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餓鬼). 굶주리는 벌을 받는 불가(佛家)의 귀신이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했으니 아귀는 피골이 상접했겠다. 하지만 불가의 아귀는 덩치가 크다. 욕심을 먼저 채우고자 악다구니를 쓸 때 사람들은 흔히 ‘아귀다툼’이라고 말한다. 체면이고 뭐고 내팽기고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두고 ‘아귀처럼 먹는다.’고 한다. 그런 아귀가 굶주린다니, 아리송하다.
아귀는 우리 바다 밑에도 있다. 몸집도 몸집이지만 입이 가슴까지 벌어질 만큼 큰 녀석은 바다 바닥에 가만히 앉아 제 앞에 얼쩡거리는 물고기는 뭐든지 꿀떡 잡아먹는다. 아귀처럼. 거대한 입을 쫙 벌려 재깍 넘겨버리는 바다의 아귀와 달리 불가의 아귀는 덥석 문 입안의 먹이를 삼키지 못한다고 한다. 덩치는 크지만 목구멍이 가늘고 길어 잘 넘기지 못하는 데다 삼키려 할 때마다 음식이 불로 바뀐다는 거다. 오라! 탐욕스런 권력사회를 더욱 부패하게 만드는 뇌물이 꼭 그랬으면 좋겠다.
바다의 아귀는 행동이 그리 민첩하지 않다. 하지만 먹이를 낚아챌 때는 예외다. 그렇다. 아귀는 먹이를 낚아챈다. 두꺼비나 악어처럼 체통 없이 먹이에 슬그머니 다가가지 않는다. 무념무상은 아니어도, 강태공처럼 낚싯대를 드리우고 먹이가 다가오길 기다린다. 물 밖에서 물속으로 미끼를 넣는 강태공 낚시와 달리, 물 속 낚시를 즐기는 아귀는 제 등지느러미를 적극 활용한다. 작은 살덩이처럼 끝이 뭉뚝한 등지느러미 첫 째 가시를 거대한 입 앞에서 살랑살랑 흔들면 배고픈 물고기가 접근할 터. 사정거리에 들어왔다 싶으면 와락 덤벼들어 거대한 위장으로 꿀꺽 삼키는데, 어떤 해양학자는 ‘아구아구’ 먹고 느긋하게 소화시킨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아귀인가?
아무튼 그 아귀, 못생기기도 꽤 못생겼다. 그래서 못생긴 물고기의 대명사가 아귀다. 밤새 쳐둔 그물을 걷어올리는 어부는 아귀가 손에 잡히기만 하면, “에이 재수 없어!” 바다로 텀벙 텀벙 버렸다. 그래서 옛날부터 아귀를 ‘물텀벙’이라 불렀다. 경기도와 인천 일원의 이야기다. 펼친 팔보다 짧은 갈치를 시원치 않다며 버렸던 시절, 고인이 된 소설가 이문구가 하룻밤에 6가마니의 꽃게를 잡던 시절의 이야기다. 요즘 아귀는 ‘물텀벙’이 아니다. 중국에서 수입한 물량이라도 마다할 수 없을 만큼, 이 땅의 아귀는 반가운 생선으로 등극했다.
때는 겨울. 낡은 고깃배에서 선창가의 어떤 주막으로 들어왔던 생선 사이에 아귀가 있었다. 보자마자 획! 내버린 주모는 며칠 후 겨울 햇살에 꾸덕꾸덕 말라 있는 아귀를 뒤뜰에서 보았고, 마침 안줏거리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에라 모르겠다.” 주어들고 고추 양념과 갖은 채소로 찜을 요리했다. 발길 돌리려는 손님상에 내놓았더니, 아니! 무슨 이렇게 쫀득쫀득하고 맛있게 매콤한 고기가 있담! 다음날부터 소문을 들은 손님이 줄을 이었고, 아귀찜은 이후 마산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마산은 지금도 아귀를 20여 일 말렸다 찐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했던가. 40여 년 전부터 번진 입소문은 마산에서 전국 해안으로 퍼졌고, 이제 아귀찜이 없는 고장이 없을 정도다. 미더덕, 콩나물, 미나리에 대파를 숭숭 썰어 넣고,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과 생강들이 찹쌀가루와 어우러진 갖은 양념을 버무린 다음, 푹 찌는 아귀찜에서 그치지 않았다. 설설 끓이는 아귀탕도 미식가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고등어 한 마리에 174킬로칼로리, 갈치가 142킬로칼로리인데 64킬로칼로리에 불과해 다이어트에 적당한 생선으로 국립수산진흥원이 인정한 아귀는 콜라겐과 비타민 A가 풍부해 피부 건강에도 좋다지 않던가.
암초나 해초로 뒤덮인 바다 바닥에 사는 아귀는 몸집이 넓고 납작해도 연한 회색 반점이 커다란 돌처럼 보여 작은 동물의 눈에 쉽사리 구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빗 모양의 이빨을 양턱에 숨긴 포식자다. 더 큰 아래턱을 비죽 내민 아귀는 입과 가슴이 올챙이처럼 거대한데 비해 뒤로 갈수록 급히 좁아지는데 근육도 가슴에 많다. 큰 가슴지느러미를 위아래로 펄럭이며 바닥을 천천히 움직이며 1미터까지 자라는데, 팔뚝만한 놈이 손님의 식탁에 주로 오른다. 우리나라 연근해와 동중국해. 타이완과 일본 연해, 그리고 멀리 아프리카와 멕시코의 태평양 연해에 두루 분포하는데, 서양의 아귀는 예로부터 고급 어종이란다.
인천에는 ‘물텀벙이’ 골목이 있다. 아귀라는 한자말보다 물텀벙이 귀에 친근한데, 왜 물텅벙이 아귀보다 알려지지 않았을까. 개발에 눈이 먼 시 당국의 문화의식이 그만큼 낮기 때문이라고 지역 문화단체는 해석하는데, 그럴듯하다. 물텀벙을 찌거나 끓여 탕으로 내놓는 식당이 대여섯 어깨를 붙인 골목을 인천시는 뒤늦게 ‘전통음식 골목’으로 지정했는데, 예약 없이 간다면 오래 기다려야 자리에 앉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혀를 연실 내둘러야 할 만큼 매워 어른의 모임이나 연인에게 알맞은 마산의 아귀와 달리 웬만한 아이들도 엄두를 낼 수 있으니 인천의 물텅벙은 가족에게 인기가 높기 때문일 게다.
천적을 모르던 아귀는 요즘 수난이다. 온난화로 바다 바닥의 생태가 바뀌어도 참을만했는데 귀한 생선으로 지위를 일신하면서 발생한 남획이다. 등지느러미를 쳐들고 먹이를 노리는 아귀를 골라 꼬챙이로 휩쓸어가는 잠수부는 무서워도 무자비하지 않았다. 잠수부의 눈을 피한 아귀가 대를 이을 수 있었다. 한데 바닥을 훑는 쌍끌이 저인망은 달랐다. 한번 지나가면 다신 회복되지 않게 바닥의 생태계를 뒤죽박죽으로 파괴하지 않던가. 바다가 개발돼 오염되면서 물고기의 양과 종류가 줄어들자 새삼 각광을 받은 아귀, 차라리 ‘물텀벙’이었을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아닐지.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살만 찌거나 석쇠나 팬에 구워 요리하는 서양은 화이트와인으로 찌는 아귀의 간을 최고로 취급한다고 한다. 일본인은 몸무게의 10퍼센트에 달하는 아귀의 간을 회와 곁들이거나 맑은 복어와 아귀 탕에 넣어 끓여 먹는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귀 요리에는 도무지 간을 찾아볼 수 없다. 잡자마자 떼어 일본으로 수출하는 모양이다. 아귀탕은 간이 결정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이 땅의 아귀는 뭍에 오르자마자 자신의 간을 잃는 것이다. 이래저래 이 땅의 아귀는 물텀벙을 꿈꿀지 모른다.
첫댓글 생태보전시민모임의 소식지 <물푸레골에서>에 기고한 글입니다. 얼마 전까지 재수없다 버렸던 아귀의 이야기입니다. 전과 같이 어부에게 버림받던 시절이 아귀에게 더 좋았다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글을 보시고, 모처럼 아귀탕을 드시러 가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 밤에 침이 넘어가는군요.
저도 아귀찜을 좋아하는데 '아귀'보다는 '물텀벙'이라는 이름이 훨씬 정겹군요. 아귀의 간 얘기는 첨 들어봅니다. 이래저래 인간에게 알려지면 그날부터 수난이군요.
아귀탕이 먹고 싶어집니다.낼은 아귀를 좀 말려야 하겠네요. 쫀득쫀득한 찜 생각 납니다요.