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문자 그대로 ‘국가나 사회, 개인의 운명을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일’이다. 혁명은 자체의 언어만으로는 존립하기 어려우며, 그 앞에 각종 수식어가 동반된다. 정치, 산업, 정신, 교육, 문화 등등. 예컨대 우리는 목하 제4차 산업혁명의 촉발과 전개과정을 목도하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 증강현실, 사물 인터넷, 3차원 인쇄기가 재연하는 광속(光速)의 산업혁명!
영화 <신해혁명>은 1911년 10월 10일부터 시작된 중국 현대사의 도도한 흐름을 포착하여 이듬해 손문이 임시대총통을 사임하는 2월 13일까지를 다룬다. 광활한 대륙 곳곳을 비롯하여 아메리카와 런던 같은 구미 (歐美) 곳곳을 공간으로 삼는다. 이런 씨줄과 날줄에 기초하여 혁명에 헌신한 허다한 중국 청년들의 초개(草芥)같은 운명을 쉴 틈 없이 보여준다.
그러하되 영화는 신해혁명을 바라보는 상이한 세 가지 관점에서 출발하여 끝을 맺는다. 손문(1866-1925)을 중심으로 한 혁명 주도세력의 관점, 선통제(1906-1967)를 섭정하는 태후와 청 황족의 입장, 양자 (兩者) 사이에서 정치적 이해득실을 저울질 하면서 권력욕에 불타는 원세개 (1859-1916). 이런 관점 사이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나타났다 소멸한다, 별똥별처럼.
손문: 왜 우리는 혁명을 해야 하는가?!
“열강(列强)은 혁명에서 탄생합니다. 지금 중국은 미래가 없습니다. 외세와 지배층 때문에 중국 인민들은 존엄성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홍콩을 영국에게, 대만을 일본에게 할양해주는 것이 조정에서 할 일입니까?!”
손문의 일갈(一喝)이다. 신해혁명의 최고 지도자이자 이론적 논거를 제공하는 손문은 의사였다. <아Q정전>의 작가 노신 (1881-1936) 역시 일본에 유학하면서 의학에 뜻을 두었으나, 정신개조 없는 중국의 미래는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의업을 접은 것과 유사하다. 16년에 걸친 국외망명 기간에 손문은 제국주의 열강에게 중국혁명의 당위성을 설파한다.
혁명과 중국의 미래에 관한 손문의 인식과 실천은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되풀이된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 가능하다. 첫째, 수명이 다한 청나라 황제를 폐한다. 둘째, 군국주의를 혁파한다. 셋째, 민중의 선거로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한다. 손문의 이런 사상을 뒷받침하는 것이 그 유명한 삼민주의(三民主義)다.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
혁명은 근본적으로 운명을 전환시키는 것이며, 혁명을 위해 산화해간 청년들의 죽음은 민중의 개선된 삶을 위한 밑거름이 되리라 손문은 확신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청나라 조정을 대표하는 주외 (駐外) 대사의 딸이 손문의 사유에 공감하고 협력한다는 사실이다. 그로 인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만, 그녀 역시 민중의 미래를 위한 하나의 밀알이 된다.
태후와 청나라 황족: 황족이 있어야 나라도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에서 나는 기시감(데자뷰)을 느낀다. 1894년 1월 동학 농민군을 척살(擲殺)하기 위해 청나라와 일본 양국에게 군대를 파견해달라고 애걸복걸한 민비 민자영의 그림자가 선연하게 다가온다. “내가 조선의 국모!”라고 한 소리했다던 민자영의 심산(心算)이야말로 “왕족이 있어야 나라가 있다!”는 것이 아니었는가?! 이토록 닮은꼴이라니!
3살 나이에 서태후의 명을 받아 청나라 마지막 황제가 된 선통제는 본디 아비인 순친왕 재풍의 섭정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재풍 대신 그의 아내 태후(太后)를 전면에 배치한다. 황실과 어린 아들 선통제의 안위(安危)만 생각하는 여인 태후. 그녀의 흉중에는 ‘황족이 있고서야 비로소 국가도 있다!’는 인식이 뿌리 깊이 박혀있다.
그런 사유를 근거로 하여 황실은 1911년 5월 ‘철도 국유화령’을 선포한다. 영국, 미국, 도이칠란트, 미국 네 나라에게 600만 파운드를 받고 철도를 팔아넘기려고 획책한다. 이것에 반대하여 반청-반제국주의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 9월 사천(四川)에서 대규모 민중봉기가 발생한다. 그리고 운명의 10월 10일 무창봉기로 신해혁명의 횃불이 찬란하게 타오른다.
1661년 강희제 즉위 이후 옹정제, 건륭제에 이르는 134년 동안 황금기를 구가했던 청나라. 세계 최고수준의 경제와 문화 그리고 강역(疆域)을 자랑했던 제국의 위엄과 영광이 19세기 들어 급속히 쇠퇴의 길로 접어든 청. 그들이 지금과 여기에 함몰돼 있을 때 유럽은 영국의 산업혁명, 프랑스의 정치혁명, 도이칠란트의 정신혁명을 계기로 중국을 압도해버린다.
시대의 변화와 역사의 진전에 둔감했던 왕조의 몰락은 무수히 반복되었다. 모든 시작은 이미 그 안에 종말을 내포하고 있음은 당연지사.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사멸로 귀결된다. 그것의 지속여부에 차이가 있을 뿐. 영화 <신해혁명>은 종말과 사멸을 두려워하며 떠는 태후와 철없는 선통제의 치기어린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필연적인 역사의 심판이다!
원세개: 교묘한 줄타기의 달인
영화가 들여다보는 제3의 인물은 원세개다. 황실과 혁명군 사이에서 적절한 결탁과 배신을 되풀이하면서 최고의 정치권력을 도모한 인물 원세개. 무창에서 궐기한 혁명군을 일거(一擧)에 쓸어버릴 수도 있지만 그는 진군하지 않는다. “혁명군이 궤멸(潰滅)하면 우리도 존재의의가 사라진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이른바 ‘토사구팽’을 떠올리는 지략의 원세개.
“狡兎死良狗烹 高鳥盡良弓藏 敵國破謀臣亡 天下已定 我固當烹 교활한 토끼가 죽으니 좋은 개가 삶아지고, 높이 나는 새가 사라지니 좋은 활이 감춰지누나. 적국이 멸망하면 신하를 죽이려 하는데, 천하가 이미 안정되었으니 내가 삶아지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느냐!”란 기막힌 명구(名句)를 남기고 형장(刑場)의 이슬로 사라진 한신(韓信)을 떠올리는 원세개.
처음부터 끝까지 원세개는 권력을 향한 야심(野心)을 감추지 않는다. 물론 그는 아들들의 천진난만한 권력욕은 완벽하게 차단한다. 누구도 그의 야욕(野慾)을 눈치 채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원세개는 지략에 능하고 술수에 밝은 노회(老獪)한 정치가이기도 하다. 그에게 유일한 눈엣가시는 혁명당과 손문이다.
손문이 1912년 1월 1일 남경에서 민국정부 초대 임시대총통 자리에 오르자 원세개는 불같이 분노한다. 손문은 사심 없는 인간이며, 손문으로 중국이 일어난다고 예견했던 사람들의 평가를 무시하는 원세개. 천천히 싸우며 상황을 지켜보다가 병권과 군량을 확보하여 중국을 삼키려던 원세개. 그와 적대하는 손문! 영화는 그들의 대립과 갈등으로 옮아간다.
그 후의 이야기: 그리하여 신해혁명은 어찌 되었나
손문은 선통제가 퇴위(退位)하지 않는다면 혁명은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이천년 넘도록 유지돼온 왕조(王朝)를 끝장내고 민중의 손으로 공화국을 수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청조(淸朝)를 타파하는 자에게 대총통직을 넘겨주겠노라고 약속한다. 손문이 진정 바랐던 것은 무혈혁명(無血革命)으로 공화국을 세우는 것이었다.
호시탐탐 (虎視耽耽) 손문의 자리를 넘보던 원세개가 태후와 황족을 위협한다. 그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단두대(斷頭臺)의 이슬로 사라진 루이 16세와 그의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를 말한다. 충격과 공포에 몸을 떠는 태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으려면 퇴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세개의 주장을 넘어서지 못하는 황족가문의 사람들.
운명의 1912년 2월 12일 태후는 선통제의 퇴위를 선언한다. 이튿날 중국 혁명당의 최고 지도자이자 이론가이며 사상적 지주 (支柱) 손문은 임시 대총통직을 사임한다. 마침내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내려놓고 표표히 물러서는 손문. 기다렸다는 듯 대총통 자리에 오르는 원세개. 영화는 이후의 이야기는 생략한다.
우리는 신해혁명이 미완(未完)의 혁명이었음을 안다. 원세개의 야욕과 제국주의 열강의 간섭으로 1919년 5월 4일 이른바 5.4운동이 촉발된다. 하지만 중국은 그 이후로도 허다한 난관에 봉착했고, 결국 194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오늘날의 중화민국이 성립한다. 그 모든 뿌리와 근원을 영화 <신해혁명>은 손문과 혁명당에서 찾고 있다.
다시 생각하는 신해혁명과 현대중국
손문은 반식민지로 전락한 중국민중이 반봉건으로 신음하는 참상을 혁명으로 뒤집고자 한다. 그는 열강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민중을 위한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은 인물이다. 개인의 명성과 영광이 아니라, 혁명을 위해 평생 진력했으며, 그런 까닭에 대총통 자리에 연연(戀戀)해하지 않을 수 있었다. “작은 연못에 큰 물고기는 없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모든 이가 영원히 행복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혁명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이상주의자 손문. 선거를 통해 공화국을 건설함으로써 민중 자신이 지도자를 뽑는 방식을 관철시키고자 했던 선각자적인 지도자 손문. 목표를 위해서라면 희생과 타협도 마다하지 않은 전략적 판단과 사고의 소유자 손문. 이런 사람을 국부로 모시고 있는 나라 중국.
그러하되 과연 2016년 중국은 신해혁명의 손문과 혁명당의 그늘 아래 있는가?! 중국 공산당이 신해혁명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영화 <신해혁명>을 곰곰 반추해야 하는 의미는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