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된 가치들에 대한 저항
가믄장 아기는 제주도의 설화 ‘상공본풀이’를 연극적으로 재해석한 총체극이다.
연극 ‘가믄장 아기’는 여자 주인공이 혼자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기존 동화의 신데렐라, 백설공주 등 여자 주인공은 착한 마음씨와 아름다운 외모로 남성의
도움을 받아 행복한 삶을 누렸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면, 연극 ‘가믄장 아기’는
신화 속에서 찾아낸 현대의 주체적 여성상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스토리를 잠깐 보면 거지 부부가 세 딸을 낳았다. 첫 딸은 은 그릇으로 먹여 살려 은장아기,
둘째 딸은 놋그릇으로 먹여 살려 놋장아기, 셋째 딸은 검은 나무 그릇으로 먹여 살려 가믄장 아기라 불렀다.
가믄장아기가 복 덩어리인지라, 거지부부는 셋째 딸을 얻고 부자가 되었다.
너는 누게 덕에 살았냐 묻는 부모의 대답에 첫째, 둘째딸은 부모덕이라지만 막내 가믄장이는
배꼽 아래 자궁 덕이라 한다. 부모에게 가차없이 쫓겨난 가믄장아기는 험하고 황량한 세상에 내팽겨치게 된다.
죽을 만큼 무서운 어두운 숲속, 공포에 가까운 배고픔, 무식하고 위협적인 남성,
무엇보다 세상에 혼자 버려진 외로움이 그녀를 힘들게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지혜롭게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맘에 드는 남성에게 머뭇거리지 않고 프로포즈를 하는 장면은 어쩜 낯설고
당황스럽기 까지 하다. 남자에게 쌀을 가르치고 함께 황무지를 일구고 앞날을 개척해 나가는 진정한 동반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식과 지혜를 나눔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우열과 선후가 정해있지 않다.
가믄장 아기는 진정 젠더로서의 자아를 그 어떤 신화의 주인공보다 잘 나타내고 있다.
서점에 나가보면 수십종의 그리스 신화 관련 책들이 즐비하다.
그것에 비해 잘 알려지지도 않은 제주신화 그것도 남성중심 역사 속에서 늘 소외되었던 여성을 통해
지배와 소외, 개척과 성공의 신화를 지금 다시 쓰고 있다.
아이들과 같이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가족극이다.
이 연극을 풀어나가는데 색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번째는 검정이다.
거지 부부의 세딸은 은,놋,가믄장(검정)으로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나 흡사,
백인과 유색인종을 대표하는 색감이다. 가믄장아기는 어두운 검정으로 소박하기는 하나
오랜 기간 차별받아 온 흑인의 설움도 대신하는 듯 하다.
또한 니키드생팔의 ‘나나(NANA)’ 연작(공교롭게 나나의 피부도 검다)도 맥을 같이 한다.
극중 어려운 삶의 순간을 캔디나 이쁜 공주님들처럼 테리우스, 백마탄 왕자님들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혼자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가믄장아기의 모습은 여성의 건강한 생명감이 넘치는
나나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다.
두번째는 푸른색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바다색,
극중 푸른 천으로 넘실대는 바다를 만들었는데 제주도의 바다를 가장 제주답게 그리는 작가가 있다.
바로 강요배 작가. 강요배의 바다는 많이 서럽다.
제주의 혼이 깃든 그의 그림은 제주의 대지와 바다, 그리고 제주 사람들,
제주의 아픔을 가장 잘 묘사하는 대표적 향토화가이며 민족화가이다.
극중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굴곡이 깊으면 깊을 수록 푸른 바다는 더욱 임팩트하게 다가온다.
세 번째는 붉은 색이다. 그녀가 집에서 쫓겨나며 머리에 질끈 묶고 나온 생명의 혈이 묻은 빨간 천.
누구덕에 컸느냐했을 때 가믄장 아기는 배꼽밑에 자궁의 덕이라 했다.
그 자궁을 제대로 만든 작가 니키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 앞서도 검은색의 나나를 만들기도한
생팔이 만든 “Hon(그녀)”은 커다란 자궁을 누여놓고 그 속으로 관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만들었다.
한마디로 어머니의 자궁속으로 즐거운 퇴행을 경험하게 되고 생명의 위대함과
태곳적 안도감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마지막의 붉은색의 연결고리는 페미니즘 아트의 살아있는 전설 쥬디시카고(JUDY CHICAGO)다.
혹평과 호평을 넘나들었던 디너파티의 한 부분인 자수 작품을 본다.
해산의 위대하고 아름다운 고통의 장면을 섬세하게 묘사하였다. 바탕은 온통 핏빛으로 매우 강렬하다.
출산 그 자체는 엄마의 수고와 아픔이지만 그 몸을 빌어 이 세상에 나오게 해 준 신에게
또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획일화 되고 전도된 가치들에 대한 저항과 개척의 정신은 가슴 먹먹한 도전이 된다.
금그릇으로 자랐건 은그릇으로 자랐건 보잘 것 없는 가믄장으로 자랐건 상관없이
우리들 모두 귀한 생명이다.
Judy Chicago. It's Always Darkest Before the Dawn, 1999
동트기 바로 직전이 가장 어둡다 했다.
칠흙같이 어둡고 앞이 안보인다 낙심하지 말고 조금만 더 숨죽이고 나아갈 때
비로소 해오름의 순간을 맞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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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가믄장 아기
기간:2010년 4월 16일 ~ 2010년 5월 9일
시간:평일 8시 / 토 4시, 7시 / 일 3시, 6시 / 월 쉼
5월 5일(수) 2시 , 5시, 8시
4월 24일(토)~25일(일) (총 4회공연) 공연없음
장소:대학로 나온 씨어터 /등급:만 7세이상/문의:02-3675-3677
주최: 나온컬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