신하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 문왕은 잔을 가득 채우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여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새로 채우려면 비워라',얼마나 멋진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