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마을교육을 묻다.
-평택 섶길 걷기를 하고 나서
청북중학교 국어교사 이진옥
강은 인간의 것이 아니어서 흘러가면 돌아올 수 없지만, 길은 인간의 것이므로 마을에서 마을로 되돌아온다. 모든 길은 그 위를 오가는 사람이 주인이어서 이 강가 마을 사람들의 사랑과 결혼도 상류와 하류 사이의 물가 길을 오가며 이루어졌다.(김훈의 ‘섬진강 기행’ 중)
길에 대한 고민은 10여 년 전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기행문의 한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평택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오래된 수제 돈까스 전문점인 [섬]이라는 곳이 있다. 어렸을 적 부모님과 처음으로 갔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그래서 아직도 생각나는 (어디에 적혀있었는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문구 하나를 읽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그때는 그게 정현종 시인의 시구절인 지도 몰랐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 글이 멋있다 생각했고 돈까스는 맛있다 생각했을 뿐이다. 시간이 흘러 그 구절이 시라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그럼 그 섬에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지? 하는 생각이 늘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건 길이다.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도 뱃길이 필요하다. 길이 없다면 너와 나는 단절된 존재일 뿐이다. 관계 맺기의 측면에서 늘 길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평택에서 태어나 자란 세월이 벌써 40년이다. 이곳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오고 다시 이 지역의 중학교로 돌아와 아이들을 가르친 지 15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 평택은 남부지역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포승과 청북으로 발령이 나고부터 서부지역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내가 과연 나의 고향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있는가? 이 짧은 지식으로 우리 고장의 아이들을 어떻게 길러낼 수 있을까? 비로소 마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학교는 마을의 교육기관인데 이제껏 마을을 외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의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는 마을에 대한 자부심부터 길러야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우리 아이들에게 마을을 교육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올해 여름방학, 대학원 수업 중 ‘여행문화와 학교교육’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수업 내용 중 관심이 갔던 부분은 프랑스의 걷기 문화인 ‘랑도네(Randonnée)’였다. 랑도네를 우리말로 옮기면 긴 산책이나 긴 나들이라는 뜻인데 ‘걷기 랑도네’와 ‘자전거 랑도네’가 있다. 한마디로 랑도네는 오랫동안 걷기 또는 오랫동안 산책하기를 말한다. 프랑스에는 이런 랑도네 협회가 전국적으로 조직되어 있고 이 협회에서는 걷기 코스를 개발하고 안내지도를 제작하고 길에 이정표를 만드는 일을 한다. 거기에 학교교육까지 지원한다. 내가 이 수업에서 주목한 부분은 랑도네 협회의 학교지원부분과 DeSeCo 프로젝트가 도출한 미래사회 핵심역량이다. 2004년부터 시작한 프랑스의 ‘한 학교 한길 운동’은 학생들이 버려진 길을 되살리거나 새길을 만드는 것으로 교과 간 융합수업의 형태로 진행된다. 마을의 길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지리를 배우고 역사를 배우고 그밖에 의사소통 능력, 정보처리능력 등을 기르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랑도네 협회의 지원이 크게 작용한다.
그런데 이러한 활동들이 먼나라 프랑스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청북중학교에서 1학기에는 평택대학교 교수님과 하래장애인복지센터의 도움으로 커뮤니티 매핑을 시도해보았고, 이번에는 평택섶길추진위원회의 도움으로 소금뱃길을 걸으며 청북지역의 역사와 지명의 유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알고 보면 우리 지역에도 곳곳에서 지역을 알리는데 노력하고 교육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단체나 개인이 많다. 도움을 주고자 하는 분들과 학교를 잘 연결만 한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풍성한 교육을 누리게 할 수 있다.
2016년 마을교육공동체 연수를 들으면서 깨달은 것은 아이들이 민주적인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가 교육자원이 되고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움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이루어질 수 있는 활동이다. 굳이 교육기관이라 명명된 곳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미래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갖추어야할 핵심역량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에서 비롯된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인 마을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마을교육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마을을 통한, 마을에 관한, 그리고 마을을 위한 교육적 기회가 확대되어야 한다.
2017년은 청북중학교에서 마을교육에 대한 가능성을 실험해본 해이다. 1학년은 마을지도 그리기, 섶길 걷기를 중심으로 마을알기를 시도해 보았고, 2학년은 평택시민신문 인물기사 스크랩 활동과 마을사람 인터뷰를 통해 사람책에 도전해보았으며, 3학년은 미약하게나마 마을을 위한 순수한 봉사활동을 계획하여 스스로 활동해보았다.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이미 마을교육공동체가 활성화된 홍성의 홍동마을이나 양평의 조현마을협동조합, 시흥의 행복교육복지센터에 비하면 정말 미약한 시도일 수 있다. 이런 시도가 꾸준히 이어진다면 청북지역 초․중․고등학교가 연계하여 청북만의 특색 교육과정을 함께 짜고 마을과 함께 교육하는 이러한 활동들이 축제로 연결되는 진정한 의미의 마을교육공동체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소박하지만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섶길 걷기를 함께한 선생님들의 감상]
나는 역사 과목을 가르치면서 교과서와 책 속에 있는 역사적 사건들과 그에 속해 있는 인물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정작 그 인물이 살아온 '장소'와 '삶'에는 무관심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이번 섶길 체험은 내게 '장소'와 '삶'이 있는 살아 숨쉬는 역사를 주었다.(엄윤정 역사 선생님)
산길을 걷다가 자기집 앞에 도착했다고 좋아하는 아이의 수줍은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의 생활공간을 보면서 아이들과 좀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평택에는 산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산테크노벨리까지 조망할 수 있는 산다운 산을 오른 듯하여 평택에 대한 긍지를 느낄 수 있었고 역사이야기를 곁들여 설명한 해설이 있어 더욱 의미있는 기행이었다. (김미금 도덕선생님)
날씨가 추웠음에도 불구하고 해설사 선생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열심히 걸어 준 학생들이 대견했다. 빗살무늬 토기가 발견된 장소 근처에서 빗살무늬 토기 조각을 직접 눈으로 보니 교육 효과가 몇 배가 되는 것 같았다. 신포, 청북면 등의 지명이 생긴 유래나 관련 역사 이야기는 학생들이 우리 마을에 대한 이해를 더하고 자부심을 갖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정보현 특수선생님)
학생들과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설렘과 별거 있을까 하는 두 가지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노래를 힘차게 부르며 걷는 아이들의 모습에 같이 힘이 나고, 항상 그냥 지나치던 주변에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보게 해 주신 해설사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보낸다. 지속적으로 학생들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강현주 영어선생님)
첫댓글 아이들 보다 선생님들이...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