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296> 구례 천마산
좌측에서 노고단 반야봉 성삼재
남자한테 참 좋다는 산수유, 이제 막 꽃망울 터뜨리는데…
남도에서 개화 소식이 들려온다. 지난겨울 기승을 부렸던 구제역도 한풀 꺾여 주춤한다는 희소식이다.
겨우내 옷장과 창고에 처박아 둔 등산복과 장비를 꺼내는 산꾼들이 많다. 어딜 가 볼까?
이런 고민에 빠졌는데 때마침 '지리산의 봄 전령사'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는 전언이 왔다.
'산&산' 팀은 이번 주에 전남 구례군 천마산을 찾았다.
겨울 산행이 엄두가 안 나 잠시 잊었던 지리산도 보고, 산수유 구경도 즐기라는 이유에서다.
천마산에 다녀와서 산동면 산수유마을에서 산수유를 보고
지리산온천랜드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풀면 금상첨화겠다.
'열린다, 안 열린다'는 말 많던 '구례산수유꽃축제'가 결국 취소되긴 했지만,
그래도 산수유는 조만간 지천일 게다.
시인 곽재구의 '산수유꽃 필 무렵' 시 한 편을 음미하며 출발하자.
"꽃이 피어서/ 산에 갔지요/ 구름 밖에/ 길은 삼 십리/ 그리워서/
눈 감으면/ 산수유꽃 섧게 피는 꽃길 칠 십리."
지리산 천왕봉을 향해 기세 좋게 마루금을 내던 백두대간이
지리산 만복대에서 서남쪽으로 잠시 지세를 뻗친다.
여기가 '견두지맥'이다. 일명 '개머리산'인 견두산(775m)이 있어서다.
견두지맥에서도 천마산은 전형적인 육산의 풍모를 갖췄다. 지리산을 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1천 년 전 시집온 산둥성 처녀
중국서 가져왔다는 얘기 전해와
정상에 서면 지리산이 한눈에
뒤쪽으로는 남원·곡성 펼쳐져
산행팀은 산꾼들이 즐겨타는 천마산~견두산 코스를 버리고
부산·경남 산꾼들을 위해 천마산 원점 회귀 코스를 열었다.
등산로는 이평마을 버스정류소에서 출발,
비득재~깃대봉~둔사봉~둔산치∼천마산 정상∼상무봉~망루터~둔사재~하무마을
~이사마을 정류소∼기점이다.
15㎞쯤 되는데 기점~비득재 구간만 빼면 전체적으로 산행은 원활한 편이다.
들머리인 이평마을 버스정류소에서 2분 정도 지나면 폐교된 이평초등학교가 있다.
학생 수가 크게 줄어들면서 원촌초등학교에 통합되었다.
2만 5천 분의 1 지도에는 '구례택견학교'로 표시돼 있다.
잠시 뒤 이평마을 보건소와 회관이 나온다. 느티나무 노거수가 서 있다.
20분쯤 지나면 둔기마을과 이사마을 갈림길이다. 둔기마을로 간다. 둔기교까지 10분 정도.
둔기마을 입구에 산수유가 막 개화를 서두르고 있다.
산수유는 약 1천 년 전 중국 산둥 성에 살던 처녀가 구례로 시집올 때 가져와 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면 이름도 산동면이다. 전국 산수유 생산량의 70%가 여기에서 난다.
마을 사람들은 산수유를 '대학나무'로 불렀다. 나무에서 난 열매로 자식을 키웠기 때문이다.
요즘은 옛날 말이 됐다. 한때 600g에 5만~6만 원 하던 열매가 요즘은 1만 원대로 떨어졌다.
잘나가던 때의 반값도 안 된다.
항일의병장 양은인 공의 묘역을 지나 6분 정도 편한 오르막을 걸으면 둔기농원이 나온다.
여기에서 계곡을 따라 비득재 방향으로 시멘트 임도를 따라 30분쯤 걷는다.
겨우내 언 물이 녹았는지 물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마을 주민들이 설치한 고로쇠 물통이 몇 군데 보였다.
간혹 짓궂은 산꾼들이 수액을 몰래 마시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한단다.
임도가 끝나면 산길이다. 10여 분 걸으면 비득재에 도착한다.
비등봉 우측 능선으로 향하다 15분 정도 지나면 깃대봉(691m)이 나온다. 봉 표석이 있다.
천마산 능선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지리산, 왼쪽 멀리 남원 땅이 보이기 시작한다.
깃대봉에서 둔사봉(640m)을 거쳐 둔산치까지는 내리막이라 무리 없이 걸었다.
잔솔가지가 길에 깔렸지만, 해빙기라 길은 조금 질퍽했다.
이맘때는 내리막에서 미끄러지기 쉽다. 등산 스틱을 잘 활용하자.
둔산치 쉼터
둔산치부터 천마산 정상까지는 20분 정도 걸리는데, 약간 오르막이다.
천마산 정상은 탁 트인 경관에 제법 널찍했다.
지난해 정비사업을 한 덕분에 쉴 만한 벤치도 있고, 산신제를 지내는 돌 제단도 있다.
지리산을 바라봤다. 차일봉, 노고단, 성삼재, 고리봉이 장엄한 마루금을 형성했다.
날이 좋으면 천왕봉이 보인다는데 이날은 아쉽게도 접할 수 없었다.
지리산 오른쪽 능선과 조붓하게 흐르는 섬진강이 소실점을 그리면서 만났다.
견두지맥이 분기하는 만복대 아래 산동면 산수유마을은 노랗게 물들 기세다.
뒤쪽으로 돌아봤다. 맞바람이 땀을 식혔다. 전남 곡성군 들판과 전북 남원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예로부터 천마산~견두산은
지리산을 오르지 못해 바라볼 수밖에 없던 산꾼들에게 좋은 전망을 선물했다.
이번 산행에서도 그런 전망 덕에 부산서 멀리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정상을 떠나 서리내재를 지나쳐 상무봉(624m)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40분 정도 걸린다.
솔숲 아래로 걸어서 상쾌했다. 산새 소리가 걸음을 재촉한다.
이 봉우리에서 10분쯤 더 걸어가면 망루터를 만난다.
5평 남짓한 땅에 무릎 높이의 돌이 담처럼 쌓여 있다.
돌담 둘레는 어림잡아 10여m.
남원시가지
망루터 입구에는 '세거무은동'이라고도 박혔다.
구례군 마을 유래사에는 조선 선조 때 천안 사람 전수현 내외가
왜란을 피하려고 둔산치에 성을 쌓고 살았단다.
이 일대는 안개가 끼면 10일 이상 사람을 분간 못할 정도로 자욱했다.
하여 이곳을 '안개 속에 숨었다'고 '무은동(霧隱洞)'으로 불렀다.
하산길에 지나는 '하무마을'도 '아래 안개마을'이란 뜻이다.
둔사재에 도착한 건 망루터에서 15분쯤 지나서다. 곧장 가면 견두산, 우리는 오른쪽으로 틀어야 한다.
예전에 등산로로 이용한 흔적이 있어 이쪽으로 길을 냈다. 솔가리가 길에 가득하다.
푹신푹신했지만 내리막이라 조심해야겠다.
인적이 드물었는지 길이 희미했다. 리본을 촘촘히 달고 길을 조금씩 열었다.
둔사재에서 하무2교까지 소요시간은 50분 가량.
약초 재배지가 주변에 있어 출입금지 간판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하무2교에서 무은천을 따라 나 있는 포장 임도를 따라 부지런히 걷는다.
둔사댐을 거쳐 이사정류소까지 40분 정도 걸렸다.
이사정류소에서 종점인 이평마을 버스정류소까지는 30분 정도.
총 산행시간은 쉬는 시간 포함해 5시간쯤 걸렸다.
하무2교
산행과 산수유를 즐기려면 아무래도 자가운전이 낫겠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하동IC에서 빠져 19번 지방국도를 탄다. 구례 방향으로 달리다
구례 냉천IC 교차로에서 산동면 쪽으로 진입. 20분쯤 달리면 이평마을(평산리)에 도착한다.
부산에서 넉넉잡아 2시간 30분 정도. 통상 부산에서 구례로 갈 때 이 코스를 이용한다.
섬진강을 보며 달리는 매력이 있지만 하동IC에서 구례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다소 지겹다.
산수유
지난 1월 말 개통한 순천~완주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전체 이동시간을 30~40분 가량 줄일 수 있다.
남해고속도로 순천분기점에서 순천~완주고속도로로 갈아탄다.
구례·화엄사IC에서 나와 용방교차로에서 좌회전, 10분쯤 달리면 이평마을이다.
톨게이트 요금은 서부산에서 출발하면 8천800원(북부산 출발 8천700원).
서부산~하동IC 구간의 톨게이트 요금 6천300원(북부산~하동IC는 6천200원)보다 조금 더 나온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051-322-8303)에서 구례행 시외버스를 탄다.
오전 7시, 9시, 11시, 오후 1시, 3시, 5시(막차)에 차가 있다. 소요시간 3시간(요금 1만 4천600원).
구례버스공용정류장(061-782-3941~2)에서 이평마을까지 가는 군내버스는
오전에는 6시 30분, 10시 50분 2대뿐이다. 30분 소요(요금 1천400원).
택시(산동온천택시 061-781-1296)를 타면 7천~8천 원 정도 나온다.
이평마을에서 구례버스정류장으로 나가는 군내버스는 오후에는 3시 40분, 6시 30분 2대밖에 없다.
구례버스정류장에서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시외버스는
오후 1시 30분, 3시 30분, 4시 30분, 5시 20분, 6시 30분(막차)에 있다.
둔사댐
이평마을 주변에는 마땅한 먹을거리가 없다.
대신 산동면 산수유마을에 가면 남도 음식의 진수를 맛볼 만한 음식점이 몇 곳 있다.
지리산 산채를 이용한 혜림회관(061-783-3898)의 산채정식(8천 원)이 입맛을 돋운다.
할매된장국집(061-783-6931)의 버섯산채비빔밥(6천 원)과 구수한 청국장(6천 원)도 잘 알려졌다.
별미인 더덕백반(8천 원)을 맛보고 싶다면 한국회관(061-783-1150)을 찾길 권한다.
더 많은 정보는 구례군청(061-780-2325) 문화관광 홈페이지(http://culture.gurye.go.kr)를 참고하자.
구례군축제추진위원회(061-780-2727)는
이달 23일부터 피는 산수유가 다음 달 3일까지 만개한다고 밝혔다.
전대식 기자
문의: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홍성혁 산행대장 010-2242-6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